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학을 전공한 후배 녀석들이 가끔 이런 고백을 자주 털어놓는다."선배, 공부를 더 하고 싶은데요.언론학이 재미가 없어요." 물론 '재미의 기준은 각각 다른 것이니까요'란, 식상한 생각으로 상황 자체를 간단하게 정리할 수 있다. 적당한 예의로, 그냥 우리 갈 길 가면 되는 거 아니요,란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사실 이 문제를 그냥 넘어가선 안된다는 생각이 몇 년 동안 들었다. 나도 후배들의 고백에 담긴 고민을 어떤 선배, 어떤 스승들에게 똑같이 했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신문이나 잡지에 기고한 칼럼 자체가, 모든 것을 판단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그 업계(난 이상하게 '학계'란 표현보다 이게 더 현실적인 것 같다)에 있는 사람들의 생각이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는 단서는 된다고 생각한다. 반복되는 단서. 반복이 계속된다는 것은,한편으로 안정적으로 현상을 사고할 수 있다는,  그리고 어려운 상황이 닥쳐도 그 상황을 여유롭게 대처할 수 있는 노련미가 있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하지만, 반복이 가중되면, 점점 쌓이는 건, 정체감이다. 뭔가 계속 그 자리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늘 새로운 미디어의 탄생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고 해서, 그 미디어를 연구하는 사람들의 생각이 우리에게 신선하며, 도발적인 공간을 마련해주지는 못하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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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즘 분야에 대한 칼럼도 마찬가지다. 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저널리즘을 바라보는 업계 사람들의 시선은 너무 정의롭다. 정의의 선이 굵고 명확하다보니,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그리고 경계를 긋기 어려운 상황에서 그들의 정의는 이상하게 내가 온전히 받아들여야 할 관점이라고만 생각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들이 내세우는 데이터, 그리고 그것을 통해 그들이 밝혀주고 있는 현실은, "나, 그래도 이 방송사 현실 잘 알지?"정도로만 생각된다.  

유감스럽게도 오늘날 미디어 트렌드에 대한 소개나 그 수용에 대한 감각적 제시를 잘하는 곳은, 언론학이 포진되어 있는 아카데미가 아니라, 'kt경제경영연구소'같은 곳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다. 권력은 이미 이동했다.(현실의 껍질을 더 까보면, 새로운 미디어 관련 예측 보고서의 경우, 많은 언론학자들이 너무나 당연하게 이런 경제경영연구소의 예측 결과, 현실 분석을 베끼고, 그냥 정리하는 수준에서, 한 편의 완성된 논문을 냈다고, 오늘 내 할 일 다했다고 자위한다. 그리고 전문가 소리를 듣길 바라는 게 언론학의 현실이다) 

미디어라는 오늘날 대중과 가장 친숙한 사물 그리고 생각의 매개체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아이러니하게도 대중의 생각을 너무나 모르는 것도 안타까운 현실이다. 너무나 규범적인 비평들이 득세한다. 도덕의 언어 차원에서 부르디외가 말했던 '하강하는 부르주아지'의 언어에 담긴 단순한 '포르노크라시'의 언어만 툭 던져놓고 가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또 미디어 소비에 있어서, 그 현상의 이면을 더 깊이있게 바라보려는 노력 대신 표피적인 사색, 그것보다 더 무서운 '관용어구'적인 사색이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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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학 분과 안에 있는, 대중문화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나이가 있다면서, '늙은 나이'에 내가 그래도 이 정도로 젊은 아이들의 문화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어디냐는 교만이 남아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뻔뻔하게 칼럼에서 '지금, 한국의 대중문화 경향'을 논하며, 문화의 권위자 노릇을 하고 있다. '불성실'이 성실보다 추앙받는 현실 안에서, 그 어떤 좋은 분석안이 나올 수 있을까.  

가장 큰 문제는, 언론학에 있는 많은 업계 사람들이 자신의 '밥줄'이 끊길까봐 그 누구보다 전전긍긍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나마 '미디어'라는, 분명한 대상이 있으니까 연구 프로젝트 따기도 쉽고, 어느 정도 수익도 보장된다는 무시할 수 없는 그 점 하나로, 이 안의 현실과 친해지자는 생각으로 버틴다. 그래서, 그들은 그 누구보다 신문계, 방송계, 뉴미디어계 현실을 잘 안다고 떠벌릴 수는 있지만, 여전히 그들의 시선은 '밥그릇'차원에서 진행되는  토픽에만 열을 올린다. 대중들에게는 전혀 다가가지 못하는 '정의의 문제'만을 토픽으로 삼아 지면을 채운다.  

그들에게 과거나 현재 그리고 미래는 단순한 기능이자 실용일 뿐이다. 그들은 정작 그릇된 미디어 소비를 비판하면서도, 그들이 구축하는 담론이 어떻게 소비되고 있는지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 문화가 없고, 교양이 없고, 인문이 빈곤하고, 사유는 닫혀 있으니, 아무리 젊은 자가 들어가도 이내 늙은이가 되어버리는 게 이 곳 언론학이다. 그 누군가가 "교수님 어제 방송 출연하신 거 잘 봤습니다. 어제 신문 칼럼 잘 읽었습니다"라는 말 대신, 빨간펜을 들고, "적어도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사람이, 이렇게 진부한 생각으로 현상을 바라보세요?라고   대꾸할 때가 되었다. 이미 누군가가 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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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18 17: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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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19 00: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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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19 10: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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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19 22: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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