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기봉을 찾아라! - 제8회 푸른문학상 수상작 작은도서관 32
김선정 지음, 이영림 그림 / 푸른책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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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푸른문학상 새로운 작가상을 수상한 <최기봉을 찾아라>는 재미와 감동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확실하게 잡았다. 초등학교 선생님들이 숙제나 일기를 검사하면서 팡팡 찍어주는 '도장'을 소재로 독특한 캐릭터의 주인공을 잘 그려냈다. 도장을 훔쳐간 범인이 누굴까 추적하는 긴장감과 호기심도 충족시킨다.  

이 책을 읽으며 나의 초등학교 시절을 생각했다. 졸업 30년이 되던 해, 나이 마흔이 넘은 중년들이 초등시절 추억을 찾아 동창회를 시작했다. 유일하게 6학년까지 반이 바뀌지 않고 남녀 합반이었던 우리반은 동창회를 해도 재밌다. 5.6학년 연달아 담임했던 선생님을 찾아 반창회도 가졌고, 선생님이 교장으로 취임할 때는 전국에서 모인 친구들과 축하도 했는데 올 2월에 정년퇴임이다. 초등친구들과 선생님을 만나면서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한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나한테는 엄청난 사건이었는데도 선생님이나 친구들은 전혀 기억하지 못했고, 반대로 친구들과 선생님이 기억하는 걸 나는 까맣게 잊고 있는 것들도 있었다.

특별히 선생님께 주목받거나 사랑받지 못했던 친구들은 선생님에 대한 추억이 별로 없었고, 선생님이 우리를 위해 해준 게 뭐가 있냐고 투덜대기도 했다. 그 친구들에겐 우리 담임선생님도 이 책의 최기봉 선생님과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반면 어려운 형편이라 중학교 진학이 어려웠던 친구들은, 부모님을 찾아와 끝까지 설득했던 선생님을 고맙게 기억하고 있었다. 선생님은 교편생활 첫 졸업생이었던 우리와 띠동갑으로 이제 같이 늙어가는 때론 친구같은 관계다. 선생님을 다시 만난 10년동안 선생님과 함께 했던 서울, 수원, 부산에서의 만남은 또 다른 추억이 되었다.

         

15년 전에 가르쳤던 제자가 보내준 도장 선물을 받은 최기봉 선생님은 기분이 좋았다. 인주를 묻히지 않아도 만 번이나 찍을 수 있는 도장이라 선생님은 신이 났다. 공부 열심히 하고 착한 아이에게는 엄지를 치켜든 최기봉 도장을, 공부 제대로 안 하고 말썽만 피우는 녀석들 울보 최기봉 도장을 찍어줄거라고 엄포를 놓았다. 하지만 선생님의 기쁨도 잠시, 도장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사라진 도장은 시도 때도 없이 깨끗한 학교 담장이나 화장실에 나타나 최기봉 도장을 팡팡 찍어 놓았고, 더욱 거침없이 교장선생님의 결재칸이나 학교장 이름이 들어갈 상장에도 찍혀 있었다. 헐~
 

교장선생님께 불려가 꾸중을 들은 최기봉 선생님은, 날마다 청소 벌을 받는 공포의 두식이(형식이와 현식이)를 의심하지만 물증이 없다. 두식이는 인간세탁기라는 공주리를 의심한다. 최기봉 선생님은 세 아이들을 도장 특공대로 임명하고, 도장 찍힌 곳을 발견하는 즉시 알려주고 도장을 가져간 범인이 누구인지 수사하라고 말한다. 그 일은 도장을 찾을 때까지 계속된다.

     

최기봉 선생님은 도장 특공대로 임명된 두식이와 공주리의 가정환경과 그 아이들에 대해 아는 게 없다는 걸 발견한다. 선생님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 소위 문제아라 부르며 소외시킨 아이들에 대한 선생님들의 잘못을 은밀하게 부각시킨다. 아이를 사랑하는 교사가 아니라 직업인일 뿐인 선생님을 종종 만났을 어린이나 학부모가 동감할 대목이다. 아니 자신의 직업에 충실한 선생님이라면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다. 선생님이란 직업에 충실하지 않은 그냥 그런 선생님에 대한 고발이라고도 생각된다. 이 책을 읽는 선생님은 좀 뜨끔하지 않을까....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담임 선생님 이름을 썼다는 2반 아이들을 맡은 유보라 선생님. 두식이들이 최기봉 선생님께 벌을 받거나 야단을 맞는 걸 싫어하는 학교의 최기사 아저씨. 최기봉 선생님을 싫어하는 교장선생님까지 도장을 훔쳐간 범인으로 용의선상에 오른 인물은 자꾸 늘어난다.   

