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무라 반점의 형제들 카르페디엠 25
세오 마이코 지음, 고향옥 옮김 / 양철북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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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양철북의 카르페디엠 시리즈를 좋아하지만, 몇몇의 작가를 제외하곤 일본소설을 즐겨 읽지 않는다. 그래서 저자 이름도 낯설지만, 진로를 고민하는 청소년에게 꼭 읽어보라 권하고 싶은 책이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 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아직 미래의 설계도가 채워지지 않은 우리집 고1, 고3 남매도 읽어보라 해야겠다.  


큰딸은 초등 3학년부터 변함없이 초등 선생님이 되고 싶어해 교대를 갔지만, 아들녀석은 해마다 장래희망란에 무엇을 적을지 고민했다. 어릴 땐 과학자와 프로게이머가 되고 싶어했고 좀 자라서는 작가가 되고 싶다더니, 쓰는 것 자체를 즐기지 않는 녀석이라 작가의 꿈은 버렸다. 고3이 된 지금도 딱히 진로가 결정되지 않아, 수능점수에 따라 합격 가능한 대학과 학과를 선택하게 될 듯하다. 고1 막내는 심리학이나 번역에도 관심을 갖지만 아직 확고하지는 않다.


대부분 어릴 땐 거창한 꿈을 꾸지만, 성장하면서 점점 꿈이 작아져 평범한 삶에 자족하고 만다. 반면 자기의 꿈을 야무지게 이루는 사람도 있다. 진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일찍 발견하면, 자기 삶에 좀더 적극적이고 긍정적이 되리라 생각한다. 김수환 추기경의 '무엇이 될까보다 어떻게 살까를 꿈꿔라'는 책도 나왔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찾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나 되고 싶은 게 있어야,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답도 나오지 않을까? 우리 아이들은 똑부러지게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정해지지 않아,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것도 막연하던데...


오사카의 작은 중국음식점 도무라 반점 형제들의 좌충우돌 성장기이며 진로 탐색기다. 특별한 꿈을 갖지 않은 평범한 형제의 좌충우돌 일상이, 톡톡 튀는 대화와 적당한 긴장감을 동반하고 유쾌하게 펼쳐진다. 형 헤이스케와 동생 고스케의 이야기가 번갈아 진술되는데, 잘 생기고 글도 잘쓰는 형은 여학생들에게 인기도 많지만 가게 일은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반면 동생 고스케는 생김새는 우락부락해도 가게 일을 잘 돕고 단골손님들과도 잘 통한다. 형제는 서로 다른 성격으로 형제간의 우애를 나누거나 사소한 대화도 거의 하지 않고 지낸다. 동생은 그런 형을 지극히 이기적이고 싸가지 없다고 생각한다. 형제는 티격태격 다퉈도 쿨하게 화해하며 사나이의 찐한 동질감을 나눌 거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은 형제를 발견하게 된다.  

나는 소설가가 되기를 바란 적은 없다. 원래부터 장래에 되고 싶은 것 따윈 아무것도 없었다. 경찰관이나 비행기 조종하기를 동경한 적고 없고, 공무원도 청년 실업가도 되고 싶지 않았다. 단지 빨리 어른이 되어 집을 떠나 다른 세계로 가고 싶을 뿐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내 머릿속에는 온통 그 생각뿐이었다.(43쪽) 

형 헤이스케는 오로지 집을 떠나고 싶다는 이유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도쿄 하나조노 창작학교에 간다. 하지만 소설가를 꿈꾸지 않았던 형은 결국 한 달만에 창작학교를 그만두고 입학금을 돌려받는다. 알바로 카페 라쿠에서 일하며 요리나 가게 운영에 관심을 갖고, 주인 시나무라씨의 신임을 얻는다. 창작학교에서 알게 된 후루바토는 유일한 친구고, 창작학교 강사인 기시카와 선생은 자퇴를 권하더니 사귀자고 제안한다. 여덟 살이나 연상인 강사가 학생에게 사귀자고 하는게 놀라웠지만, 일본이니까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헤이스케는 여자의 마음을 알아주며 섬세한 데이트는 하지 못해도 아리씨와 사귀며 청춘을 즐긴다. 18금스런 장면은 많지 않아 청소년들이 보면 실망하려나? ^^


동생 고스케는 야구를 좋아하고, 겁없이 합창대회 지휘를 덜컥 맡아 버렸다. 피아노 반주하는 기타지마에게 음악고 지휘를 배우며 멋진 학창시절을 즐긴다. 하지만 혼자 좋아하는 오카노와의 가슴 설렌 데이트는 성과 없이 끝난다. 고스케는 도무라 반점의 단골손님들과 격의없이 지내며 자기의 고민도 털어 놓는다. 한 식구처럼 참견하고 비밀 없는 소통은 오사카 사람들의 끈끈한 인정이 느껴진다. 형이 집을 떠난 후 당연히 아버지 가게를 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아버지는 '남의 집 밥을 먹어보지 않으면 크게 되지 못한다' 반대한다.    

"집을 먼저 나갈 수 있는 게 맏아들의 특권이고(28쪽), 둘째 아들의 특권은 형을 보고 배울 수 있는 것(195쪽)"이라는 형의 말을 읽어줬더니, 우리 큰딸은 "맞아 맞아!" 공감했다.^^  아버지의 질타를 받은 고스케는 형을 찾아가 상의하고 대학에 가기로 결정한다. 형은 타고난 성격이나 살아가는 방식은 다르지만 소통할 수 있음을 발견하고, 형에 대한 질투와 미움을 버리고 찐한 형제애를 깨닫는다.  자기에게 맞는 일이 무언지 모르는 형제에게 공감도 되고, 젊은 날에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깨닫게 된다. 청소년들은 도무라 반점의 형제에 공감하며,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더 관심을 갖게 되지 않을까?

