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사용법 - 제16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대상작 신나는 책읽기 33
김성진 지음, 김중석 그림 / 창비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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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사용법>은 2012년, 제16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저학년 대상 수상작이다. 기대를 저버리진 않았지만, 엄마노릇을 해주는 생명로봇이라니 좀 섬뜩하다. 영화나 책에서 만난 것들이 멀지 않은 미래에 현실이 되는 걸 우리는 종종 경험했다. 인공지능 로봇이 점점 발전되고, 인터넷 사이트에선 동물을 키우는 것에서 더 나아가 아이를 키우는 게임이 유행한다. 이런 추세라면 생명장난감인 엄마를 주문해서 사용하는 발칙한 상상도 가까운 미래에 실현될 거 같다.


엄마들은 밖에 나와서도 핸드폰으로 자녀들을 원격조종하는데, 오히려 엄마의 존재감은 위협받는 세상이다. 과연 아이들은 엄마를 어떤 존재로 생각할까? 끊임없이 잔소리나 해대는 귀찮은 존재, 만날 공부나 하라고 몰아세우는 사람, 엄마도 제대로 안하면서 완벽하기를 요구하는 욕심쟁이? 엄마는 자식에게 어떤 존재이고, 어떠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되는 책이다.

 

책은 재밌게 술술 읽었는데 리뷰쓰기는 쉽지 않다. 왜냐면 내가 제대로 엄마 노릇을 하고 있는지 생각하느라고...  고2가 된 우리 막내가 두 살 때, "엄마는 뭐하는 사람이야?" 물으면 "엄마는 공부하는 사람!"이라고 대답했었다. 난, 지금도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는 것보다는 책을 읽거나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게 좋다. 그래서 태성이가 소리친 엄마의 정의에 따르자면 나도 불량품이다. 어쩌면 엄마들 스스로도 태성이와 같은 정의를 내리지 않을까?

 

현수에게 네 엄마는 불량품이라고 소리치는 태성이의 말을 들어보자.

"엄마가 아침에 깨워 주지 않으면 불량품인 거지. 그리고 너 어제 입은 옷을 오늘도 입고 왔잖아. 그것만 봐도 네 엄마는 불량품이야"(48쪽)
"엄마는 아이를 돌보라고 있는 거야. 청소랑 빨래도 하고, 맛있는 거 먹고 싶다고 하면 만들어 주고, 뭐든지 내가 하라는 대로 다 해 주는 게 엄마야. 아침엔 제일 먼저 일어나서 밥 차려 놓고 날 깨워 줘야지, 그게 아니면 엄마가 왜 필요하냐?"(49쪽)

태성이의 말처럼 엄마는 이런 역할을 하는 존재이고, 역할을 잘하지 않으면 불량한 엄마일까?
현수가 할아버지와 나누는 대화를 보면, 현수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엄마의 모습이 드러난다.

"네가 생각한 엄마는 어떤데?"

"안아 주고, 책도 읽어 주고, 사랑한다고 말해 주는 엄마요."(67쪽)

태성이가 정의하는 엄마와 현수가 생각하는 엄마가 합체된 이상적인 엄마도 여전히 뭔가 해줘야 되는 사람이다. 엄마란 존재는 역할을 통해서만 그 가치가 증명되고 인정받을 수 있나?  

 

현수에게 배달된 엄마는 완벽한 제품이라는 사용설명서에도 불구하고, 현수가 바라는 엄마가 되어 주지는 않는다. 할아버지는 현수에게 말한다.

