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불제 민주주의 - 유시민의 헌법 에세이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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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나오자마자 주문을 했던 것 같은데, '이제야' 리뷰를 씁니다. 책이 나올 당시, 미리 기대를 한 사람들의 반응들을 종종 체감할 수 있었고, 지하철 익명의 젊은이들 손에, 학교 동료들 손에 이 책의 커버가 보일때마다, 얼른 읽어보고 싶다는 마음은 들었지만, 정작 그러진 못했습니다. 지금 와서 책을 다 읽고, 리뷰를 쓰니 책에 가졌던 주변 이들의 감흥들과 '글-흔적'들이 하나의 '소-역사'가 된 듯합니다. 저자로서의 유시민이 군데군데 얽어 놓은 현 정치의 '꼴'에 대한 판단을 훑어 보면, 상당히 오랜 고난의 시간이 흐른 것 같지만, 어찌보면 참 많이 남았다는 요상한 아쉬움의 한탄도 해 보게 됩니다. 뭐가 많이 남았는지는, 아마 우리 모두가 침묵 속에 공감할 그 어떤 나쁜 공기들의 흐름이겠지요. 하지만우리는 '기다림의 역사'에 모든 것을 맡긴 채, 그 '기다림의 철학', 알튀세르가 말한 '상식의 철학'에만 의지할 수는 없습니다. 철학은 철학 자체에 대한 의혹을 그 존재의 이유로 삼듯, 우리는 상식의 철학을 뛰어 넘은, '대철학'(알튀세르가 말한 대철학과는 다른 뜻으로)을 추구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무엇이 우리를 '대철학'의 길로 인도하는 것일까요. 진정한 행복에 대한 사유를 읊었던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의지할 수도 있겠습니다. 또는 인간 주체의 의지와 양심, 그리고 세계에 대한 도덕의 열망을 이성적으로 믿었던 칸트에게 의지할 수도 있겠습니다. 또는 진리 자체를 의심했었던, 그렇기때문에 자신에게 하나의 얼굴만을 강요하는 이들을 비판했었던 푸코에게 그 길을 물을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오늘 우리는 정치철학이라는 세계 안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고민을 하는 지식인들을 자주 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 시대 정치철학은 민주주의를 되묻게 되었습니다. 특히  '7-80년대'라는 신화의 시대를 건너온 많은 이들이  '민주화'라는 이름 아래 행해지는 작용과 부작용을 알게 되면서, 우리 사회는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라는 숙제에 놓였다는 진단은 이미 오래 전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이제 '어떤 민주주의'를 꿈꿀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는 시대에 접어들었습니다. 그래서 민주화는 민주화 자체가 아닌, '정치적 민주화', '경제적 민주화', '문화적 민주화' 등 다양한 꼴의 민주화가 갖는 의미들을 찾고 해석하는 작업을 자연스럽게 목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무엇보다 '현실정치'가 갖는 중요성을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법'을 사회학적 관점에 다룬 몇몇 책들이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법은 그동안 법의 만들어짐 속에서 그 결과물을 두고, 해석의 싸움을 구경하는 차원으로 우리에게 그 존재를 드러냈습니다. 정작 우리는 뉴스를 보면서, 법안이 나왔다. 법안이 나옴으로 골치아픈 일들이 진행되고 있다 등 언론의 간략한 메모지만, 그 메모에 담긴 풍경들을 보면서 법이라는 것이 만들어지는 과정, 그것이 적용되는 과정은 순수하지 않다는 것을 경험했지만 일상생활 속에서 우리는 법을 집행하는 자들에 대한 권력관계의 심층적 의문을 가지진 못했습니다. 법이라는 것을 둘러싼 '전문적이다'라는 어떤 이미지의 강박은 그것을 더 강조했다고 봅니다. 그래서 법은 우리에게 '지켜야되는 어떤 것'으로 자리잡지요. 우리는 법의 이면에 대해 뭔가 심정적으로 파헤치고 싶은 게 있지만, 섣불리하진 못합니다. 주로 우리는 법에 대한 '지킴이'이라는 위치에 머무르고 맙니다. 그러나, [헌법의 풍경], [불멸의 신성가족]의 김두식이나 [부러진 화살]의 서형이 보여준 결실은 법을 둘러싼 어둠의 심연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나타냅니다. 이것은 곧 '지킴이'의 위치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우리 소시민들에게,  '법-물음이'로의 삶을 살도록 촉구합니다.  '법-물음이'가 되었을 때, 우리는 다시 뉴스에서, 신문에서 봤던 그 법의 탄생에 개입된 무수한 권력의 입들을 외면이 아닌 직시의 자세로 보게 될 것입니다.

