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출근하면 일하기 전 습관적으로 알라딘에 로그인한다. 아침부터 책을 주문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고 글을 올릴 일도 없는데 말이다.
마치 집안 으슥한 곳에 숨겨놓은 꼬깃꼬깃한 비자금을 아내 몰래 한 번씩 꺼내 보는 느낌이랄까. 그냥 내 돈이 어제와 똑같이 오늘도 그대로 있다는 것을 확인하듯이 내가 쓴 글이 그대로 있는지 확인한다. 어제 5명이 내 서재에 들어왔는데 오늘은 무려 10명이나 들어왔음을 확인 할 땐 왠지 모를 뿌듯함에 기분이 훈훈하다.
누군가에게 내 글을 확인받는 기분이 이토록 쏠쏠할지 몰랐다. 그냥 내 맘대로 내 기분대로 갈겨버린 글들이 어느 순간 타인의 눈을 의식하기 시작하면서 정제되고 얌전해진 대신 깊어지기 시작했다.
술을 한잔 먹고 취해 비틀거린 글, 한 밤중 잠이 오지 않아 감상적으로 써놓고 다음날 부리나케 지워버린 글, 써지지 않은 글을 억지로 잡아당긴 글, 정말 감명 깊게 읽었는데 정작 글은 나오지 않아 리뷰대신 100자평에 끄적거리며 아까워한 글, 쓸 말은 많은데 손이 따라가지 않아 뒤죽박죽거리다 용두사미가 돼 버린 글, 아무리 읽어 봐도 내가 썼다고 보기엔 너무 잘 쓴 것 같아 내 자신이 너무 기특하여 읽어 보고 또 읽어 본 글 등.
별 내용이 아님에도 ‘좋아요!’ 한 번 해준 분한테 너무 감사하다. 어차피 작가도 아닌데 막 칭찬해주면 어떠하리^^
내 생각이 오롯이 나로부터 기원한 것이 아니듯이 내 글 역시 누군가의 글을 모태로 비롯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내가 누군가의 글을 읽어 보고 독자로서 평론가로서 평가하듯이 누군가는 내 글을 재단하겠지. 좋은 글을 쓰고 싶지만 너무나 머나먼 길. 그냥 내 멋에 취해 자판을 두들기다 보면 복잡했던 머리가 맑아진다. 글이라는 것이 희한하다. 아무리 어지러웠던 머리도 글을 쓰기 위해 집중하는 동안에는 개운하다. 한 줄의 글을 쓰기 위해 피를 말리는 작가가 아니고 재미로 쓰기 때문에 그럴까?
그러기에 난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글을 쓴다. 별 뜻이 없는 말이어도 손가락 가는 대로 글이 쓱쓱 써지는 걸 눈으로 따라 가노라면 황홀경에 빠진다.
옆자리에 앉은 동료 직원이 뭘 그렇게 쓰냐고 늘 물어 본다. 볼로그에 올리려고 쓴다고 말하기엔 왠지 쑥스러워 그냥 얼버무린다. 아직은 나를 모르는 제3자에게만 내 글을 공개할 자신 밖에 없다. 물론, 글은 공유하는 것이 좋다고 했지만 막상 나의 실체를 아는 사람들에게 블로그를 공개하기엔 왠지 쑥스럽고 멋쩍다. 가끔은 내가 봐도 너무 잘 쓴 것 같은 기특한 글을 보면 막 자랑하고 싶은 충동이 들 때도 있지만 그 반대도 많다. 제3자에겐 그저 그런 이야기지만 나를 아는 사람이라면 알만한 사적인 이야기도 있기 때문이다. 훌륭한 글은 가장 솔직한 이야기라고 했는데 내겐 아직 턱없는 이야기인 것 같다.
내 블로그를 누군가 와서 들여다보고 간 흔적들을 보노라면 이 세상에 나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다.
비록, 얼굴 한 번 본적 없고 대화 한 번 나눈 적도 없는 생판 남이지만 클릭 한 번, 짧은 글 한 줄로 이어지는 공감의 표시는 흩어진 엔돌핀을 똘똘 뭉치게 만든다.
다른 알라디너들의 글을 읽다 보면 강한 동기 부여가 된다. 매일 글을 한 편씩 쓰고자 했던 터무니없는 계획은 실행을 포기했지만 그래도 자주 올리려고 애를 쓴다. 글을 쓸려면 일단 책을 읽어야 하니까 독서량이 늘어난다. 자율적으로 하는 것도 좋지만 마감기한이 있는 작가처럼 나를 윽박지르는 것도 게으른 사람에겐 나름 효과적인 방법이다.
일반 블로그에서 자주 보이는 온갖 음담패설과 독설, 무례함이 보이지 않은 알라딘 블로그는 책이라는 높고 안전한 성벽에 둘러싸인 청정지역 같다. 책을 좋아한다는 것은 지적 수준이 높다는 것이며 그것은 비록 모르는 사이더라도 서로에 대한 예의를 지키고자 하는 품격을 보장한다고 생각하니 기쁘다.
퇴근하기 전 또 쓰나마나 한 글을 한 웅큼 집어 들고 말았다. 하지만 좋은 글을 쓰기 위한 전제 조건이 무조건 많이 쓰라고 했으니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