"엄마는 불량품이 아니라, 아기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게 아닐까? 갓 태어난 아기처럼 말이다. 그러니까 네가 엄마에게 알려 주면 어떻겠니? 엄마는 너를 처음 보아서 모르는 것일 뿐이니까 말이다."(73쪽)


이 부분을 읽으며 <동갑내기 울 엄마>라는 그림책이 생각났다. 아기를 낳아야 엄마가 되니까 아이와 같이 나이를 먹는 동갑내기 엄마라는 말이 꽤 설득력 있었다. 엄마노릇이 버거워 아이를 방치하거나 우울증에 걸린 엄마들 소식이 종종 들린다. 엄마노릇이 쉽지 않기 때문이리라. 이 책을 읽은 아이들은 엄마를 제대로 사용하는지 살펴볼 것이고, 이 책을 엄마가 읽으면 제대로 엄마노릇을 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생명장난감은 진짜 엄마처럼 마음을 갖고 사랑하거나 웃으면 불량품이라고 파란 사냥꾼에게 잡혀가 폐기된다. 현수의 엄마는 현수가 가르쳐준대로 책도 읽어주고 산책도 하며 다정한 엄마가 되었더니, 불량품이라고 파란 사냥꾼에게 쫒긴다. 현수와 엄마는 정이 들어서 헤어지기 싫었지만, 아빠는 엄마를 안전하게 도피시킨다. 현수는 엄마가 떠난 후에야 완성하지 못했던 가족 그림에 엄마 얼굴을 그릴 수 있다. 하지만 이야기는 요렇게 끝나지 않고 뭉클하고 행복한 마무리다. ^^

 

 

태성이의 장난감이었던 고릴라가 같이 놀고 싶어서 똥을 집어던지는 건 태성이에게 배운 것이고, 현수 엄마가 하는 것은 현수에게 배운 것이다. 고릴라와 현수 엄마의 모습에서 '본대로 배운대로'라는 말이 고스란이 드러난다.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고, 부모 또한 자식의 거울이라는 것도 알 수 있다.

 

신경숙은 <엄마를 부탁해>에서 엄마의 부재로 엄마의 존재를 깨달으며, 엄마에게도 일평생 엄마가 필요했다고 말한다. 엄마 없는 아이가 생명장난감인 엄마를 주문해 사용하는 황당하고 발칙한 이야기는 엄마의 존재와 역할에 대해 생각케 한다. 그렇다면 엄마가 있는 아이들과 가족은 모두 행복한가? 과연 엄마는 자기 편할 대로 부려먹기만 하는 희생만 하는 존재여야 할까? 엄마를 어떻게 써야 제대로 사용한다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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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기밥 공주 창비아동문고 249
이은정 지음, 정문주 그림 / 창비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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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회 '좋은 어린이책' 원고 공모 '고학년 창작 부문' 대상 수상작이다. 개인적으로 창비 '좋은 어린이책' 수상작은 빠짐없이 챙겨 보는 편이다. 좋은 어린이책으로 만난 '문제아'의 박기범, '괭이부리말 아이들'의 김중미, '기찻길 옆동네'의 김남중, '초정리 편지'의 배유안, '짜장면 불어요'의 이현 작가 등... 많은 작가와 작품을 만나면서 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아 횡재한 기분이었다. 

제목에 나온 '소나기밥'이란 '보통 때에는 얼마 먹지 아니하다가 갑자기 많이 먹는 밥' 이르는 말이다. 살면서 배고픈 경험이나 소나기밥을 안 먹어 본 사람이 있을까마는, 먹을 것이 없거나 돌봐줄 부모가 없어 끼니를 굶는다는 건 참 슬픈 일이다. 유아기 때에 부모의 방치로 굶주려 본 이웃의 와일드보이가 유난히 먹을 것에 집착하는 걸 보면서, 짠한 연민과 장엄한 생존본능에 경외감까지 들었더랬다. 어린이 헌장에도 ‘굶주린 어린이는 먹여야 한다’ 고 나와 있지 않던가! 1988년 재개정되면서 "어린이는 고른 영양을 취하고~"로 바뀌었지만, 어린이에게 먹을 것을 제공하는 건 어른들의 의무이자 생존을 위한 기본권이다.