유시민의 [후불제 민주주의]는 '법-물음이'로서 저자가 갖는 우리 시대 최상위의 법인 '헌법'에 대한 사유와 그 '헌법'에 기초한 사회의 이상을 이성적으로 기술해보려는 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는 이 기술을 따라가다보면, 법이라는 것이 내세우는 논리성에서 비논리성을 발견하게 되고, 그 비논리성이 갖는 권력의 오류와 횡포들을 목격하게 됩니다. 또한 그런 것들을 현실 정치 안에서 직접 '경험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들, 그리고 그 상황들에 대한 성찰로 인해, 법은 오늘날 우리에게 하나의 '괴물'이 되었음을, 이 '괴물'은 그 무엇보다 권력을 그릇된 길로 욕망하는 자들과 친밀한 관계에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아감벤이 말한 것처럼, 법이란 우리의 삶을 참조하는 언어의 형태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의 헌법은 결국 우리의 삶과 멀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2008년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노래를 부르며, 우리 스스로의 권리를 선언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민주공화국이라는 그리고 권력은 결국 국민에게 있다는 것을 내 신체의 고백으로 행하였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우리는 그러한 고백과 별개로,  오랜 학업 과정을 통해서 배운 중요한 법의 기본 내용들마저도, 그것을 현실에서 맞닥뜨리는 어떤 순간에는, 참 멀게 느껴진다는 것을 숨길 수 없습니다.  머리속에서 알고 있는 그 쉬운 말들도, 사실 얼마나 지켜지지 어려운 것인가를, 그리고 그 참 투명하고 딱 부러지는 구절들, 너무 명확해서 더 이상의 반박도 필요없을 것 같은 구절들이 막상 현실의 가장 불투명한 곳에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오늘날 분명 양심의 가장 깊숙한 곳에서부터 듣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양심의 소리가 오늘의 현실 정치가 갖는 비양심적인 꼴의 상황들과 맞닥뜨릴 때, 우리는 우리 사회가 과연 진정한 민주주의의 위치에 도달했는가를 묻게 됩니다. 유시민은 여기서 '후불제'라는 '책임'의 언어를, 성찰의 수사를 제시합니다. 그냥 민주주의가 아닌, '후불제'라는 조건의 민주주의 말이죠. 후불제라는 개념을 통해 우리는 책임을 통감하게 되고, 그 책임을 스스로에게 묻다 보면, 우리는 그 책임의 알 수 없는 연원을 따라가며 역사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역사를 통한 시간의 이해, 현재 우리의 위치를 다시 짚어보게 됩니다.  

저는 이 책이 '이해'를 살피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말이 참 우습지요. 이해와 살핀다라는 말이 언뜻 어울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유시민은 학자에서 정치가로, 그리고 행정가로 다시 지식소매상이라는 야인의 위치로 스스로를 규정하며, 그 규정된 위치에서 늘 유념했던 정치적 상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꿈꾸던 상이 현실과 타협했던 것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기도 합니다. 이해라는 말 자체를 통해, 저는 현실의 정치와 이상의 정치, 그리고 당위적인 것과 당위를 벗어날 수 밖에 없는 것의 이해를 묵직하게 사유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시민의 말과 글, 그 언행 속에서 때론 많은 이들이 상처를 받았고, 그 자신도 상처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책을 읽는 우리들은 그 상황을 알고 있고, 또 지금 어느 한 구석에서는, 그가 이 책에서 두껍게 기술한 그 여정을 다시 한 번 걷기를 희망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 개인적으로 그가 '상식인'의 입장에서, '상식적'인 언변을 꾸준히 제시할 수 있는 이로 남았으면 합니다. 고로 이 책에 담긴 지극히 '상식적'인 시선은 어쩌면 이 책이 갖고 있는 시선의 평이함으로 제한하여 해석하기보다는, 유시민 자신이 우리 사회와 맞닿을 수 있는 하나의 '소통-선'이 아닐까 생각해 봤습니다. 딱 이 정도의 훈훈함, 딱 이 정도의 일갈로 이 민주주의의 꼴을 넓게 사유할 수 있는 그가 되길 희망합니다. 우리는 이 민주주의에 대해 우리 스스로 '신용있는 인간'임을 떳떳하게 내세울 수 있는 자이기를 한 걸음 내딛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것이야말로 후불제를 허락한 민주주의에 대한 도리이자, 우리가 꿈꾸는 민주주의를 위한 기틀이라고 생각합니다.  

막스 베버는 공준이라는 개념을 통해, 법을 지킨다는 것의 의미를 이해하고자 노력하였습니다. 우리는 이제 이 공준을 토대로, 그 지킴의 의미에서 물음의 의미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헌법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닙니다. 그 예외 상태를 외면하지 않고 바로 보는 자에게 그람시가 말한 철학자로서의 시민은 당신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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