 

이 책을 읽으며 부모로서 뜨끔했던 장면이 있다. 자식들에게 지나친 기대로 부담을 주거나, 어떤 일의 결과만 보고 섣부른 판단을 하지 말아야겠다는 반성을 불러왔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식칼을 쥐어주고 감자를 썰게 했던 아버지에게 실력을 인정받고 싶었던 헤이스케는 긴장해서 손을 베어 버렸다. 두번째 기회가 주어졌을 때에도 역시 손을 베었다. 자기에게 기대를 가진 아버지 앞에서 번번히 실수하고 눈물을 흘렸다. 아버지는 요리가 싫어서 그러는 줄 알았고, 그 이후 헤이스케는 도무라 반점 주방에 발을 들여 놓지 않았다.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었던 헤이스케는 그 일이 상처로 남았다. 하지만, 라쿠 카페에서 일하며 메뉴를 개발하거나 새로운 요리법을 시도하면서 잠재된 요리에 대한 관심을 확인하게 된다. 불현듯 그리움에 집으로 돌아온 형 헤이스케와 집을 떠나 대학을 가는 동생 고스케, 둘 중에 누가 도무라 반점의 대를 잇게 될까~~~~~~ ^^  

 

  

양철북의 카르페디엠 시리즈는 5월 2일부터 5월 31일까지 진행되는 제6회 양철북 독서감상문대회 대상도서다
이번엔 일본 문학기행이 아닌 베트남 생태 평화기행이라 관심을 갖고 참여하면 좋을 듯하다. 
관심있으면 여기로~  http://cafe.daum.net/tindrum?t__nil_cafemy=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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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1-04-17 0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 아들은 절대 음감도 아니고 절대 미각을 자랑하는데요~
그래서 진로검사 같은 걸 하면 소믈리에나 바리스타 같은 게 꼭 끼어있어요.
근데 남동생이 조리사여서 그런지...전 그런 것은 절대 시킬 수 없다 싶고요~ㅠ.ㅠ

이 책, 왠지 제가 읽어봐야 겠다 싶은걸요~^^

순오기 2011-04-18 20:10   좋아요 0 | URL
우리 아들은 타고난 미식가로 입은 고급이라네요.ㅋㅋ
어떤 일이든 본인이 좋아서 한다면 못 말리는거죠~ ^^

마녀고양이 2011-04-17 2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술치료에서 임상 실습을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한다고 해서,
자원 봉사에 가까운 미술 치료 보조 공고를 보고 지원했는데 감감무소식 이예요.
갑자기 말이죠,
내가 프로로서 하던 일을 때려치우고, 왜 처음부터 파고 있는거지? 잘 할 수는 있는거야?
등등의 회의감이 엄습하더라구요. 그래서 내린 결론은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열심히 공부하고, 활동하고, 무엇인가 하자... 하다 보면 해결될거야 하고 다독이는 행동이었어요.
저 잘하고 있는거죠, 오기 언니?

순오기 2011-04-18 13:14   좋아요 0 | URL
프로도 하던 일 접어두고 새 일을 시작하는 건 도전이고 용기겠지요.^^
열심히 하면 길이 열리겠지요~~~ 더구나 누가 시켜서 하는 일도 아니니까, 잘하고 있는 거 맞아요.^^

잘잘라 2011-04-18 0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맏아들의 특권과 둘째아들의 특권이 확- 와닿아요.
둘 중 누가 가업을 이어갈지 궁금해서 한번 읽어봐야겠어요.
저의 예상은.. 음.. 둘이 같이! ^ ^

순오기 2011-04-18 13:15   좋아요 0 | URL
누가 가업을 이을까~~~ 결론은 책에 나오지 않아요.^^
미루어 짐작할 뿐이지요.ㅋㅋ

소나무집 2011-04-18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1이 읽기엔 어떤가요?

순오기 2011-04-18 13:16   좋아요 0 | URL
선우면 충분히 읽을만해요~ 재밌게 술술 읽히니까요.^^
 
엄마의 말뚝 2·3 - 다시 읽는 박완서 다시 읽는 한국문학 22
박완서 지음 / 맑은소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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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25일 MBC스페셜에서 박완서 작가 이야기가 방송되었다. 아쉽게도 앞부분은 놓치고 10여분이 지나서 보게 되었지만, 현대문학 3월호의 박완서 추모 특집에 실린 이야기와 인터뷰도 나왔다. 노란 옷을 입고 노란 벽에 서서 찍은 박완서 님의 사진은 봄날이건만, 이제 그분은 우리 곁에서 숨쉬고 말하며 함께 지내지 못한다.

   

나는 오랫동안 박완서 작가의 팬이었다.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당선된 처녀작 <나목>부터 읽기 시작해 신문에 연재됐던 <휘청거리는 오후>나 <도시의 흉년>을 읽었고, 작품이 나올 때마다 설레는 마음으로 찾아 들었다. 80년대 인천에서 유치원 근무할 때, 자모 중에 소설 쓰는 이(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우단의자가 있는 읍'으로 당선된 조혜경)가 있어, 여성동아 출신 작가들 모임에서 낸 여성문학 무크지를 알게 됐고 박완서 작가의 소식을 종종 전해 들었었다. 이런 인연으로 나혼자 친숙한 느낌을 갖고 좋아하는 작가다.   



하동군에서 토지의 최참판댁을 복원하고 평사리문학상을 공모했는데, 2001년 11월 11일 평사리문학제에 박경리 선생과 함께 오신 작가를 뵈었다. 박완서 작가가 행사에 오는 줄 알았으면 책을 갖고 가 사인을 받았을 텐데... 그래도 같이 사진을 찍어서 행운이었다. 손을 들어 사진 찍기를 거절한 박경리 선생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포스였고, 아쉬워 하는 독서회원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듯 박완서 작가는 기념촬영에 응해주셨다. 포근하고 상냥한 작가의 마음이 감지되는 짧은 만남이었는데, 2011년 1월 22일에 돌아가신 작가를 이제는 만날 수 없다. 다시 뵐 수 없지만 수많은 작품을 남기고 떠난 작가를 추모하며, 박완서 다시 읽기로 나만의 작별의식을 치르는 중이다. 서가 한 자리에 모아 둔 그 분의 작품을 어루만지고 들춰보면서...   

  


박완서 문학의 뿌리를 알려면 연작소설인 <엄마의 말뚝>1.2.3을 읽어야 한다. 작가는 5남매를 키워 막내까지 초등학교에 들어가 엄마 손길이 덜 가도 되니까, 자신이 겪은 6.25의 참혹함을 증언하고 싶은 욕구를 글로 풀게 되었다. 처녀작인 <나목>을 비롯한 여러 작품에서 분단의 비극을 무한반복으로 증언했기에, 전쟁을 겪지 않은 후세들이 몸서리치는 당시의 상황을 알 수 있으니 참 다행한 일이다. 
  
