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291 | 292 | 293 | 294 | 295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어젯밤 아홉시에 새까맣고 잘 생긴 청년이 왔습니다.
서울로 데리러 간 교감샘께서 흑인이라며 걱정스런 목소리로 전화하셨더군요. 흑인이면 어떻고 백인이면 어떻겠어요. 본인이 선택해서 태어나는 것도 아닌데... 홈스테이 말이 나왔을 때부터 왠지 흑인일 것 같은 예감에 아이들한테 미리 말했거든요... 저, 돗자리 하나 깔아야되겠어요~ㅎㅎ

미국에서 풀브라이트(Fulbright) 장학금을 받으면 검증된 사람이라는데, 딱 보기에도 착하고 범생이 같아요. 이름은 '버논 캐스카트(Vernon Cathcart) 22살,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졸업하고, 한국문화와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왔답니다. 고려대에서 3주, 경원대에서 1주 한국어와 한국을 배웠다는데 한글도 잘 읽는군요. 우리에게 말도 잘 걸고 아주 귀엽게 굴어요. 좋아하는 한국가수는 슈퍼주니어와 비라는데, 역시 젊음은 국경도 초월합니다!

어젯밤엔, 잠들기 전에 읽을 책을 달라기에, 영어로 된 '광수생각'을 주었더니 펼쳐보며 웃더군요. 웃음은 만국 공통어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전세계 독자들을 열광케 한 해리포터를 주었는데, 해리포터는 안 읽었다는군요.

  

 

 

 

 

 

 

 

 

 

 

좋아하는 한국음식은 '김밥, 비빔밥, 떡, 유과...' 라고 하기에, 아침엔 김밥을 쌌어요. 쇠고기 돼지고기는 안 먹고 닭고기 오리고기는 먹는다기에, 점심엔 감자 넣고 닭볶음을 했더니~마치 어린 아기 음식 먹듯, 아주 아주 작게 잘라서 먹는군요. 많이 먹지는 않지만 맛있게 잘 먹었다는 인사는 넘치게 합니다. 점심엔 설거지까지 하겠다는데, 괜찮다 했더니 침대에서 책을 읽다가 잠들었네요. 체구가 작아서 그런지 진짜 귀여운 강아지 같아요.

어머니는 44세, 아버지는 46세, 돌 지난 여동생이 하나 있다는데, 우리 부부가 나이도 몇살 더 많으니 아들 하나 양자 들였다 생각하고, 가족처럼 편안하게 한 일년 부대끼며 살면 ~~ 뭔가 답이 나오겠지요?

광주에선 초등 한 곳, 고등학교 한 곳, 중학교 두 곳이 원어민 강사 지원받았더군요. 정말, 우리 아들이 복있는 녀석입니다. 작년에도 원어민 강사가 있어 일주일에 한번씩 수업 받았는데, 듣기가 좋아진듯 녀석의 영어가 통하긴 하네요. 엄마는 단어 하나로 소통하는데... ㅠㅠ

기숙사에 있는 큰딸이 올 때까지는 이 녀석이 우리집 통역입니다~~~~ ^*^


댓글(3)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노아 2007-08-18 2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구촌이 형성되었군요. 수많은 에피소드와 사연과 감동이 싹을 틔울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

비로그인 2007-08-18 2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의쌰 화팅입니다 !!!
저도 전에 아프리카 어디더라... 암튼 어디서 온 외국인 노동자 봉사를 좀 한 적있는데
그때 기억이 참 많이 남아요. 서로들 좋은 인연으로 오래가시기를요 :)

순오기 2007-08-23 2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자국 찍어주신 마노아님, 체셔고양이님 감사해요.
이제 딱 일주일인데, 콩글리쉬라도 제법 통합니다~ ㅎㅎ
어떤 상황이고 무슨 말이 필요한지 알기에 한 단어만 귀에 들어와도 알게 되는군요 ^*^
 

