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살아 있는 자의 의무 - 지그문트 바우만 인터뷰 궁리 공동선 총서 2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인디고 연구소 기획 / 궁리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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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독서 모임에서 다루기로 했던 책은 바우만의 사회학의 쓸모였다(내가 하자고 했다..). 바우만의 책을 바로 읽자고 하기에는 읽기 난감한 문장들이 마음에 걸려서 보다 쉬울 거라 생각되는 대담집을 제안한 것이었다. 그렇게 모임을 준비하다가 설 연휴에 사회학의 쓸모를 다 읽고, 내용을 보충해야겠다 싶어서 집어든 책이 이 책이었는데, 책을 반 정도 읽고 나서 이 책을 같이 읽자고 했어야 했는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이 바우만을 모르는 독자들에게 좀더 쉬운 접근통로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사상가의 사상에 접근할 때 가장 좋은(혹은 쉬운) 입문서는 사상가의 인터뷰라고 흔히 말한다. 인터뷰어의 자질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사상가가 정립한 자신의 사상을 말로 풀어내는 방식이기 때문에 접근이 용이하다고 말하는 것일 테다. 희망, 살아 있는 자의 의무는 바우만이 접근하고 있는 광범위한 문제들을 두루 질문하고, 바우만의 답변이 그의 책 중 무엇에 기반하고 있는지도 역주로 언급해준다는 측면에서 좋은 입문서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다. 워낙 자주 대담을 가졌던 학자여서 사회학의 쓸모와 많이 겹치는 부분도 있으나, 이 경우에도 이쪽의 답변이 훨씬 자세하다. 바우만의 책을 몇 권 읽어본 독자에게는 바우만 사상의 지도를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게 해주는 책이자, 바우만 사상의 중핵을 이루는 책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책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런 맥락에서 바우만의 유토피아는 빅터 터너의 의례의 과정에 쓰인 제약 없는 무차별적 공동체 코뮤니타스communitas를 닮았다. 코뮤니타스는 구조와 질서를 요구하는 소시에타스societas에 상반되는 것으로서, 인간의 자유, 자주성, 실험 정신, 변신 등을 가져오는 친밀한 공존의 원천을 뜻한다. 바우만은 스스로 적극적 유토피아라고 명명한 이 개념에 대한 이해를 위해, 몇 년간 사회주의의 비호 아래에서 그러한 유토피아를 향한 희망을 모색했다.

- 미켈 야콥슨, 유토피아를 찾아서(257, 강조는 원문)

 

야콥슨은 코뮤니타스라고 말했지만, 바우만은 자신이 지향하는 공동체를 정서의 공동체(39)라고 말한다. 이는 정치와 권력이 분리된 공위의 시대에 우리가 모색할 수 있는 연대의 방안이자, “인간 유대의 연약화를 막기 위한 대안이다. ‘유토피아주의라는 말이 특정한 절대적 공간을 상정하는 것이 아니라 대안은 없다TINA는 비관을 배격하고 유토피아를 상상하는 인간의 상상력을 긍정하는 것이라면, 바우만은 유토피아주의자다. 그는 유토피아를 상상하고 이를 실현하려는 인간의 창조성을 적극적으로 긍정한다. 아랍의 봄, 이스라엘의 여름에서 그가 본 것은 변화에 대한 인간의 열망이요, 이를 실천하는 과정에서 연대의 힘에 중독된 사람들이다.

 

사람들은 함께 있음의 경험에 순식간에 중독된 것입니다. 그렇죠. 바로 연대의 힘에 말입니다. 이미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러한 변화의 의미는 곧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것이겠죠. 이를 달성하는 데는 큰 노력이 들지 않았습니다. ‘혼자solitary를 뜻하는 이 고약한 단어에서 철자 하나를 바꾸어 연대solidary로 변화를 꾀하는 정도의 노력 정도라고 할까요? 이 연대는 요구가 관철되는 그 순간까지 지속되는 것입니다. 또한 이 연대는 특정한 대의를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대의를 갖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입니다. 나와 너와 광장에 있는 우리 모두가 목적을 갖는 것이고, 곧 삶이 의미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137, 강조는 원문)