최기봉 선생님이 받은 두번째 편지는 15년 간 숨어 있던 진실을 알려준다. 과연 이 편지는 누가 보냈고, 도장을 훔쳐간 범인은 누구인가? 책을 두 번이나 읽었는데도 눈물이 났다. 정말 사랑을 받은 사람만이 사랑하는 방법을 아는 걸까...... 문제의 어린이는 없고 오직 문제의 부모가 있었다, 라고 이해되는 최기봉 선생님의 성장기 상처는 문제의 선생님을 만들어낸 근원이었다.

"난, 따뜻한 정을 받아본 적이 없다. 남에게 정을 주는 법도 몰랐어. 난 너희가 나에게 다가오는 게 무서웠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아무것도 주지도 않고 받지도 않는 사람이 되려고 했지. 있는 듯 없는 듯한 사람. 좋지도 싫지도 않은 사람. 아무 영향도 안 주는 사람. 기억에 남지 않고 그냥 스쳐 지나가 버리는 사람 말이야. 그렇게 사는 게 가장 편하고 좋았거든." (79쪽) 

처음부터 복선이 깔려 있음에도 눈치채지 못했다가 마지막에 가서야 주르르 눈물 흘리게 되었으니, 재미와 감동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제대로 잡은 동화책이다. 선생님들은 자신이 어떤 교사인지 돌아보게 하고, 아이들은 재미와 더불어 선생님의 사랑을 확인하는 계기가 될 거 같다.  

도장 특공대를 하면서 선생님께 떡볶이도 얻어 먹고, 선생님 심부름도 하면서 친해진 두식이, 인간세탁기로 청소를 도맡아 하면서도 그림자같은 존재였던 공주리는 부분별 일등 상을 받았다. 누구도 사랑할 줄 몰랐던 최기봉 선생님이 비로소 아이들을 사랑하는 방법을 깨달았으니 도장을 선물한 제자의 바람이 이루어진 따뜻한 마무리까지 흡족하다.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진 선생님을 만난 아이들은 행복하다. 아직 아이들을 사랑하지 못하는 선생님들은 이 책을 읽어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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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잘라 2011-01-10 1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초등학교 2학년이 읽어도 좋을까요? 제가 먼저 읽고 조카한테 넘길라구요~ ^^

순오기 2011-01-10 21:48   좋아요 0 | URL
2학년 정도면 읽을 수 있어요. 학교 아이들도 재밌어했어요.^^

행복희망꿈 2011-01-10 1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으면서 저희 초등학교시절이 떠올랐답니다.
선생님과 학생들간에 끈끈한정을 좋은추억으로 가득채우는 아이들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순오기 2011-01-10 21:49   좋아요 0 | URL
우리가 겪은 초등학교 시절이 당연히 생각나지요?^^
지금 초등학교 아이들도 훗날 나이 먹어서도 좋은 추억으로 남을 선생님과 만났으면 좋겠어요.

라로 2011-01-11 0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 책을 쓸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니.....그저 부럽습니다.

순오기 2011-01-11 02:48   좋아요 0 | URL
나비님도 재미와 감동을 주는 페이퍼 잘 쓰잖아요~~ 추천을 마구 부르는 글 말에요.^^

책가방 2011-01-11 1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공하기전에는 선생님을 찾지 말라던 말씀에 가슴이 아렸던 기억이 나네요.
물론 자극을 주려고 그러셨겠지만.... 그 말씀 때문에 그 선생님이 더 기억에 남았답니다.
떠올릴 때마다 가슴은 아리지만요....

순오기 2011-01-12 22:05   좋아요 0 | URL
정말 그런 말 들으면, 진의를 알아도 선생님을 찾아 뵙기는 어려울 거 같아요.ㅜㅜ

마녀고양이 2011-01-11 1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니 말씀대로 재미와 감동이 함께하는 책 같아요.
솔직히.. 언니 리뷰만 봐도, 참 좋네요. 크크.

순오기 2011-01-12 22:09   좋아요 0 | URL
동화에서 이런 감동 받기도 흔치 않아요.^^

같은하늘 2011-01-13 1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그래도 이 책 재미날것 같아 찜하고 있는데, 그렇다고 모든 책을 다 구입할 수는 없어 도서관을 애용하려구요.^^
제가 읽으면 옛 추억도 생각날것 같아 꼭 보고싶네요.

순오기 2011-01-14 22:11   좋아요 0 | URL
도서관을 이용하면 확실히 책을 덜 사게 되죠.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