지난 수요일(8일), 중학교 2학년 아들의 담임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학부모라면 누구나 그렇듯이 괜히 죄송스러움에 주눅이 드는 마음은 나도 예외가 아니다. 더구나, 한번 찾아뵈야지 하면서도 실행하지 못하고 방학을 맞았으니 더욱 민망하였다. 선생님은 어려운 부탁이 있다시며

"학교의 원어민 강사를 1년간 하숙해 달라"

는 요청이었다. 헉~~~ 내가 일을 하며 나름대로 바쁜 사람인지라, 학기 초 가정방문도 전화로 하신다는 선생님께서 이런 부탁을 하시다니? 선뜻 답을 할 수가 없어, 아이 아빠와 상의하겠다 우선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자녀를 위한 교육열이라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대한민국 아줌마가 이런 절호의 기회를 놓칠쏘냐!

우리의 사생활이 침해받을 수 있는 주거환경과 식사를 감당해야 하는 부담에도 불구하고, 이미 마음에선 '예, 선생님!' 소리치고 있었다. ㅎㅎ~ 대부분 1,2층에 상하방(윗 지방의 미닫이로 나눈 방을 부르는 말)이라는 곁방을 두어 세를 놓는 전라도의 가옥구조를 무시하고 지은 우리집은 1층을 우리 가족이 다 쓰는지라 사실 세를 놓거나 하숙을 치기에 좀 그런 환경이라 전화를 드렸더니, 오히려 그런 조건이 원어민은 한국 가정을 알 수 있고 아이들은 대화를 트기에 더 좋은 환경이란다.

하여간 이래서 일사천리로 홈스테이가 결정되고 17일부터 사람을 들이기 위한 준비를 진행중이다. 지은지 17년이나 된 우리집은 팔려고 집에 돈을 들이지 않아 화장실 타일도 떨어지거나 다시 붙인 자리가 엉망이라 남을 들이기엔 영 민망한 환경이다. 더구나 외국인에게 한국의 가정을 보여줘야 하니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화장실 리모델링 하기로 했다. 토요일 걸음품을 팔아 타일 전시장에 가서 고르고 기술자를 섭외하여 오늘 드디어 깨끗하게 마무리했다. 내일은 원어민이 쓸 방을 새롭게 도배 장판하고, 침대와 책상을 들이고 커튼과 침구류를 준비하면 대충 끝난다.

이런 와중에 드는 생각은 환영 이벤트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현관이나 방문에 풍선이라도 걸고 '웰 컴 투 000' 이런 환영문구라도 붙여야 되는 거 아닌가 하고...... 그리고 일단은 바디랭귀지로 소통하겠지만, 말을 붙이려면 뭔가 예비지식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온다니 미국이란 나라는 다 몰라도 거기라도 알아두자.'

그래서 다시 펴든 책,  

이원복 교수와 함께 만화로 보는 미국역사와 영어이야기 '미국을 알면 영어가 보인다' 에서 노스캐롤라이나를 찾아 '예습하자 예습을 하자~ '중얼대는 중...

그리고 먼나라 이웃나라 시리즈 중에 유일하게 사지 않은 미국편 3권을 내친김에 질렀다. 홈스테이 가정의 기본 매너가 이쯤은 돼야할 것 같아서......ㅋㅋ

                    

 바디랭귀지를 벗어나기 위해 지른 책 하나 
'센스 영어회화 기본표현'


 
하나 더,

'영어울렁증 완전극복처방전Sense English'
 

 

 
집 단장과 기타 준비로 1년간 받을 하숙비의 절반이 들어갔지만, 우리 삼남매가 원어민과 친해지고 영어의 물꼬가 트인다면 충분한 보상이 되리라 생각하며 즐겁게 준비하는 중...... ^*^


댓글(3)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실 2007-08-27 0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용기있는 결정이십니다. 저라면 상상도 못할듯^*^ 좋은 결과 있으시길~~~

책향기 2007-08-29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으시겠어요. 남들은 돈 들여서 원어민과 대화를 나누려 애쓰는데 하숙비 받아가며 원어민과 생활할 수 있다니!! 나중에 이 서재가 온통 영어로 바뀌는건 아니겠지요??^^