 

바우만의 사상 중에 가장 중요한 키워드를 찾는다면 액체 또는 유동성(liquidity)일 텐데, 이때 중요한 점은 현대 사회의 유동성을 바라보는 그의 관점이 양가적(ambivalent)이라는 점이다. ‘액체근대가 도래한 현대 사회를 분석하는 그의 눈은 냉철하고 비판적이지만, 그렇다고 그의 주장이 과거의 고체 근대로 돌아가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한때 나는 이렇게 오해했었다). 키스 테스터는 바우만 사상의 핵심을 아이러니라고 규정했는데, 이는 바우만이 인간을 예측 불가능성의 관점에서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는 기계론적 인간관에 대항하는 아이러니의 인간관을 내세웠고, 이러한 관점은 자유로 이어진다. 액체성이 고체성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산물(187)이라고 말하는 이유 역시 마찬가지다. 현대 사회의 유동성과 불확실성, 소비주의를 분석하는 작업은 우리가 사회를 바라보는 통념을 깨고 세계의 양가성을 바라보게 하려는 작업의 산물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전 지구적으로 혼란스러운 공위의 시대에서 새로운 전환을 꿈꾸는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닐까.

 

해체될 틈을 허용하지 않는 견고한 사물에 대한 두려움, 허락된 시간보다 오래 머무르려는 것들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손과 발을 꽁꽁 묶어버리는 것들, 혹은 아름다운 순간을 붙잡아 그 속에 영원히 머무르려는 욕망의 과오를 저지른 포스터스 박사와 같이 지옥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 등을 사르트르는 우리가 끈적끈적한 점성의 물건을 만지는 것에 대한 본능적이고 즉각적인 거부감으로 설명합니다. 하지만 이를 사회적 징후로 볼 경우, 그러한 두려움은 액체 근대의 문턱을 넘어서는 순간 인간 역사의 주요한 동력이 된다고 지적합니다. 사실 그러한 공포의 징후들은 임박한 근대의 도래를 알리는 신호이자, 완전히 새로운 역사적 국면을 알리는 분수령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189-190)

 

그는 어떤 통계적인 수치를 가지고 현대 사회를 분석하지 않는다. 소비주의를 분석할 때에도 그가 주목하는 것은 소비주의가 끼치는 경제적 영향이 아니라 이를 통해 벌어지는 윤리의 붕괴다. 사회학의 쓸모에서 자신의 작업을 사회학적 해석학이라고 명명한 것처럼, 바우만은 연구 대상을 알고리즘 법칙을 구성하는 유한수finite number로 환원하는 것을 거부(사회학의 쓸모, 100)한다. 그가 인간의 윤리성을 끊임없이 강조하는 이유, 반복적으로 레비나스의 논의를 언급하는 이유, “오직 윤리적 주체로 설 때에만 인간성은 완성될 수 있(198)다고 말하는 이유다. 접촉보다 접속이 압도적인 현대 사회에서 그가 프랜즌을 인용하며 SNS를 비판적으로 이야기하는 것도 이러한 장치들이 인간 사이의 관계를 소멸시키고 윤리마저 실종시키는 역할을 하는 까닭이다.

 

인터뷰 말미에서 바우만은 좋은 사회란 자신이 속한 사회가 결코 현재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곳(201)이라고 정의한다. 현대 사회를 비관적으로 분석한 수많은 저서를 냈음에도 자신은 비관주의자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대안적인 세계가 가능하다는 자신의 믿음 때문이다. 때 이른 죽음이 아님에도 그의 부재를 슬퍼하는 것은, 오늘날 이토록 희망을 소리 높여 말하는 사람이 그 말고는 보이지 않아서다. 여전히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어진 몫은 남겨진 그의 저서를, 그가 남긴 병 속의 메시지를 건져서 세계를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고, 이면에 숨겨진 폭력에 항의하며 정서의 공동체를 이루는 것일 거라고 믿는다.