 
<엄마의 말뚝 1>은 개성 박적골에 살다가, 자식들을 공부시키기 위해 서울 현저동 상상꼭대기에 말뚝을 박은 가족사이고, <엄마의 말뚝 2>는 6.25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참혹하고 황폐한 삶과 오빠의 죽음을 이야기한다. <엄마의 말뚝 3>은 아들을 잃은 상실감에도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어머니의 죽음으로 막을 내린다.     


 박완서 작품을 읽을 때마다 너무나 솔직한 진술에, 마치 내 속을 틀킨 것처럼 전율을 느낀다. 예를 들면 이런 상황과 표현에. 

"언제나 이 구질구질한 살림걱정 안 하고 살아보냐는 푸념을 나라고 안 하는 바는 아니다. 나만 없어봐라? 보다 더 자주 써먹는 소리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건 입술 끝에 달린 엄살일 뿐, 내 속셈은 어디까지나 내 살림의 종신집권(?)이다.(17쪽) 

"충격 때문이 아니라 부끄러움과 졸음 때문이었다. 나 없는 동안에 일어난 재난의 당사자가 내 식구가 아니라 친정어머니라는 걸 알아들으면서 속으로 나는 얼마나 안도하고 기뻐했던가. 그 사실이 나를 심히 민망하고 부끄럽게 했지만 그런 죄책감조차 별로 절실하지도 못해 들입다 잠이 쏟아져서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나에게 힘이 되어 주려고 집에 남아서 어쩔 줄을 모르고 있는 아이에겐 끝내 슬픔을 가장한 채 허겁지겁 잠속으로 빠져들었다. 마치 불륜의 쾌락처럼 단잠이었다.(27~28쪽) 

이토록 섬뜩한 솔직함은 박완서 소설을 읽는 또 하나의 재미지만, 작가는 우리 안의 속물성과 허위의식을 탁월한 심리묘사로 여과없이 드러낸다. 소설이란게 작가의 체험과 상상의 글쓰기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상황이 작가의 속내처럼 느껴져 친밀감을 더하게 된다.

 6.25 전쟁의 공포와 환멸을 반복적으로 증언하는 건 일종의 트라우마로, 빨갱이냐 아니냐보다 더 지엄한 생존의 문제였다. 치욕스런 세월을 견디고 살아야 했던 작가는 그 당시를 증언하는 것으로 복수를 꿈꾸었다고 한다. 우리 부모님 세대들이 겪은 6.25의 참상은 상상을 초월한다.

세상에 아무리 목구멍이 포도청이라지만, 그 아들이 어떤 아들이라고 그 아들 목숨하고 바꾼 밥뎅이가 걸리지도 않고 이리 술술 넘어가노.... (78쪽) 

어머니에게 아들이 살았느냐 죽었느냐가 문제지, 빨갱이냐 흰둥이냐는 문제가 아니었다.(80쪽)

"갸안 여자는 아니지만서두 병신이에요. 사람값에 못 가는 병신이니까 여자만도 못하죠. 병신자식은 평생 웬수죠."
어머니의 얼굴에 공포와 비굴이 차참하게 엇갈렸다. 어머니가 그렇게까지 강조할 것도 없이 오빠는 누가 보기에도 성한 사람은 아니었다.(88쪽) 

 
어머니는 박적골을 떠나 현저동 상상꼭대기에 말뚝을 박았지만,6.25를 겪으며 당신 인생의 말뚝같았던 아들을 잃었다. 그리곤 언젠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희망을 버리지 않았건만, 끝내 당신 인생의 말뚝을 박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딸의 회상으로 그려낸 엄마의 말뚝은, 비로소 무덤에 묻히며 당신의 이름 석자를 새긴 말뚝으로 남았다. 고향을 떠나 대처에 살면서도 끝내 당신이 깃들일 고향을 꿈꾸었던 실향가족의 회한은 현재도 진행중이다. 언제나 고향으로 돌아갈 날을 꿈꾸며 강화도 언저리를 떠나지 못하는 이산과 실향가족의 아픔은, 반세기도 넘었건만 해결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혹자는 분단을 겪은 그 세대들이 모두 돌아가시면 통일이 될거라는 얘기도 하지만, 우리에겐 멀고 먼 길이고 해결해야 할 민족의 과제다. 

 

엄마의 말뚝 2.3과 말미에 실린 <황혼>은 환갑도 안된 시어머니를 어머니라 부르지 않고, 우리집 노인네로 지칭하는 며느리와의 갈등이다. 젊은여자인 며느리는 한번도 어머니라 부르지 않고 아이가 태어나자 할머니라 부르며, 직접 말을 건네지 않고 아이를 통해 전달하는 방식으로 말을 했다. 이런 싸가지 없는 며느리 꼴을 보고 살아야 하는 늙은여자는 항상 명치 끝에 무언가 걸린거 같아 아들에게 만져보라거나, 스스로 쓸어내를 행동은 성욕을 품은 행동으로 오해받았다. 하하~ 시어머니를 성욕에 환장한 노인네로 몰아버리는 젊은여자는 자신도 머지않아 늙어간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늙은여자는 아들과 며느리의 불효에 앙갚음 하고 싶지만,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하나도 없다. 다만 그들도 저희들의 표현대로 성욕에서 평생 놓여나지 못하는 늙은이가 되겠구나, 스스로 위로하는 것 뿐이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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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11-03-31 2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 주에 방송 보고 짠 했어요. 그립고요. 동시에 포근하기도 했어요. 이 작품은 제목부터 가슴을 저미네요.
작가님과 추억이 있는 순오기님이 부러워요. 소중한 사진이에요.

순오기 2011-04-01 08:45   좋아요 0 | URL
방송에서도 작가님을 뵐 수 있어 좋았지만, 현대문학 3월호를 보면 박완서 작가에 대해 많은 것들을 알 수 있어요. 그래서 더 가슴이 먹먹하고 눈물이 나는...

