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랍어 시간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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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의 마지막에, 2020년의 제일 처음 읽은 책이다. 환하고 환해서 어제까지의 1년이 과거가 되고 새로운 1년의 하얀 하루하루처럼 기분 좋고 아름다운 백색의 언어들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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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는 여행 다니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아.”
언젠가 여자친구인 K가 내게 한 이 말은 참 이상하게 들렸다. 왜냐하면, 나는 여행하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혼자서 여행을 가본 적도 없었고 가족들과 어디를 가는 것도 속으로는 짜증 내기 일쑤였다. 몇 번 가본 해외여행은 친구가 계획한 걸 몸과 돈만 들고 따라간 것에 지나지 않았고 그나마도 가까운 일본(물론 올해 전에)에 간 게 전부였다. 왜 나한테 그런 말을 했는지 이유를 묻자 K는 하도 싸돌아다녀서 당연히 여행을 좋아하는 줄 알았다고 대답했다. 하긴 그 얘기가 나온 당일에도 나는 2만 보를 걸었다. 집순이인 K에게 나는 여기저기를 싸돌아다니기를 좋아하니 의례 여행을 좋아할 줄 알았던 것이다.

올해, 2019년은 내내 걷고, 책을 읽는 한해였다. 두 가지 일 모두 예전에도 똑같이 하던 일들이었지만 올해 들어서 절대량이라고 할까. 두 행동이 차지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예를 들자면, 독서량은 20퍼센트 정도 늘었고, 걷는 양은 평균적으로 50퍼센트 정도 증가했다. 2월에 학교를 졸업한 후, 올해정도는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온전히 투자해보자하고 취업을 미뤘었더랬다. 그러나 결론적으로는 백수. 백수에게는 남는 것은 시간밖에 없었고 나는 걷고, 걷고, 읽었다. 때마침 원래부터 쓰던 독서 어플인 <북플>에서 독보적이라는 만보기 기능을 추가한 것은 이런 추세에 기름을 얹었다고 할까. 하루의 목표를 달성하면 50원 정도를 받을 뿐이지만, 운동을 떠나서 주어지는 작은 보상은 이 개고생에 의미를 부여하는 정도로는 충분했다.

그렇게 12월이 된 지금 나는 매일 2만 보를 걸었다. 집에서 게으름을 부리고 목표를 초과 달성해서 3, 4만 보 정도를 걷는 날도 있었다. 그런 날들을 합치니 평균적으로 2만 보를 걸었다. 매일 15km 정도를 걸어 다닌 셈인데 훈련소 때 하던 10km 행군을 매일 1.5 배 정도 더하는 것이었다. 대충 어디까지 거리나 고민해보니 구로구 오류동인 우리 집에서 2호선 홍대입구역까지 걸어가는 거리였다. 그럼 두 배가 되는 날에는 왕복까지 할 수 있는 거구나.

<걷는 사람 하정우>에서 배우 하정우 씨는 걷는 것의 의미를 예찬하면서 자신이 매일 걸어서 출퇴근하고 그 코스까지 소개했다. 어디까지는 몇만 보, 저기까진 몇만 보. 이런 식이다. 나에게도 그런 코스가 몇 개 있다. 첫 번째 코스는 도서관까지 걸어가는 한 시간 남짓의 코스다. 지름길로 단번에 걸어가면 45분 남짓 걸리지만, 주변 샛길로 돌아가면 딱 한 시간이 걸린다. 6000보 정도. 왕복으로 합치면 12000보다. 보통 사람이었으면 이걸로 하루 운동 다 하겠다고 하겠지만 내 하루 목표치는 2만 보. 턱없이 모자란 결과다. 영등포까지 자전거를 타고 집에 오면 15000보. 홍대까지는 20000보. 매주 토요일마다 하는 스터디를 위해서 신촌까지 다녀오면 27000보. 그 정도를 걷고 집에 오면 지쳐서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잠을 잘 수 있다. 어쩌면 그걸 바라고 걸어 다니는 건지도 모르겠다.

스물일곱 내 나이에서 취직에서 한걸음 멀어진다는 결정은 그 자체로도 불안했다. 보통은 취직하고 어떤 이들은 내가 꿈꾸는 분야에서 성공하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하는 노력이 어떤 결과물을 얻어 줄지는 아무도 몰랐다. 불안했다. 집에 앉아 있으면 어떤 것이 터질까 봐 나는 자꾸 밖으로 나갔다. 걷고 걷다 보면 조금씩 불안이 휘발되는 게 느껴졌다. 나는 잘 잊어버리는 사람이었다. 특히 걸을 때는 더 잘 잊어버릴 수 있어서 매일 보는 풍경도 잊어버려서 같은 곳에 가더라도 이런 곳이 있었나 싶었다.

