1991년 가을 어느 날. 영은은 남편 주훈이 정식으로 목사가 된 예배에 참석했다. 많은 목사가 남편의 머리에 손을 대고 안수기도를 해주었다. 영은은 그 장면을 본 순간 몹시 벅찼다. 시간이 지나 23년째, 영은은 한 목회자의 사모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교회 반주자로서. 그녀는 이제 주훈의 성급한 리듬을 따라가지 못한다. 주훈은 주훈대로 찬양을 하고 반주는 조금 뒤처진 채 예배의 소리는 채워진다.

한때 영은은 매우 뜨거운 '사모님 사모님 우리 사모님'이었다. 교인들의 힘겨운 삶을 다독이고 자신의 아픔처럼 상담해주었다. 과거 한 중소규모의 학원에서 상담실장으로 일했던 경력은 보탬이 되었다. 사람을 어려워하던 목회자 주훈을 커버해주던 역할을 그녀가 맡았다. 어느새 교인들은 지난 육일간의 고뇌를 자동적으로 영은에게 맡기게 되었다. 영은은 귀가 뜨거울 때까지 통화했고, 늘 호감 가는 덕담과 성경구절을 교인들에게 건넸다.


교인들의 고뇌가 행여 어디로 새어나갈까봐 화장실로 들어가 전화를 받는 건 예사였다. 그런 성의가 그녀의 삶을 지탱해주었다고 볼 수 있었다. 그녀는 '좋은 사람 콤플렉스'를 연구했던 신학자 듀크 로빈슨의 표현처럼 '친절 알림이'라고 불려도 지나침이 없었다.

허나 그녀가 사람을 좋아한다고 해서 아주 활달한 성격을 띤다고 볼 수 없었다. 누군가에게 거절을 잘 하지 못하고, 또 누군가에게 거절을 당할까봐 두려워하기도 했던 영은은 자주 몸살이 났다. 물론 이 몸살은 가급적 드러나지 않아야 한다. 자신은 흐트러지지 않은 채 살아야 하며, 남의 흐트러짐을 위한 조력자로 살아가는 것을 '티나지' 않게 하는 것. 그게 남은 삶의 목표라고 여기던 영은이었다.


그러던 영은은 무언가 마음의 체함을 느꼈다. 늘 단호하고 분명하게 누군가의 삶에 조언을 해주던 그녀는 작은 일에도 쉽게 당황스러워 했다. 남편 주훈이 없어도, 아니 외려 주훈이 의지했던 생활 영역에서 영은은 주훈이 없으면 매우 불안해했다. "여보 어떡하지?"라는 말이 늘어가고, 판단을 주훈에게 맡겨버렸다.

자신을 위해 선택이란 걸 제대로 해본 적 없는 영은은 작은 화장품을 사러 갈 때도 매우 긴장했다. 어느 날 파우더가 떨어져 어느 브랜드점에 들어갔다. 잠시 두리번거리던 그녀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저 파우더..." 하고 점원에게 말했다. 점원은 때마침(?) 적극적으로 물건을 파려는 태도를 가진 사람이 아니었다. 누군가 선택을 해주길 바랐던 영은에게 점원의 태도는 높은 레벨이었다. 당황하던 영은은 용기를 내어 "저한테 맞는 게 뭔지 좀 골라주실래요?"라는 말을 꺼냈다. 이 말을 꺼내기에 앞서 물론 영은은 가게에 가기 전 내가 어떤 파우더를 사야 하는지 마음속으로 골라놓은 상태였지만. 입구에 들어선 순간 선택의 장소에서 당황스러움을 느꼈고, 이는 약간의 두려움으로 이어졌다. 점원에게 어느 파우더가 어울릴지 물어보기 전, 엉뚱한 파우더를 골라 점원에게 "어 그 파우더는 손님한테는 안 어울릴 것 같은데요"라는 말을 듣고 나서야 영은은 점원에게 자신의 의사를 조금 얹은 소극적인 성향 찾기를 타인에게 부탁한 것이었다.

영은은 가게문을 열고 나오자 명랑해졌다. 그리고 울리는 전화.


"어 집사님. 안녕하세요.  아구 맞다. 집사님 보험들라고 한 거 가입 깜빡했어요. 미안..근데 연지 시험 결과는

나왔어요?"


사모님, 사모님 우리 사모님은 어느덧 다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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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4-04-19 2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 좋은 콤플렉스라...참 힘든 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