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잃어야 진짜 여행이다
최영미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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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인 최영미가 부러운 건 마음대로 여행할 수 있다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내가 솔로로 살고 싶은 마음은 없다. 때론 솔로인 삶이 부러워도 아이를 낳아 키우는 기쁨을 대신해 줄만큼은 아니니까!^^ 아이들 다 키워놓고 여행을 해도 늦지 않다는 생각도 있고... 사실 돈이 없어서 여행을 못하지 딸린 식구들 때문에 못하는 건 아니란 말이다. 

국내의 신문과 잡지에 기고한 여행 관련 글을 1부에 싣고, 2000년에 출판되었다 절판된 '우연히 내 일기를 엿보게 될 사람에게'에 실렸던 원고 일부와 예술가에 대한 에세이를 2부에 실은 책이란다. 아주 유혹적인 제목 '길을 잃어야 진짜 여행이다'에 낚였다면 좀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최영미를 좋아하는 팬이라면 구시렁거리는 그녀의 속내를 보는 즐거움도 나쁘진 않다. 

소설 '무늬와 흉터'에 매달리느라 4년간 여행다운 여행을 못한 자신을 위해 미련없이 훌쩍 떠난 여행. 희대의 별난 건축가 가우디의 환상적인 건축물을 보는 여행이라니 멋지다. 가는 곳마다 새로운 풍경과 건물, 박물관이나 미술관 순례도 나쁘지 않다.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과 베네치아의 티치아노 그림, 일본인 히로시게의 목판화를 모방했다는 반 고흐의 '자두나무 정원'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반 고흐가 생을 마감하기 전에 살았던 마을을 방문하고, 주변사람들과 평화롭지 못했고 집을 마련하지 못해 떠돌았던 고흐를 자신처럼 불쌍한 영혼이었다고 말한다. 

여행길에 맛보는 음식과 예기치 못한 계획의 어긋남, 또는 생판 모르는 사람과의 만남은 여행의 즐거움을 더한다. 2006년 독일월드컵을 앞둔 봄날, 파리로 가는 국제열차에서 만난 독일의 유명한 배우 한나 쉬굴라와의 인연이 아름다웠다. 옷깃을 스치는 인연으로 끝나는 사람도 있지만, 정말 억겁의 인연이 쌓여 만났을지 모를 사람과의 지속적인 만남은 여행과 삶을 더욱 윤기나게 한다.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 초청으로 문인들과 동행했던 시낭독회를 겸한 여행에서, 행사를 마치고 혼자 남아 더 여행하는 그녀가 솔직히 부러웠다.  



내가 흥미로웠던 것은, 오바마가 대선후보로 나왔을 때부터 CNN뉴스에서 눈을 떼지 못한 그녀가 오바마의 도시 시카고에서 오바마의 행적을 따른 순례였다. 오바마와 미셸이 데이트 했던 곳, 젊은 오바마가 자주 다녔다는 식당과 이발소를 찾아가며 스스로도 민망했는지 "나도 참 주책이지. 사춘기도 아니고 웬 정열이람."하고 구시렁대는 그녀가 귀여웠다. 오바마는 연설 뿐 아니라 글솜씨도 탁월했다며 그의 승리는 '오바마 문학의 승리고, 양심의 승리'라고 말한 그녀 때문에 오바마가 쓴 '담대한 희망'도 급호감이 갔다.  



후반 박수근 그림과 영화 꽃잎과 일 포스티노 이야기는 좋았고, 음악가와 작가나 화가 이야기 등은 사족같았지만, 마지막에 실린 김용택 선생님 이야기는 '서른 잔치는 끝났다'에 쓴 김용택 시인의 발문에 의아했던 수수께끼가 풀렸다. 남들이 보기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사람의 친분이 이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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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섬 2009-12-20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에 절대 공감요. 하지만 가족이 주는 행복도 크다는 말에 더 많이 공감요.^^

순오기 2009-12-21 01:57   좋아요 0 | URL
제목을 참 잘 지었어요.^^
우리는 가족이 주는 행복에 하트를 뿅뿅 날리며 여행을 못가도 잘 살아요.ㅋㅋ

같은하늘 2009-12-21 0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홀로 떠나고 싶은 마음 굴뚝같을때 많지만 오기언니 항상 말씀하시는 아이를 키우는 재미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이라 생각합니다.^^

순오기 2009-12-21 01:58   좋아요 0 | URL
아이들 키우는 재미도 좋고, 다 키우고 내맘대로 시간 보내는 건 더 좋아요.^^

소나무집 2009-12-21 0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족이 있는 우리들은 삶 자체에서 존재감을 찾을 수 있지만
솔로들은 여행도 떠나고 책도 쓰면서 존재감을 찾으려 애쓰는 건 아닐까요? ^^

순오기 2009-12-21 17:45   좋아요 0 | URL
그럴지도 모르지요~ 가족에게 얻을 수 있는 것들은 없을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