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3 막내, 제5회 빛고을 독서마라톤 9월 기록

2010년 4월 19일부터 10월 17일까지 6개월 26주 182일 제5회 빛고을 독서 마라톤이 끝났다. 
중3 막내랑 둘이 가족 풀코스를 도전해 목표는 무난히 달성했다. 민경이는 93권 23,539쪽을 읽었다. 


84. 10월 1~2일, 나쁜 사마리아인들 

학교 논술대회의 책이라 읽었다. 그동안 말은 몇 번 들어봐서 흔쾌히 집었는데, 음. 내 생각과는 많이 달랐다. 일단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는 경제학 관련 책이라 어려운 용어와 설명에 살짝 머리가 아파왔다. 그래도 대충 이해는 가능한지라 읽다 그만두다 읽다 그만두다 했다. 제목의 '나쁜 사마리아인들'이란 바로 강대국들을 뜻한다. 성경에 나온 나쁜 사마리아인들처럼 곤경에 처한 개발도상국들을 더 궁지로 몰아넣는 이들에게 장하준은 따끔하게 일침을 가한다. 부자나라들이 개발도상국들에게 자유무역을 마치 '선진국에 오르는 왕도'처럼 제시하고 있다니, 우습다. 먼저 보호무역으로 경쟁력을 갖춘 다음에 세계의 시장에서 자유무역을 하는 것이 맞지, 자기들도 그렇게 성장했으면서 개발도상국들이 발전하는 걸 막는다니 참 이기적이다. 만약 우리나라도 바로 자유무역을 시행했다면 아직도 텅스텐과 인조가발을 팔고 있을 것이다. 자유무역주의의 신화가 장하준에 의해 하나하나 벗겨지는 걸 보니 통쾌했다. 

처음엔 그래도 괜찮았는데 후반부로 갈수록 점점 복잡져서 이 책을 제시한 학교가 원망스러워졌다. 아니면 교육청인가? 어쨌든 1학년, 2학년들에게 해당된 소설책과 달리 3학년에게는 경제학 책이라니, 너무 격차가 커서 원망스럽다. 그래도 다 읽었을 때는 후련했다. 이젠 어디가서 이런 얘기가 나오면 빠지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일단 지금은 자유무역과 보호무역이란 무엇인가, 이것들이 지금 어떻게 이용되고 있는가 정도만 알아두고 나중에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싶은 책이다. 단순히 '강대국들이 자유무역의 신화를 만들어 칭송하는 것은 잘못됐다!'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그럼 어떤 경제 발전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대책까지 서술해 놔서 더 좋다.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세계의 경제는 어떤 식으로 변해갈까. 마냥 놀고만 있고 정신 빼놓고 있었는데 좀 진지하게 생각해 볼 기회를 준 것 같다. 

 

85. 10월 3~4일, 한국인 전용복 

은은한 색깔과 광택, 반만년 이상의 지속력과 보존력을 자랑한다는 옻칠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없었다. 그저 가까이 가면 옻이 오르고, 가구 같은 곳에 칠한다는 게 전부였다. 그런데 전용복씨의 화려한 옻과 자개작품들, 메구로가조엔에서 복원한 수도없는 아름다운 작품을 보자 감탄이 터져나왔다. 보석처럼 반짝이면서도 장인의 열정이 들어간듯한 아름다운 작품들. 갑자기 옻칠에 대한 관심이 확 틔이는 것 같았다. 똑똑하고 집안의 희망이었던 형이 죽은 후, 아주 어려부터 장사와 고된 일을하며 실질적인 가장 역할을 했던 전용복씨. 그 후로도 수많은 시련과 고난이 있지만, 어릴 때부터 온갖 역격들과 부딪쳐 살아왔기 때문에 다 견뎌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어려운 형편에서도 꿈을 잃지 않고 공부까지 해내는 전용복씨가 대단했다. 합판회사에서 일하다가 가구를 만들게 되고, 오겐의 복원을 인연으로 일본의 거대한 예술품 집합체, 메구로가조엔까지 인연을 맺게 되는 걸 보면 참 대단하다. 2년간 메구로가조엔의 작품들을 샅샅이 연구하고 복원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는 모습이 그가 장인으로 불리는 이유를 보여주는 것 같다.  

