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3막내, 제5회 빛고을 독서마라톤 6월 기록

10월 17일이면 광주시교육청 주최 6개월의 독서마라톤이 끝난다.
이번엔 개인코스가 아니고 엄마와 둘이 가족 풀코스(42.195쪽)로 참여해서 공동운명체다.^^ 

7월엔 17권을 읽었고, 마라톤 기간이 끝나면 볼 수 없는 기록이라 길어도 다 옮겨둔다.   

 

40. 7월 1일, 콩 하나면 되겠니? 

드디어 기말시험이 끝났다. 시험으로 빵빵했던 머리를 식히기엔 가벼운 동화읽기가 그만이다. 매일 복잡하고 긴 책들만 읽다보니 저학년 도서답게 훈훈하고 귀여운 동화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맨 처음에 아이들이 은이에게 '콩깍지' 노래를 부르는 걸 보고 두부장사 한다고 왕따라도 시키나, 하고 생각했는데 그냥 같이 놀자고 부르는 것 뿐이었다. 은이도 두부장사 하는 할머니가 부끄러운 기색은 하나도 없고, 오히려 도와드리는 걸 기쁨으로 삼고 있으니 이렇게 행복한 설정도 오랜만에 보는지라 살짝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두부를 갈면서도 개미들에게 콩을 한 알 한 알 나눠주시는 할머니, 그런 다정한 할머니가 지네에게 물리고 난 후 기운을 잃고 시름시름 앓아 누우신다. 그런 할머니가 걱정된 은이는 벽에 난 구멍을 따라 개미들의 세상을 만나고, 평소 도와주었던 개미와 함께 나쁜 지네를 물리치고 할머니 기운을 되찾아올 작전을 짠다. 여기서 이 행복한 동화의 절정이 드러나는데, 악당역할인 지네마저도 사실은 할머니가 개미들에게만 콩을 주니까 질투가 나서 그랬던 것이었다. 결국 지네와도 사이좋게 화해를 하고, 개미들에게 준 콩 한 알이 콩 백 알씩으로 돌아와 행복하게 마무리된다. 

 

41. 7월 2~3일, 중국 읽어주는 남자 

 과거의 중국, 현재의 중국, 미래의 중국에 대해 인문학적 시선으로 들여다본 책이다. 제목처럼 중국에 대해 설명을 잘 해줘서 지루하지 않게 잘 읽었다. 중국은 분명 우리보다 엄청 넓고 인구도 많다. 우리나라만한 면적과 인구가 중국의 저장성 하나에 다 들어가는 셈이니, 새삼 그 크기를 깨달았다. 그래서 그런지 중국인들은 우리가 넓다고 느끼는 거리를 하루만에 왕복하면서도 별로 피곤해 하지 않는다. 나로서는 신기할 따름이다. 항상 주변에서 '중국을 경계해야 한다', '중국에게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라는 말을 들어서 대체 뭐가 그리 대단한가 궁금했는데, 직접 들여다본 중국은 가능성이 있으면서도 약간 불안한 땅인 것 같다. 정치에 관심이 없고, 과거를 별로 뒤돌아보려 하지 않는 중국 젊은이들의 가장 큰 문제는 세뇌인 것 같다. 어려서부터 공산당을 칭찬하는 교과서만을 배워오면서, 창의적인 생각이나 의심을 품을 기회가 사라져 버렸다. 비록 공산당을 마음에 들어하지는 않더라도 자신이 지닌 기득권이나, 중국의 분열이 두려워 그걸 지지하고 만다. 이런 생각들을 바꿀 때 중국은 발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미래의 초강대국이 될 지도 모르는 중국. 불과 몇 십년전만 해도 낙후된 환경이라 무시했던 중국인데 이젠 그러지 못 할 정도로 무시무시하게 상승하고 있다. '선전'이라는 조그만 어촌을 불과 30년만에 인구 1200만 명의 도시로 변화시킨 중국. 중국어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물씬물씬 피어 오른다. 중국인의 정체성은 '상인'이라는 사실에 공감한다. 중국인과 돈은 떼 놓을 수 없는 관계다. 그런만큼 고위 관리들의 부정부패에도 많이 주의해야 할 것이다. 또한 여기서 보면 중국인은 이기주의와 무관심이 심하다고 서술하고 있다. 살짝 우리의 민족적 우월감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는데, 책 전체의 분위기를 보면 그건 아닌 듯 하다. 하긴 우리 나라도 빨리빨리 기질에 서서히 이기주의에 물들어가고 있으니 남 말 할 처지는 아니다. 어쨌든 과거의 강대국에서 변화의 시기를 놓친 낙후국으로, 이제 다시 서서히 일어나고 있는 중국. 중국이 어떻게 변할지는 지켜봐야 알 것이다.

  

42. 7월 3~5일, 시에서 아이디어를 얻다. 

시가 무엇인지, 제대로 생각해 본 적은 여태까지 한 번도 없었다. 내게 시란 각 행과 연의 의미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단어 하나하나를 뜯어서 이것은 어떤 의도고, 사용된 표현방식은 무엇이고, 운율은 무엇인지 암기해야만 하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이런 식으로 시를 가르치는 교육방법에 반발이 일기도 했지만 오호 통재라, 나는 그저 한 명의 학생일 뿐이라 시험에 나온다 하면 그 해부된 시를 억지로 암기해야 했다. 책의 앞머리에서 황인원씨가 이런 우리들의 사정을 잘 알고 있어줘서 기뻤다. 앞으로의 사회에 중요하게 될 창의성, 시에서 창의성을 찾을 수 있다는 게 나를 기대하게 했다. 첫 시작은 '관찰'이었다. 사람은 똑같은 걸 보고 있어도, 서로 보이는 건 다르다. 이 관점의 차이를 잘 찾아서 세밀한 관찰을 해야 새로운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다. 가시나무와 이슬을 표현한 시에서도, 관점을 이슬에 두느냐 나무에 두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시가 나올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사물이나 현상을 그대로 보기만 해서는 변하는 게 없다, 뭐든지 '왜?'하고 생각해보고, 재해석하고 단순화해서 요리조리 들여다봐야 보인다는 걸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왜 유명CEO들이 시를 읽는지 알겠다. 

