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경희대학교 네오 르네상스관에서 한국방송학회 문화연구분과 주최로, 문화연구 내 생산자 연구에 대한 세미나가 열렸다. 나도 어제 참여를 하였는데, 생각하는 바가 몇 개 있어 잊기 전에 기록해둔다. 

발표는 두 개 였다. 

하나는, "한국 방송산업의 계급구성과 디지털 테크놀로지:6mm 디지털 카메라의 정치학" 

다른 하나는, "지식 저널리즘과 텔레비전 문화:<지식채널 e를 중심으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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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개인적으로 어제 자리가 불만이었다. 그것은 뭔가 뛰어넘지 못하는 적당히 소프트한 분위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과연 문화연구 내에서 '생산'이라는 개념은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가, 그 개념 안에서 어떤 갈등들이 있는가의 문제인데, 다들 아티클 안에서의 논의를 통해, 세세한 사례에 기반한 접근을 할 뿐, 큰 문맥을 잡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아 아쉬웠다. (좀 열이 받아서, 엄청 깐 것 같은데, 다음부터는 흥분모드를 최대한 자제해야겠다) 

한국에서 2000년대 이후, 문화연구 진영 내에서 '생산자 연구', 특히 미디어,문화연구 진영 내에서는 '방송 종사자'들 간의 권력 관계가 어떻게 형성되고 그 안의 동학(dynamics)가 발생되는가에 주요한 성과들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이오현 교수의 kbs <인물현대사> 제작진 연구, kbs <개그콘서트>스탭과 출연진 연구, 김영찬 교수의 kbs <연예가중계>제작진 연구, 좀 논의를 확장시켜, 김예란 교수의 90년대 이후 급속하게 증가한 소위 '문화백수'등을 포괄하는 문화예술가들의 삶 연구, 임영호교수의 <에로 영화 감독의 생애사>연구 등등이 있었다. 

이러한 '생산자 연구'의 성과들 아래서, 김동원 박사가 발표한 <6mm 디지털 카메라의 정치학>은 기존의 논의들보다 비판적 정치경제학적 틀이 상당히 강한 축에 속하다고 볼 수 있고, 이영주 교수가 발표한 <지식 저널리즘과 텔레비전 문화>는 자크 랑시에르의 '감성의 분할'을 통해 지식정보사회에서 미디어가 추구하는 '지식의 구성과 배치'그것에 관련된 인간의 감각 구조를 문제화하고 있다.  

하지만, 어제 발표와 토론을 들으면서 느꼈던 것은, 이 사이에 개입되어야 할 '문화연구의 전유 전략'이 논의가 되어야 했다는 점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문화연구에서 '생산'을 둘러싸고 어떻게 이야기 되어 왔는가는 이미 90년대 중반 니콜라스 간햄과 로렌스 그로스버그 간의 논쟁이 있었다. '문화연구'의 소위 '능동적 수용자 이론'에 기반한 '미국적'문화연구와 그것에서 내재된 포스트모더니즘과 소비사회에 대한 누적된 성과들이 지나치게 '탈정치적'이 아니냐는 비판론이 대두되었고, 니콜라스 간햄은 그래서 문화연구가 '하드한' 정치경제학적 패러다임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로렌스 그로스버그는 간햄에게 "간햄 자네는 문화연구가 아예 정치경제학적 패러다임이 부재한 것으로 생각하는데, 아니다. 문화연구는 예전부터 정치경제학적 패러다임을 생각하고 있었다. 다만 우리는 '문화적인 것'의 개입을 통해 어떤 급진적인 '정치경제학'을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라며, 기원적 정치경제학으로 돌아가는 것에 대한 반론과 문화연구의 탈정치성에 대한 반론을 동시에 제시했다.  

- 레이먼드 윌리엄스의 생각으로 돌아가 

그렇다, 레이먼드 윌리엄스를 비롯하여 문화연구의 원로들이 아예 '정치경제학적 패러다임'을 버렸다고 보긴 어렵다는 게 내 생각이기도 하다. 그들은 일단 알튀세르를 비롯하여 이른바 '경제 결정주의'에 관한 사고들을 처음부터 배제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그들에게 중요한 논의의 참조점이었고, 그 참조점 안에서 경제 결정주의를 넘어서는 문화적인 것의 중요성을 인식했던 것이다. 그로스버그는 결국 간햄에게 잊혀진 역사를 다시 한 번 상식선에서 상기시켜줬던 것 뿐이나, 과연 그로스버그가 주장한 '문화연구적' 정치경제학적 패러다임은 무엇인가에 대해 속시원하게 생각을 털어놓은 사람은 없다.  

그러나, 어제 세미나에서는 그런 이야기들이 나오지 않았고, 이론적 논의들을 회피했다. 나는 이 점이 불만이었다. 

