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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자의 죽음…당대비평 기획위원회 | 산책자 

  왜 많은 사람들은 노무현의 죽음에는 눈물을 흘리지만, 용산의 죽음에는 무심한가. 무크지 ‘당비의 생각’ 3호는 2009년에 있었던 몇 건의 죽음에 관한 사회적 기억을 다뤘다. 만인은 죽음 앞에 평등하다고 하지만 죽음에 대한 사람들의 기억은 동일하지 않다. 전직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자살과 그 후의 격랑이 그 몇 달 전에 온 몸에 불이 붙어 사라져간 생명들에 대한 사회적 망각을 촉진했던 사실이 그를 입증한다. 1년이 다 되도록 고인들이 천도조차 하지 못하고 냉동고에 누워 있는 현실만 끈질기게 그 죽음을 증언하고 있을 뿐이다.

엄기호 우리신학연구소 연구위원은 용산의 죽음을 외면하는 핵심에 ‘사유재산’이 있다고 한다. “단지 이들이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이 아니다. 한국에서 민주주의도, 자유도, 인간의 권리도 침해당할 수 있지만 결코 재산에 대한 질서는 흐트러질 수 없다”는 것이다. “재산에 대한 질서”는 곧 “자본주의의 심장”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의 재산에 ‘해코지’했다고 비난받는 용산의 망루에 올라간 사람들이 지키려고 했던 것도 자신의 재산이다. 본질적인 차이는 앞의 재산이 곧 개발이라면, 뒤의 재산은 삶의 터전 그 자체라는 점이다. 고로 “용산은 삶에 대한 요구가 개발에 대한 요구를 결코 앞설 수 없다는 것”이다.

송경동 시인은 “최고의 권력과 명예를 거머쥐어 보고도 외로울 수밖에 없었던 그(노무현)의 죽음에도 이 시대 보편적인 산재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며 “화살이 단지 또 하나의 관절로 기능할 이명박 개인에게로 쏠릴 뿐, 단 한 번도 이 사회에 만연한 죽음의 구조들에 대한 천착으로 나아가지 않았다”고 했다. 한 영웅의 죽음에 매달리려 하면 노무현, 김대중 정부 시절에도 많은 이가 학살을 당할 수밖에 없는 구조는 망각될 수밖에 없다. 김원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대중과 대중운동에 필요한 것은 구원자가 아닌, 새로운 정치를 구성하기 위한 자기 조직화”라고 했다.

<손제민기자 jeje17@kyunghyang.com>(2009.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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