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선생님의 가방 1~2 (완결) 세트 - 전2권
다니구치 지로 글.그림, 오주원 옮김, 가와카미 히로미 원작 / 세미콜론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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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여성의 사랑 이야기를 읽을 때면 두 가지 경계심이 든다. 하나는 노인을 현자로 만들어 무성성에 가두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생기는 덜 자극스러움과 어떤 거리감을 사랑의 이상적 형태로 제시하는 것. 다른 하나는 "우리에게도 욕망이 있다"라고 하는 시선으로 노인을 그리는 것이다. 특히 노쇄한 노인의 육체적 이미지와 상반된 뜨거운 성적 감정을 강조하여 그들도 인간이다라고 하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  

가와카미 히로미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다니구치 지로의 만화는 이 두 측면을 '의식'한 작품이다. 지로 특유의 일상을 향한 온기 그리고 아포리즘과 거리를 두려 하면서도 삶을 '감내하는' 것으로 만들어가는 그만의 매력적인 아포리즘이 느껴지는 캐릭터들은 아까 말한 경계심의 전형 안에 있으면서도 그것에서 도망가려 애를 쓴다.

익히 알다시피  '거리distance'를 유지하는 구도의 연인 관계를 그린 작품들은 '일분일초의 사랑'과 이를 뒷받침하는 고백의 범람에 피로감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다친 마음을 회복해줄 대안 공간으로 제시되곤 했다. 허나 일분일초의 사랑을 나무랄 이유는 없다. 다만 우린 행복할 줄 알았던 사랑에 왜 아파할까. 그리고 그 아픔을 자초했던 후회스러운 기억이 문득 찾아올 때 뜨끔함을 은근슬쩍 누군가와 나누고 싶을 때가 있다.

작품의 두 주인공 선생님과 그의 제자 쓰키코는 '후회했던 순간'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택한 것은 '혼자 하다'이다. 허나 그들은 사람과의 관계를 칼같이 단절하진 않았다. 누군가를 기다리되 문을 조금만 열어두었다. 조금만 열린 문을 확 열어 제끼는 이들을 그리워하는지 혹은 그 조금만 열린 상태를 예민하게 신경 쓰면서 제가 조금 들어가도 될까요?란 질문을 여러 번 하는 이들에 호감을 품고 있는지. 작품은 그런 이유를 뚜렷하게 말하려곤 하지 않는다.

단촐하고 소소한 만남. 그 만남의 분위기를 돋우는 술과 안주. 그리고 풍경을 벗삼은 여행 가운데 선생님과 쓰키코의 사랑은 정말 '그려질' 뿐이다. 

무엇보다 이 작품의 매력은 '노곤함'이란 감정의 풍경을 잘 그려내고 있다는 것이다. 작품을 보고 나면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집밥을 만들어 먹고 노곤한 기운에 취해 낮잠을 자고 싶은 생각이 들 것이다. 되게 많이 잔 줄 알았는데, 일어나 시계를 보니 그리 얼마 되지 않은 기분 좋은 낮잠 같은 분위기가 선생님과 쓰키코의 애정을 감싸고 있다.

다만 욕심을 좀 더 부리자면 노선생과 제자의 사랑을 바라보는 세간의 시선과 반응을 표현하는 부분은 그렇게 비중 있게 나오진 않지만, 그 짧은 몇 씬이라도 차라리 과감하게 생략하고 가면 더 인상적인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있었다. 
허나 다시 작품을 뒤돌아보건데 이 작품은 사랑의 이상적인 풍경을 그리고자 하는 욕심을 부리진 않는다. 누구나 겪고 이겨내가는 삶의 기운 속에서 '누구나'라는 거리만큼은 가까이 두려 한다. 

나 같은 평범한 독자들이 진부함을 두려워하고 삶 속 새로움을 늘 동경하면서도, 다시 그 평범성을 찾아 돌아가고 있는 이유를
이 작품은 말해주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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