양철나무꾼 2011-04-01 0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01년이면 10년 전이네요.
10년전엔 님도 커트 머리셨네요, 반가워라~^^

순오기 2011-04-01 08:46   좋아요 0 | URL
그러네요, 올해로 꼭 10년이 되는...
제가 머리를 기른 건 한 6년쯤 되는 거 같아요.^^

섬사이 2011-04-01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자꾸 이 시대의 어른이라 하실 수 있는 분들이 돌아가시는지.
권정생 선생님, 박완서 선생님, 리영희 선생님, 법정 스님...
한 분 한 분 떠올릴 때마다 가슴이 허전해집니다.

순오기 2011-04-01 17:01   좋아요 0 | URL
권정생 선생님은 벌써 3주기가 되네요.
박경리 선생님과 법정스님도 2주기...

꿈꾸는섬 2011-04-01 2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완서 선생님 작품 다시 읽기 해야하는데 매번 미루기만 해요. 제발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너무 멋지세요.^^

순오기 2011-04-02 20:21   좋아요 0 | URL
저도 다시 보기한 건 <엄마의 말뚝> 뿐이었어요.ㅜㅜ
 
엄마의 말뚝 - 다시 읽는 박완서 다시 읽는 한국문학 21
박완서 지음 / 맑은소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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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는 오랫동안 박완서 작가의 팬이었다. 처녀작 <나목>부터 읽기 시작해 신문에 연재됐던 <휘청거리는 오후>나 <도시의 흉년>을 읽었고, 작품이 나올 때마다 사서 읽었다. 누군가에게 책 선물 할 일이 있으면 박완서 작가의 책을 즐겨 선물했다. 나홀로 흠모하던 작가였는데, 2001년 11월 11일 하동군의 평사리문학제에 박경리 선생과 함께 오신 작가를 뵈었다. 거기 오시는 줄 알았으면 책을 갖고 가 사인을 받았을 텐데, 사진만 같이 찍고 사인도 못 받았는데 돌아가셔서 안타까웠다. 그 분을 추모하는 글은 쓰지 않았지만, 그 분의 작품을 다시 읽으며 나혼자 작별의식을 치르는 중이다. 책꽂이 한 자리에 모아둔 그 분의 작품을 어루만지고 들춰보면서... 

 

“쓰는 일은 어려울 때마다 엄습하는 자폐自閉의 유혹으로부터 나를 구하고, 내가 사는 세상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지속시켜주었다.”고 말하는 박완서 작가는, 1970년 여성동아 장편공모에 <나목>이 당선돼 40세의 늦은 등단이었지만, 40년간 빛나는 작품으로 시대를 밝혀준 작가였다. 이 책엔 <엄마의 말뚝>과 단편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틀니>가 수록되어 중고생들이 보면 좋다. 중3 막내는 교육청 논술대회 지정도서라 ’엄마의 말뚝’을 읽었는데, 고등학교 문학에서도 만나는 고등학생의 필독도서다.  

 

박완서 문학의 뿌리를 알려면 <엄마의 말뚝>을 봐야 한다. 졸지에 남편을 잃고 박적골을 떠나 대처에 말뚝을 박고 아들 딸을 잘 키워내는 것이 지상 목표였던 어머니는, 작가의 어머니 뿐 아니라 모든 어머니들의 소망이기도 했다. 

"숟가락 하나도 집안 것은 안 건드리고 오로지 당신의 단 하나의 재간인 바느질 솜씨만 믿고 어린 아들의 손목을 부여잡고 표표히 박적골을 떠났다.(18쪽)"

"핵교를? 기집애를 핵교를?"
"네, 기집애도 가르쳐야겠어요."
"야, 너 대처에 가서 무슨 짓을 했길래....... 큰 돈 모았구나? 아니면 간뎅이가 부었던지, 그렇지 않고서야 무슨 수로 기집애꺼정 학교에 보내 보내길?"(21쪽) 


어머니는 딸을 도회지로 데려가 학교를 보내고, 학교를 나와서 신여성이 되길 원했다. 어머니가 그리는 신여성은 당신이 되고 싶은 모습이었을 것이고, 당찬 어머니 덕분에 우리가 박완서 작가를 만날 수 있었던 건 행운이다. 

"신여성이란 공부를 많이 해서 이 세상의 이치에 대해 모르는 게 없고, 마음 먹은 건 뭐든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여자란다."(37쪽) 

어머니는 그렇게 갈망하던 대처로 나왔지만 문안으론 들어가지도 못하고 문밖인 현저동 상상꼭대기에 말뚝을 박으며, 상처받았을 어머니의 허세와 자존심은 외면하기 힘든 우리 모습이기도 하다. 같이 셋방살이를 하면서도 이웃들을 바닥 상것으로 업신여기며 살던 어머니는, 감옥소 마당에서 노는 딸을 문안 학교로 보내기 위해 친척집으로 주소를 옮겼다. 요즘 말로 하면 위장전입을 한 것인데, 서울에 뿌리박은 손자 손녀를 위해 시골에서 마련해 준 돈으로 괴불마당이 있는 여섯 칸 기와집을 사게 되었다. 어머니는 비록 문밖이지만 기어코 서울에 말뚝을 박았다고 감개무량해 하셨다.  


해방이 되고 돈을 번 오빠가 문안에 집을 사서 이사 했지만, 어머니는 괴불마당 집의 말뚝에서 풀려나지 못했다고 회상한다. 박적골을 떠나온지 40년 만에 현저동 옛동네를 지나게 된 나는, 자신도 엄마의 말뚝이 풀어준 새끼줄 길이만큼만 벗어났을 뿐, 의식은 여전히 말뚝을 가지고 있었다는 고백으로 마무리된다.   

 

엄마의 말뚝을 볼 때마다 우리 가족 이야기로 감정이입이 된다. 우린 충청도 시골에 살면서 언니 오빠를 먼저 인천으로 올려보냈고, 형제들이 하나 둘 합류하면서 결국 고향을 떴다. 부모님이 고향을 뜨고도 시골에 남았던 나는, 짧은 기간 할아버지 댁에서 중학교를 다녔다. 우리 가족은 그렇게 부평에 말뚝을 박고, 가난한 도시인으로 힘겨운 세월을 견뎠다. 부모님은 5남매를 먹이고 공부시키느라 고생했지만, 도시에 말뚝을 박았으니 학교를 다니게 됐다고 당신들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으셨다. 돌아보면 참 눈물겨운 세월이었지만, 그 덕에 요만큼이나 사는구나 싶다.

