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기밥 공주 창비아동문고 249
이은정 지음, 정문주 그림 / 창비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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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회 '좋은 어린이책' 원고 공모 '고학년 창작 부문' 대상 수상작이다. 개인적으로 창비 '좋은 어린이책' 수상작은 빠짐없이 챙겨 보는 편이다. 좋은 어린이책으로 만난 '문제아'의 박기범, '괭이부리말 아이들'의 김중미, '기찻길 옆동네'의 김남중, '초정리 편지'의 배유안, '짜장면 불어요'의 이현 작가 등... 많은 작가와 작품을 만나면서 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아 횡재한 기분이었다. 

제목에 나온 '소나기밥'이란 '보통 때에는 얼마 먹지 아니하다가 갑자기 많이 먹는 밥' 이르는 말이다. 살면서 배고픈 경험이나 소나기밥을 안 먹어 본 사람이 있을까마는, 먹을 것이 없거나 돌봐줄 부모가 없어 끼니를 굶는다는 건 참 슬픈 일이다. 유아기 때에 부모의 방치로 굶주려 본 이웃의 와일드보이가 유난히 먹을 것에 집착하는 걸 보면서, 짠한 연민과 장엄한 생존본능에 경외감까지 들었더랬다. 어린이 헌장에도 ‘굶주린 어린이는 먹여야 한다’ 고 나와 있지 않던가! 1988년 재개정되면서 "어린이는 고른 영양을 취하고~"로 바뀌었지만, 어린이에게 먹을 것을 제공하는 건 어른들의 의무이자 생존을 위한 기본권이다.

<소나기밥 공주>는 제목에서 짐작하듯이 끼니를 챙겨 먹지 못해 먹을 수 있을 때 소나기밥을 먹는 '안공주'의 이야기다. 
 "아빠, 나를 공주처럼 키우지도 않을거면서 왜 공주라고 지었어?"
라는 공주의 물음에 
"네가 공주라면 아빠는 왕이 되는 거니까, 진짜 이유는 갓 태어난 너를 보자마자 아빤 진짜 왕이 된 기분이었어."
라고 답한다. 부나 지위고하
를 떠나 막 태어난 자식을 보는 부모 마음은 다 이럴거다. 어떤 부모가 제 자식이 소중하지 않으며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기쁨을 만끽하지 않았으랴! 그러나 기분만으로 세상을 다 가질 수는 없다. 현실은 돈 없는 자가 살아가기엔 결코 녹록치 않으니까. 

초등학교 6학년 안공주, 엄마는 오래전에 집을 나가서 소식이 없고 막노동을 하던 아버지는 알콜 중독자로 재활원에 들어가 있다. 알콜 중독이 된 아버지를 무책임하다고 돌을 던질 수도 없다. 집나간 마누라를 생각하면 치밀어 오르는 그 무엇 때문에라도 술을 먹을 수밖에 없을 거 같지만 작품에선 엄마나 아빠를 비난하지 않아서 마음에 들었다. 아이들이 모르는 어른들의 상황을 어찌 다 들추어내겠는가? 다만 그런 상황을 받아들이고 씩씩하게 사는 공주를 통해, 이런 상황에 처했거나 경험했을 독자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것 같아 좋았다.  

육신의 허기도 채우기 어려운 공주가, 정서적으로 느끼는 허기까지 채우기는 더더욱 어렵다. 정서적 포만감을 느낄 수 없는 허기를 채우고자 목까지 차오르도록 먹고, 결국 먹은 걸 다 토해내는 공주를 보며 참 눈물이 났다. 순간적인 유혹으로 202호에 배달될 장바구니를 슬쩍한 죄의식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쨋든 굶주림에 소나기밥을 먹어야 하는 어린이가 있다는 건 어른들의 잘못이다. 가정에서 배부르게 먹는 아이나 끼니를 거르는 아이도, 의무교육을 받는 학교에서 당당하게 급식을 먹을 권리를 주는 무상급식은 꼭 필요한 일이다.

예전엔 드문드문 떨어져 살아도 한 마을에 살면 누구네 밥숟가락이 몇 개고 무얼 먹고 사는지 다 알았는데, 요즘엔 물리적으로 한 울타리 같은 아파트에 살아도 무얼 먹고 사는지 알 수 없고 심한 경우는 이웃에서 사람이 죽어나가도 모른다. 공주가 사는 집은 반지하 방이라 빛도 들지 않고, 아버지가 오랫동안 집에 오지 않는데도 집주인은 모른다. 철저한 개인주의가 보편화되어 특별히 이웃에 관심을 갖고 간섭하거나 염탐하기 전에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문앞에 쓰러진 공주, 다행히 202호 팽여사가 발견하여 응급처치를 받고 병원을 나오는 길에 양심의 고통을 고백한다. 팽여사는 공주를 해님마트로 데려가 죄를 고하고, 알바로 물건값을 갚게 한다. 혼자 산다고 무조건 감싸거나 덮어두지 않고 잘못의 댓가를 치루게 하는 건 바람직한 일이다. 그래도 열흘간의 알바를 끝낸 공주에게 생필품과 먹을거리를 넣어 준 사장이나, 딸 혜민이를 돌보는 알바를 주선한 팽여사도 좋은 이웃이다. 세상은 각박한 거 같아도 이렇게 따뜻한 이웃이 있어 함께 사는 세상이란 걸 깨닫게 된다.

'내가 술을 못 끊으면 네 딸이다'라는 허황된 약속보다는, 재활원 프로그램으로 술을 끊을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하겠다는 아빠의 편지는 공주에게 위로가 된다. 2006년도에 집 근처 초등학교로 상담봉사를 다닐 때, 술 먹는 아빠에게 번번히 맞아서 심하게 위축된 아이가 있었다. 지역아동센터의 고발로 경찰이 출동하고 관리대상자로 등록되었음에도, 술만 먹으면 같은 상황이 반복되었다. 살기 팍팍한 세상에 대한 분노와 열패감에 가족을 학대하는 못난 부모가 늘어가는 건, OECD 순위를 자랑하는 대한민국의 치부다. 부자들만 살기 좋은 정책을 펴는 MB정부는 보편적 복지국가로 가는 길엔 관심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총선결과는 참 입맛 씁쓸하다.

반 친구들이 소나기밥을 먹는 공주에게 '소나기밥 돼지'라고 놀려도 "그래, 나 소나기밥 돼지다!" 기죽지 않고 씩씩하게 맞서는 공주가 좋다.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 남들도 사랑해준다. 비록 끼니를 거르는 형편이지만, 못나도 부모고 부족해도 자식이다. 공주 아빠가 6개월은 더 재활원에 있어야 되지만 앞으로 함께 살 수 있으니까 "공주야, 힘을 내!" 응원을 보낸다.

현실에서도 공주와 같은 상황에 처한 어린이가 있는지 살펴보는 관심이 요구된다. 우리 부모님 세대만 해도 마실 온 이웃과 끼니를 함께하는 일은 당연한 거였고, 누구네 굴뚝에서 연기가 안 나는지 살펴서 양식을 나누는 미덕을 갖고 사셨다. 아무리 살기 좋아진 세상이라도 끼니를 거르는 이웃은 있다. 우리 부모님들이 지녔던 나눔의 미덕을 잊거나 잃어버리지 말고, 더불어 사는 아름다운 세상을 생각케 하는 책읽기였다. 아는 것보다 느낀 것을 실천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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