 

+) 지금까지 읽은 바우만의 책은 대여섯 권 정도인데, 이중에서 바우만 사상의 핵심은 『액체근대』라고 생각한다. 현대 사회를 '유동성'이라는 비유를 통해 바라본 바우만의 분석은 이 책에서 가장 빛난다. 이 대담을 읽으면서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한 책은 『사회주의, 생동하는 유토피아』(1976→2010)였다. 2부에 글과 인터뷰를 실은 많은 사람들이 중요한 책으로 지목한 까닭이다. 이렇게 읽어야 할 바우만의 책도 하나씩 늘어난다..


희망에 관한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조상들이 훌륭한 라틴어 격언으로 대답을 마련해 놓았습니다. “숨 쉬는 한, 나는 희망한다Dum spiro spero.” 2천 년이 지난 지금도 이 문장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할 수 있을 텐데, 이것이 바로 제가 미래에 대해 갖는 입장입니다. 저는 강연에서 “당신은 왜 그렇게 비관적인가?”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데요. 이 라틴어 격언이 저의 대답입니다. 키케로도 이 말을 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만, 저는 낙관주의자도 비관주의자도 아닙니다. 제 스스로가 정의하길, 낙관주의자는 지금 이곳의 세계가 도달 가능한 최선의 세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반면 비관주의자는 ‘누가 정답을 알겠어. 그래도 아마 저 사람 말이 맞겠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죠. 그러나 이러한 구분은 불완전한 것이죠. 저는 여기에 제3의 부류가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희망하는 자들’이 그것입니다. 지금과는 다른 대안적인 세계가 가능하다고 희망하는 자들이죠. 저는 새로운 세계가 불가능해지는 지점은 오직 우리가 희망하기를 멈출 때뿐이라고 생각합니다. (2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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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의 거래에 대하여 - 책과 서점에 대한 단상
장 뤽 낭시 지음, 이선희 옮김 / 길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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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는 것, 나아가 독서(讀書)라는 행위가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서점에서 책을 처음 만나는 순간부터 마지막 페이지를 넘겨 책장을 닫는 순간까지, 우리는 책이라는 이름이 주는 배음(背音)에 싸여 있다. 그 배음 안에서 우리는 책에 질문하고, 말하고, 책의 말을 듣는다. 그것을 엄선된 언어로 형언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뿐. 낭시의 사유의 거래에 대하여는 그 배음에 대한 짧은 기록이다. ‘책과 서점에 대한 단상이라는 부제가 붙었으나, ‘책과 서점에 대한 찬가라고 바꿔 불러도 무방하다. 낭시처럼 말라르메의 말을 빌리자면, 이 책은 낭시가 책이라는 순수하고 투명한 덩어리에 대해 말하기 위해 빚어낸 또 하나의 덩어리이다.


책은 단순히 소통의 수단도, 소통을 표현하는 매체도 아니다. 절대 그렇지 않다. 책은 중간매체가 아니다. 그 자체로 즉각적으로 그리고 우선적으로 자기 자신과의 소통이자 거래[교제]commerce이다. 실제로 책을 읽는 사람은 거래 속으로 들어갈 뿐, 다른 어떤 일도 하지 않는다. 바로 이런 점에서 책은 메시지 전달을 목적으로 하는 풍자문이나 논문과 확연히 구분된다. 감히 말하자면 책은 스스로 직접 나서서 자신과의 소통에 가담하기 때문이다. (24-25, 강조는 원문, []는 옮긴이)


낭시가 책을 말하면서 먼저 꺼내는 이야기는 플라톤의 이데아다. 그는 책의 이데아를 이데아의 전달로 정의하고, 플라톤의 책들이 그러했듯이 책은 대화의 특징을 이데아에다 부여한다(21)고 말한다. 그러나 책은 무엇에 대해말하는 것이 아니라 타자라는 이름의 누구에게말을 건다. 이는 책이 수단을 설정하지 않고, 그렇기에 목표로 환원되지 않는 까닭이다. 그래서 활자caractére라는 흔적을 통한 말걸기야말로 책이 갖는 가장 강력한 특성caractére이다. 그리고 우리는 사유라는 약속을 지닌 재료의 단위(64)와 거래 또는 교제(commerce)한다. 다 카포Da capo.