<소나기밥 공주>는 제목에서 짐작하듯이 끼니를 챙겨 먹지 못해 먹을 수 있을 때 소나기밥을 먹는 '안공주'의 이야기다. 
 "아빠, 나를 공주처럼 키우지도 않을거면서 왜 공주라고 지었어?"
라는 공주의 물음에 
"네가 공주라면 아빠는 왕이 되는 거니까, 진짜 이유는 갓 태어난 너를 보자마자 아빤 진짜 왕이 된 기분이었어."
라고 답한다. 부나 지위고하
를 떠나 막 태어난 자식을 보는 부모 마음은 다 이럴거다. 어떤 부모가 제 자식이 소중하지 않으며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기쁨을 만끽하지 않았으랴! 그러나 기분만으로 세상을 다 가질 수는 없다. 현실은 돈 없는 자가 살아가기엔 결코 녹록치 않으니까. 

초등학교 6학년 안공주, 엄마는 오래전에 집을 나가서 소식이 없고 막노동을 하던 아버지는 알콜 중독자로 재활원에 들어가 있다. 알콜 중독이 된 아버지를 무책임하다고 돌을 던질 수도 없다. 집나간 마누라를 생각하면 치밀어 오르는 그 무엇 때문에라도 술을 먹을 수밖에 없을 거 같지만 작품에선 엄마나 아빠를 비난하지 않아서 마음에 들었다. 아이들이 모르는 어른들의 상황을 어찌 다 들추어내겠는가? 다만 그런 상황을 받아들이고 씩씩하게 사는 공주를 통해, 이런 상황에 처했거나 경험했을 독자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것 같아 좋았다.  

육신의 허기도 채우기 어려운 공주가, 정서적으로 느끼는 허기까지 채우기는 더더욱 어렵다. 정서적 포만감을 느낄 수 없는 허기를 채우고자 목까지 차오르도록 먹고, 결국 먹은 걸 다 토해내는 공주를 보며 참 눈물이 났다. 순간적인 유혹으로 202호에 배달될 장바구니를 슬쩍한 죄의식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쨋든 굶주림에 소나기밥을 먹어야 하는 어린이가 있다는 건 어른들의 잘못이다. 가정에서 배부르게 먹는 아이나 끼니를 거르는 아이도, 의무교육을 받는 학교에서 당당하게 급식을 먹을 권리를 주는 무상급식은 꼭 필요한 일이다.

예전엔 드문드문 떨어져 살아도 한 마을에 살면 누구네 밥숟가락이 몇 개고 무얼 먹고 사는지 다 알았는데, 요즘엔 물리적으로 한 울타리 같은 아파트에 살아도 무얼 먹고 사는지 알 수 없고 심한 경우는 이웃에서 사람이 죽어나가도 모른다. 공주가 사는 집은 반지하 방이라 빛도 들지 않고, 아버지가 오랫동안 집에 오지 않는데도 집주인은 모른다. 철저한 개인주의가 보편화되어 특별히 이웃에 관심을 갖고 간섭하거나 염탐하기 전에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문앞에 쓰러진 공주, 다행히 202호 팽여사가 발견하여 응급처치를 받고 병원을 나오는 길에 양심의 고통을 고백한다. 팽여사는 공주를 해님마트로 데려가 죄를 고하고, 알바로 물건값을 갚게 한다. 혼자 산다고 무조건 감싸거나 덮어두지 않고 잘못의 댓가를 치루게 하는 건 바람직한 일이다. 그래도 열흘간의 알바를 끝낸 공주에게 생필품과 먹을거리를 넣어 준 사장이나, 딸 혜민이를 돌보는 알바를 주선한 팽여사도 좋은 이웃이다. 세상은 각박한 거 같아도 이렇게 따뜻한 이웃이 있어 함께 사는 세상이란 걸 깨닫게 된다.