 

<세상에서 가장 무거은 틀니>는 절름발이 딸(설희)을 둔 이웃집 여편네와 나의 삶에 생기는 여러가지 문제를 얘기한다. 부모, 예술, 이민, 가족 간의 알력, 간첩으로 내려올지 모르는 오빠 때문에 감시를 당하면서 삶이 위축되고 황폐화 되는걸 보여준다. 훌훌 털고 이민을 떠나는 설희 엄마가 부러워서, 서른 여덟에 틀니를 한 나는 그 아픔조차 틀니의 아픔으로 대체하려 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엄마의 말뚝>은 1.2.3까지 연작으로 읽어야 할 작품이다. <엄마의 말뚝 1>은 대처에 말뚝을 박은 가족사이고, <엄마의 말뚝 2>는 6.25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황폐한 삶과 아들의 죽음을 이야기한다. <엄마의 말뚝 3>은 아들을 잃은 상실감에도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어머니의 죽음으로 막을 내린다.  

어머니의 말뚝인 아들을 잃는 사건은 삼대에 걸쳐 대물림되었다. 박완서 작가의 아버지와 오빠, 아들까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보냈다. 이제 작가님은 박적골의 할머니와 어머니랑 한 자리에서 당신들의 말뚝이었던 아들들과 함께 계실까? 이제는 당신들의 말뚝과 편안히 안식하기를 빌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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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1-02-08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마의 말뚝>,, 정말 유명한 소설이죠. 저는 최근에 썼던 소설보다는
예전에 나온 박완서 씨의 소설이 더 좋더라구요. 이 소설뿐만 아니라
<옥상의 민들레꽃><그 여자네 집>이라는 단편소설도 좋았어요.

순오기 2011-02-08 19:16   좋아요 0 | URL
처녀작은 나목이지만, 박완서 문학의 시작은 엄마의 말뚝이죠.
옥상의 민들레꽃은 예전에 중학교 국어에 실렸는데, 지금은 검인정 교과서라 어떤지 모르겠네요.
그 여자네 집, 그 남자네 집, 다 있지요.^^

프레이야 2011-02-08 1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기 언니 전 엄마의 말뚝을 못 봤어요.
이거부터 찾아 읽어봐야겠어요.

순오기 2011-02-08 19:16   좋아요 0 | URL
엄마의 말뚝 1.2.3 모두 실린 책도 있어요.
도서관에 가면 있을테니 찾아 보셔요~ ^^

blanca 2011-02-08 2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완서샘 책들을 열심히 찾아 읽었는데 리뷰도 안 쓰고 정리도 안 해서 하나도 체계가 없어요. 너무 아쉬운 점이랍니다. 대체로 빌려서 읽고 반납하고 이런 식으로 했거든요. 최근들어서야 전집 간행된 걸 드문드문 읽고 있는데 정말 다작하셨더라구요. 정말 한 권 더 써 주시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아프시다는 얘기도 없이 돌연 가 버리셔서 너무 충격받았었어요. <도시의 흉년>을 읽지 못했어요. 순오기님 덕분에 다시 챙겨 봐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순오기 2011-02-09 02:30   좋아요 0 | URL
조금 더 사셨어도 됐는데, 너무 서둘러 가신 거 같아 안타까워요.
박경리 선생님이 부르셨나 봅니다.
저도 너무 오래전에 읽은 책들은 세세한 내용은 생각나지 않아요, 그래서 다시보기 하려고요.^^

모름지기 2011-02-09 0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박완서님 소식듣고 제일 먼저 '도시의 흉년'이 생각나더라구요. 제일 처음 읽었던 선생님의 작품이어서 그런가봐요. 최근의 작품들을 비롯해서 순오기님처럼 선생님의 작품을 거진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엄마의 말뚝을 못 읽었네요. 이참에 찾아 읽어야겠어요.

순오기 2011-02-09 02:31   좋아요 0 | URL
도시의 흉년을 제일 먼저 보셨군요.
저는 인천에 살때 학부모 중에 여성동아 출신 작가가 있어, 박완서 작가님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마치 잘 아는 사람 같은 착각을 하며 살았어요.^^

꿈꾸는섬 2011-02-09 1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엄마의 말뚝>을 처음 읽었어요. 그 뒤 박완선선생님 작품은 열심히 찾아 읽었는데 워낙 다작이라 다 읽진 못한 것 같아요. 순오기님 리뷰보니 안 읽었던 작품들 찾아 읽고 싶네요. 엊그제 <못 가본 길이 아름답다> 읽었어요.

순오기 2011-02-09 20:27   좋아요 0 | URL
엄마의 말뚝부터 읽었군요~~~
40년동안 다작하셨으니, 어찌 다 읽을 수 있겠어요. 나도 못 읽은 거 많을거에요.
어머니독서회에서 2월은 '박완서 작가 추모 특집'으로 박완서 작품 읽기로 정했어요.
못 가본 길이 아름답다, 옆동네서 적립금으로 주문했으니 내일은 도착할 거 같아요.^^

L.SHIN 2011-02-09 2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입니다.오기님.^^
건강하게 잘 지내시죠?
오기님의 댓글을 너무 늦게 읽긴 했지만 재밌어서 피식 웃었습니다.
연휴부터 어제까지 날이 따뜻해서 저는 봄이 벌써 와버린줄 알았습니다.(웃음)

순오기 2011-02-09 22:15   좋아요 0 | URL
엘님을 기다리는 봄, 잉어를 기다리는 엘님~~~~ ^^
 
봄봄 동백꽃 (양장) 클래식 보물창고 6
김유정 지음 / 보물창고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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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국정교과서가 검인정으로 바뀌기 전, 중학교 2학년 2학기 생활국어에 발화의 예시문으로 <동백꽃>이 수록되었다. 하지만 올해는 2학년도 검인정 교과서로 바뀌기 때문에 어느 출판사의 교재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수록 작품이 달라진다. 교과서 수록여부를 떠나 중학생이면 이런 정도는 읽어야 한다. 물론 유정의 생애 및 작품 배경이 된 일제강점기의 시대적 상황을 알면 작품 이해에 도움이 된다.

