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307
인간이 길들일 수 없는 상황이란 것은 없다. 특히 자기의 주위 사람들이 모두 마찬가지로 살고 있는 것을 볼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레빈은 그날 자기가 처했던 형편 속에서 펀안히 잠들 수 있으리라고는 석달전만 해도 믿을 수 없었을 것이다. 목적도 아무것도 없는 무의미한 생활, 더구나 수입 이상의 생활을 하면서 술에 절어(그는 클럽에서의 자기 행동에 이외의 다른 표현을 할 수는 없었다) 예전에 아내가 사랑한 적인 있는 사나이와 함부로 우정을 맺기도 하고, 게다가 또 타락한 여자(‘안나’)라고 밖에 부를 수 없는 여자를 방문하는 더 없이 분별없는 짓을 하고, 더욱이 또 그 여자에게 마음이 이끌려 아내를 비탄에 잠기게 한 후에 자기가 편안히 잠들 수 있으리라고. 그러나 그는 피로와 전날의 불면과 술기운 덕분으로 곤하고 편안하게 잠들 수 있었다.

P308
그저 훨씬 뒤에야 그(‘레빈’)는 그녀(‘키티’)의 조용한 숨결을 상기하고, 여자의 생애에서 가장 큰 일에 대한 기대 속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그의 옆에 누워 있었을 때 그녀의 거룩하고 사랑스러운 영혼 속에서 일어나고 있던 일체의 감회들을 이해한 것이다.

P312
그(‘레빈’)는 불신앙자였지만 이 말을 그저 입으로가 아니라 진심으로 되풀이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 그는 자신이 품고 있는 온갖 회의도, 또한 이성에 의한 믿음은 불가능하다는 자기의 체험까지도 신에게 매달리려고 하는 그를 조금도 방해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가 그 손안에 자기의 몸, 자기의 영혼, 자기의 사랑이 있음을 느끼고 있는 존재에 매달리지 않는다면 누구에 매달릴 수 있었을 것인가?

P313
하인은 램프의 등피를 닦고 있었고, 그 일에 완전히 정신을 배앗기고 있는 것 같았다. 하인이 등피 따위에 열중하면서 레빈의 집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는 냉담하다는 사실이 처음에는 그를 놀라게 했으나, 그는 이내 고쳐 생각하고 아무도 그의 감정을 알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으며, 또 알아야 할 의무를 지고 있는 사람도 없으니, 이 냉담의 벽을 뚫고 자기의 목적을 이루려면 침착하게 잘 생각하고 또 단호한 행동을 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서두르지 말고 실수하지 않도록 해야만 한다.’

P320
그는 그저 일년전에 도청 소재지의 한 호텔 방안, 니콜라이 형의 죽음의 자리에서 완성되었던 것과 똑같은 무언가가 완성되고 있음을 알았고 느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슬픔이었고, 이것(‘키티의 출산’)은 기쁨이었다. 하지만, 그 슬픔도 이 기쁨도 마찬가지로 생활의 일상적 조건 밖에 있었고, 이 일상생활에의 틈새 같은 것이었으며, 그 틈새를 통하여 숭고한 무언가가 모습을 보이는 것이었다. 그리고 양쪽의 경우 똑같은 쓰라림과 괴로움을 가지고 다가왔다. 그리고 어느 경우에도 이 숭고한 무언가를 눈여겨 보면 똑같이 신비로운 작용에 이해서 영혼은 여지껏 전혀 몰랐던 무한히 높은 곳으로, 이미 이성은 도저히 그 뒤를 따를 수 없는 높이에까지 이르는 것이었다.
"주여, 용서하소서. 도와주소서" 그는 이렇게 줄곧 마음 속으로 되풀이했다. 그처럼 오랫동안 완전한 것으로만 여겨지던 소원(疎遠)에도 불구하고 유년 시절이나 소년 시절과 조금도 다름없이 무조건 믿는 단순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향하고 있는 자기를 느끼면서

P369
가정생활에서 무언가를 꾀하기위해서는 부부사이에 완전한 분열이나 혹은 사랑의 일치가 있지 않으면 안 된다. 부부관계가 애매하고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경우에는 어떠한 계획도 실행될 수 없는 것이다.
세상에는 남편에게도 아내에게도 싫증이 난 생활을 그대로 몇 해째 계속하고 있는 부부가 꽤 있지만, 그것은 모두 완전한 분열도 일치도 없기 때문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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