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이건희가 참 재미있는(?) 발언을 했습니다. 자신의 아버지를 추모하며, 국민들에게 제시했던 미래의 상은 '정직'이었습니다. 다 아시다시피, "모든 국민이 정직해졌으면 좋겠다" 이렇게 말이죠. 인터넷 거주자들은 일제히 "너나 잘하세요"라며, 이 '어른의 발언'에 야유를 보냈지만, 야유와 함께 저는 이 발언을 좀 더 깊이 고민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좀 코믹하게 해석해서, 이 어르신이 자신이 이빨빠진 호랑이 취급 받는 걸 상당히 두려워하는구나 느꼈습니다. 그래서 모든 국민에게 정직을 바라는 이 양반의 내면의 깊숙한 곳에는, "야, 이 녀석들아. 지금 너희들 호강하고 말이지. 해외 나가서 한국이란 나라에 그나마 자긍심 느끼는 건, 그래도 외국 사람들이 삼성 휴대폰 쓰고 그럴 때잖아. 삼성 간판 보일 때 외국에서 한국인이라는 반가움, 뿌듯함 느끼잖아. 그러니까 너희들 나 욕하지마. 삼성이 만들어 온 길을 보라고. 자신에게 정직해져보라고." 

이렇게 해석하고 나니, 저는 이건희의 그 발언이 의례적인 행사용 멘트가 아니라, 삼성 없으면 너희도 없었다라는 강한 호통으로 들리더군요.  

강준만이 예전에 쓴 <이건희 시대>란 책을 즐겨읽은 적이 있습니다. 강준만은 이건희를 '코쿤 정치'의 전형적 인물이라고 평가합니다. 코쿤 정치는 '폐쇄적 정치를 지향합니다. 고로 자기 세계가 강해집니다. 자신과의 갈등을 통해서, 자신과의 단련을 통해서 자신을 구축해 갑니다. 그래서 그는 어느 주장도 강하게 밀어붙일 수 있고, 거기서 얻은 자신감으로 '경영 철학'이라는 것도 세울 수 있었을 것입니다. 코쿤 정치가 가진 폐쇄성은 되려 자기 스스로의 훈련을 통해 관성적인 반성의 자세도 자리잡혀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기업의 실패 사례를 경험할 때, 그 스스로의 반성을 통해 기업의 느슨해진 기강을 바로잡고, 신속성을 추구합니다. 변화에 늘 기민하게 대응하라고 촉구합니다. 물론 이런 자세가 좋은 점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제 그 발언을 들으면서, 저는 한국의 비극을 통감했습니다.  

이 비극은 무엇인가. 자본가는 노동자를 고용하기 위해 돈을 지불하는 차원을 넘는다는 것. 그리고 이 차원은 자본가가 노동자와 함께 구성하는 사회적 가치들을 제 스스로 사버린다는 것, 그리고 이렇게 자본가가 올바른 사회적 가치들을 경제적 권력에 의해 사버렸을 때, 우리가 올바르다고 여겼던 사회를 둘러싼 중요한 가치와 상징은 자본가들의 그것으로 한정지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회적 약자가 오늘날 "모든 국민이 정직해졌으면 좋겠다"라고 말한다면, 그 말은 사회적 삶의 실패자로 낙인찍히는 계기가 됩니다. 코쿤 정치를 통해 이건희는 자기와의 대화 속에서, 자기와의 대면 가운데, '정직'이란 단어를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가치 안에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스스로 권력자로 누려왔던 자리에서 한정적으로 사용하는 듯 합니다. 그래서 이건희가 말하는 정직은 약자와의 관계에서 비대칭적입니다. 약자의 정직을 향한 갈망과 강자의 정직을 향한 그것이 비대칭적일 때, 이건희 스스로가 생각하는 정직이란 가치는, 그가 고용하고 있는 수많은 삼성 사원들, 그리고 잠정적으로 삼성 가족이 되길 꿈꾸는 이들이 지녀야할 덕목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고로  이건희에게 '모든 국민'은 '삼성의 국민'을 지칭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모든'은 '삼성'이 되는 것이죠. 흔히 '다이너스티'라고 표현되는 기업의 구조 속에서, 이건희는 왕의 자리에 앉아 기업이라는 왕국을 다스리고 있습니다. 신민은 왕이 누가 될까, 궁금해할 수 있지만, 왕의 선정 과정에 참여할 수는 없지요. 하지만 왕위에 오른 왕은 갑자기 모든 사람을 백성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백성을 향해 한 마디 할 수 있는 것이지요. (사람들이 뭐라 하든, 그건 왕의 권리니까요)  

아이러니하게도 저는 이건희의 발언을 통해 삼성이란 기업이 가장 긴밀한 근대적 발전성과 가장 퇴행적인 전근대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건 삼성을 비롯한 다른 기업도 마찬가지겠지만요. 이건희의 발언은, 자신의 기업이 판매하는 상품을 산 소비자들에게 일종의 덕목을 제시한 것이 아닙니다. 영화를 그렇게 좋아한다던 이건희는 제임스 카메론 흉내를 낸 것이지요. I'm King of the world! 

왜냐면 그에게 삼성은 국가일테니까요. 정경유착이라는 말에서, 예전의 역사가 정치가 경제를 포섭하여, 경제를  종속시켰다는 말을 증명했다면, 오늘날 정경유착은 경제가 정치를 복속시킵니다. 고로 정치인이 말하는 '폐쇄된'정직과 경제인이 말하는 '폐쇄된'정직 속에서, 우리 같은 서민들은 '제왕적 대통령', '제왕적 기업인'의 훈시를 들어야하는 구슬픈 현실을 살고 있습니다. 결국 사람들에게 남는 것은, 다시 돌아오는 푸념들. "정직하면 뭐해.."라고 시작되는 냉소의 향연이죠.  자본 앞에서 서민이 상상하고 추구하는 정치는, 기업가의 폐쇄적 윤리 앞에 자리를 내어주고 있습니다.  코쿤의 윤리 앞에 말이죠. 기업을 국가라고 생각하는 코드. 시민을 백성이라고 생각하는 코드, 그것이 우리를 늘 동물적 존재로 유인하는 자본의 코드이자, 이건희의 코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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