2년간 고생한 진심이 통했는지, 전용복은 수많은 일본의 장인들을 제치고 메구로가조엔의 복원을 담당하게 된다. 흡사 설국같은 산골 마을에서 처음엔 단 7명과 함께 시작했던 작업이, 후에는 100명을 넘길 정도로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분명 많은 고난과 역경이 있었지만 일본의 어떤 장인들도 해내지 못했던 복원을 기막하게 자신만의 방법과 몸으로 부딪친 연구로 헤쳐나가는 걸 보면 하늘이 내린 칠장이라는 생각이 든다. 옻말고년 평생 붓에 묻힐 생각이 없다는 그는 자신의 직업에서 참 행복해보인다. 마늘의 선을 모티브로 한 작품이 일본의 권위 있는 대회에서 대상을 탔다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그 다음 순위로 밀려난 것을 보면 우리나라의 정서가 일본에서도 크게 통하는 것 같다. 원래 우리가 전수해주었던 것인데, 지금 우리와 일본의 환경을 비교해보면 쓴웃음만이 난다. 전용복씨가 한국에서 메구로가조엔 복원같은 일을 했으면 참 좋았을테지만, 그 가치를 깨닫고 모두 보존한 일본은 대단하다. 악기에도, 가구에도, 예술품에도 넓게 쓰일 수 있는 옻칠. 우리나라에서 꽃 필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86. 10월 5~6일, 꼭 같은 것보다 다 다른 것이 더 좋아 

어머니독서회와 함께 떠나는 문학기행에 변산공동체 학교를 간다고 해서 읽었다. 1980년대, 전두환 노태우의 군사독재 정권 하에 있었을 때 써졌던 글들이다. 대학교수에서 농사꾼으로 전직한 아버지가 딸에게, 딸이 친구 민주에게, 아버지가 민주에게 편지형식으로 보낸 글들을 다시 모아서 낸 책인데, 80년대의 글들이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는 게 씁쓸했다. 읽어 보아도 별 차이가 없어 더 그랬다. 편지글을 읽어보니 과연 철학교수와, 그런 어른을 보고 자란 딸과 그 친구답게 고등학생들인데도 그 성숙함이 마치 어른 같았다. 사회문제에 대해 깊게 생각하는 것도 그랬고, 그걸 자기식으로 표현해나가는 것도 그랬다. 학생들에게 맞지 않는 입시 제도에 대해 고민하고, 우리 농촌의 현실과 가난한 이들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그랬다. 보고 배워야 할 점 같다. 이 책의 제목처럼 '똑같은 것보단 다 다른 것이 좋다'며 아버지처럼 친절하게 말하는데, 물론 그 말이 옳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아 아쉽다. 윤구병씨가 꿈꾸는 일터가 딸려 있어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일을 하며 지내고, 굳이 대학을 가지 않아도 상관없는 꿈의 학교! 제발 그런 학교가 있었으면 좋겠다. 

나래가 친구 같던 미술 선생님과 그림을 그리면서 만든 이야기 그림이 인상 깊었다. 서로 싸우던 두 잎사귀가 잎을 모두 잃을 뻔하고, 나비를 불러들이지 못하고 난 후 화해하고 우거진 잎을 피우게 되었다는. 고작 중학생이었을텐데 꽤 완성된 이야기라 깜짝 놀랐다. 비록 학교에서는 칭찬 받는 과목 하나 없다는 나래지만, 평범한 아이들과는 조금 다른 아이인 것 같다. 자살을 꿈꿨다는 민주를 도닥이며 위로하는 모습도 어른스러웠다. 그래도 공부 못 하던 친구의 바느질 재능을 발견하고 반 아이들 모두 깜짝 놀라며 그 아이를 달리 봤다는 걸 보면, 그 땐 참 아이들이 다 순수했던 것 같다. 남을 비웃고 무시하는 편이 많은 요즘 아이들을 보면 씁쓸하기도 하고, 혹시 나도 그러진 않는가 하고 조심하게 된다. 도시와 시골의 다른 점, 서양과 동양, 혹은 너의 집과 나의 집의 차이점 등. 꼭 같은 것보다 다 다른 것이 더 좋다는 책 제목은, 가끔 그 간단한 것을 잊고 어리석은 짓을 하는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듯 하다. 