순오기 2007-08-29 1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실님, 책향기님~~무식하면 용감하다고 그 누가 말했던가? 요즘 실감하는 중입니다. 근데, 엄마만 용기 백배지~ 애들도 아빠도 별로 말을 붙이지 않아서... 내가 하는 시집살이가 제값을 하려나 모르겠습니다. ㅠㅠ
차츰 사진도 올리고 '버논'에게 뭔가 한마디씩 끄적거려 달라고도 해야겠어요!
기대하세용^*^
 

미저리, 캐리, 쇼생크 탈출~~등 스티븐 킹의 원작소설을 영화화 것이 70여편이 넘는다고 한다. 솔직히 스티븐 킹의 책이나 영화를 본 소감은 정상적인 인간들이 아니라는 느낌이었다. 성인이 되어 돌아보면 성장기 어떤 환경에서 자랐느냐가 그 사람의 성격과 인격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발견한다. 스티븐 킹의 'On Writing-유혹하는 글쓰기'는 작가지망생들의 필독서로 꼽히는데, 여기서 그의 성장기를 보면 거구의 보모 율라블라가 사정없이 찍어내리거나 깔고 앉으며 "뿡야~뿡야~' 방귀를 뀌어대는 엽기모드가 등장한다. 이들 형제는 물론 그것을 일종의 놀이로 즐겼다고 하는데, 이 외에도 많은 황당 엽기적인 놀이를 즐긴 성장기를 보고 그가 쓰는 소설이 좀 이해되었다. 최근의 작품으로는 스켈레톤 크루(상,하)와 셀(1,2)이 있다.

 

 

 

 

 


황당엽기의 정신세계가 그를 지배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여간에 스티븐 킹은 많은 작품에서 작가를 등장시킨다. 어쩌면 스티븐 킹 자신을 투영한다고 볼 수도 있다.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마지막 퇴고의 예문으로 보여준 1408, 바로 이 영화의 주인공인 마이크 엔솔린(존 쿠삭 분)은 사후세계를 소재로 공포소설을 쓰는 작가다. 바로 스티븐 킹의 분신인지도 모르겠다.

1408은 당연히 공포영화다. 그러나 상당히 난해한 영화다. 이렇게 난해해서 관객이 들까? 좀 염려될 정도로....... 보고 나서도 도대체 어떻게 된 상황인지, 무얼 말하려는지 빙빙 도는 느낌이다. 돌핀호텔에서 보내온 한장의 엽서 ‘Don’t enter 1408(1408호에 들어가지 마시오)’ 사람의 심리중에 하지 말라면 기어코 하고 싶은 오기가 발동하는 법,  이 남자 마이크도 이 엽서를 받고 기어이 돌핀호텔 1408호실에 투숙한다.'눈에 보이는 것만 믿어라'고 주장하던 그가 1408호실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눈에 보이는 것을 믿지 말라'고 세뇌하듯 녹음하는 장면이 나온다.

상징처럼 그려지는 담배 한 개비를 재떨이에 얹고 밀실의 공포감을 최대치로 끌어 올리는 가펜터스의 음악이 자동으로 켜지는 녹음기, 꿈인지 환상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돌아가는 공포스런 상황들~~~~~죽은자들이 보이고, 자신을 죽일 것 같은 위협적인 상황에서 절묘하게 피하지만 본인도 판단할 수 없다. 한시간을 못 버티고 56명이 죽어갔다면서 체크 아웃을 종용하듯한 말에 또 오기가 발동한 이 남자. 체크아웃을 하지 않고 끝까지 버틴다.