사람이 감동하면 인체에 '베타 엔돌핀'이 생선된다고 한다. 체내 암세포를 죽이고 ,인체의 젊음을 유지시켜주는 이 호르몬은 남자보다 더 감탄을 많이하는 여자에게 많단다. 그래서 여자들의 수명이 더 긴 걸까? 감탄은 수명을 길게 해 주고, 아이같은 동심을 유지하게 해 준다. 70살이 넘은 노시인이 '비누가 나를 씻는것만 아니라 나도 비누를 씻어주고 있었다'는 걸 알아채고 기뻐할 수 있게 해 주는 동심. 정진규 시인의 '비누'라는 시를 보고서야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지 깨달았다. 나도 비누를 씻어주고 있던 것이었다. 어쩌면 시인들이야말로 가장 아이들의 감성과 가까운 동심과 호기심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마음이 살아있는 시를 읽으면 머리가 깨끗해지고 괜히 흐뭇해진다. 책은 간간히 상상력과 창의성 있는 사물의 사진을 실어 놓았는데, 그 중 신기했던 건 옆으로 벌어져서 수납 공간이 더 넓어지는 책장과 자기가 높이를 맞춰 조립할 수 있는 책장이었다. 언뜻 보면 별 거 아니겠지만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 했던 것들이 아닌가. 이런 것들이 시와 경영의 합작으로 일궈진 창의적인 아이디어 일것이다. 

 

43. 7월 6~7일, 감성지식의 탄생 

지식채널e는 유명한 코너다. 5분의 짧은 시간 안에 시청자에게 새로운 지식을 알게 해주고, 그 안에 깨달음을 일깨워주는 코너라 우리 학교 선생님들도 종종 시청각 자료로 많이 보여주시곤 했었다. 처음부터 지식채널e가 '지식채널e'였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다큐멘터리의 축약'정도의 역할이었던 프로그램이 피디와 작가들의 고민과 노력으로 점점 스스로 진화해나가는 걸 보니 감명깊었다. 지식채널e의 첫 방송인 '1초'는 딱 '필'이 오는 문장을 정해서 만들어졌고, 그게 곧 지식채널e의 스타일이 되었다. 자막이 위주가 되는 이런 진행 스타일은 생각해보면 e가 먼저였던 것 같다. 그만큼 참신하고, 또 색다른 연출방식으로 재미도 있었다. 책에 실제 방송의 캡쳐사진들도 실렸는데 그 표현방식이 너무 멋진 것 같다. 똑같은 자막이라도 단락을 나누고, 효과를 다르게 하면 또 다른 게 느껴졌다. 그만큼 참신한 방송이었으니, 지식채널e의 첫 시작은 '다르게 보는 것'이 중심이 되었던 것 같다.

분노에서 문제의식으로, 소재의 다양화로, 소재에서 아이템으로. 이런 과정들을 거쳐 지식채널e를 지금의 지식채널e로 만든 것이다. 유달리 '소외'라는 키워드에 관심이 많은 김진혁 피디를 보고, 이런 소외된 사람들을 위하고 사회 전반에 대해 관심을 많이 갖는 토론 동아리 언니가 생각났다. 김진혁 피디 말 중에서 특히 공감되는 건, 소외된 사람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그냥 불쌍한 대상, 동정해야 하는 '대상'으로 보지 말아야겠다는 거다. 김피디는 자기 작품에 대한 욕심도 많아서, 드라마 장르에도 손을 대 봤는데 그렇게 해서 나온 것들은 좀 더 시청자들의 피드백을 많이 받았다. 확실히 '드라마'라는 건 인간의 관심을 많이 끄는 것 같다. 내가 특히 마음에 들었던 건 우주선 이야기였다. 10년 동안 허공에 가만히 떠 있던 우주선, 사람들은 곧 적응했으나 사실 10년동안 인간을 제외한 모든 생물들에게 '인간을 떠나라'라고 메시지를 보냈고, 인간에게는 '스스로를 구하라'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인간 몸에 있는 조그마한 미생물들이 떠나면 살아날 수 없는 인간, 과연 미생물들은 떠날까? 언제나 겸손해야 할 일이다. 

 

44. 7월 8일, 음악 또라이들 

요즘들어 음악에 관심이 생겨 빌려왔는데, 그저 그런 에세이일것이라고 생각했던 게 생각외로 감동을 주었다. 말로, 현진영, 신대철, 남경주, 박미경 등 지금 내가 봤을 때 아는 사람들은 3명밖에 없어도, 다들 한 번씩 정상에 섰던 사람들이다. 그들이 말하는 인생 얘기에 삶의 고난과 경험이 묻어나온 듯 했다. 뭔가에 성공한 사람들은 그것에 미쳐야 하는 것 같다. 대개 그들의 얘기를 봐 보면 학창시절에 어떤 악기나 노래를 듣고 딱! 감이 왔다고 한다. 나도 그런 게 부럽다. 나도 내가 미칠만한 것을 찾을 수 있을지. 어쨌든 그렇게 음악에 빠지게 되고, 스스로 음악을 할 수 있는 길을 찾아다니는 그들이 멋있었다. 특히 김태원은 예능 프로에서 자주 보는지라 그냥 웃긴 사람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의외로 너무나 진지하고 음악인으로서 자기 신념이 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우스운 줄만 알았던 그가 사람들에게 배신당하고, 인기와 관심이 떨어지고, 자기가 원하는 방향과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음악의 방향이 달라 갈등을 겪었던 점들을 보면서 놀라웠다. 또 어린 나이부터 외삼촌의 사무실에서 홀로 작곡하는 법을 배우고 프로 작곡가로 시작했던 윤일상도 대단했다. 