 

87. 10월 8~10일, 우리 문화재 나무 답사기

고즈넉한 절과 산의 모습, 시원하게 흐르는 폭포와 햇살을 받아 빛나는 탁 트인 숲의 사진들이 예뻤다. 백양사의 매화꽃이 활짝 핀 매화나무,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광덕사 보화루 앞 호두나무, 만개한 옛 운교역 터 밤나무 등등. 보자마자 기분이 좋아졌다. 예전부터 나무는 우리 삶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였다. 나무를 통해 우리 문화재와 역사를 알아보려는 시도가 참신했다. 단종1년에 심어진 백송나무는 그 후 역사의 흐름을 모두 지켜보며 아직까지 서울의 한가운데 당당하게 서 있다. 나무는 옛날 조선시대의 왕들도, 개화기와 일제강점기의 숨 막히는 급변도, 그 후 우리나라의 현재까지 모두 봐 왔을 것이다. 나무가 보기엔 우리 모두 한 순간일 것이다. 그 짧은 순간을 아등바등 살아가려 노력하는 우리들을 보며 어떻게 생각할지. 새삼 나무가 봐온 시간과 깊이가 느껴지는 듯 했다.  

추사 김정희가 자주 찾아와 시를 읊으며 귀양살이의 괴로움을 달랬다는 제주의 안덕계곡 상록수숲은 인간의 고민을 모두 품어줄 수 있을만큼 아늑하고 편안해보였다. 물론 지금이야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그런 고즈넉한 풍경은 상상할 수 없지만, 추사가 살아있었을적에는 적잖은 위로가 됐으리라. 주로 당산목 위주로 지정되던 천연기념물에 서울 영휘원의 산사나무가 지정됐는데, 이런 나무들이 오히려 은행나무나 느티나무보다 선조들의 실생활에 더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창덕궁의 향나무는 조선왕조 500년의 역사를 지켜본 산 증인이다. 말 없이 묵묵히 서 있는 나무들이 지켜본 역사의 인물들은 과연 어땠을까? 말을 걸어보고 싶은 심정이다. 역사책 속에서나 봤던 그들의 생생한 삶을 바로 앞에서 봐왔더니 궁금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다. 보은법주사에 있는 양반나무, 정이품송은 예전에 한 번 본적이 있어서 반가웠다. 지금은 나뭇가지가 휭하니 잘라져 입간판 속에 당당했던 옛 모습을 볼 수 없는게 아쉬웠다. 양반나무가 정이품송만 있는 줄 알았더니 정부인송도 있다는 걸 알았다. 나무팔자가 상팔자다. 

초가을 백암계곡의 비자나무 숲의 모습은 그야말로 그림의 한 풍경이다. 사실 숲과 맑은 날씨라면 멋있지 않은 풍경은 없는 것 같다. 비자나무 열매가 옛날의 구충제 역할을 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만개한 매화나무와 동백나무가 마치 내 눈앞에 피어 있는 듯 생생했다. 그리고 화엄사의 올벚나무! 아름다운 꽃과는 다르게 군수물자로 이용되기 위해 심어진 나무라 하니, 군사들에게는 고마운 나무인 셈이다. 또 '세상의 번뇌에서 벗어나 열반세계에 도달한다'란 뜻으로 피안벚나무라 부르기도 한단다. 지금까지 기억 속에 꽃놀이를 간 적이 없어 사람들이 왜 벚꽃, 벚꽃 하는지 몰랐는데 이 사진 한장으로 알게 되었다. TV에서 본 것도 예뻤지만 바람이 불어 벚꽃이 떨어지면 정말 예쁠 것 같았다. 역사를 지켜보며, 현재까지 문화유적이나 전통사찰에 남아있는 나무들. 그리고 옛 선비들과 인물과 엮인 나무들까지. 나무는 우리 사회에서 빼놓을 수 없는 단서로 앞으로도 쭉 계속될 것이다. 

