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선생이다
황현산 지음 / 난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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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격(品格)’이란 단어를 사전에서 찾으면 두 가지 뜻이 나온다. 첫째, “사람 된 바탕과 타고난 성품”, 둘째, “사물 따위에서 느껴지는 품위”.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뜻풀이를 둘로 나눈 것은 단어가 사람에게 쓰일 때와 사물에 쓰일 때를 구분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사람과 사물의 구분에 관계없이 내가 찾고자 하는 뜻은 두 번째에 가까운 듯하니 조금만 더 추적하자면, ‘품위(品位)’란 단어의 여섯 가지 뜻 중에 사람이 갖추어야 할 위엄이나 기품”, “사물이 지닌 고상하고 격이 높은 인상에 주목할 수 있다. ‘위엄(威嚴)’존경할 만한 위세가 있어 점잖고 엄숙함, ‘기품(氣品)’인격이나 작품 따위에서 드러나는 고상한 품격을 나타내는 말이니 품위의 두 가지 뜻은 일맥상통한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품격이라는 단어에서 이렇게 멀리까지 온 것은, 선생의 글에 배음(背音)처럼 흐르는 품격이란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규명하기 위한 나의 짧은 추적이다. 그리고 오랜 시간 끝에 내가 다다른 생각을, 구태의연한 정의를 약간 비틀어 말하자면, 문체(style)가 곧 그 사람의 태도(attitude)를 가리킨다고 정리할 수도 있겠다.


훌륭한 에세이가 갖추어야 할 자질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황현산이라는 평론가의 에세이가 갖는 자질이란 평이하지만 엄정하게 골라낸 언어로 상념을 펼쳐내 독자를 어느새 그의 세계로 스며들게 하는 경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글은 목표를 향해 돌진하는 사냥개의 솜씨도 아니고, “열정을 지닌 개인의 과격한 언어들(200)의 전위도 아니지만, 한 걸음씩 천천히 다가가는 문장들은 어느새 핵심에 이르러 과녁을 정확히 맞힌다. 여러 지면에 실렸던 글을 모은 만큼 다루고 있는 주제는 다양하지만, 읽다 보면 어느새 문장들은 문제의 중심에 닿아 있다. 하지만 그 문장들은 과시하는 창(槍)이 아니라 불현듯 꽂힌 비수에 가깝다. 힘을 주었다는 인위적인 시늉 없이 그 힘을 전달하는 문장의 내공이 글에서 풍기는 고고한 향기를 좌우한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나는 때로 새삼스러운 말들을 읽으면서도 그것을 우리에게 과거의 상처는 너무 악착스럽고, 미래에의 걱정은 갈수록 두터워질 뿐이다. 그래서 현재는 그만큼 줄어들고 눈앞의 삶을 깊이 있게 누리는 것이 용서되지 않는다.”(42)와 같이 표현하는 펜끝을 보며 감탄하는 것이다.


나도 지금을 살고 있는 또 하나의 사람인지라, 모든 글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은 아니었다. 때때로 나는 글을 읽으며 향수(鄕愁)나 보존에 지나치게 기운 견해들이 아닌가 하며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감수성의 필요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문장들을 보며 이성(理性)의 필요를 떠올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나와 다름에도 불구하고 눈을 돌리지 못하고 존중의 뜻을 표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의 문장이 가진 고아(高雅)함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것은 문장을 다루는 데서 느껴지는 그의 태도, 어떤 것도 허투루 보고 쓰지 않고자 하는 태도와도 관련된다. 진실을 꿰뚫으면서도 해석의 여지와 반성의 겨를을 누리는 새로운 문체의 개발(201)을 지향하는 그의 문장에 표하는 나의 존중은, 언어를 잘 골라서 문장으로 펼쳐내고 싶은 나의 바람이자 닮고 싶은 문장을 만난 나의 마음이기도 하다.