책이 언제나 우리 앞에 열려 있는 것은 아니다. “열림과 닫힘 사이를 오가는 것이 책이고, “둘 사이의 긴장감 속에 놓여 있는 것(12)이 책이다. 조재룡 평론가의 말처럼 책이 단단하게 묶어둔 이 이데아가 독서를 통해 이 세계에 풀려나오(88)도록 하는 일은 어렵다. 낭시도 원칙적으로 책은 읽기 어렵다(39)고 말하지 않는가. 그것은 책읽기가 불가독성에서 출발하는 까닭이다. 하지만 그 열림의 시도들이 무한히 이어지고, 열림의 순간을 만날 때 우리는 수천 개의 방식으로 책을 다시 쓰(29)게 된다.


서적상의 독서는 모든 책의 모든 페이지를 오롯이 해독해내는 것으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의 독서는 읽기lectio’이면서 동시에 선택하기electio’이다. 선택한다. 책에 나온 생각들을, 책이 본래 지니고 있는 이데아에 따라서, 책에 따라서, 독서에 따라서, 독자들에 따라서, 그리고 편집자들에 따라서 제안해야 할 생각들을 선별하거나 수집한다. 바로 이런 관점에서, 내가 상품에 대해 환기했던 것을 잊지 않는다면, 서적상은 단순히 책을 파는 상인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정당하다. 추호의 모호함도 없이 말해보자면, 서적상은 서적 전달자livreur des livres이다. 서적을 가져오고 전시하고, 서적이 주체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적절한 상황을 만들어주는 사람이다. (50-51)


아무리 사회가 발전한다 해도 책의 배음을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공간은 서점일 것이다. 일차적으로 서점은 책을 읽을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공간이고(*), “서적이 주체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해주는 공간이며, “은밀한 시선, 강렬한 조명, 탐문, 조사, 선별, 추출이나 발췌 등 모든 종류의 열림이 있는 보편적 장소(54)이다. 그리고 이 공간의 주인인 서적상은 인용문에 언급된 것처럼 읽는 자이자 선택하는 자이고, “서점의 천부적 영혼(51)이다. 더 나아가 나는 서점이 책읽기가 타자와 접촉하는 행위라는 걸 가장 두드러지게 보여주는 공간이라고 말하고 싶다. 독서를 통해 거래·교제되는 사유는 본질적으로 타자를 위해서만 셈을 하며, 타자를 위해서만, 타자에 의해서만 그리고 타자의 안에서만 계산이(42)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재룡 평론가가 글 말미에 독립서점을 언급한 것이 반가웠다. 독립서점이 추구하는 바가 무한한 열림과 닫힘 사이에서 수천 개의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고, 각각의 독립서점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유의 거래에 들어서는 첫 걸음을 만들어내려 하는 까닭이다. 방식은 서로 다르지만, 말걸기의 방식도 원래 다 다른 것이 아니었던가. 접촉보다 접속이 앞서는 시대에 독립서점들이 타자와 접촉하고 말을 거는 공간으로 은은하게 빛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낭시는 글 말미에서 책의 이중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무거우면서도 가벼운 것, 불에 타기 쉽지만 소진되기 어려운 것, 대중적이면서 난해한 것. 이러한 이중성은 commerce라는 단어의 이중적 의미와도, 열림과 닫힘이라는 행위와도 잘 어울린다. 글은 이렇게 끝난다. 물질로 표현하자면 책은 우리의 사유이다. 진지하면서도 덧없는 사유, 손 닿는 곳에 있으면서도 비밀에 가린 사유, 우리가 끈질기게 공유하는 사유가 바로 거래 자체이자 약속이다.”(64-65) 책은 또 다른 책을 부른다고 흔히 말하지만, 사유의 교제가, 거래가 진정 이루어졌다면, 그리고 읽어내기 어려운 현실 세계와 몸을 비비며 접촉(57)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책의 이데아가 갖는 변형성, 유연성, 유동성(56)이 만들어내는 의미엔 종결점이 없다. 다만 나도 누군가에게 사유의 거래의 단위로, 한 권의 책이 되어 대화하고 접촉할 수 있었으면 싶다. 책이라는 이름의 타자가 되어 대화할 수 있었으면 싶다. 그리고 책이라는 이름의 타자와 끊임없이 사유를 교제했으면 싶다.