 

88. 10월 11일, 청춘의 독서 

민주화운동가, 칼럼니스트, 국회의원과 장관을 거쳐오며 유시민씨가 청년 시절에 읽었던 책들을 하나하나 다시 읽어보며 쓰게 됐단다. 예전에 봤던 책을 시간이 흐르고 보면 과연 어떤 느낌을 받을까? 아직은 내게 어렵게 느껴지는 책들이 많아 '죄와벌', '전환시대의 논리' 두 챕터밖에 못 봤지만, 이 책들을 통해 유시민씨가 무엇을 느끼고 생각했을지 알 것 같았다. 죄와 벌의 라스꼴리니꼬프는 늙은 전당포 노파를 살해한 후 '비범한 사람들은 선한 목적을 위해 악한 수단을 사용할 수 있다'라는 주장을 한다. 얼핏 보면 맞는 것 같다. 그러나 '비범한 사람'이었던 스탈린과 히틀러의 광기 어린 결말은 어땠는가. 유시민은 이전의 유시민은 발견하지 못했던 착하고 진실한 여자, '두냐'를 발견한다. 결국 진부하지만, 그 착하고 진실한 사람들이 선한 수단으로 선한 목적을 이루어 내는 것 같다. 리영희씨의 '전환시대의 논리'는 유시민씨뿐만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을 충격에 빠뜨렸고, 다른 책들 모두 다양한 시대와 나라의 젊은이들을 고민하게 했다고 한다. 내가 커서 이 책들을 읽으면 나는 과연 무슨 생각을 하게 될지, 궁금하다. 

 

 

89. 10월 12~13일,  프랑스 여자처럼 

프렌치 시크. 모든 사람들이 감탄하는 이 프랑스 여자들의 특별한 매력은 과연 무엇일까? 비단 프랑스 여자들뿐이 아니라 프랑스 전체의 풍토나 분위기가 뭔가 특별하다는 걸 이걸 보면서 느꼈다. 인기 연예인을 길거리에서 만나 아무렇지 않게 대화를 나누고, 혁명의 시작이 됐던 역사 등 하여튼 범상치 않은 면이 있었다. 과거에서 현재까지, 여기 나오는 여자들은 모두 '프렌치 시크'를 보여주며 특별한 인생을 살았던 여자들이다. 가브리엘 샤넬, 프랑수아즈 사강, 시몬 드 보부아르 등의 '누가 뭐라 하면 어때? 난 내 인생을 살다 갈거야!' 이런 당당한 태도는 멋있었다. 그간 로댕의 여자로만 알고 있었던 카미유 클로델의 조각을 보면서 그녀의 예술가적 면모에 대해 알 수 있었다. 단지 책에서만 살고 있던 인물이 태어나서, 숨 쉬고 먹으며 생생히 살아있었던 '한 인간'으로 느껴졌다. 또 엠마누엘 베아르와 이자벨 아자니라는 멋있는 여배우들도 알게 되었다. 특히 배역에 완전히 몰두해 작가가 소름이 끼쳤다는 이자벨 아자니의 영화를 꼭 한번 보고 싶었다. 광기 어린 배역을 맡았을 때 그 후유증에 한동안 고생했다는 그녀는 과연 어떨지, 기대된다. 