음악이란, 자기 안에 있는 것들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다. 그게 무엇이든 그냥 자기 느낌대로, 마음대로 표현하면 그게 음악이 되는 것 같다. 재즈음악을 하시는 '말로'라는 여가수분은 내가 잘 모르는 분이었다. 하지만 재즈를 하기 위해 여기저기 많이 찾아다니는 말로를 보면서 '아, 이런 음악도 있었지'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재즈에 푹 빠져 찾아다니는 걸 보니 나조차도 흘러나오는 재즈가 상상됐다. 인순이와 함께 불렀던 '친구여'로 알고 있던 조피디 또한 미국에서 이리저리 방황했었다. 어릴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마약으로 두 번이나 구치소에 가고, 아버지마저 돌아가신 현진영. 인생에는 참 다사다난한 일들이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그 힘든 일을 잘 이겨내면, 언젠가는 좋은 일이 생기지 않을까. 지금 음악시장은 매우 어렵다. 그렇지만 어렵다고 해서, 선호도가 좋은 직업들을 찾아 다니면 자신의 꿈이나 인생의 목표는 이루지 못할 것이다. 단순히 성공만이 아니라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여러 경험들과 실패를 겪어 봐야 한다. 그들의 이야기에서는 그게 잘 녹아 있었다. 

 

45. 7월 10일, 통일이 좋아요  

요즈음, 모든 국민들을 식은땀 흘리게 만들었던 대형 사건들이 일어났다. 북한 핵 실험과, 천안함 사건이 바로 그것. 이것말고도 서해안 교전이라던가 금강산에서 시체가 발견 된 등등, 요즘들어 북한과 우리 사이의 관계는 불안불안 한 것 같다. 북한 핵실험이 알려졌을 때 신문에 연일 커다란 글씨로 '북한' '핵' '전쟁' 등의 글자가 나올 때마다 조마조마했다. 이러다 진짜 전쟁 나는게 아닌지 하고. 우리반 아이는 새벽 2시에 전쟁이 일어난대서 그 때까지 깨어 있었단다. 천안함 사건은 개인적으로 북한의 소행이라 믿진 않지만, 사람들이 하도 그 쪽으로 확정(혹은 조작)짓는지라 그냥 그렇다고 하겠다. 어쨌든 북한과도 불편한 관계가 된 건 사실이니 말이다. 사실 이 두 사건들이 내게 분단국가란 무엇인지 깨닫게 해 주는 시초가 되었다. 그 동안은 관심두지 않고, 다른 나라 일처럼 생각했던 북한과 우리나라. '종전'이 아니라 '휴전'협정의 무서움에 대해서도 알았다. 시기적절하게 이 책을 읽은 셈이다. 살짝 초딩용이긴 했지만 그래도 다시 한 번 통일에 대한 마음가짐을 다잡는데는 훌륭한 역할을 했다. 

 

46. 7월 11일, 명탐정, 세계기록 유산을 구하라! 

제13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대상 수상작이다. 그렇지만 창비에겐 미안하게도 보는 내내 실소를 감출 수 없었다. 아무리 저학년에게 우리의 문화와 기록유산들을 친절하고 어렵지 않게 알려주려는 목적이라지만, 이야기 구성이 너무 허술하다. 우선 역사신문 데이터가 도둑맞아 기록박물관의 개관식이 늦춰지고 있는 심각한 상황에 찾아간 어린이 두 명을 탐정이랍시고 맞아주는 것부터가 이상하다. 게다가 꼬마들이 할 수 있는 신문기사 쓰기라면 그냥 처음부터 기사를 썼으면 안 되나? 이건 뭐 노박사님과 함께 하는 어린이 방학 숙제도 아니고, 너무 의도가 빤히 보여서 헛웃음만 났다. 게다가 김 연구원이라는 사람이 갑자기 어머니의 병환으로 돌아갔다니. 완전히 나 의심해달라고 떠들고 다니는 격 아닌가. 어린이들에게 재미있게 역사를 알려준다는 의도는 좋았지만 좀 더 이야기를 탄탄하게 만들 방법은 없었는지 안타까웠다.
하지만 유네스코에 등록된 우리의 자랑스런 기록문화유산 일곱 가지-직지심체요절, 팔만대장경,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훈민정음, 조선왕실의궤, 동의보감-을 알 수 있어 좋았다. 

 

 

47. 7월 12~13일, 마법의 미술관 다빈치의 암호를 풀어라!

구성이 재미있는 책이다. 책 표지에는 가운데를 잘라서 그 안 속지에 있는 모나리자 그림이 나오게 하고, 뒷면에 거울과 수수께끼 책을 달아놔서 책을 읽으면서 함께 수수께끼를 풀어 나가게 한다. 친구들과 함께 미술관 견학을 갔다가, 악당 남녀에게 위협받는 미술관 관장을 보고 똑똑한 개 파블로와 함께 그림 속으로 들어간다는 전개다. 미술관에 사는 개 답게 물감을 묻히고 다니는 개는, 파블로 피카소를 따서 이름을 붙인 것 같았다. 어쨌든 평범한 공간 미술관에서 그림의 눈을 마주쳐 그 화가의 시대로 들어간다는 마술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게 매력적이었다. 연필로 그려진 삽화가 나도 같이 여행하고 있는 듯 생동감 있었다. 수수께끼의 답을 원통형 상자에 차례차례 입력하면 그 안에 든 비밀이 밝혀진다. 이걸 보고 '다빈치 코드'에서 봤던 다빈치의 기계가 떠올랐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정말 진정한 천재였던 것 같다. 악기 연주도 하고, 무기와 시대를 앞서간 발명품, 그리고 뛰어난 그림까지. 다빈치가 키우던 아이 살라이는 말썽쟁이였지만, 매력적인 장난꾸러기였다. 어찌나 여기저기 쑤시고 다니는지 앞으로도 중요한 일을 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마법의 미술관의 마술은 그림과 눈을 맞추면 그 시대로 갈 수 있게 해주는 것만이 아니었다. 2층에는 살아 있는 그림들의 방이 있어서, 마침내 네 번째 수수께끼를 풀 수 있었다. 과거로 가는 빨간 나침반과 현재로 돌아오는 파란 나침반을 보고, 작가님이 이것저것 신경을 많이 썼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빈치는 '암굴의 성모'를 보여주면서 원근감에 대해 설명을 했는데, "즉 검은색과 흰색, 노란색, 파란색, 빨간색만 사용한다는 것도 재미있지 않소? 화가는 이 색만으로도 다른 모든 색을 만들 수 있소." 이 말이 화가라는 직업에 대한 매력을 알려줬다. 살라이, 다빈치와 함께 수수께끼를 풀어나갈 무렵 하나의 반전이 일어난다. 바로 말파토 박사에게 살라이가 돈을 받고 암호에 대해 말해 준 것! 중요한 역할을 할 거라고 생각했더니, 진짜 하기는 했다. 그래도 결국에는 말파토 박사와 바르트 부인의 음모를 제지하고, 수수께끼를 훌륭히 풀어서 원통형 상자에 들어 있는 다빈치의 붓을 발견했으니 해피 엔딩이었다. 구성이 귀여운, 재미있는 책이었다.