'내가 술을 못 끊으면 네 딸이다'라는 허황된 약속보다는, 재활원 프로그램으로 술을 끊을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하겠다는 아빠의 편지는 공주에게 위로가 된다. 2006년도에 집 근처 초등학교로 상담봉사를 다닐 때, 술 먹는 아빠에게 번번히 맞아서 심하게 위축된 아이가 있었다. 지역아동센터의 고발로 경찰이 출동하고 관리대상자로 등록되었음에도, 술만 먹으면 같은 상황이 반복되었다. 살기 팍팍한 세상에 대한 분노와 열패감에 가족을 학대하는 못난 부모가 늘어가는 건, OECD 순위를 자랑하는 대한민국의 치부다. 부자들만 살기 좋은 정책을 펴는 MB정부는 보편적 복지국가로 가는 길엔 관심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총선결과는 참 입맛 씁쓸하다.

반 친구들이 소나기밥을 먹는 공주에게 '소나기밥 돼지'라고 놀려도 "그래, 나 소나기밥 돼지다!" 기죽지 않고 씩씩하게 맞서는 공주가 좋다.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 남들도 사랑해준다. 비록 끼니를 거르는 형편이지만, 못나도 부모고 부족해도 자식이다. 공주 아빠가 6개월은 더 재활원에 있어야 되지만 앞으로 함께 살 수 있으니까 "공주야, 힘을 내!" 응원을 보낸다.

현실에서도 공주와 같은 상황에 처한 어린이가 있는지 살펴보는 관심이 요구된다. 우리 부모님 세대만 해도 마실 온 이웃과 끼니를 함께하는 일은 당연한 거였고, 누구네 굴뚝에서 연기가 안 나는지 살펴서 양식을 나누는 미덕을 갖고 사셨다. 아무리 살기 좋아진 세상이라도 끼니를 거르는 이웃은 있다. 우리 부모님들이 지녔던 나눔의 미덕을 잊거나 잃어버리지 말고, 더불어 사는 아름다운 세상을 생각케 하는 책읽기였다. 아는 것보다 느낀 것을 실천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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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찻길 옆동네 2 창비아동문고 213
김남중 지음, 류충렬 그림 / 창비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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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5.18 민주화운동 32주년, 80년 5월 광주의 진실이 알고 싶은 독자라면 일독을 권한다. 
 2004년 ’제 8회 좋은 어린이책 원고 공모’ 창작 부문 대상 수상작이다.
1977년 11월 11일 밤 9시 15분에 일어났던 이리역 폭발사건과, 80년 5월 광주를 한 줄로 꿰어 기찻길 옆동네에 사는 가난한 이웃들의 이야기로 풀어냈다. 좋은 어린이 책 수상작이고, 5학년 선학이와 서경이가 나오지만 결코 어린이만을 위한 책은 아니다. 청소년이나 어른, 누가 봐도 좋을 책이다. 

1권은 이리역 폭발사건의 피해지였던 현내마을 교회에 서경아버지 이준행 목사가 부임하면서 시작되어,  이리 건설 사업에 뛰어 들었던 선학이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고,  이 목사의 주선으로  광주로 이사오면서 끝났다. 2권은 80년 5월 광주를 예견하지 못한 이들의 앞날에 어떤 일이 생기는지 지켜보자.

광주 산수동에서 모여 살게 된 이들은, 이 목사의 초록빛 교회와 선학이네가 세들어 사는 완도댁 할머니네서 하숙하는 대학생들이 중심이 된다. 이 시대의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보다는 고생하는 어머니가 더 소중하다는 근수. 누군가 목숨을 내건 희생의 대가를 거저 누리는 양심 없음을 질타하는 명식, 두 사람의 주먹다짐은 서로에게 깊은 상처를 남긴다. 야학에 오는 학생들에게 현 시국을 알려주려는 창원과 용일은 정보망에 노출되고, 위험을 감지한 이 목사의 발빠른 대응으로 구속은 면하지만 이 목사가 잡혀간다. 공수부대의 과격한 진압으로 사망자가 생기자 흥분한 광주시민들은 총을 든다. 마지막 날 도청으로 가려는 용일과 창원과 명식, 이 목사는 총을 들기보다는 살아서 해야 할 일이 있다고 설득하지만 먹히지 않는다.   