많은 부분에 밑줄을 치며 읽었지만 내 눈을 오래 사로잡았던 글들은 시의 소용에 대한 글과 문학과 문학적인 것을 이야기한 글이었다. 시적인 가사를 품은 노래와 시를 가름하는 기준, 문학과 문학적인 것을 가름하는 기준은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하려는 고독한 시도들로 귀결된다. 문학은 문학적인 것을 목표로 삼지 않는다.”(289)는 말이나 시인이 시를 쓰는 것은 "사물에 대한 새로운 감수성을 개척한다는 것이며, 그것들을 표현할 수 있는 새로운 형식과 이미지를 만든다는 것이다.”(184)는 말들처럼, 중요한 것은 생각을 소비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생산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뜻일 테다. 물론 이러한 견해의 극단이 결국 이전의 오만한 견해들처럼 고급문화와 대중문화를 가를 수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의 글은 그 지점으로 넘어가지 않으려는 치열함과 겸손을 가졌다.


처음으로 돌아와서, 문장의 품격이란 글쓴이의 태도와 관련되는 것이며, 그러한 태도는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온다. 한 권의 책에서 그가 견지한 시선-태도란 사소한 것도 허투루 보지 않으려는 마음일 것이다. 글쓰기가 독창성과 사실성을 확보한다는 것은 바로 당신의 사정을 이해하기 위해 나의 사소한사정을 말한다는 것(176)이라는 말처럼, 사소함에서 다름을 보고 이를 확장시키는 노력이 품격의 한 부분일 것이다. 그런 시선을 가진 사람이 성장통이라는 단어가 젊은 날의 고뇌와 고투를 그 미숙함의 탓으로 돌려버리기도 한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젊은 날의 삶은 다른 삶을 준비하기 위한 삶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 자체를 위한 삶이기도 하며, 어쩌면 가장 아름다운 삶이 거기 있기도(88) 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사소함만 가진 문장은 고졸(古拙)함에 그치고, 이를 합당한 언어와 정직한 수사법으로표현하려는 노력이 함께할 때 문장은 고아함을 입는다. 결국 문체가 가리키는 글쓴이의 태도란 세계를 바라보는 자세와 언어를 다루는 자세를 아우르는 개념일 것이다. 이러한 자세에는 세계의 고통을 더욱 아프게 받아들이는 마음도 있을 거라고 믿으며, 기억과 예술의 윤리를, “인간 의식의 맨 밑바닥까지 진실을 추구하는 작업(84)으로서의 문학을 말했던 그의 모습을 보며 나는 자꾸 아래의 문장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비극은 그다음에 올 것이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죽음도 시신도 슬픔도 전혀 없었던 것처럼 완벽하게 청소되어, 다른 비슷한 사연을 지닌 동네와 거리들이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세련된 빌딩과 고층 아파트들의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그 번들거리고 말쑥한 표정으로 치장”(진은영 시인, 용산 멜랑꼴리아)될 때 올 것이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부끄러움이 무엇인지 모를 것이다. 사람이 억울한 일을 당하면, 사람이 불타면, 사람이 어이없이 죽으면, 사람들은 자기가 그 사람이 아닌 것을 다행으로만 여길 것이다. 그러고는 내일이라도 자신이 그 사람이 될까봐 저마다 몸서리치며 잠자리에 누울 것이다. (33)


부고를 들었던 날, 내가 받은 책 중 하나는 말과 시간의 깊이였다. 작고하기 며칠 전 오랜만에 나는 선생의 트위터를 훑다가 악의 꽃번역과 교정을 끝내고 주석을 달기만 하면 된다는 트윗을 보고 반가워하였으나, 반가움은 허망함으로 나를 반겼다. 사 놓고 묵혀둔 지 오래된 책을 이제서야 읽게 된 것을 안타까워하며, 남겨진 책들을 천천히 곱씹으며 내 고유의 문장의 품격을 찾고 싶다고 생각한다. 세상을 지탱하는 곧은 형식들은 차가운 바람 속에 남아 있다.”(241) 어른다운 어른, 존경이 아닌 존중받을 만한 어른도 찾기 힘든 이 시기에 전해온 부고는 안타깝기만 하다. 부디, 영면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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