 

48. 7월 14~15일, 권인숙 선생님의 양성평등 이야기 

엄마가 독서회 토론도서인데 술술 잘 읽힌다고 권해준 책이다. 예전에 6월 항쟁을 다룬 100도씨라는 만화책을 본 적이 있는데, 거기에 권양 사건이 나온 적이 있었다. 그 사건의 '권양'이 이 책의 저자이신 권인숙 선생님이라는 걸 알고 깜짝 놀라고, 관심 가지게 되었다. 무슨 일에도 꺾이지 않고 이렇게 남들을 위해 활발히 활동하시는 걸 보고 왠지 모를 감동이 들었다. 이런 엄마를 둔 선이는 참 바르게 자랄 수 있을 것 같다. 여자와 남자가 평등하다, 모두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고 있지만, 사회의 실상은 그렇지 않은 곳이 많다. 아직도 사회 구석구석, 그리고 암암리에 우리들의 머릿속에서 양성 불평등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올해 추석에도 우리 집은 외가에 가지 않고 친가만 갔다. 외가 사람들은 모임이 있어 일 년에 한번씩 정기적으로 보긴 하지만, 명절에 외가를 들른 적은 한 번도 없다. 왜 아빠의 가족들만 봐야 하는 걸까? 이것도 하나의 남녀불평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지금도 외가와 친가 모두 들르는 사람들이 많지만, 내가 어른이 될 때쯤이면 모든 사람들이 당연하게 양가 모두 들르도록 노력해야겠다. 

'우리 사회는 가족과 관련된 문제를 엄마의 희생으로 해결하려 했다.'라는 문장이 공감됐다. 나도 가끔 '엄마면서 왜 그래!' 하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엄마이기 이전에 사람이고, 여자라는 사실은 잊어버리고 말이다. 그 밖에도 살을 빼려는 여성들의 다이어트 욕심 아래에 있는 마른 여자들을 찬양하는 사회의 분위기, 예뻐지기 위해 아무렇지 않게 성형수술을 생각하는 일 등에 대해 고민하고 서술하고 있었다. 예쁘고 마른 여자만을 최고라고 생각하고, 닮으려고 억지로 노력하는 것이 잘못됐다는 것은 다들 알고 있다. 그러나 알면서도 다들 조금 더 말라 보이려 하고, 조금 더 예뻐 보이려 한다. 사실 나부터가 살이 더 빠졌으면 싶다. 또 여자 연예인들이 TV에 나오기 위해 성상납을 하고, 여성이 성폭력을 당하면 그 여자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등 사회 전체에 여성을 성적으로만 보는 시선이 만연하다. 갈수록 사회는 흉악해지고, 심심치 않게 성폭력 사건이 뉴스에 나오는 시대다. 보면서 가슴이 답답했다. 나도 내가 조심해서 살아야 하는 걸까, 여자라는 것 때문에? 제발 그러지 않기를, 모두 다 평등한 '인간'이라는 것을 깨달아 줬으면 싶다. 

 

49. 7월 16~18일, 지식e 4 

지식채널e 도 벌써 4권이 넘었다. 새삼 참 성공한 프로그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프로그램 자체도 사랑을 많이 받아서 장수하고 있고, 이렇게 책으로도 만들어질 지경이니 말이다. 생각할 게 많은 프로그램이다. 첫 번째는 국왕을 조롱한 댓가로 기소당한 화가 샤를 필리봉의 이야기였다. 요즘으로 치면 신문사 만평에 해당하는, 은근히 비꼬는 그림. 국왕의 얼굴을 '얼간이'라는 뜻도 되는 배 그림으로 바꿔 그린 그는 자신이 고소당한 법정에서 얼뜻 궤변으로 보이는 발언으로 자신을 변호한다. 힘을 주어 강하게 나가지 않아도, 은근하게 비판하는 그런 것들이 보였다. '그걸 바꿔봐'는 개의 목줄을 조금 늘려주는 것만으로도 많은것이 바뀐다는, 나비효과를 다룬 귀여운 동영사이었다. 동아리 활동을 할 때 본거라서 더 정겨웠다. 페터스 지도를 보면서는 우리가 진실로 믿고 있던 것중에서도 다른 진실이 숨어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진실이 담겨 있어야 할 지도가 사람의 이익이 섞이니 바뀌는 게 좀 씁쓸했다. 앞으로는 페터스 지도를 봐야겠다. 

재작년에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을 읽고 소록도에 간 적이 있었다. 한센인들을 보지는 못했지만 옛날 많은 억압을 당했던 건물이나, 부모자식이 헤어져야만 했던 장소들을 돌아보고 많은 걸 생각하게 만들었던 시간이었다. 국어시간에 배웠던 시 중에서 한센인 시인이 길을 걸어갈때마다 발가락, 손가락이 떨어지는 소록도 가는 여정을 표현했던 게 떠올랐다. 뉴딜을 보면서 얼마전에 있었던 전 세계의 경제위기가 떠올랐다. 돈이 돈을 낳는 현대의 연금술에서, 간과한 것이 있다면 위험을 너무 많이 나눠 누구에게, 얼마만한 위험이 있는지도 몰랐던 것이었다. 계속될 줄 알았던 경제성장은 뚝 떨어졌고 우리나라에도 닥쳐와 극복을 해 냈다고 믿는. 정말 극복이 된 것 같진 않아 불안하긴 하지만 말이다. 