"목사님 말씀대로 살아남아서 오랫동안 계속해야 할 싸움이라면, 그렇게 해서 이길 수 있는 싸움이라면 목사님은 왜 현내를 떠난 겁니까? 정작 목사님 같은 사람이 필요한 현내 사람들을 두고 왜 광주로 내려왔습니까? 목사님이 떠난 뒤 현내 사람들은, 희망을 줄 목사님이 필요했던 사람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나요? 그 사람들이 바로 우리 같은 사람들 아니었습니까? 목사님의 싸움이 이기는 싸움이라면, 정말 이길 거라고 확신했다면 우리는 현내에 남았어야 했어요. 광주로 내려오는 게 아니었다고요!"


용일의 외침에 이 목사는 대답하지 못한다. 그리고 이 목사는 그날 밤 도청으로 간다. 그리고 그밤 도청을 지켰던 사람들은 스러졌다.
 

"그날 밤 우리들이 지키고 있던 곳으로 천사 같은 사람이 찾아왔어. 글쎄, 진짜 천사였는지 모르지. 겹겹이 쳐 있던 군인들의 포위망을 어떻게 뚫고 도청까지 들어왔는지 다들 신기해했으니까. 어쨋든 그 사람은 죽음의 공포에 떨고 있는 우리에게 밤새도록 용기와 희망을 주었어. 밤이 깊어 갈수록 우리들은 긴장했거든. 그 사람이 아니었다면 진압이 시작되기도 전에 미쳐 버렸을지도 몰라. 벽시계의 종소리에도 놀라 발작한 사람이 있을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려워하면서도 맑은 정신으로 도청을 지켰어. 한 달 같은 하룻밤을 그렇게 보내고 정말 아무 일 없이 끝나는 건가 의심하며 새벽을 맞이하려던 참에 도청 진압이 있었지. 정신을 차려 보니까 그 천사가 내 위에 쓰러져 있지 뭐야. 천사는 아니었겠다. 그 사람도 죽은 걸 보면. 우리가 있던 곳에서 나 혼자만 살아남았어." 

 

5학년이던 선학이와 서경이는 중학생이 되고 은성이를 좋아하는 선학이와, 야학 선생님인 대학생 용일이를 좋아하는 중학생 은성이의 설레이는 첫사랑도 예쁘다. 총을 가진 용일에게 은성은 절대 죽지 말고 살아서 돌아오라는 다짐을 받고... 그 때문이었는지 용일은 혼자만 살아 남아 3년 형기를 마치고 출옥한다. 그날 모두 초록빛 교회에 모여, 끝나지 않은 싸움은 이제부터라고 마음을 다잡으며 마무리 된다.  

이 책을 읽으며 수없이 눈물이 났다. 가난한 신학생이었던 이준행 전도사와 부잣집 딸이었던 서경엄마와의 시련, 엄마를 잃은 서경을 장인의 요청대로 미국으로 보내야 했던 아버지 이 목사의 인간적 고뇌, 하숙생들을 내 아들처럼 아낀 완도댁할머니로 대표되는 광주의 모성애. 죽을 줄 알면서도 도청으로 간 젊은이들, 도청으로 나와 달라는 애끓는 가두방송의 호소를 외면해야 했던 그날 밤  선학이 아버지와 광주 시민들의 불면의 밤...... 결국 그들의 목숨값을 먹고 사는 우리들이 짊어진 산자의 죄의식까지!  

