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밥바라기별
황석영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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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에 '바리데기'를 읽고 황석영 작가에게 좀 실망해서, 이 책을 가시장미님께 선물 받고도 일년이 넘도록 미루고 있었다. 그러다 빛고을 독서마라톤 첫번째 책으로 선택했다.  

챕터마다 화자가 다르고 시점이 달라서 한동안 어리둥절 상황파악이 안 됐다. 하지만 준이로 나타난 작가 황석영의 사춘기부터 스물한 살까지 방황의 근원을 캐들어가는 여정에 매료됐다. 준이, 인호, 정수, 상진이 등 똑똑한 고딩들이 엘리트의 정석인 코스를 마다하고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는 배짱도 좋았다. 중간고사도 때려치고 설악산에 들어가 질리도록 강원도를 더듬은 준이, 무작정 배낭을 걸머지고 무전여행을 떠나 걷고 걸으며 세상을 알아가는 친구들. 산 속 바위굴에 칩거하며 벽면수도의 고행자처럼 명상하는 오기도 부러웠다. 이에 비하면 요즘 고딩들은 얼마나 나약한가? 부모들이 그들의 삶을 운전하며 방황이나 한 번의 실수도 용납치 않으려는 독재와 비교되었다.    

네 노트를 태워버린 걸 나두 후회하고 있다. 그러니 네가 무언가 쓸 수 있는 자유시간을 좀 가지면 좋겠구나. 그 다음엔 다시 학교를 다녀야겠지. 좀 늦어지면 어떠니.(91쪽) 

너 올 줄 알구 있었지. 너희 아버지가 꿈에 보이더라. 이제는 집에 있을 작정이냐? 어딜 간다는 거냐? 이제부터 집에서 내가 쓰고 싶다던 글 좀 써보지 그래.(140쪽) 

(어머니는 똘똘 뭉쳐서 쥐고 있던 지폐를 내 군용 파카 옆주머니에 넣어주며) 이건 급할 때 요긴하게 써라. 집에다 엽서 부치는 거 잊지 말구. 어디 아프거나 하면 곧장 차 타구 돌아오렴.(142쪽) 

책을 쓴다는 건 좋은 일이지만, 제 팔자를 남에게 다 내주는 일이란다.(194쪽) 나는 네가 방황하며 집에서 보이지 않을 때마다 혼자서 되뇌이곤 했다. 나는 내 아들을 믿는다구. 아무리 그래도 맨 밑바닥에 떨어지지 낳을 거라구 말이다.(195쪽) 

독극물을 마시고 목숨을 끊으려 했던 아들 준이가 살아 준 것 만으로도 감사했을 어머니. 그 아들이 쓴 원고를 불태웠으나 끝내 받아들여야 했던 방황 그 너머의 글쓰기 열정을 인정하는 장면 등, 어머니가 등장하는 장면마다 눈시울이 젖었다. 나도 대딩 딸과 치열하게 진통을 겪었던 지난 2월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부모란 결국 자식의 앞날이 보다 순탄하길 바라기 때문에, 탄탄대로를 버려두고 고생길로 빠지는 걸 보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진정으로 자식이 원하는 길을 결코 막을 수는 없다. 왜냐면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기 때문이다. 내 자녀들이 이렇게 다른 길을 가겠다면, 나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말려 볼 것 같다. 말로는 ' 니 인생 니거니까!'라고 쿨한 척하지만, 솔직히 속마음까지 쿨하기는 쉽지 않다.  나 역시 부모의 뜻에 거스려 내 맘대로 살아보고 싶었던 시절이 있었음에도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은 못한다.ㅜㅜ 

이순을 넘긴 작가가 자신의 젊은 시절을 불러내, 성장소설의 형상화로 독자들과 소통하는 그 마음이 좋았다. 아련한 로사 누나와의 플라토닉 러브, 어머니가 꽉 들어차서 첫경험의 미아가 비집고 들어갈 자리가 없었던 로맨스. 한일회담 반대 데모를 하다 잡혀간 감방에서 만난 대위 장씨를 따라 공사판과 선원생활 등 노가다 인생경험을 쌓았다.

살아 있음이란, 그 자체로 생생한 기쁨이다. 사람은 씨팔...... 누구든지 오늘을 사는 거야.(257쪽) 비어 있는 서쪽 하늘에 지고 있는 초승달 옆에 밝은 별 하나가 떠 있었다. 잘 나갈 때는 샛별, 저렇게 우리처럼 쏠리고 몰릴 때면 개밥바라기. (270쪽) 

인생 선배 대위 장씨가 들려준 개밥바라기 별은 우리가 아는 금성이다. 금성이 새벽에 동쪽에 나타날 적에는 '샛별'이라 부르지만 저녁에 나타날 때에는 '개밥바라기'라 부른다. 즉 식구들이 저녁밥을 다 먹고 개가 밥을 줬으면 하고 바랄 즈음에 서쪽 하늘에 나타난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글은 엉덩이로 쓴다'고 말한 작가 황석영은 이런 방황을 거쳐 우리에게 돌아왔다. 자신이 쓴 글이 아무 의미도 없는 헛것들의 형상화가 아니라, 글을 쓸 수 없다면 내 존재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깨달음으로 방황의 종지부를 찍었다. 젊은 날의 방황이 오늘 날의 황석영 작가를 있게 했다면, 피끓는 청춘들의 방황은 그들의 가슴에 개밥바라기 별 하나를 발견하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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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섬 2010-04-29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리데기를 읽고 실망하셨군요. 제가 워낙 정보없이 책을 읽다보니 몰랐는데, 전 나름 괜찮았거든요.

순오기 2010-04-29 23:46   좋아요 0 | URL
정보 필요없어요, 내 취향과 기대치에 부응하느냐 아니냐로 가름하니까요.
내 기대치가 높았던 책이라서 실망한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