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말을 하면, 나를 '시대에 뒤쳐진 젊은이'로 볼 것 같아 두렵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대중문화를 비평한다는 것을 별로 탐탁치 않게 여기는 편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하루에도 수 십 건씩 터지는 연예인들의 일희일비를 대상으로 한 비평을 쓰는 이들을 탐탁치 않게 여긴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한 것 같다. 쉽게 말해서, 나는 그런 사건 하나,하나를 통해 좋은 의견들을 들을 수 있는 방법은 카페에서 친구들과 앉아 조금은 두껍고 심각하게 이야기하면서, 거기서 자신들의 세밀한 생각들을 교류해보는 것 정도가 적당하다고 보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것이 말이 아닌 '글'로 표현되었을 경우 조금 다른 문제에 직면한다. 글이 어떤 저널에 기고가 되었다는 부분이 하나요, 또 글을 통해 나름대로 비평이란 형식 속에 한 사건을 논리정연하게 보여줘야 하는 저자의 태도라는 부분이 다른 하나다. 그 측면에서 어쩌면 가볍게 이야기하고 지나갈 수 있는 부분, 혹은 편하게 이야기하고 지나갈 수 있는 부분이 진지하게 논의될 공간이 마련된다고 볼 수 있다. 

어차피 한국평론가자격고시 같은 것이 있지도 않은 상황에서, 비평가라는 직함을 따기 위해 시험을 치는 것도 웃기겠거니와, 글쟁이들의 밥벌이라는 그 고단함을 이해못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사건 하나하나에 대한 경중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이거다 싶어, 달려드는 비평문들을 보면 정말 재미가 없다. 혹은 지나치게 규범적이다. 그래서 연예프로그램에 자주 출몰하는 대중문화평론가라는 직함의 이들이 인터뷰하는 모습을 보면, 그 인터뷰 속 말이나 글이 똑같은 수준이라는 것에 민망함을 감출 수 없다. 그렇지 않은가. 텔레비전이라는 매체의 형식상, 인터뷰 속 말은 아무리 신랄한 시선을 담지하더라도, 약간은 재미없는 식상하면서 진부한 멘트를 날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신선하고 날카로운 의견의'자유가 보장된 기고 공간에서도, 그러한 인터뷰 멘트를 보는 느낌을 가진 적이 갈수록 늘어난다는 것. 이것은 그 대상이 단순한 정보 그 이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상과 사건. 비평을 하고 싶은 대상이 있다. 그 대상과 관련된 사건이 터졌다. 그 사건을 향한 수많은 루머들이 퍼지거나, 관계된 사연이 소개된다. 비평을 하려는 자들은 그 정보를 읽어본다. 그 다음은? 거기서 나오는 대답은 결국 새로울 순 없다. 지극히 도덕적이거나, 혹은 지극히 정보를 잘 정리한 정도 밖에는. 나는 어떤 의미에서 영화평론가 정성일이 정보 중심의 시네필 문화가 갖는 폐해에 대한 언급한 측면이 고스란히 여기에도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연예 사건을 다룬 비평들의 공통점은 정보 중심의 재구성인 글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거기서 해석을 내리는 수준은 그냥 약간의 진지함을 띤 포장의 효과일 뿐이다.   

많이 '알지만' 깊이 '사랑하지 않는다'. 그것이 정성일이 지금의 영화광들에게 내린 직언이었다. 그대로 이어보자. 소녀시대를 비평하는 누구는 소녀시대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많이 알겠지만, 정작 소녀시대를 깊이 '이해하지 못한다'. 앎의 표피적 배치와 구성. 정성일은 그것을 사랑이 아닌 단순한 신학이라고 말했다. 단순히 내가 이 '기이한'세태를 나름대로 분석해보면서,고리타분한 현상이 아닌, 독특한 시각을 갖고 있다는 걸 과시하려는 비평. 그 비평은 '문화를 사랑하는 비평'이 아닌 듯 보인다. 거기에 남은 건, 오직 자신이 분석하고 있는 대상에 대한 애정이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이 '이런 글'을 쓰고 먹고 산다는 것에 대한 자기 만족, 자기에 대한 애정일 것이다. 자기에 대한 신학으로 귀결되면서, 자기 스스로의 매너리즘에 빠진다. 그리고 어정쩡한 비평을 계속 남기기. 수많은 덧글들이 그 비평을 둘러싸지만, 이미 그 자에게 그러한 덧글은 악의 무리들,무지한 이들의 잡변으로 환원된다.

혹자는 프레드릭 제임슨의 흉내를 내며, 90년대 한국 문화담론의 폭발 때 <상상>,<리뷰>,<이매진>등에서 무수하게 쏟아져 나왔던 그 비평의 기운을 고스란히 이어받아 마치 새로운 것인양 포장하고 있다. 그리고 거기서 진지한 의미를 붙인다는 것에 대해 이상한 정당화를 추구하려 한다. 지나치게 가볍거나 혹은 지나치게 무겁거나? 아니,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이게 아니다. 

미쳐 있는 비평의 상실. 어쩌면 <라스베가스의 공포와 혐오>의 실제 주인공이었던 '곤조 저널리즘'의 창시자 헌터 s. 톰슨이 가졌던 세상을 향한 지나친 열정과 애정을 몸소 실천하는 그 자세를 요즘 글쟁이들은 너무 안이하게 스스로의 것으로 만들려 한다. 스스로의 신학에 빠져버린 것. 자신이 이런 대중문화에도 그런 진지한 의미를 남길 수 있다는 것에 대한 과한 신학. 지나치게 스스로를 숭배하거나(학문의 고귀함이란 이름을 갖다대며 스스로의 논리 옳음을 보호하는 데 치중/치장하는 비평) 혹은 지나치게 타인의 우상에 빠져있거나(단순한 정보의 재구성을 엄청난 해석으로 포장하거나, 그 시선을 사회에 대한 해결책인양 으스대는 해결사적 비평이 추구하는 타인지향형적 태도)  

 

아..내 글도 함정에 빠졌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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