도서관(bibliothéque)과 서점(librairie)은 본래 서재를 의미하는 용어로 혼용되었다. 48쪽의 역주 참고.

결론적으로 말해 책의 이데아는 이미 최초로 그것이 만들어졌을 때부터 독서의 이데아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독서를 통해서 다른 어떤 책의 이데아는, 처음부터 연이어 나오는 다른 어떤 글쓰기의 이데아가 되었을 것이다. 꼭 다른 어떤 책의 기록이 아니라 적어도 사유의 또 다른 단면의 글쓰기, 표현의, 매개의, 모방과 창조의 다른 굽이, 다른 돌기 혹은 다른 굴곡의 기록이 되었을 것이다. 책의 이데아는 어떠한 종결점도 이데아 자체에는 존재하지 않는 그런 이데아이다. 이데아가 품고 있는 것이라고는 자기 자신을 증식하기, 번식하기, 분산하기뿐이다. 그리고 언제나, 어떤 순간에, 어떤 관점에서, 책이 건네는 묵언의 조언 혹은 달변의 조언은 책을 내던지게 혹은 그만 읽게 한다. 책읽기, 그것은 이어서 또 다른 책을 읽어야 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때로 우리가 행동이라고 부르는 것, 때로 경험이라고 부르는 것, 읽어내기 어려운 현실 세계와 몸을 비비며 접촉하는 것이다. (56-57쪽)

책은 무거우면서도 가볍다. 책은 엄숙한 분위기의 도서관 서가에 붙박이처럼 고정되어 있기도 하지만 서로의 뒤를 잇기도 하고 자리를 바꾸기도 한다. 책은 인쇄 1세대의 고서 초판본이기도 하지만 대중적인 책이기도 하며 또 난해한 것이기도 하다. 책은 불에 타기 쉽지만 동시에 소진되기 어렵다. 물질로 표현하자면 책은 우리의 사유이다. 진지하면서도 덧없는 사유, 손 닿는 곳에 있으면서도 비밀에 가린 사유, 우리가 끈질기게 공유하는 사유가 바로 거래 자체이자 약속이다. (64-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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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1-22 15: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도서관에 이 책과 <개소리에 대하여>를 같이 빌렸는데, 두 권의 분량이 책 한 권의 절반 분량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생각보다 분량이 얇아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제 말이 무슨 의미인지 잘 아실 겁니다. ㅎㅎㅎ

아무 2017-01-22 15:28   좋아요 0 | URL
잘 알죠..ㅎㅎ.. 전 너무 얇아서 처음에 못 찾았었어요 제가 신청한 책인데도^^;; <나를 만지지 마라>도 같이 빌렸는데, 이 책도 <사유의 거래에 대하여>만큼 얇습니다. <사유의 거래에 대하여>는 얇은 만큼 만만한 책은 아니었는데, 이 책도 만만치는 않을 것 같네요..

AgalmA 2017-01-22 22: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얇아서 안 사고 도서관에 신청할까 싶었는데 읽고 싶은 책이 많으니 계속 밀려요ㅋ 장켈레비치 <죽음에 대하여>, 아감벤 <불과 글>도 얇아서 좋더라는ㅎ 그런데 아감벤 <불과 글> 생각할 게 많아 진도 잘 안나가서 오늘 500페이지짜리 <마담 보바리> 읽음ㅋㅋ! 앜, 이게 뭐야ㅋㅋ

아무 2017-01-22 23:17   좋아요 1 | URL
얇음이 얕음을 담보하는 건 아니니까요 ㅎㅎ 아 물론 <마담 보바리>가 얕다는 뜻은 아닙니다. 고등학교 때 읽다 포기했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조만간 꼭 다시 도전을!!ㅋㅋ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쓰게 된 기획을 보면 그냥 축사 같은 글이었을 텐데 이 사람은 이런 글도 허투루 쓰지 않는구나 하는.. 낭시의 글도 좋았고, 뒤에 붙은 조재룡 평론가의 글도 좋았습니다^^ 리뷰 다 쓰고 나서부터 <신 정의 사랑 아름다움>을 펼쳤는데, ‘이렇게 말해도 초등학생들이 알아 듣는단 말야?‘라는 생각을 했어요 ㅋㅋ
<불과 글>도 처음 나왔을 때부터 제가 노리고 있던 책인데요.. 저의 아감벤 읽기는 언제쯤..ㅠㅠ
 