6MM 디지털 카메라의 정치학은 하드한 정치경제학적 패러다임의 원류로 돌아가, 에쓰노그래피 형식을 통해 디지털 카메라가 그것이 방송 조직 내 계급 구성과 노동의 분할과 그 인식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를 보여줬다. 그러나 이 아티클은 경제결정주의와 기술결정주의의 모호한 딜레마에 빠져있었다. 특히 내가 묻고자 했던 건 이 아티클이 기술결정주의를 저자 스스로 정작 배격한다고 하면서도, 논리적으로 기술결정론적으로 6MM카메라의 '효과와 영향'이 사회의 임팩트보다 더 있다는 것에 지나치게 많은 분량을 할애하여, 저자가 강조하는 미디어 테크놀로지의 사회적 전유에 대한 측면이 이상하게 고리가 연결이 잘 안되는 느낌이 들었다.  

플로어에서는 이 논문이 너무 지나치게 이론적 해석틀에 연구참여자들의 디스크립션을 끼워맞춘 것이 아닌가라고 반론을 제기했는데, 나는 사실 그 입장에는 찬성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보기에 한국의 문화연구자들, 특히 민속지학을 하는 사람들은 이론적 개입에 너무 눈치를 많이 보고 있다. 그리하여 결국 연구 가설은 이렇게 세웠는데, 알고보니 이게 아니더라고 하는, '우연적 효과'를 이른바 연구자의 성찰성이라는 개념으로 치환시켜 '자위'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럼 뭔가, 이론은 결국 '수사'로 전락하라는 말인가. 한국의 문화연구자들은 오히려 이론적 개입을 통한 적극적 해석을 좀 해보고 나서 그런 말을 하자. (다들 민속지학에 있어 지나치게 타인의존적이다.) 

그렇지만, 내 반론 자체가 에쓰노그래피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또 아니었는데, 아마 전달의 오류가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소유, 계급구조 이런 것에 너무 천착하여 보는 이론적 해석틀 자체가 생산자 내부의 생동성을 죽이는 게 아닌가라는 몇몇 반론에 대해, 거부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그동안 '민속지학'연구를 통해서 가장 많은 문제제기가 되었던 것은 소위 권력의 힘 자체가 간과된, '그들만의 하위문화를 인정하자'는 수평적 차원의 연구가 범람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도 이 생각에 동의를 하는 차원에서, 지금 '비판적 패러다임'이 죽은 미디어 연구 내에서 미디어문화연구가 갖는 '정치성'의 기획을 살리기 위한 외부적 요청 하에서 생산자 연구의 정치성은 국가-기업-개인의 모순을 파헤치는 작업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런 '수평적 차원'의 연구를 위한 이론적 접근의 지나친 겸양을 갖다댄다면, 우리에게 남는 것은 또 다른 맥락의 '(탈정치적)능동적 생산자 연구'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능동적 수용자 이론'이 공격받아온 부분을 살짝 벗어나기 위한 교묘한 술책으로 치부될 수 있는 것이다. 고로 생산자연구 안에 들어가 있는 '권력 관계'의 배치와 구성은 보다 급진적인 사유를 동원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민속지학이라는 방식 자체에 문제를 제기한 것은 아니나, 그 안에서 이론적 개입의 눈치를 너무 많이 보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다만, 이런 '강한'정치경제학적 패러다임 자체를 비롯해, 이런 이론적 개입이 인본주의적으로 전유되고, 도덕적으로 소비되는 것, 엘리트적 온정주의로 갈수 있다는 점도 명심해야 한다. 

자크 랑시에르의 '감성의 분할' 개념을 통해 정치 미학으로서 매체와 그것을 다루는 생산자의 기획 안에서 발생하는 새로운 정치적 잠재태를 제안하는 아티클은 '소프트한 수사'아래 가장 급진적인 해방의 기획을 제시하고 있다. 다만, 자크 랑시에르의 개념을 좀 더 신중하게 썼어야 할 것 같고, 이것이 빌렘 플루서, 키틀러, 맥루언 같은 사람들의 매체 철학 기획과 어떻게 만날 수 있는가의 접점 찾기도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이 글을 포함하여 두 아티클이 준 소중한 교훈은 후기 자본주의 사회가 우리 내부의 기술과 지식을 어떻게 재구성하고 재배치하는가의 문제는 계속되는 관건이라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술은 처음엔 '혁명'적 의미로 그 숭고의 대상이 되었다가, 사회적 전유를 통해 '탈기능화'의 과정을 겼고, 지식은 '비지식화'의 위치로 내려간다는 요지가 두 아티클의 맥락에서 읽힐 수 있는 지점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결국 이 사회적 전유를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 바로 그게 문화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고자하는 문화연구의 쟁점 그리고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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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21 00:1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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