환상인지 실상인지 자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공포의 요소들과 대면하고~~~ 스스로 이겨내야 살 수 있다는 것인지, 작가들이 작품을 쓸 때 저만큼의 공포감을 갖는다는 것인지........하여간에 보고 나서도 명쾌하게 해석이 불가능한 영화다. 분석력이 뛰어나거나 머리 회전이 빠른 젊은 관객이라면 충분히 즐길 수 있을려나? 어젯밤 콜롬버스 하남점, 11시 6관의 젊은 커플들은 이 영화를 충분히 즐기는 것 같아서, 젊고 머리 좋은 관객들은 볼만하지 않을까 추천!!

스티븐 킹 원작이기에 망설이지 않고 선택했는데, 평범한 아줌마가 감상하기엔 좀 벅찬 영화였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알맹이 2007-08-14 2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저 이거 보고 싶었는데;; 어렵나요? 친구는 스티븐 킹 거 보고 나면 뒷맛 나쁘다고 보지 말라 말리기도 하던데요.

순오기 2007-08-15 0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뇨~ 충분히 공포스럽고 볼만한데... 보고 나서 명쾌한 해석이 안 되더라고요. 이 아줌마의 머리로는. 그리고 쇼생크탈출을 제외하곤, 스티븐 킹 영화보면 꼭 미친(?)사람들 이야기 같더라고요!!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이 당한 수난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해방 62년이 되는 이 싯점에서 우리가 잘 모르거나 혹은 잘못 알고 있는 것은 없을까?  역사를 배우기 시작하는 초등 고학년부터 청소년에게 일제강점기 민족수난의 역사를 제대로 알려주기 위해 여러분의 도움 부탁합니다.

우선 제가 읽은 작품에서 일제강점기의 수난이 드러난 것들을 모아 올립니다. 1.마사코의 질문 2. 제암리를 아십니까 3. 위안부 리포트 4. 토지 5. 아리랑

 

 

 

 

 

 

 


   
 

 

 

 

 

 



이 글은 테마카페에 등록된 테마입니다.
테마는 '먼댓글(트랙백)'이나 '댓글'을 이용하여, 하나의 주제(테마)를 놓고 여럿이 함께 얘기할 수 있는 기능입니다. 
테마카페 바로가기 >>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초딩 2009-07-06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럴수가,,,,일제가정말악랄했네욤
 

난, 광주사람이 아니라 조금은 객관적일 수 있다고 생각하며 이 영화를 봤다. 80년 5월 인천, 화려한 청춘을 보내던 나의 일상에서 5.18은 너무나 먼 나라 이야기였다. 광주 사람을 만나 결혼하고 광주에 살면서 비로소 5.18을 알게 되어 산자의 죄의식에 동참했고, 1997년 출판된 작가 임철우의 장편소설 '봄날'에서 다큐멘터리처럼 보여주는 5.18은 실로 엄청난 충격이었다.

광주를 쓸어버리라는 작전명령이 '화려한 휴가'였다니~~ 정말 할말을 잊게 한다. 수도 없이 봐 온 TV속 자료 화면이 적나라한 영상으로 보여지는데 27년의 세월이 걸렸다. 너무 오래 기다려온 당신들, 그 한의 세월을 어떻게 견뎌냈을까......

금요일밤의 하남점, '화려한 휴가' 심야는 조금만 늦었어도 못 볼뻔했다. 로비에 꽉 들어찬 사람들과, 매회 빈좌석이 없었다는 말을 들으며 과연 '광주'구나. 이곳 광주에선 누구나 꼭 봐야지 맘 먹겠지만, 과연 다른 지역에서도 그럴까? 이 삼복 더위에 '화려한 휴가'를 봐 줄지 걱정스럽다. 왜 5.18에 개봉하지 않았는지 의문이다.

이 영화를 본 다음날, 내고향 충청도에 가면서 삽교천을 지났다. 1979년 10월 26일 삽교천준공식 행사 후, 박정희대통령의 죽음으로 시작된 '광주의 비극' - 집권세력의 시나리오대로 '광주사태'를 유발한 '화려한 휴가'의 시발점을 아이에게 설명하며 가슴이 메었다. 전국에서 모인 아홉쌍의 사촌형제들에게 광주를 이해하려면 반드시 이 영화를 보라고 권면했더니, 그들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너, 진짜 광주사람이 다 됐구나!" 이것이 외지인의 눈길이고 인식이다.