개인이 세상을 보는 틀, FRAME을 통해 내용이나 본질과는 무관하게 왜곡하거나 조작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지금껏 우리가 알고 있던 중에도 관점의 차이로 인해 왜곡된 것들이 많을지도 모른다. 북한의 중산층이 우리나라의 서민층과 같은 생활을 한다는, 아리송한 얘기가 다음에 올라왔다. 그게 정말인지는 몰라도, 감자굴 상학이의 얘기를 보면 북한의 빈민층들이 얼마나 힘든 생활을 하는지 충분히 느껴졌다. 목숨이 위험할 줄 알면서도 친구들을 위해, 굶어죽지 않기 위해 독소가 가득 찬 감자굴로 들어간 상학이. 친구들은 며칠이 지나서야 양손에 감자를 꼭 쥐고 있는 상학이를 꺼내 줄 수 있었다. 북한의 고위층들은 분명 외국의 어느 부자들 못지 않게 잘 살 것이다. 모든 인민이 평등한 공산주의는 대체 어디에 있는 것인가? 먹고 살기 위해 거리로 나간 꽃제비 아이들의 고충이 느껴졌다. 모르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지식채널e는 모르는 것들을 알게 해주고, 보고도 몰랐던 것들을 깨닫게 해주는 각성제 역할을 충실하게 해 준다. 

 

50. 7월 19~20일, 봄봄 동백꽃 

한글타자 프로그램에 빠지지 않는 매뉴얼로 나오고, 우리 국어교과서에도 실려 친숙한 이야기들이다. 특히 봄봄은 좋게 말하면 착하고, 나쁘게 말하면 눈치 없을 정도로 답답한 주인공과 장인, 딸인 점순이의 관계가 중심이다. '나'는 집에서 몇 년간 머슴으로 일하면 딸을 데려가게 해 주겠다는 장인의 말만 믿고 우직하게 일을 해 왔지만, 시간이 지나도 도통 혼례를 시켜줄 생각을 안 하는 장인에게 화가 난다. 주인공은 되게 욕심 없는 사람 같다. 점순이를 보며, 못생긴 참외처럼 툽툽하고 짜리몽땅한, 자기에게 꼭 어울리는 신부라고 생각하는 걸 보면 자기 분수를 알고 그에 맞게 행동하는 듯 싶다. '못 먹는 감 찔러나 보자' 이런 생각이 없는 것이다.ㅎㅎ 반면 장인은 소처럼 일하는 '나'를 좀 더 부려먹기 위해 이리 뺀질 저리 뺀질 자꾸만 혼례를 미룬다. 그래도 간교하고 사악한 정도가 아니라 치사하고 살짝 쪼잔한, 그런 귀여운 수준의 마음이다. 점순이는 언뜻 '나'를 응원하는 듯 싶었으나 막상 싸움이 붙자 자신의 아버지 편을 든다. 여자의 마음은 알다가도 모른댔더니, 영문도 모르면서 야단을 맞은 주인공이 귀엽기도 하고, 점순이 마음도 이해가 갔다. 

처음에는 동백꽃이랑 봄봄이랑 살짝 헷갈렸었다. 봄봄도 그렇고, 동백꽃도 그렇고. 아기자기하고 풋풋한(?) 소설이라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주인공은 마을에서 점순네의 땅을 얻어 소작하는 집의 아들이다. 그래서 함부로 점순이에게 대들 수도 없건만, 사사건건 점순이는 자신에게 시비를 걸어온다. 자기 집 수탉과 남의 집 수탉을 시도 때도 없이 시비를 붙여 놔 기도 못 펴게 만든다. '나'는 왜 그런지 몰라 답답해 했지만 내가 보기엔 용기 내서 건넨 감자를 무시한 점순이의 귀여운 투정이다ㅋㅋ. '느네 집엔 이거 없지?'라는 말 속에 숨겨진 점순이의 호의를 잡아내지 못한 걸 보니, 주인공은 아무래도 연애 쑥맥인 듯 싶다. 그러나 동백꽃이 흐드러지게 핀 산에서, 마침내 역사는 이루어지고 두 주인공이 그렇게 꽃 속으로 엎어진 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꽃 향기만이 아찔하게 남아 있었을 뿐이니 참 뒤를 궁금증 가득하면서도 임팩트 있게 끝낸 것 같다. 

 

51. 7월 21~22일, 미실 

신라의 당당한 여장부, 미실의 생애를 다룬 소설을 읽게 되었다. 작년에 했던 드라마 선덕여왕의 미실을 생각하고 읽은 건데, 음, 뭔가... 전체적으로 좀 난감했다. 국사 선생님으로부터 신라나 옛날 왕국들은 자유롭고 당당하게 성을 즐겼다면서 '거시기'한 내용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됐는데, 과연 그랬다. 상관을 색으로 모시는 게 임무인 '색공지신'이라는 것도 있고, 젊은 나이에 결혼을 하다보니 아이를 낳아서도 여러 사람들과 관계를 맺었다. 성을 비밀스럽거나 부끄러운 것으로 보지 않는 모습에 처음에는 놀랬다가 나중에는 그냥 많이 익숙해져서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이었다. 왕과 그 일족에게 몸을 바쳐 색으로써 모셨던 '대원신통'의 혈통으로 태어난 미실은 곧 태종의 아들 세종전군의 비가 된다. 첫 만남부터 그녀에게 빠졌던 세종은 그야말로 그녀밖에 모르는 미실바라기가 되는데, 소년의 사랑이 어찌나 풋풋하던지 보는 내가 괜히 흐뭇했다. 그러나 사도황후를 내쫓으려는 지소태후에게서 사도를 지켰다가 그녀의 분노에 궁 밖으로 쫓겨나고 만다. 쫓겨나는 미실이 '나는 무엇이기에 이토록 처참한 몰골로 버림받아 내쳐져야 하는가'라는 부분이 가슴 아팠다. 

궁에서 쫓겨난 미실은 마음을 다잡고 아름다운 화랑 소년인 사다함을 사랑하게 되니, 바야흐로 소녀 시절에서 벗어나 그녀의 화려한 남성편력이 막 시작된 것이다. 이 이후로 미실은 정말 지치지도 않게 동륜태자, 진흥제, 세종전군, 설원 등과 함께 사랑을 나누고 그것으로 권력을 휘어잡는다. 진짜 보는 내가 질릴 정도로 어찌나 정력적으로 사랑하는지, 신라의 팜므파탈이 따로 없었다. 그러나 가장 사랑했던 것은 오직 사다함뿐이었다. 그때만큼은 정말 순수하게 그를 사랑하는 모습이 여느 소녀와 같아 귀여웠다. 사다함이 전쟁에 출정하고 혼인할 계획을 세우다가 그녀를 잊지 못한 세종전군에 의해 다시 궁에 입궁하게 되니, 그녀의 의지 없이 휘둘리니 어쩌면 그게 미실을 권력에 집착하게 한 배경일 것이다. 하나같이 잘나고 빼어난 남자들이었으나, 미실에게 빠져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보니 사랑의 힘이란게 얼마나 대단한지 새삼 깨달았다. 그리고 타고난 감으로 그걸 휘둘러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를 하듯,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얻는 미실의 대단함도. 후에 미실은 사다함의 동생인 설원만 데리고 절에 들어간다. 설원을 먼저 보내고 미실도 고요히 숨을 거둔다. 참 한평생 열정적으로 살았던 여인이다. 