어제 헌책방 사이트를 이리저리 뒤지며 열심히 웹서핑을 하던 중 헌책 두 권을 찾아 구입했는데, 그 중 한 권이 루이 알튀세르의 『아미엥에서의 주장』이었다. 알라딘 중고에도 몇 권 올라와 있지만 가격이 2만원대를 넘는 수준이라 망설이던 차에 옥션에서 4,500원에 판다고 올라와 있길래 얼른 주문했다. 그러다가 오늘 낮에 알 수 없는 번호로부터 '책에 볼펜 밑줄과 낙서가 많아 판매를 취소하려 한다'는 문자를 받고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 나는 읽을 수 없을 정도만 아니면 괜찮다고, 그런 파손만 없으면 '무조건' 구입할 의사가 있다고 답장을 보냈다.



이후 보내준 사진을 보니 밑줄이 있긴 했으나 엄청 심한 정도는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오늘 받은 『읽기이론/이론읽기』도 밑줄이 만만치 않아 어떤 페이지는 한 쪽 전체에 밑줄이 그어진 경우도 있었으나, 페이지 손상은 없는 듯하여 감지덕지한 마음으로 받았다(그래서인지 택배 상자에는 맥심 커피가 두 개 들어 있었다). 그것에 비하면 『아미엥에서의 주장』은 양호한 수준인 듯하다. 부산에서 오는 것이라 다음 주는 돼야 도착하겠지만. 이 책을 구매한 건 『마르크스를 위하여』를 읽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내가 알고 있는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ISS)를 이야기한 사람이라는 것 정도다..



내가 찾는 헌책들은 그밖에도 몇 권이 있지만, 바흐친의 『예술과 책임』, 레비나스의 『윤리와 무한』은 정말 찾기 힘든 책이다. 바흐친의 경우 『프로이트주의』는 알라딘에도 몇 권이 고가에 거래되고 있지만, 『예술과 책임』은 주요 인터넷서점과 여러 헌책방 사이트를 매일 검색해도 도통 나오지 않는다. 『윤리와 무한』도 마찬가지여서 검색하면 '무한도전 윤리' 같은 문제집만 계속 나온다. 몇 달 동안 이틀에 한 번꼴로 검색중인데.. 이 글을 다 쓰고 나면 다시 검색하러 가야겠다. 혹시 어디서 파는지 아시는 분은 제가 '무조건' 살 의향이 있으니 꼭 연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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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2017-01-21 1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올리고 나서 검색을 해보았더니 두 책 모두 인터파크, 예스24, 교보문고 중고에 올라와 있었다. 그런데 가격이 다 짜고 올린 듯이 전부 9만 5천원... 나로서는 도저히 범접할 수 없는 가격이다.. 눈물을 머금고 이번엔 그냥 보내야겠다.

북깨비 2017-01-22 10: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헌책 사냥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흥미진진해요. ^^

아무 2017-01-22 14:47   좋아요 1 | URL
흥미진진하셨다면 그걸로 족합니다 ㅎㅎ 다음엔 꼭 구할 수 있기를..

cyrus 2017-01-22 14: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판매자님이 마음이 좋으신 분이군요. 저도 정말 비싼 가격의 중고책을 주문했는데, 돌연 주문 취소 통보를 받았어요. 이유조차 알려주지 않았어요. 제가 주문한 책 금액이 5만 원이었어요. 당연히 금액을 돌려받았지만 그때 너무 아쉬워서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다행히 사지 못한 책을 구하는 데 성공했어요. 그 책이 토머스 핀천의 <브이를 찾아서>입니다. ^^

아무 2017-01-22 15:26   좋아요 0 | URL
아 그 책도 진짜 구하기 힘든 책인데, 정말 아쉬우셨겠어요ㅠㅠ 핀천의 다른 책들은 조금씩 번역되는 것 같은데, 그 책만 새로 나온다는 소식이 없어 항상 아쉽습니다.. 저도 5만원까지면 둘 중 한권이라도 주문했을텐데..ㅠㅠ