80년 5월 당시 10살부터 중.고생이었거나 방년의 꽃다운 나이였던 독서회원들은, 이야기가 5월 광주의 한 복판으로 뛰어 들지 못하고 주변에서 겉도는 것 같아 안타까워 가슴이 답답했다고 말했다. 광주 항쟁의 주역이 아닌 평범한 광주 시민의 이야기로 풀어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여기 그려진 내용만으로 80년 5월 광주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린 독자들도 이해할 수 있으리라. 

 

80년 5월에 목숨을 바친 이들을 잊지 말자. 세상을 바꾸는 힘은 한 장의 백지로부터 시작되기에, 날이 밝으면 투표를 하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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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2-04-11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암울했던 현대의 자화상이죠.이젠 광주 민주화 운동도 많은 이들의 뇌리에서 사라지는것 같습니다ㅡ.ㅜ

순오기 2012-04-13 11:16   좋아요 0 | URL
점점 잊혀지고 퇴색되어가는...

좋은날 2012-04-11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은 쉽게 바뀌지 않고 거짓이 진실을 덮고 사람들은 언제나속고 개표방송보면서 참 쓸쓸한 저녁입니다.

순오기 2012-04-13 11:16   좋아요 0 | URL
쉽게 바뀌지 않는 세상이지만 그래도 희망은 열어두렵니다.
 
기찻길 옆동네 1 창비아동문고 212
김남중 지음, 류충렬 그림 / 창비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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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찻길 옆 동네>는 2004년 ’제 8회 좋은 어린이책 원고 공모’ 창작 부문 대상 수상작이다. 1977년 11월 11일 밤 9시 15분에 일어났던 이리역 다이너마이트 폭발사건과, 80년 5월 광주를 한 줄로 꿰어 기찻길 옆 동네에 사는 가난한 이웃의 이야기로 풀어낸 작품이다. 책 이야기를 하기 전에 작가님 이야기를 살짝 들여다 보자.


김남중 작가는 대학 4학년 때,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뜨거움에 시험공부도 제쳐두고 첫 작품으로 동학혁명을 다룬 <황토>를 집필했다고 한다. 그 후 <덤벼라, 곰>으로 2004년 제5회 '문학동네 어린이상'을, <기찻길 옆동네>로 2004년 제8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원고 공모 창작부분 대상'을, <자존심>으로 2006년 '올해의 예술상'을 수상하였다. 현재 단행본 20여권을 집필한 독자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 작가로 빛고을 광주에 산다.

2007년 11월 30일 광주대에서 있었던 이금이 작가 강연회에서, 김남중 작가를 처음 뵈었다. '주먹곰을 지켜라' 리뷰에 무등산 이야기를 했는데, 작가님은 내가 쓴 리뷰를 읽고 무등산 얘기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 잠간 이야기를 나눈 덕분에 2010년 6월 9일 중학교독서회에 작가님을 초청할 수 있었다. 이후에도 지역도서관 초청강연에서 두어번 더 뵈었으니 나름 도타운 인연이다.^^

  

작가님은 강연에서 "아이들에게 어떻게 5월 광주를 얘기할 것인가? 어느 선까지 알려줘야 할지 판단하기 어렵다" 는 독서회원 질문에 -->"글을 쓰는 사람은 옳은 것을 생각하고 쓴다. 광주를 소재로 쓰면 출판사도 부담스러워하고, 독자들도 편치 않게 받아들여 아이들에게 사주길 꺼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써야 된다면, 내가 써야 되지 않겠나... 서른 살 이전에 공들였던 것들에 대해 정리하고 싶어 '기찻길 옆동네'를 썼다. 그 전에 단편으로 쓴 <살아 있었니>에 수록된 '멈춰버린 시계'와 <하늘을 날다>에 수록된 '얼마 안 남았다'는 '세계작가축제'에서도 낭송했다. 5월 광주는 아이들에게 작품으로 말하는게 좋겠다."했다. 작가님과의 인연을 자랑 했으니, 이제 책 속으로 들어가보자.^^
 

 

이리역 다이너마이트 폭발사건은 우리 세대에겐 ’이리역 근처의 삼남극장에서 공연하던 하춘화를 들쳐 업고 뛰쳐 나왔다는 이주일씨’ 이야기로 기억한다. 2009년 8월 군산 갈 때 익산역(예전 이리역)에서 환승했는데, 이 책을 읽었더라면 좀 더 찬찬히 살펴봤을 텐데, 그 땐 이 책을 읽기 전이라 살펴볼 생각을 못했다. 익산은 폭발 이후 30년의 발전을 앞당겼다고 한다. 