세실리아 사르코지와 카를라 브루니가 연이어 소개되어있다는 점에서 기분이 묘했다. 한 명은 프랑스 대통령 사르코지의 전부인이고, 한 명은 재혼한 부인이라니! 저자는 누구의 입장에도 서지 않은 채 그녀들의 삶을 소개한다. 단지 사르코지의 부인으로만 살아가기에는 너무나 자의식과 존재감이 대단했던 세실리아, 그녀는 사르코지의 배반으로 당당히 그를 걷어차고 자신의 인생을 찾아 떠나고, 그 뒤를 이은 카를라 브루니는 자신의 매력을 스스로 인지해 국민들에게 호감을 얻고 그야말로 완벽한 영부인의 역할을 수행한다. 누가 더 낫다기보단 두 여인 모두에게 자신의 인생이 있고, 생각이 있는 것 같다. 어쩐지 사르코지가 두 여자보다 더 못한 것 같다. 같은 시대를 살았지만 출생부터 결말은 천지차이였던 퐁파두르 부인과 마리 앙투아네트, 누구보다 정열적으로 살았던 에디트 피아프, 프랑스 우아함의 상징인 카트린 드뇌브, 하이틴 스타에서 성공적으로 변신한 조니뎁의 애인 바네사 파라디, 나폴레옹의 황후 조제핀과 천재 작곡가 세르주 갱스부르와 커플이었던 제인 버킨, 그녀의 딸이자 디자이너들의 뮤즈인 샤를로트 등! 누구도 빼놓을 수 없는 정말 매혹적인 여자들이었다. 

 

90. 10월 14일, 함께 숨쉬는 생명들의 희노애락 흙 

농부들이 산에 모여 밥을 푸고 있다. 허옇게 밥길을 까는 사람도 있고, 나뭇가지 아래 조심스레 묻는 사람도 있다. 농부들이 대체 왜 이러는 걸까? 궁금증을 안고 책을 폈다. 여태껏 제대로 된 흙을 보지 못하고 살았던 나에게, 생동감 넘치는 흙의 모습이 다가왔다. 수많은 미생물들이 살아가고, 식물, 동물들이 서로 조화롭게 살아가는 곳. 우리처럼 오염된 환경속에서가 아니라, 잔뜩 흙을 묻히고 돌아다니는 두더지는 자연스럽고 왠지 아름다운 풍경처럼 보였다. 발 밑으 흙이, 수도 없이 많은 이야기와 생명을 품고 있다는 걸 알게 되니 흙이 흙처럼 보이지 않았다. 사람이 자연과 함께 살아야 하는데, 도시는 그러지 못하니 안타깝다. 나중에는 자연이 남아있는 도시들이 더 많아져서,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자연 속에서 뛰놀며 자랐으면 좋겠다. 프롤로그에 나온 밥길의 비밀은 맨 끝에 가서 밝혀진다. 미생물로 색색깔 물들여진 밥을 흙에 뿌리면 더없이 훌륭한 비료가 된단다. 흙에서 나서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이 자연스러운 순환에 우리 인간들도 끼면 좋겠다. 

 

 

 

91. 10월 15일, 과학 시간에 사회 공부하기 

첫 이야기가 원자론이라 얼마 전에 친 과학 시험 생각도 나고 아주 미묘한 기분으로 읽었다. 얼마 전에 후련하게 헤어진 나쁜 친구를 얼마 뒤에 다른 곳에서 마주친 그런 기분. 어쨌든 돌턴의 원자설이 인정받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에 아리스토텔레스와 그 시대의 생각이 벽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과학은 단순히 과학 하나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 시대의 사회와 분위기 등에 전반적으로 관련이 되어 있는 것 같다. 시험 칠 때는 이런 게 왜 있나 짜증나지만, 그래도 없으면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이 없을테니 그냥 공부나 해야겠다. 제목은 '과학 시간에 사회 공부하기'지만 보다보면 살짝 과학 쪽에 더 치중이 된 것 같다. 그러나 다윈의 진화론과 다양성의 중요성을 설명하면서 MS사와 스크린쿼터 얘기로까지 발전시킨건 놀라웠다. 그야말로 각양각색의 모습이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다. 그러고 보면 우리 사회는 조금 위험성이 있더라도 다양한 가능성을 가져서 위험에 더 잘 대비할 수 있는 감수분열과 비슷한 것 같다. 

