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 아파트
엘렌 그레미용 지음, 장소미 옮김 / 은행나무 / 2015년 4월
평점 :
절판


첫 눈에 빠져버린 사랑은 3년이면 변한다는 일반적 사랑과 많이 다르지 않을까, 정신과 의사 비토리오가  아내 리산드라를 만난 이야기를 꺼내든 순간 생각해보게 된다. 순식간에 사라져버린  그녀를 애타게  찾아야만 했다는 사연만으로도 그와 그녀사이에는 다른 사람보다 끈끈한 사랑이 여전하길 바라는 마음이 들어,  그가 리산드라의 추락사에 범인으로 의심받고 있다는 걸 알게될때 "제발 그 말고 다른 사람"을 찾아보라고 말해주고 싶을 정도이다. 하지만 그가 자신의 무죄를 증명해줄 이로 환자였던 에바 마리아를 선택했을때, 그리고 그녀와의 부부생활이 생각보다 원만하지 않았다는 걸 알게될때  우리 역시 경찰처럼  용의자 1순위에 그를 올려놓게 된다.


이렇게 "비밀 아파트"는  한 여자의 추락사와 그 추락사에 숨은 진실을 찾아라 라는 추리물로 시작하지만 에바가 틀림없이 무죄라 믿은 비토리오를 위해 용의자들을 찾아보게 되면서 분명히 비토리오만은 아니였던 범인찾기가 '이 세상 모든 이들을 의심해라' 라는 인간의 불투명성과 인간관계의 가벼움과 무거움을 돌아보는 이야기가 되어버린다. 

 

에바가 비토리오 환자들의 녹취테이프를 들으며 만나게 되는   나이들어간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젊음에 대한 질투에 사로잡힌 알리시아 부인, 동생을 질투한 남자 펠리페, 정신과 의사로써나 남편으로써 멀쩡하게만 보였던  비토리오,  리산드라가  탱고를 잘 추는 제자였을뿐이라 말하는 노인, 리산드라를 잊지 못하는 프란시스코,   실종된 딸로 인해 일상생활이 되지않는 에바 자신까지...  그들의 이야기는   어떤 면에서는 모두가  의심스럽기도 하고  다르게 보면 모두가  상관없는 이들 같게도 된다.   에바가  조사할수록 드러나는 리산드라의 죽기 전 의심스런 행동들에   사건의 정확한 조사가  아니라  범인만 있으면 누구라도  괜찮은 것으로 보이는 경찰들의 꼬투리잡기식 수사까지  이 사건이 어떻게 진행될지 불안하게 만들게 된다.  더구나 경찰이란 말에 깜짝 놀라는 처음 목격자인 소년의 뒤로   아르헨티나의 '더러운 전쟁'이라 불리는 시간동안 일어난 많은 사건으로 상처입은 이들의  모습이   드러나며,    상처를 주고 받은 이들이 엉키어 살아가는 속에서  일어난 사건을 풀 수 있는 건 누구일까 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사건보다 중요한 건, 왜 이 일이 일어났냐는 것이 되고 만다. 빠르지 않은 사건의 전개속에서도  드러나지 않는 진실,심지어는 리산드라의 회상속에서만 존재하는 진실은 허망하기까지 해   리산드라의 과거와 주변인들의 이야기를 쫓아가며 방향을 잃은 듯도 보이지만  각각의 인간들이    다양하게 엮여있는 서로에게서  받게 되는   이기심과 질투, 분노와 사랑, 무차별적인 폭력에 좌절하면서 받게되는 상처를 어떻게든 극복하지 못한다면   시간이 흘러 어떤 흔적이   새겨지는가에 대한 것을    바라보게 한다.


아르헨티나의  특수한 상황, 그리고 비밀 아파트에서 벌어지는 일은  리산드라를 통해 죄와 벌이 균형 맞춰지지 않은 일들은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상처입고 움츠러든  사람의 슬픔에만  무게가  더해진다는 걸 보여주고 있는 건 아닐까 싶다. 자신이 가진 것을 볼 수 없었던  리산드라나 에바, 춤을 추는 남편 뒤에서  수많은 눈물의 시간을 보냈을 노부인에게는 없었던 새로운 시간이  이 사건에 죄가 없다고 볼 수 없는 비토리오나 루카스에게만은  주어질 것이기때문이다.


 모든 상처입은 자존심은 범죄의 동기가 될 수 있다.-311

결국 한 여자의 상처가 이 사건을 만들었지만 잘못된 수사로  또 다른 슬픔이 다른 이에게 옮겨가게 된다는 이야기,  상처와 고통이 풀리지 않는다면 다시 주변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이야기가  왜 정의가 이루어져야 하는지를 알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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