이 작품은 이리역 폭발사건의 피해지였던 현내마을 교회에 서경아버지 이준행 목사가 부임하면서 시작된다. 모두가 떠나고 싶어하는 마을, 떠나면 뒤돌아보지 않는다는 그 가난한 마을에 찾아 들어 마을 사람들과 친해지고 야학을 연다. 선학이네 아랫채에 세든 서경이는 마을 아이들과 함께 놀지만 야무지고 당찬 아이다. 마을 무당집 아들 이오는 목사가 오고 굿거리가 줄었다고 투덜대는 어머니의 등쌀에 마을 꼬마들을 폭력으로 제압하려 든다. 서경이는 이오의 폭력에 맞서 구름다리 교각 위에서 기차가 지나갈 때까지 버티면, 아이들을 괴롭히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는다. 하지만 서경이는 교각 아래로 떨어져 다리가 부러지고, 승제와 선학이는 끝내 말리지 않았던 자신들이 부끄러워 말하지 못한다. 

서경의 다리 수술을 위해 장모님께 목돈을 얻으러 갔던 이 목사가 돌아오던 날, 이리역 폭발사고로 현내 마을은 온통 쑥대밭이 되고 교회는 허물어졌다.  이 목사는 갈등 속에서 서경이의 다리 수술보다는 교회를 다시 짓기로 마음 먹는다. 하지만 그 돈을 도둑맞고 펑펑 눈물을 쏟은 이 목사는 결국 광주로 돌아온다. 목수로 일하던 선학이 아버지는 이리 건설 사업에 뛰어 들었지만 건축주에게 돈을 떼이고 폐인처럼 지내다 이 목사의 주선으로 광주로 살러 온다. 팽팽한 긴장이 감도는 5월 광주를 예견하지 못한 이들은 다시 광주에서 뭉친다.

이들의 삶에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는지 그들은 알지 못했다. 이리역 폭발사건으로 폐허가 된 현내마을 사람들의 피폐한 삶을 들여다보는 일은 편치 않다. 그런데 다음 이야기는 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을 이야기한다. 진실을 은폐하려는 권력자들이 봉인하려해도 언젠가는 밝혀지기 마련이다. 80년 5월 광주의 진실을 알기 위해 2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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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2-04-11 1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저 역시도 이리 폭발사고하면 이주일과 하춘화밖에 생각날질 않아요ㅜ.ㅜ

순오기 2012-04-13 11:16   좋아요 0 | URL
같은 세대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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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자가 된 아이 푸른숲 역사 동화 3
김남중 지음, 김주경 그림, 전국초등사회교과 모임 감수 / 푸른숲주니어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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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5월이던가~ 김남중 작가 강연에서 삼별초 항쟁을 소재로 작품을 구상하고 답사를 다녀왔다는 말을 듣고, 이 책이 나오기를 오랫동안 기다렸다. 믿음이 가는 푸른숲 역사동화 시리즈라 더욱 기대가 되었다.

 

옳고 그름을 분명하게 판단할 수 있는 나이는 몇 살일까?
삼별초 장군 배중손의 딸 선유는 열두 살, 몽골군의 첩자가 된 송진은 열세 살, 고려원정 사령관의 조카 테무게는 열두 살이다. 각각 처한 입장이 다른 세 아이를 주인공으로 1271년 삼별초 항쟁의 역사와 의의를 새롭게 조명하는 이 작품은, 점차 소홀해지는 역사교육을 보완하기 위해서라도 열두세 살 초등 고학년들이 꼭 읽으면 좋겠다.