계절이 지나면서도 나는 같은 곳을 자주 지나쳤다. 그동안에도 나는 많은 것들을 잊어갔다.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햇빛의 궤적, 나날이 무거워지고 가벼워지는 나뭇잎들. 서서히 차가워지는 공기들. 매일 다른 각도로 한강을 물들이는 낙조. 잊어버리고 잊어버릴수록 나는 매일 걷는 자리마다 다른 감정을 느낀다. 그러나 그 안에 불안은 없었다. 조금씩 결은 다르지만, 마음을 물들이는 감정은 기쁨에 가까웠다. 걷지 않았다면 알 수 없는 순간들이었다.

처음 느끼는 사랑의 추억, 소중한 이를 잃어버리는 슬픔, 친구들과 함께한 추억과 즐거움. 이런 감정들을 잊어버리는 것은 슬픈 일이다. 그러나 그렇게 잊혀지는 것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잠시 없어졌다가 이내 다시 떠오르는 것이다. 그렇기에 잊어버리는 것은 슬프지만 아름다운 일이기도 하다. 스스로 약속했던 1년은 다 지나가고 올해는 며칠 남지 않게 되었다. 새로 오는 1년 동안 나는 무슨 일을 겪을 것인가. 적어도 지금처럼 오래 걷고 책을 읽을 거라는 건 알고 있다. 그리고 많은 일을 잊어버릴 것이다.

핸드폰에 작게 표시된 <북플>의 아이콘이 친숙해 보이는 것은 이 작은 아이콘이 내가 결심한 걸 해보라고 등을 떠미는 친구 같아서다. 그래 나는 네 말을 듣고, 오늘도 걷고 읽을 거다. 잊는 걸 잘하는 나지만 걷는 것의 의미를 잊어버릴 정도로 건망증이 심하지는 않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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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예능 - 많이 웃었지만, 그만큼 울고 싶었다 아무튼 시리즈 23
복길 지음 / 코난북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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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로 뒤범벅 된 글을 읽는 일은 즐겁지 않았다. 남자라고 해서 여성의 분노를 공감하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서는 아니다. 책은 트위터가 아니다. 분노 좋다. 여자가 한국 사회에서 힘들게 산다는거 알고 있다. 그런데 글을 읽는 게 즐겁지가 않다. 글들은 티브이 예능에서의 남성 권력에 대한 비판을 이어나간다. 읽으면서 숨이 막힌다. 내가 남자이기도 때문이지만 글이 별로여서였다. 무언가를 싫어할때 논리적이기는 쉽지 않다. 비슷한 공감대를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는 분노는 좋은 매개체 이지만 나는 아니다. 소설로 따지자면 백인 노예를 학대하는 흑인 주인이 나오는 역사 소설이고, 동성애자를 혐오하는 목사를 훈계하며 구타하는 동성애자가 등장하는 소설이다. 그런 소설을 읽으며 우리는 ‘이 소설 참 구리다.‘라고 말한다. 그렇다 이 책은 구리다. <글쓰기 특강>에서 유시민씨에 따르면 취향이 논리가 되지 못하는 글이랄까. 분노에 어울리는 매체를 떠난 글이 책이 될때 글에 묻힌 분노는 오히려 단점이 된다. 충분한 정보를 제시하지 않기에 비평이 될 수 없고, 결국엔 취향을 따라서 쓰인 리뷰라고 할 수 있다. 에세이집인줄 알았는데 리뷰집이었다. 그것도 1점만 주는 인색한 리뷰집이다. 싫어하는 것에 대해서 오래 쓰는 것도 대단한 일이지만, 독자인 나는 글을 읽는 게 즐겁지 않았다. 그래서 1점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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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집 《코르시아 서점의 친구들》 말미에서 스가 아쓰코는,각자 가지고 있던 차이를 이기지 못하고 몰락해간 사회 변혁 운동의 과정에 대해 이렇게 쓴다. ˝우리의 차이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궁극적으로 지니고 살아야 하는 고독과 이웃하고 있으며, 각자자신의 고독을 확립해야만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적어도나는 오랫동안 이해하지 못했다.˝ 이어 덧붙인다, 꿈꾸었던 공동체의 몰락이 꼭 저주만은 아니었다고. ˝젊은 날 마음속에 그린 코르시아 데이 세르비 서점을 서서히 잃어감으로써, 우리는 조금씩,
고독이 한때 우리가 그토록 두려워했던 황야가 아님을 깨달았던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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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를 양으로 바꾼 이유는 양은 보지 못했고 소는 보았기 때문이라는 것이 맹자의 해석이었습니다. 우리가 『맹자』의 이 대목에서 생각하자는 것은 본 것‘과 ‘못 본 것‘의 엄청난 차이에 관한 것입니다.
생사가 갈리는 차이입니다. 본다는 것은 만남입니다. 보고, 만나고,
서로 아는, 이를테면 ‘관계‘가 있는 것과 관계 없는 것의 엄청난 차이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이 곡속장이 바로 그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옛 선비들이 푸줏간을 멀리한 까닭은 그 비명 소리를들으면 차마 그 고기를 먹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요즘은 아닙니다. 생선 횟집에 들어가면서 수조 속의 고기를 지적하여주문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우리 사회의 인간관계가 오늘 강의의 핵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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