 

52. 7월 23~24일, 미식견문록 

 저자인 요네하라 마리는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의 직업에 의해 외국을 많이 돌아다녔다.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느라 친구를 사귈 기회를 놓쳤을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그렇게 어릴 때 외국에서 많은 경험을 쌓은 그녀가 부러웠다. 난 아직까지 외국 여행 한 번도 안 가봤는데 그녀는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외국어도 배우고, 사고방식도 개방적이게 되고, 각 나라의 맛있는 음식들도 먹고. 러시아어 통역사인만큼 러시아 음식이 맨 처음으로 소개가 됐는데, '여행자의 아침식사'나 '토마토에 삶은 다시마' 같은 독특한 통조림들이었다. 촌스럽지만 소박하고 무뚝뚝한, 러시아만의 풍미가 담긴 통조림들이어서 나도 한 번 먹어보고 싶었다. 러시아인들이 이 맛없는 통조림을 풍자하기 위해 우스갯소리까지 만들어냈다니, 어찌보면 참 대단한 사람들이다. 그래도 그 중에서 내가 가장 반했던 음식은 할바! '터키꿀엿'이라는 이름부터, 그녀가 어린 시절 친구에게서 처음 맛 봐 조그만 스푼 한 숟갈로 조심스럽게 맛 본 장면이 눈 앞에 상상되서, 진짜 궁금했다. 세상에 다시 없을 맛이라는데, 어른이 되면 나도 먹어보고 싶다. 또 그녀가 소련의 학교에 다닐 때 하루 6끼를 먹었던 점을 회상할 때는 신기했다. 

알프스 소녀 하이디를 안 읽어본 사람은 거의 없을거다. 나도 하이디가 마시는 염소젖을 보고 한 번 마셔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요네하라 마리 또한 그 생각을 했단다. 그래서 처음 염소젖을 먹게 됐을때 어떤 맛인지 잔뜩 기대하고 먹었는데, 시큼털털, 비릿하고 암내가 나서 그 후로 한 입도 못 먹었다는 걸 봤을때 나조차도 실망하고 말았다. 안타깝다. 하이디 말고도 내가 읽은 책에서 나온 요리가 나왔는데, 바로 '꼬마 깜둥이 삼보'에서 나온 핫케이크! 솔직히 이건 보자마자 굉장히 반가웠다. 아주 어렸을 때 본거라 나도 희미하게 기억났는데, 이 책을 보고 도로 기억이 났다. 그녀가 같은 책을 봤다고 느끼니까 반가웠다. 삼보가 호랑이들에게 쫓겨 나무 위로 올라갔다가, 호랑이들이 빙빙 돌다가 점점 빨라져 녹아 버터가 되서 삼보는 그걸로 핫케이크를 만들어 맛있게 먹었다...라는 이야기다. 지금 생각해보면 왠지 잔인한 이야기지만 그 때는 그 핫케이크가 그렇게 맛있어 보였다. 그러나 핫케이크인 줄 알았던 그것은, '기이'라는 버터가 들어간 인도의 '난'인 셈이라는 새로운 지식도 알았다. 음식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 지, 새삼 알겠다. 음식은 대단하다! 

 

53. 7월 25~26일, 세밀화로 그린 보리 어린이 풀도감 

도시에서 자란 나는 솔직히 풀꽃 이름을 잘 알지 못한다. 책에 나왔던 거 몇 종과 엄마한테 들은 거 몇 가지 뿐이다. 그래서 항상 시골에서 어머니나 다른 분들이 '어머~ 저거 ㅇㅇ잖아? 앗, 여기는 xx가 있네!' 이런 대화를 나누시는게 신기했다. 눈에 식물을 알아보는 센서라도 장착하신 것 같았다. 우리 나라 사람으로서 우리의 산천에 나는 식물을 알아야지 않겠나 싶어 큰 맘 먹고 읽었다. 결과는 꽤 만족이었다. 세밀화로 그린 만큼 사진 보듯 정확하고 예쁜 그림들이었다. 설명도 자세했다. 무슨 계절에 나는지, 우리 삶에서 어떻게 쓰이는지, 어디서 나는지 등등. 강아지풀을 서양에서는 여우꼬리, 중국에서 구미초, 남미초라고 하는 것도 처음 알았다. 왠지 강아지풀은 우리나라에서만 자라는 것 같아서 뭔가 기분이 묘했다. 초등학교 전 학년 교과서에 나오는 식물들을 소개했다고 하니까 초등학생 아이가 있는 분들께도 좋을 것 같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걸 보면 꼭 책 리뷰를 올리는 엄마를 닮아가는 느낌이다. 

까마중이 왜 까마중인가 했더니 말 그대로 '까만 중 머리를 닮아서' 그런 이름이 붙었단다. 보고 한동안 웃었다. 괭이밥도 이름 그대로 고양이가 잘 먹는 풀이라 그런 이름이 붙었고, 애기똥풀도 줄기에서 나오는 노란 물이 애기 똥을 닮아서 이름이 붙었다. 알고 보면 이름마다 다 타당한 이유가 있었다. 그동안 내가 잡초라고 무심히 넘겨왔던 풀들에게 미안해졌다. 이름이 얼마나 중요한데, 한낱 풀이라고 무시하고 넘길 것이 아니다. 게다가 이름과 설명이 한자어를 안 쓰고 순수 우리말이 많아서 더 예뻤다. 우리가 숨 쉬는 산소를 만들고 더러워진 물을 정화시키며, 약재와 식용으로 쓰이는 등 풀이 하는 일은 참 많았다. 앞으로는 하찮아 보이는 풀일지라도 관심과 애정을 가져야겠다. 