2017-02-19 12: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2-19 13: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은수저
나카 칸스케 지음, 양윤옥 옮김 / 작은씨앗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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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화의, 풍속의 세계에 머물고 싶었으나 결국 헛된 바람일 뿐. 그렇게 인간은 어른이 되고 어린아이의 눈을 잃는다. 예상치 못했던 방식으로. 어린아이의 순수함과 공들여 묘사된 풍속이 읽기의 원동력이지만, 그것도 성장소설의 뻔한 구도에 머문다. 왜 시제의 차이를 두었는지 나는 파악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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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을 보다가 우연히 문학과지성사 이벤트를 하는 것을 보고 집에 있는 책들을 끌어모아 보았는데, 생각보다 문지 책이 많지 않았다. 책장 한 칸을 겨우 차지할 정도니.. (도서관 책이 한 권 있는 것 같다면 기분 탓이다) 더욱이 읽지 못한 책이 예상 외로 많았다. 그래도 어찌어찌 책장 한 칸을 차지하는 것에 안도하고, 동시에 분발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나에게 떠오르는 문지의 첫 이미지는 최인훈의 『광장』이다. 고등학생 때 처음 친구의 책을 빌려서 보았으니 빠른 만남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때는 출판사라는 개념이 머릿속에 없던 상태였으니 문지 책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읽었을 것이다(그리고 난 아직까지 「구운몽」을 읽지 못했다...). 그리고 나서 내가 구입한 책이 이청준 작가의 『당신들의 천국』이었는데, 이 때 산 책은 교실에서 돌고 돌다가 실종되었고 나는 책을 다시 사야 했다. 하기야 그때 돌면서 이미 표지도 사라진 상태라 다시 사는 게 나은 선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소설 명작선 중 가지고 있는 책은 『당신들의 천국』 하나뿐이지만, 이 책은 여전히 내가 읽은 한국소설 중 최고의 자리에 있다.



대산세계문학총서나 문학과지성 시인선, 소설 명작선 등 문지를 대표하는 시리즈들은 많지만, 요즘 나는 그 중에서도 '우리 시대의 고전' 시리즈와 '현대의 지성' 시리즈에 마음이 간다. '우리 시대의 고전' 중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블랑쇼와 낭시의 『밝힐 수 없는 공동체 / 마주한 공동체』 한 권이지만, 시리즈를 검색해서 보고 있으면 언젠가 구입하겠구나 싶은 책들이 많이 보인다. 이런 책들이 어떻게 한 출판사에서 나왔나 싶을 정도로. 물론 이 시리즈는 만만해 보이는 책이 없어서 한 권씩 볼 때마다 험난한 여정이 예상될 때가 많다...


 

'현대의 지성' 시리즈에 눈길이 가는 건 내가 요즘 관심을 갖고 있는 문제와 관련이 있다. '타자', '환대', '기호학' 등등.. 그래서 레비나스로 눈을 돌렸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조금씩 읽고 있는 『서양철학사』(이학사)에서는 레비나스를 다루지 않았다(적어도 목차를 봤을 때는). 그래서 최근에 『시간과 타자』(문예출판사)를 구입했는데, 레비나스의 주저라고 불리는 『전체성과 무한』은 번역본이 없어 2차 텍스트로만 볼 수 있다. 그래서 혹시, 강영안 교수께서 직접 번역할 생각은 없는지.. 그렇게 해서 '우리 시대의 고전' 시리즈로 내면 될 것 같은데...



끝으로 문지의 한국문학전집에 대해서 작은 아쉬움 하나만 이야기하고 싶다. 고등학생 시절, 그리고 학부생 시절에 한국 근현대 문학작품을 읽어야 했던 시기, 문지의 한국문학전집은 나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 표지 디자인도 일관되고 산뜻하고, 책 크기도 적당하고, 뒤에 실린 해설들도 좋았다. 하지만 각주가 아닌 미주는 읽을 때 많은 불편을 주었다. 근대문학일수록 더 불편한 것은 그 시절 사용되던 어휘가 지금과 달라 주석이 없으면 이해가 어려운 까닭이다(『삼대』나 『고향』 같은 작품은 고역이다). 그래서 나는 문지 전집을 더 좋아했음에도 미주의 불편함 때문에 현대문학 출판사에서 나온 전집을 찾아 읽는 일이 잦았다. 지금은 어떻게 나오는지 모르겠으나, 아직도 그렇다면 개선을 좀...