 

1930년대 일제강점기 우리 농촌을 배경으로 한 대부분의 작품에서 식민지 조선의 피폐해진 농촌을 들여다볼 수 있다. 김유정은 도시하층민이나 농촌의 가난한 소작인들을 대상으로 한 그의 소설에서 걸직한 구어체의 문장으로 해학적인 효과를 두드러지게 한다. 당시는 3%의 부농과 27%의 자작농을 제외하면 70% 이상이 소작농이었다고 한다. 유정은 농촌의 피폐성을 뻔히 알기에 슬쩍 던져 놓음으로 풍자와 해학성을 드러낸다.  


김유정은 1935년에 '소낙비'를 들고 나와 1937년 사망하기까지 2년이라는 짧은 기간 작품활동을 했지만, 이 시기의 어떤 작가보다도 사랑받고 기억되는 작가다. 명창 장녹주를 향한 그의 짝사랑은 지금도 회자되고 있으며, 금광을 했던 매형 밑에 있었던 경험이 '금따는 콩밭'이나 '노다지' 같은 작품으로 나타났다. 그는 중학교 때 하모니카의 명수였으나 후에는 결핵으로 두 절을 따라가기도 숨이 차서 쩔쩔맸다고 한다.(모던수필/방민호/ 향연 258~263쪽 참조)

  
 
표제작인 봄봄과 동백꽃은 같은 이름의 '점순'이란 여자애와 머슴살이 하는 '나'와, 또 다른 '나'를 주인공으로 비슷한 상황의 서로 다른 이야기다. 봄봄의 열여섯 살 점순이와 동백꽃의 열일곱 살 점순이는 마름의 딸로 감정을 표하는 적극성을 보면 동일인물 같아 연작소설로 봐도 좋을 듯하다.^^

<봄봄>은 딸 점순이가 자라면 성례를 시켜준다며 머슴살이를 시키는 장인(봉필)에게 속아 일만 하는 쑥맥같은 나가 주인공이다. 3년 일곱 달을 죽어라 일해도 성례를 시켜줄 생각도 안하는 장인에게 대들지만, 아직 덜 자랐다는 말에 번번히 당하고 만다. 열여섯 살 점순이는 이런 '나'가 답답해 방법을 알려주지만, 결정적일 때 장인 편을 든 점순이 때문에 속절없이 매타작을 당한다.  

<동백꽃>은 열일곱 살 점순이가 좋아하는 '나'의 닭을 괴롭히며 관심을 끌어보지만, 끝내 점순이의 감정을 알아채지 못하는 '나'를 알싸한 동백꽃 향기속으로 쓰러뜨린다. 봄봄의 '나'와 마찬가지로 동백꽃의 '나'도 순진하고 우직해서 영악한 점순의 마음을 알지 못하니 안타까울 뿐이다.  

 
여기 나온 동백꽃은 남쪽에 피는 붉은 동백꽃이 아니라, 산수유 같은 노란 생강나무를 이르는 강원도 말의 '동박꽃'이다. 노란 생강나무라고 했다면 많은 독자들이 동백꽃을 오해하거나, 노란 동백꽃이란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았을 것이다. 동백꽃이라 불리는 생강나무와 산수유는 같은 노란 꽃이지만 꽃 모양과 꽃피는 게 조금 다르다. 산수유는 줄기에서 나온 가지 끝에 꽃이 피고, 생강나무는 줄기에서 바로 꽃이 핀다.
위 사진은 산수유, 아래는 생강나무니까 비교해보면 차이를 알 수 있다. 생강나무는 알싸한 생강향이 난다고 생강나무라 부른다.


 
  

 
<어떤 음악회>는 음악을 좋아했던 김유정의 단면을 볼 수 있는 작품이었고, <두포전>은 여태 못 읽은 김유정 작품이라 반가웠다. 강원도 장수바위에 얽힌 이야기로 다른 작품들과 달리 현대어로 쓰여 김유정 특유의 글맛을 느낄 수 없어 아쉬웠다. 각 편의 주석도 맨 뒤에 모아 싣는 것보다 해당 쪽 아래에 각주로 달았다면 독자들이 보기에 좋지 않을까. 청소년들은 무슨 뜻인지 알기 어려운 낱말이 많아 뒤에서 찾아가며 읽는다는 건 불편하고 짜증날 수도 있겠다.  

2부에 실린 <땡볕, 금 따는 콩밭, 노다지, 만무방>은 일제와 지주들에게 수탈 당한 가난한 농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농사를 지어 소작료를 주고 나면 먹을 게 없는 소작인들, 농사짓던 사람들이 금광에 휩쓸려 거덜나거나 떠돌이가 되는 현실은 그저 웃기에는 참담하다. 1930년대 가난하고 고단한 삶을 살아야 했던 이들의 슬픔과 고통을 형상화한 작품으로, 김유정은 우리 문학사에 길이 남는 이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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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11-02-06 2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숙제하고 계시군요. 김유정. 참 따스한 작가입니다.

순오기 2011-02-07 00:05   좋아요 0 | URL
선생님이라 금세 아시는군요. 안한 숙제가 많아서 편치 않답니다.ㅜㅜ
한참 늦었지만 그래도 숙제를 끝내야 될 거 같아서요.

마녀고양이 2011-02-07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런거예요? 동백꽃이 빨간 몽우리 보고 온 그 동백꽃이 아닌,
노란색 생각나무 동백꽃이라구요? 아하..... 갑자기 심상이 확 바뀌는데요.

노란색 동백꽃이, 훨씬 잘 어울려요, 이쁜 이야기였잖아요. 아련하게 추억같이.

순오기 2011-02-07 18:19   좋아요 0 | URL
예~ 빨간 동백꽃이 아니라 노란 생강나무를 강원도에선 동박꽃이라고 한답니다.
동박꽃이 동백꽃으로 표기되었고...