 

54. 7월 27~28일, 프라하의 소녀시대 

미식견문록을 쓴 요네하라 마리의 과거가 드러난 책이다. 부모님을 따라 여기저기 해외로 이동하는 일이 많아 다양한 나라의 친구들도 많이 사귀는데, 그게 부럽다고 느껴졌었다. 프라하의 소녀시대는 제목 그대로 프라하에서 사귄 친구 3명의 이야기를 하면서 그 때 당시 동유럽의 상황과 그에 얽힌 이야기들을 해 준다. 어릴 적 아버지가 공산당 간부라 프라하의 소비에트 학교를 다니는 그녀의 모습은 공산당에 익숙하지 않은 내게 낯설었다. 그러나 소련, 중국을 벗어난 다른 나라의 공산당은 어땠는지도 궁금했다. 게다가 어린 소녀들의 눈에 비치는 것이었으니, 어른들과는 다른 시점일 거라고 느꼈다. 당당한 소녀였던 리차는 자신이 태어난 그리스의 파란 하늘을 아주 자랑스러워 한다. 정작 자신은 한 번도 본적이 없음에도, '쨍 하고 깨질듯한 하늘'이라며 눈을 빛냈던 리차는 내게 신선한 경험이었다. 누구든 외국에 나가면 애국심이 생긴다더니, 그 말이 사실인가보다. 어릴 적부터 범상치 않았던 리차는 커서도 존경받는 의사로 살면서도, 노동자 남편과 결혼해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예쁘장한 얼굴에, 조금 통통한 몸을 이끌고 열렬하게 공산주의를 찬양하는 아냐. 본인은 우스울 정도로 공산주의를 찬미하고 신봉하는데, 정작 마리가 놀러가서 본 집은 대 저택에다가 가재도구 모두 호화로운 것들 뿐이었다. 입으로는 우리는 모두 평등하다, 같은 동지들이다 하면서 정작 자기들이 가진 특권은 그대로 유지하는 사람들. 누릴 건 다 누리면서 기분 좋게 사상까지 옹호하는 건 더 배신감이 들고, 비열하다. 안타까운 건 아냐가 스스로 그게 뭐가 문제인지 몰랐다는 거다. 다른 세상을 한 번도 본적이 없어서 이것이 옳고, 전부인 줄 아는 아냐. 어릴 때는 그렇게 고국 루마니아를 좋아하고 러시아어도 잘하더니, 커서는 영국인 남편을 따라 영국에서 살면서 어릴 적의 언어와 루마니아에 대한 애국심을 홀라당 버린 걸 생각하니 그저 헛웃음만 나왔다. 어릴 적에 친구들에게 하던 거짓말처럼, 그녀의 삶도 결국 새빨간 거짓이었다. 반면 야스나는 마리여사에게 가장 마음이 아프고, 애틋한 친구인 듯 싶다. 강직하고 바른 품행을 가지면서도, 엽서 한 장에 어쩔 줄 몰라하며 고마워했던. 그녀가 좋아하고 아꼈던 '하얀 도시'가 폭격기 조종사들에 의해 초토화 된 걸 생각하니 가슴이 아프다. 

 

55. 7월 29~30일, 춤추는 소매 바람을 따라 휘날리니 

그 동안 교과서에 짤막하거나 간략하게 간추려진 홍길동 이야기만 알고 지내다가, 약 30종의 이본들을 종합한 완전판(?)을 읽게 되었다. 제목이 '춤추는 소매~' 여서 홍길동전이 아닌 줄 알았다가 첫 장 보고 깨달았다. '청학과 백학, 비취새와 공작새가 봄빛을 자랑하'는 풍경이 대감의 태몽에 나왔다고 했다. 새삼 우리 고전의 문장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자신을 해하려는 자객들과 매수받은 무녀를 죽이고 집을 나선 길동은 곧 도적단의 두목이 되어 활빈당이라 이름짓고 의적이 된다. 지금 보면 빤한 스토리지만, 그 때 당시에는 굉장히 인기를 끌 만큼 매력적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비록 천한 신분으로 태어났지만 신비한 도술을 부리며 고위 관료들과 나라를 손에 쥐고 흔드는 길동, 게다가 마침내는 벼슬까지 얻고 섬에 들어가 나라를 세워 왕이 되니 전무후무한 모험담이었을 것이다. 중간중간에 홍길동이나 그 때 당시의 백성들의 상황에 대해 알 수 있도록 자료를 꾸며놓아 더 유익했었다. 

임금은 길동의 형 길현에게 명을 내려 그를 잡아오라고 하는데, 솔직히 길현에게는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었을 것 같다. 동생 하나 잘못 두어 도적단의 두목이 되었는데다가 아버지는 충격으로 병을 얻으시고, 임금에게도 화를 샀으니 말이다. 내가 길현이었다면 상당히 짜증났을 것이다. 그러나 착한 길현은 부임지에 길동에게 눈물로 호소하는 글을 써 방방곡곡 붙였고, 찾아온 길동을 안타까워 하며 조정으로 넘긴다. 하긴 형제간의 정이나 우애도 중요하지만 유교 사회에서 그 무엇보다도 '충'을 중심으로 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겠다.  당연하게도 길동은 도술을 써 사라졌고, 그 후로도 한 번도 그를 잡을 수 없었다. 이 책에 쓰인대로라면 길동은 사람이 아니라 신선이나 귀신은 됐을 것이다. 비바람을 부리고 신장들을 부렸다는 귀여운 오버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 동안은 길동이 신분제 사회에 대항했다고 들어왔지만, 읽어보니 결국엔 그도 병조판서 벼슬을 얻었다. 이게 뭐지? 싶어서 보는데 뒤에 '깊이 읽기'에도 그가 신분제에 저항한 것은 아니라고 나왔다더라. 자신의 행위에 의해 비탄에 바진 백성들이나, 탐관오리들에게 저항하는 것이지 유교적 사회에는 순응하고 있었다. 

