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대 위의 까치 - 진중권의 독창적인 그림읽기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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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13일, 고등학교 독서회의 토론도서였다. 진중권의 사통오달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다들 감탄하며 읽었다고, 내게 좋은 책을 추천해줘 고맙다는 인사까지 했다. ^^ 그날, 김훈작가를 만나러 바로 올라가느라 이 책을 들고 상경했다가, 가방이 무거워서 큰딸에게 주고 내려왔다. 책이 없으니 리뷰 쓰기가 막막하던 차에, 뽀게러블님이 선물로 보내줘서 리뷰대회 마감날 끄적인다는 얘기다. ^^ 

엊그제 광주방송에서 '산에만 가십니까?'라는 현수막을 내걸은 현대미술관의 안타까운 소식이 나왔다. 예향에서 산다고 자부하는 시민들이 건강을 위해 무등산에만 오를 뿐, 길목에 네 개나 되는 미술관에는 인적이 끊어졌다고...... 하긴 나도 미술관에 가본 게 언제인지 가물거린다. 아이들 어릴때는 방학숙제를 핑계로 다녔고, 백화점 셔틀버스가 다닐 때는 백화점 갤러리에서 눈이라도 호사했는데, 그도 옛날 얘기가 되었다. 특별히 미술에 관심을 갖지 않는 한 일상에서 미술품을 접하거나 감상할 기회는 많지 않다. 빛고을에 사는 덕분에 2년마다 열리는 '광주비엔날레'에 가는 것도 다행이지만.^^ 

진중권의 '교수대 위의 까치' 표지를 보면서 내가 알아 본 그림은 고야의 개와 티치아노 베첼리의 신중함의 알레고리, 히에로니무스 보슈의 우석의 제거 뿐. 그것도 화가 이름까지 정확히 기억한 것은 고야 뿐이다. 

그래도 미술 관련 책은 아이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아이들 성장단계에 따라 열심히 사들인 편이지만, 내가 그림을 제대로 감상하는 것인지 항상 자신 없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은 덕에 이젠 그런 염려는 안 하기로 했다.  

스투디움(studium), 사회적으로 널리 공유되는 '일반적' 해석의 틀에 따라 읽어내는 방법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널리 공유되는 일반적 해석과 관계없이 때로는 그것을 전복하면서 보는 이의 가슴과 머리를 찌르는 '개별적' 효과인 푼크툼(punctum) 미술감상법을 알았기 때문이다.ㅋㅋ  

내게 최초로 각인된 화가는 루벤스였다. '플랜더스의 개'의 네로가 꼭 보고 싶어했던 그림이 루벤스였기 때문에 어린시절부터 루벤스의 그림이 궁금했었다. 라헐 판 코헤이 소설 '바르톨로메는 개가 아니다'의 모티브가 된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시녀들'과 단편집 '살리에르 웃다'에 실린 강미 작가의 '모래에 묻히는 개'라는 제목으로 등장한 고야의 '개' 등, 내가 기억하는 그림은 대부분 문학으로 만난 그림들이다. 문학과 예술은 인간의 정서를 다루기에 서로 영감을 주고 받는 것 같다. 





이 책의 백미는 역시 제목으로 쓰인 피터르 브뤼헐의 '교수대 위의 까치'다. 피터르 브뤼헐의 작품인 '바벨탑의 건설, 이카루스의 추락, 소경의 인도'는 명화집에서 만났지만, 교수대 위의 까치나 네덜란드 속담은 처음 보는 그림이었다. MB정권의 속내를 알아서 맞춰주는 양반들 때문인지, 중앙대 강의를 도중하차한 진중권 교수의 상황과 딱 맞아 떨어지는 그림과 해석이 유쾌하게 읽혔다. 그저 '가십을 퍼뜨리고 다니는 자는 결국 교수대에 달릴 것'이라고 경고한 그림이다. '교수대 아래서 춤을 춘다, 교수대에 똥을 눈다, 즐겁게 교수대로 간다'는 네덜란드 속담이 그림에 담겼다. 교수대 위의 까치는 '함부로 남의 험담을 퍼뜨리고 다니지 말라, 권력의 무서움을 모르고 경솔한 언행을 하지 말라'는 뜻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까지는 스투디움의 그림읽기였는지 진중권은 과연 그럴까? 라는 질문을 던지며, 푼크툼으로의 그림읽기로 안내한다. 즉, 그림 속의 교수대는 스페인의 지배를 의미하고, 그 아래서 춤을 추거나 거기에 똥을 누는 것은 스페인의 권력에 보내는 네덜란드 민중의 조롱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교수대 아래서 춤을 추거나 교수대에 똥을 눈다는 속담은 완전히 의미가 달라져, 더 이상 권력의 무서움을 무르는 철없음이 아니라 죽음과 권력을 조롱하는 민중의 용기를 상징한다고 한다. 오호~ 나는 이 해석이 맘에 들었다.^^ 교수대 위의 까치 부분 그림을 친절하게 떼어서 보여주는 편집도 맘에 든다. 





조반니 프란체스코 카로토의 '그림을 든 빨간 머리 소년'과 요하네스 굼프의 '자화상'. 해석의 바벨탑에서 보여주는 조르조네의 '폭풍우'와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 고야가 별장의 벽에 그려 넣었다는 '검은 회화'에 얽힌 이야기와 해석도 흥미로웠다. 고야의 그림을 잘아는 아들이 그려넣었다는 걸 알지만 그 가치를 인정해주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교수대 위의 까치는 세 번이나 읽었지만 틈날 때마다 하나씩 다시 보기 하는 맛도 좋은 푼크툼으로의 그림읽기는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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