알싸한 생강나무(동백꽃) 향기를 떠올려 보면.... 점순이가 이해되지요.^^

노이에자이트 2011-02-07 1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청소년 뿐만 아니라 60세 이하의 성인들이 일제시대 때의 단편소설에 나오는 생소한 단어를 모두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지요.저도 고교생용 수능교재로 나온 중단편선을 읽었는데 낱말해석이 바로 옆에 나와 있어서 편했습니다.

순오기 2011-02-07 18:21   좋아요 0 | URL
그렇겠죠~ 더구나 지방 토속어는 알아듣기가 더 어려울수도 있고요.
이 책도 낱말 해석을 그 페이지 아래에 적어뒀으면 더 좋았을텐데...아쉽더군요.

cyrus 2011-02-07 2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봄이랑 잘 어울리는 작가, 그리고 봄이 되면 읽어보면 좋은 작가를 꼽으라면
김유정일거 같아요. 순오기님이 사시는 곳에 봄을 알리는 동백꽃이 피웠네요.
복학 준비 때문에 오랜만에 학교에 찾아갔는데 대구에는 아직 꽃봉오리가 피지 않았더군요.
오늘 날씨가 참 좋았는데 말이죠 ^^;;

순오기 2011-02-07 22:21   좋아요 0 | URL
글샘님은 김유정을 따스한 작가로, 사이러스님은 봄과 어울리는 작가로 생각하시는군요.^^
아직 붉게 핀 동백꽃을 보진 못했는데, 대구엔 꽃봉우리가 열리지 않았군요.
이젠 극성부리던 추위도 한 풀 꺾여 봄맞이 준비를 해야겠어요.
 
그래도 괜찮아 푸른도서관 40
안오일 지음 / 푸른책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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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드라마 '마이 프린세스'에서 김태희가 고기를 먹으며  "고기는 항상 옳아요, 구원받는 느낌이랄까!" 라는 대사에서 리뷰 제목을 뽑았다. 이 시집을 세 번 읽었는데, 한 편 한 편 곱씹으면 구원받는 느낌이랄까.^^  

작년 12월 아들 고등학교 기말시험에 학부모 감독하면서 읽은 시집이다. 시험 시작 10분만에 대부분 끝내고 엎드려 자는 아이들을 보니, "이게 최선입니까? 확실해요?" 시크릿 가든 김주원의 대사를 날리고 싶었지만 꾹 참고 시집을 봤다. 학교측에서 학생들이 답안 작성을 끝내면, 감독하기 지루하니까 책을 봐도 괜찮다고 해서... 시집에 그려진 청소년들과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고딩들이 교실에 갇혀 사는 현실이 겹쳐져 마음이 짠하게 울리는 시읽기였다.  

'안오일'이란 시인의 이름을 보고 '남자분이 참 섬세하게도 썼구나' 생각했는데, 두번째 읽으면서 시인이 여자라는 걸 알았다. 에이, 참 아둔하고 센스없는 나를 어쩌란 말이냐.^^ 남자라고 생각하고 시를 읽을 때와 여자로 알고 시를 읽으니까 느낌에도 차이가 있었다. 여자라서 더 섬세하고 엄마 마인드로 아이들의 삶과 내면을 들여다 보았구나, 이해되는 시들이 눈에 들어왔다. 

4부로 나뉜 제목만 봐도 청소년들의 마음을 잘 표현한 것 같다. 1부 한 대 치고 싶다, 2부 그럴 때도 있지, 3부 이 정도는 웃어 주세요, 4부 지금 우리는. 시인은 청소년들이 시를 어렵고 자기들 생활과는 뚝 떨어진 먼 이야기라는 생각을 없애주고 싶어 시를 썼다고 한다. 청소년 시에서는 비유도 그들의 생각과 삶의 이야기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걸 깨닫게 해주고 싶었단다. 시인이 만났던 학생들을 생각하며 그들의 생각이나 말과 행동 하나하나 진실을 표현해 공감대를 느끼고 싶었다니까, 이 시집을 읽는 청소년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로 공감하고, 나처럼 구원받는 느낌을 받으면 좋겠다.^^ 

천 냥 하우스  

모양이 달라도
쓰임새가 달라도
모두 다 천 원이란다. 

일괄 처리된
이쑤시개, 면봉, 칫솔, 컵, 바구니...... 

바둑부 동완이
운동부 훈이
음악부 화주
그리고 문예부 나
모두 수학 심화반에 넣어졌다. 

 

한 대 치고 싶다 

싫으면 싫다 좋으면 좋다
자기표현 못 하는
재영이 

자기 잘못 아니라고
사실은 이게 아니라고
분명하게 따지지도 못하는
기정이 

볼펜, 지우개, 샤프심, 형광펜
다 빌려 주고 제대로 못 받는
심지어 교통카드 빌려 주고
자기는 걸어가는
동진이 

돈 잘 쓰며
거들먹거리는 진우 앞에서
살살 기는
세준이의 

등짝을 한 대 쳐 주고 싶다. 

 
정말, 이런 짓거리를 하는 사람은 애고 어른이고 등짝을 한 대 쳐주고 싶다.  

아픈 엄마 대신 국을 끓이려고 멸치로 육수를 만드는데, 건더기를 한꺼번에 건져 내려는 맘만 앞서 아무 생각없이 냄비를 들고 체어 부어 버린 난감한 상황을 묘사하고, 나를 만들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은 다 흘러가 버리고, 다 같이 하는 대로 따라 하지 않는다고 문제아 취급하는 거 그게 문제 아니냐?는 친구의 말을 떠올리며, 허망하게 흘러가 버린 육수가 나도 모르게 빠져 나가고 있는 '나'인 것만 같다는 <멸치와 육수>는 청소년들의 현주소, 그네들의 울부짖음처럼 감지된다. 꽉 닫힌 뚜껑을 여는데는 힘보다는 뚜껑 가장자리를 톡톡 두드려서 연 엄마처럼, 엇나가는 아이에게 부드럽게 톡톡톡톡 마음을 두드려 달라고 선생님께 당부하는 <꽉 닫힌 뚜껑을 열며>등, 수록된 시편들이 비유와 진술이 잘 어우러져 감동을 준다. 


다 너 잘되라고 

엄마는 만날
공부해라, 공부해라 

나는 만날
내가 알아서 할게요 

해서 나 주니? 
다 너 잘되라고 하는 거야! 