 

56. 7월 31일, 숨그네 

처음에는 책의 분위기를 종잡을 수 없었다. 건조한 문장들과, 그 안에 숨어있는 여러가지 뜻들을 짐작하기가 벅찼기 때문이다. 게다가 등장인물이 처한 상황과 그 때 당시의 시대 상황을 몰랐기 때문에 더더욱. 몇 쪽을 더 넘기고 나서야 간신히 파악할 수 있었다. 동성애자인 주인공은 '돌멩이에도 눈이 달려있는' 마을을 벗어나 자신을 모르는 곳으로 가고 싶어한다. 나치의 전쟁이 끝나고, 총을 만져보지도 못한 독일인들은 그 전쟁에 책임이 있다는 이유로 수용소로 끌려가게 된다. 먹어도 먹어도 차오르지 않는 허기. 자신에 대해 '배고프다' 밖에 생각이 안 나는 상태가 어떤 것인지, 나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 독한 상황에서도 그녀의 참신한 단어나 문장이 눈에 띄었다. 왜 심사위원들이 극찬을 했는지 알겠다. '허기진 천사'라던가, 시멘트가 어떻게 사람들을 미치게 만드는지 풀어놓는 문장들은 뭐랄까... 예술같기도 했다. 사람이 사람이 아니고 시멘트가 그들의 우위에 있었다. 늙은 여인이 선물해준 손수건은 그를 보호해준 운명이었다. 이 모든게 독자를 그 시대의 상황으로 끌고 들어가는 것 같다. 

8월 1~2일에 읽은 부분은 8월 페이퍼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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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중3막내, 제5회 빛고을 독서마라톤 8월 기록
    from 엄마는 독서중 2010-10-11 03:54 
    2010년 4월 18일부터 시작되 6개월의 빛고을 독서마라톤, 엄마와 같이 풀코스에 도전한 8월의 기록을 남긴다. 8월엔 너무 더워서, 혹은 꾀가 나서 그랬는지 많이 읽지 못했다. 8월 23일 개학이라 밀린 방학숙제 하느라 그랬나...   56. 7월 31~8월 1.2일, 숨그네  수용소에는 수감되어 노동을 하는 그들 말고도 여러 사람들이 더 있었다. 경비원 카티라는 여자는 백치였고, 인간이 아니라 수용소의 애완동물로 취급
 
 
치유 2010-09-29 0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이렇게 정리해두신 걸 보니 전 정말 책을 많이 읽지 못하고 올한해를 보낼뻔 했구나..반성하게 되네요.
가을엔 눈을 조금더 부지런히 움직여야겠어요. 마법의 미술관을 눈 도장으로 콕..

가을이 너무 후다닥 달려와 안겨버리니 얼떨떨한 아침입니다.

순오기 2010-09-29 11:17   좋아요 0 | URL
엄마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은 내몸을 내맘대로 할 수 없잖아요.ㅜㅜ
그리고 가을엔 여행으로 눈도 호사시켜야 해요.^^
가을이 후다닥 달려와 안겼다가 변심한 애인처럼 금세 떠나죠!ㅋㅋ

라로 2010-09-29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그저 감탄만 나와요!!!중3인 학생의 읽기 수준이 저보다 더 높은거 같아요!!!!
정말 대단한 식구에요!!!ㅎㅎ

참 언니,,이번 금욜 서울가실 수 있어요???영화보게???ㅎㅎㅎ

순오기 2010-09-29 11:20   좋아요 0 | URL
정리해놓은 걸 보면 엄마보다도 나은거 같아~~~~~~라고 느끼는 고슴도치 엄마에요.ㅋㅋ
생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평일에 서울나들이는 곤란하죠.
이번 금욜은 오전10시 회의, 1시부터 수업, 오후 4시 회의~ 빵빵한 일정이라고요.ㅠㅠ

하지만 10월 17일 이후는 월.수.금요일도 괜찮아요.^^

라로 2010-09-29 23:05   좋아요 0 | URL
아까는 다 읽지 못하고 책만 보고 댓글 달았는데
지금 읽어보면서 더 감동하고 있어요!!!!!
민경이가 글도 참 조리있게 잘쓰네요,,,부럽부럽

프여사도 금욜은 시간이 안된다네요,,어쩔 수 없죠,,,세실님 번개 하실때나 뵐까요??

순오기 2010-09-30 00:46   좋아요 0 | URL
바쁜 시간에 읽기엔 너무 길지요.ㅜㅜ
그래도 옮겨 놓지 않으면 사라지니까 갈무리 했어요.^^
청주번개가 먼저일지 원주 토지모임이 먼저일지 모르지만...여튼 그때 만나요!^^

마녀고양이 2010-09-29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짝짝짝!
전여,,, 지인짜 순오기 언냐를 좋아하고, 오기 언냐네 자녀분들을 좋아하게 되었어요.
이 마라톤 기록지를 볼 때마다, 왜 제가 뿌듯하냐고요!
진짜 진짜 진짜 억만번 진짜 멋지세요!

순오기 2010-09-29 11:23   좋아요 0 | URL
진짜 좋아해여~?? ^^
우리 애들이 엄마보다 읽기도 훨씬 빠르고 감상평도 잘 쓰는 거 같아요.ㅋㅋ
우리도 독서마라톤 덕분에 비문학 분야 도서를 보려고 신경쓰게 됐어요.
잘썼든 못썼든 기록은 소중해요!^^

꿈꾸는섬 2010-09-29 1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예뻐요.^^

순오기 2010-09-30 00:45   좋아요 0 | URL
예쁘게 봐 주셔서 고마워요!^^

양철나무꾼 2010-09-29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악 또라이들,관심가요~^^
우와~무더운 7월에 참 많이도 읽었네요.
저도 '지인짜 순오기 언냐'를 좋아해요~^^

순오기 2010-09-30 00:48   좋아요 0 | URL
양철나무꾼님은 음악에 조예가 깊어서 관심을 갖는군요.
나는 펼쳐보지도 않았어요.ㅋㅋ

그러게 이렇게 옮기며 확인하니 마라톤 덕분에 매달 그 정도는 읽었네요.^^

하늘바람 2010-09-30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정말 대단하네요 제가 읽고팠던 책들 투성이인걸요

순오기 2010-09-30 21:18   좋아요 0 | URL
마라톤 덕분에 다양하게 보긴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