영화는 담양 메타세쿼이어 길을 그림처럼 보여주며 평화로운 일상을 아름답게 담아낸다. 무거운 주제를 가볍게 시작하는 도입부, 겁나게 거시기한 전라도 말에 웃음이 절로 났다. 광주에 산지 18년... 이제 못 알아 듣는 전라도 말이 없기에 전라도 말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영화는 무거운 접근을 피하고 가벼운 웃음거리를 제공하는 영화적 요소를 잘 따르며 진행된다. 하긴 그래야 광주를 제외한 지역에서도 이해하지 않을까 싶다. 시위 현장, 학생들이 처참하게 맞고 끌려가도 처음엔 구경하던 시민들, 5월 22일의 국기하강식 애국가에 맞춰 쏟아지는 총알들... 내 아들이 죽고 형제가 죽어넘어지는 것을 보면서 가슴 아픈 절규와 오열이 터졌다. 눈물을 줄줄 흘리며 지켜 본 두 시간....스스로 살기 위해 광주를 지키자고 하나로 응집된 마음은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가슴 터질듯 치받쳐 올랐을 시민들의 불덩어리 같은 분노는 표출되지 못해 아쉽다.

왜? 바로 사건의 핵이 되는 그 일당을 당당하게 거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광주의 비극만 보여주지 그 비극의 죄인들을 단죄하지 못하는 영화는, 뇌관을 제거했던 그날 밤 도청의 폭탄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80년 5월의 참혹한 상황을 고스란히 담아낸 영화를 보고 5.18을 제대로 안다면 그것으로도 족하다 생각한다. 또 한참의 세월이 흐른 뒤에 그들을 죄인으로 다룬 영화가 만들어지리라 기다린다.

인천에 살때, 80년 5월 광주에 갔다 와서 '국난극복기장'이란 것을 받았다는 공수출신의 말을 들었지만, 이렇게 해서 훈장을 받았다는 것은 그땐 상상도 못했다. 그럼 그 사람도 광주시민들을 두들겨패고, 이렇게 총칼로 훈장을 받았다는 것인데...... 요즘엔 그 훈장을 자랑하거나 광주에 갔었다는 것을 쉬쉬하는 현실이라는 것만도 다행이다. 당시의 집권세력이 지금도 떵떵거리며 사는 부끄러운 오늘도 우리 역사다.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이 이 상황을 100% 사실이라고 받아들일까? 이 영화를 보고도 왜곡이나 과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무엇으로 설득할 수 있을까?

'우리를 기억해 주세요~ 우리를 잊지 말아 주세요~'

그녀의 목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그 밤에 잠들지 못했던 광주 시민들처럼 나도 이 밤에 잠들지 못했다.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이 편안함이 그들의 희생으로 얻은 것임을 잊고 있는 것 같아서......


댓글(3)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글샘 2007-08-06 2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빛고을에서 영화를 보셨으니... 더 감회가 깊으셨겠네요...
부산 사람들도 매회 매진은 아니지만... 엄청나게 돌려대는데도, 사람이 그득 하더라구요.
영화의 완성도를 떠나서... 기록 영화로도 훌륭한 작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순오기 2007-09-09 2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월요일에 초등생 데리고 다시 또 봤습니다. 그리고 수요일밤엔 아직도'산자의 죄의식'에 눌려사는 남편과 초,중 남매가 보았고요. 초등6년 민경이는 그 사람들한테 미안한 마음이 든다는 말로 감상을 전하는데 제대로 이해한 듯합니다.

프레이야 2007-08-27 1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초등 6년 딸아이가 그렇게 말했다면 잘 이해한 거라 생각되네요.
우리집 큰딸은 중2인데 같이 보러가자니까 굳이 안 가겠다고 해서 못 보였어요...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291 | 292 | 293 | 294 | 295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