내가 잘되는 게 뭔지
진지하게 생각 좀 해 주세요. 

 
지금은 '공부해서 남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잘나고 똑똑해서 높은 자리 차지한 인간들이 저밖에 모르는 건, 부모들이 '다 너 잘되라고' 가르쳐서 그렇게 된 건 아닐까? 너 잘돼서 부모도 좋고 사회도 좋고 국가도 좋게 봉사하는 사람, 잘돼서 남주는 인간이 되라고 가르쳤다면 제 주머니 불리기 위해 온갖 짓거리 다하는 이기적인 사회가 되지는 않았을 거다. 정말 내가 잘되는 게 뭔지 진지하게 생각할 기회를 청소년에게 줘야 한다. 왜 어른들은 기본이 되는 공식대로 살지 못하는 걸까?ㅜㅜ

하고 싶은 일을 시켜야 한다는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도 필요하다는
공부와 인성이 꼭 정비례하지 않는다는 

공식대로만 하면
좀 더 살맛 나는 세상이 될 텐데.....  (수학 시간, 부분) 

군말 

우리들이 무슨 말만 하면
들려오는 소리 

쓸데없이 군말 말고! 

하지만 그 군말은
우리들의 마음이 구워 낸 말들이란 걸
알아주세요 


질문 

수학 공식 말고
영어 단어 말고 

때론
내가 경함허지 못한 것들에 대해
물어보고 싶어요 

인생은 소중한 거니까요. 


내가 읽은 청소년 시집은 박성우 시인의 <난 빨강>이 처음이었는데, 남고생들의 내면을 표현한 18금스런 시들은 중학생 딸내미에게 보라고 하기가 민망했었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아>에 실린 시들은 여중생이 보아도 민망하지 않고, 자신들이 잘 표현해내지 못한 마음까지도 잡아낸 시인의 눈길에 고마움을 느끼지 않을까. 그래서 김태희의 대사처럼 '구원받는 느낌이랄까' 그런 느낌을 받으면 좋겠고, '그래도 괜찮아' 토닥여주는 위로를 받아도 좋으리라.

 
왈칵 눈물이 났다
내 마음이 초라해질 때면
세상은 늘 이렇게 아름다웠다 

벤치에 웅크리고 앉아 내려다보는데
내 신발코가 불안하게 나를 쳐다본다
나는 나도 모르게 주문처럼 말했다
그래도 괜찮아
누구도 어쩌지 못하는 내 자신이 있잖아
그러니까 괜찮아, 괜찮아......
나는 신발코를 어루만져 주었다
나를 만지듯
               (그래도 괜찮아,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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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름지기 2011-02-01 0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원받는 느낌일지는 읽어봐야겠고,
'등짝을 한 대 쳐 주고 싶다'란 구절이 아프지만, 공감되는군요.

순오기 2011-02-01 01:24   좋아요 0 | URL
아직 미완성인데 보셨군요~ 구원받는 느낌은 당근 읽어봐야 알지요.^^

양철나무꾼 2011-02-01 0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글샘님 서재에서도 본 것 같아요.
"고기는 항상 옳아요, 구원받는 느낌이랄까!"도 멋졌지만, 이 리뷰 제목도 멋진걸요~^^

순오기 2011-02-01 01:52   좋아요 0 | URL
글샘님은 책을 받으면 바로 읽고 리뷰 쓰는데, 나는 읽어도 리뷰쓰기를 게으름 부려서...ㅜㅜ
우리 큰딸이 김태희의 저 대사를 읊조리고 살아요. 구원받는 고기를 자주 해주지는 못했지만 한달동안 방목했더니 얼굴은 보름달만한 빵민주가 됐어요.ㅋㅋ
리뷰를 완성하기 전에 보셔서, 제목만 멋졌나 봅니다.^^

마노아 2011-02-01 0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오기님 덕분에 좋은 시집을 소개 받아요. 어른들 보는 시집은 난해해서 이해 안 되기 일쑤인데 동시집과 청소년 시집은 적나라하게 가슴을 꿰둟어요. 이 책도 봐야겠어요.

순오기 2011-02-01 17:35   좋아요 1 | URL
동시집과 청소년 시집이 더 많이 읽혀야 된다는 역사적 사명(?^^)을 갖고 리뷰를 쓴다고 할까요.^^

마녀고양이 2011-02-01 10: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언니, 서재의 머가 바뀌었나요? 왜 평소랑 느낌이 이리 다를까요?

아아, 제가 좋아하는 시들.. 마지막 시인 "그래도 괜찮아" 너무 좋군요. 눈물이 왈칵 나려해요.
저에게도............ 괜찮아괜찮아 라고 해주어야겠어요.

오기 언니, 설 명절 즐겁게 지내셔염~

순오기 2011-02-01 17:36   좋아요 0 | URL
설맞이 세배하는 이미지 올리느라 스킨도 바꿨는데
곧 봄맞이로 바꾸게 되겠지요~ ^^

한 편의 시로 구원을 받거나 위로를 받으면 되는 거지요~ 괜찮아, 괜찮아...들리나요?^^

책가방 2011-02-01 15: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꾸만 보관함이 늘어나요..ㅋ
과학실험교과서는 벌써 제 수중에 들어왔구요.
"그래도 괜찮아.." 매 순간 꼭 필요한 말인 것 같아요.

명절 잘 보내세욤..^^

순오기 2011-02-01 17:37   좋아요 1 | URL
과학실험 교과서 맘에 들던가요?
우리도 같이 '괜찮아, 괜찮아~' 토닥여주자고요~설맞이도 잘 하시고요!^^

세실 2011-02-06 11: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군말 시 좋아요. 새해엔 잔소리도 하지 말아야지. 이 시집 좋다~
오기 언냐가 "이게 최선입니까, 확실해요" 했으면 학생들 빵 터졌을텐데, 그래서 시험지 다시 풀고, 그럼 반 평균 오르고... 아쉽당^*^

순오기 2011-02-06 18:03   좋아요 1 | URL
잔소리하지 않는 엄마 되기, 새해 계획에 넣어야겠죠?^^
그러게요, 최선인지 확인할 걸~~~~~`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