  

 

92. 10월 16일, 15세 소년, 영화를 만나다 

영화는 참 매력적이다. 영화에는 판타지가 있고, 사랑과 우정, 꿈, 현실에선 얻을 수 없는 소소한 위안들이 있다. 더불어 현실을 조명하고 깨닫게 해주는 거울이 되기도 한다. 15세 소년,소녀의 눈으로 보셔서 그런지 나도 알고 있는 영화들이 많았다. 알기만 하고 보지 않아서 문제지만. 여기 소개된 '슈퍼맨이었던 남자', '버킷 리스트', '어거스트 러쉬' '잠수종과 나비' 등은 그저 그러 뻔한 스토리인줄 알고 있었는데 보고 싶어졌다. 특히 '사이보그지만 괜찮아'는 자신이 사이보그라 생각하는 영군이 가족들이 할머니를 버린 것으로 상처를 입었고, 남의 능력을 훔칠 수 있다고 믿는 일순이 그녀의 동정심을 훔쳐서 다시 감정을 가지게 만들어준다는 이야기가 좋았다. 난 이 따뜻한 이야기가 좋았지만 왜 흥행에 실패했는지는 봐야 알 것 같다. 결국 영화가 말할 수 있는 주제들은 한정되어 있지만, 그것을 표현해내는 방법에서 천차만별의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니. 예전엔 영화를 그냥 보여지는 그대로 봤지만 이제는 좀 감독의 의도나 구성 등을 생각하며 보게 될 것 같다. 

 

93. 10월 17일 빨간모자 울음을 터뜨리다(아직 신간등록이 안 되었네요)

엄마가 가제본을 받고 한줄서평을 부탁받으셨는데 영광스럽게도 나도 한줄 서평을 남기게 되었다. 주인공 말비나는 동화 빨간모자처럼 음식바구니를 들고 할아버지 댁에 간다. 그러나 늑대인 할아버지는 그녀를 괴롭히고, 할머니는 손녀에게 도움을 주지 못한 채 외면한다. 당장이라도 소리치고 싶을만큼 두렵고, 누군가에게 알려 도움을 받고 싶은 그녀의 절박한 심정이 내게도 느껴져 보면서 많이 울었다. 말비나가 할아버지의 성추행을 체념하게 될 때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을 받아 왔을지 생각하니 더 그랬다. 그녀의 가족도, 할머니도 모두 알고 있으면서 외면하고 넘어가려 했다. 피가 이어진 말비나의 일인데도 세상의 수군거림을 더 신경써 결국 방치하는 어른들이 정말 실망스러웠다. 여기서 그녀의 구원자는 '폼쟁이'라 부르는 남자친구, 소중한 단짝친구, 할아버지 옆집의 부인, 그녀의 친언니다. 이들이 있어 말비나는 마침내 용기를 낼 수 있게 되었다. 난 특히 폼쟁이가 좋았다. 경계하는 그녀에게 조심스레 다가서 진심으로 그녀를 위하는 모습이 정말 멋있었다. 충격적인 소재이지만, 이게 현실이기 때문에 외면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현실을 직시해, 다시는 말비나처럼 고통받는 아이가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댓글(2) 먼댓글(1)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빛고을 독서마라톤 은상 수상~
    from 엄마는 독서중 2010-12-22 01:37 
    2010년 4월 19일(월)~ 10월 17.일(일)까지 진행된 제5회 빛고을 독서마라톤 결과가 발표되었다.  작년 4회 대회는 개인으로 참여해 막내가 중등부 은상을 수상했고, 엄마는 수상권에 들지 못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금상 수상자만 시상식에 참여하는데, 학교에서 잘못 알고 시상식에 참석케 했다. 시내버스를 타고 가다 멀미하는 아이 때문에 중간에 내려 택시로 시교육청까지 갔었다. 이왕 왔으니 시상식 구경이나 하자고
 
 
마녀고양이 2010-10-20 0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3이 이런 책들을? 진짜 진짜? 우아...
언니,
중고등학교부터 이런 책들을 읽으면, 20대 초반에는 세상에 대한 선택 시야가 정말 넓어질듯 해요.
저는 그게 제일 아쉬워요. 참 멋진걸요......

순오기 2010-10-21 10:03   좋아요 0 | URL
흐흐~ 울 딸이 독서수준은 좀 높은 편이죠.ㅋㅋ
꾸준한 독서의 흐름을 놓치지 않았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