 

많은 사람들이 문지 하면 떠올리는 것은 문학과지성 시인선이겠으나, 너무 유명해서 굳이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책들이, 특히 80년대에 나온 시집들이 내 시심(詩心)의 중핵을 이루고 있음은 분명하다. 최승자, 이성복, 황지우... 그들의 이름을 한 번씩 불러보며(별 헤는 밤이 떠오른다면 기분 탓이다) 마무리해야겠다..


p.s 1) 사진을 찍으려고 책을 모을 때 문지 책도 아니면서 꽂아보려 했던 책은 낭시의 『무위의 공동체』(인간사랑)였다. 출판사는 다르지만, 『밝힐 수 없는 공동체 / 마주한 공동체』의 짝이니까. 하지만 뒤늦게 발견한 말라르메의 『시집』에 밀려 결국 물러나고 말았다.


p.s 2) '현대의 지성' 시리즈 중 내가 갖고 있는 책은 김현경의 『사람, 장소, 환대』가 전부다. 작년 초에 샀으나 여전히 다른 책에 치이고 있는, 볼 때마다 '봐야 하는데'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책. 그러다 작년 가을 무렵 문지 페이스북에서 이 책에 교정사항이 있다는 공지를 보고 캡처해 놓았다(아직 내 책에 표시하진 않았다). 이미 책을 읽으신 분들이 바로잡으셨으면 하는 마음에 사진을 올려둔다. 핵심적인 내용이 수정된 것은 아닌 듯하고, 내가 갖고 있는 책은 7쇄다.



p.s 3) 글을 다 쓰고 보니 이 이벤트는 리뷰에만 적용되는 모양이다. 생고생했다는 생각이 들지만, 생고생의 결과는 그냥 남겨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벤트가 언제까지인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이번 주에 읽어야 할 책 중에 문지 책은 없다...

 

p.s 4) 아무리 수정해도 되지 않길래 어제 밤에 쓴 글을 삭제하고 다시 응모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제 읽고 공감해주신 분과 댓글 남겨주신 분들께 죄송합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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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1-20 1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님, 글 위에 ‘이벤트 참여 중’ 단어가 없어요. 마이페이퍼로 작성해서 글쓰기 창 위에 ‘이벤트 응모하기’에 체크해야 합니다. 체크 안 된 게시물은 이벤트 게시판에 보이지 않습니다. 정성들여 쓴 글을 삭제하고 다시 업로드할 때 난감합니다. ^^;;

아무 2017-01-20 11:54   좋아요 0 | URL
이번에 쓸 때는 체크하고 썼는데도 글 위에 안 뜨더라구요ㅠ 그래서 문지 이벤트창으로 들어가니 제 글이 참여중인 걸로 올라와있길래.. 아무래도 예전처럼 글에 참여중을 띄워주진 않는 것 같습니다^^;; 헷갈리지 않도록 올려주는 게 나을 것 같아요ㅠ

cyrus 2017-01-20 11:57   좋아요 1 | URL
아, 그래요! 몇 달 동안 출판사 사진 이벤트를 하지 않아서 모르고 있었어요. 저도 조만간 문지 이벤트 응모하려고 이번 주말에 책장을 확인해보려고 합니다. ^^

cyrus 2017-01-20 14:42   좋아요 1 | URL
방금 글쓰기 테스트 해봤는데, 정말 ‘응모 중’ 문구가 안 나오네요.

아무 2017-01-20 15:40   좋아요 0 | URL
오늘 다시 쓰고 나서 생각해보니 어제도 내가 착각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수정할 때면 체크란도 안 나오고ㅠㅠ 사소한 거지만 ‘응모 중‘ 문구가 나오는 게 훨씬 편할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