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양준모는 연이어 울리는 카톡 알림음에 잠이 깬다. 원래 진동 모드로 해두었는데, 무얼 잘못 만졌는지 알림음 모드로 되어 있었다. 카톡을 열어보니 준모가 알고 지내는 저자 F다.

 

"양 선생님, 늦은 새벽 죄송하지만 말해야 할 것 같아서요. 선생님 안 그러신 분인 줄 알았는데 입이 그리 무겁진 않으시네요."

 

준모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게 무슨 일일까' 하고 카톡 메시지를 계속 읽었다.

 

"어젯밤에 영욱씨랑 영욱씨 친구들과 술 한잔하면서 이야기 나눴는데, 영욱씨가 제 주변일 이야길하더라구요. 근데 그 이야긴 제가 선생님만 알아달라고 한 이야기 아니었던가요? 당황스럽고 그렇습니다."

 

영욱 또한 준모가 알고 지내던 저자였다. 준모는 잠이 덜 깬, 눈을 찡그린 채로 "선생님,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경솔했습니다"란 메시지를 보냈다. 

 

편집자 생활을 시작한 지 1년 4개월째. 준모가 들어간 출판사 편집팀 분위기는 조용한 그 어느 편집팀과 마찬가지로  도서관 분위기가 나는 곳이었다. 화장끼 없는 담백한 표정을 한 선배들이 커피 한잔이 가득 담긴 컵 하나 갖다 놓고,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교정교열만 보는 곳. 점심시간이 되면 각자가 싸온 소소한 도시락을 꺼내 어디 혼자 조용히 나가 먹고 오거나, 몇몇 휴게실에 모여 반찬을 나누며 담소를 나누거나 혹은 "미안해요. 준모씨 오늘은 별로 생각이 없네요" 하는 말을 입에 달고 산 채 점심시간에도 교정교열을 보는 그런 분위기.

 

대표부터 막내까지 다 조용조용하고 말이 없는 가운데, 준모 또한 그런 사람이었다. 다만 그들보다 조금 더 활발한 정도였다. 말이 잘 돌지 않는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그나마 준모가 말을 하나 꺼내야 사람들은 "그래요?" 하며 연이은 웃음으로 반응을 주는 그런 분위기였다. 대표는 저자 미팅이나 기획 건이 있으면, 준모를 꼭 데리고 나가거나 처음부터 기획력이 괜찮았던 준모에게 저자 미팅을 잘 부탁했다. 

 

준모가 정신적으로 체한 것은 이때부터였다. 저자 미팅이 잦아지고 준모에게 기회가 자주 주어지면서 말수가 그리 평소에 없던 준모는 저자랑 만나면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하나 고민을 하게 되었다. 처음엔 저자의 관심사를 체크하기 위해 저자가 신문에 기고했던 칼럼을 한번 쭉 읽고 나가거나, 저자가 쓴 예전 책 등을 읽고 이야기를 나눠보자 마인드가 있었다. 그런데 막상 미팅을 가지면, 저자들은 준모가 꺼낸 자신의 책 이야기엔 흐름을 끊은 채, 준모가 다니는 출판사 사정이나, 업계 사정이 어떤지를 계속 물었다. 준모가 만난 저자들은 거기에 흥미가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여기엔 저자 누구누구의 책이 잘 나간다는 걸 비롯해 책의 비화 같은 것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말을 그대로 전달한다면야 문제는 없지만, 준모는 없던 이야기의 살을 붙이기도 했다. 

이런 일이 계속되면서 회사 사람들에 대한 원망도 생겼다. 어느 날은 한 친구에게 격한 분노를 대신 표출하기도 했다.



"아. 사람들이 왜 그리 조심조심스럽고 그런지. 나도 그리 막 말 많고 활달하고 그런 성격 아닌 거 알잖아? 근데 이 사람들은 나보다 더 그게 더 심한 거야. 왜 나한테만 그런 미팅을 자주 가라고 하는지 모르겠어. 이젠 나가면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도 모르겠어."

 

그러던 어느 날, 준모는 예전에 작업을 같이했던 저자 영욱을 만났다. 오랜만에 만나 할 이야기가 많을 거라 생각을 했는데, 맥주잔만 바라보는 어색함이 자주 찾아왔다. 영욱은 "요즘 그 친구는 어떻게 지내요?"로 시작하는 주변 저자들의 사정을 하나둘 묻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아도 슬슬 이야깃거리가 떨어졌다는 생각에 초조했던 준모는 저자 영욱이 꺼낸 화제에 기다렸다는 듯이 갑자기 밝은 표정이 되어 술술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준모는 저자 F의 이야기도 꺼냈다. 처음에 꺼낼 땐 선의로 꺼낸다는 생각을 했다. 

"근데,  F 선생님 이야기 들으셨어요? 아..요즘 되게 힘드신 것 같던데."

영욱은 "응 F가?" 준모는 며칠 전 만난 F의 이야기를 비교적 상세하게 말했다. 영욱이 인상을 찡그리고 이야기를 더 자세하게 듣는다는 게 느껴진 준모는 요즘 저자들을 만날 때 한 것처럼  자신의 추측 등을 섞어서 말을 쏟아냈다. 

 

.....

 

 

상황은 그랬다. F에게 죄송하다는 카톡을 남긴 준모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이불을 뒤집어쓰고 "아이 씨발!" 하며 욕을 해대는 것뿐이었다. 후회와 자책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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