 

 

삼별초 항쟁이 시작된 강화도에 사는 선유. 아버지 배중손은 삼별초 항쟁의 중심에 서기 전 딸에게 묻는다. 

 

"선유야,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다면 스스로의 위험을 무릅쓸 가치가 있겠느냐?
"사람을 살리는 일만큼 중요한 일은 없잖아요."(19쪽)

 

해남에서 화순 운주사로 천불천탑을 세우러 아버지와 함께가던 송진. 백성들이 불상 천 개와 돌탑 천 개를 세우면 몽골군이 모두 물러나고 백성들의 새 고려가 세워질 것이라 믿는 아버지에게 투덜대고, 그런 아버지를 죽인 몽골군의 첩자가 돼야 했던 송진은 고려에 대해서도 적대적이다.

 

"백성들은 몽골군한테 다 죽어 가는데 안전한 곳에서 대장경이나 새기고 있으면 부처님이 대신 싸워 준대요?"(34쪽)
"고려가 나한테 뭘 해 줬는데 목숨을 바쳐?"(75쪽)

 

고려를 굴복시키고 일본 침략을 꿈꾸는 몽골. 삼별초 정벌에 나선 흔도 사령관의 조카 테무게는 빨리 어른이 되어 전쟁터로 나가고 싶어 사령관인 큰아버지의 심부름꾼으로 고려 정벌에 동행한다.

 

테무게는 젖먹이 때부터 세계 최강 몽골 군대의 전쟁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고, 몇 만의 군대를 몰아 수백만, 수천만 명이 사는 나라를 정복하는 몽골군을 상상하며 잠이 들었다.(43쪽)

 

100여년 동안 고려 무인정권의 호위부대였던 삼별초의 항쟁은, 몽골에 굴복한 고려 왕의 해산 명령을 거부하고 몽골군의 침략에 맞선 구국이었는가? 아니면 자신들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투쟁이었는가? 삼별초 항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역사 이야기 <첩자가 된 아이>를 읽은 독자들이 판단할 몫이다.

 

 

 

끊임없이 외세의 침략을 받아야 했던 우리 역사, 수많은 병사와 백성들이 짓밟히는 전쟁을 겪으며 평화를 꿈꾸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계속되는 전쟁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생각하게 된다. 작가는 "역사란 욕심쟁이와 보통 사람들의 밀고 당기기다. 참고 견디다가 끝내 떨쳐 일어난 보통 사람들이 욕심쟁이가 망쳐 놓은 세상을 바로잡는 것이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미래에도 그럴 것이다."라고 말한다.

 

동화책 끝에 삼별초 항쟁의 의의와 발자취를 정리해 놓았고, 그 시대 한반도와 세계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역사공부도 할 수 있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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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12-03-31 2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삼별초... 항쟁을 구국 항쟁처럼 미화하는 것도 웃기죠.
왕조는 몽고에 항복해서 삼별초를 버렸는데 말이에요.
새삼, 국가란 제도가 얼마나 모순으로 가득찬 건지... 알려줄 수 있는 동화겠군요.

순오기 2012-04-02 11:11   좋아요 0 | URL
이 책은 그런 점에서 재평가 작업이기도 해요.

수퍼남매맘 2012-04-03 2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역사 동화 좋아해서 이 책 무지 궁금했는데.... 작가님 말씀이 멋지네요. 역사란 욕심쟁이와 보통 사람들의 밀고 당기기란 말이 총선을 앞둔 지금 가슴에 팍팍 와닿습니다.

순오기 2012-04-03 23:53   좋아요 0 | URL
욕심쟁이가 망쳐논 세상을 바로잡아 가는 거라는 말씀도 확 꽃히고요~
그나저나 총선 결과가 좋아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