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미래의 고전 1
이금이 지음, 이누리 그림 / 푸른책들 / 2009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이금이작가는 내게 첫사랑 같은 작가다. 하하~~ 그렇다고 동성연애를 한 것은 아니다. 내가 좋아한 작가였는데, 처음으로 친필사인본을 받은 작가라 더더욱 첫사랑이라 부른다.^^  

이금이 작가가 사인하고 남긴 멘트처럼 책으로 맺어진 소중한 인연에 행복을 맘껏 누린다. 특히 저자의 사인본으로 읽으며 누린 호사는 자랑하고 싶어 근질거릴 지경이다. 지난 토욜 벚꽃잎이 눈처럼 날리는 도서관 벤치에서 첫사랑을 탐독했으니 이보다 더한 호사가 있을까? ^^

 

내 발 아래 떨어진 꽃잎들과 눈을 맞췄고, 책을 읽고 내려오면서 눈처럼 쌓인 저 꽃길을 걸었다. 아~ 그 누구의 팔짱을 끼지 않아도 마음 속 첫사랑을 추억하기엔 안성맞춤인 꽃길이 아니던가!^^

 

나의 첫사랑은 중학교 때 노총각 수학선생님으로, 산수를 싫어하던 내가 눈에 불을 켜고 수학을 공부하게 만들었다. 선생님을 얼마나 좋아했던지 아이들이 풀지 못하는 문제도 손들고 나가 칠판에 척척 풀어내는 신끼(?)를 발휘했으니, 내 생애 두 번 다시 오지 않은 신끼였다.ㅋㅋㅋ 선생님을 두고 2학년 때 인천으로 전학오면서 열병처럼 앓던 나의 첫사랑은 막을 내렸다.ㅜㅜ 

그런 감정이 다시는 안 올 줄 알았는데, 고등학교 때 케네디를 닮은 선생님을 좋아해 그 눈에 띄어 보려고 부단히 노력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땐 좀 더 대범해져서 세 아이의 아빠였던 선생님께 선물을 하고, 졸업하고도 그 이웃에 살던 친구를 꼬드겨 선생님 집에 놀러갔었다. 선생님이나 사모님도 내가 좋아한다는 걸 아셨고 아무 때나 놀러오라고 하셨지만 자주 가지는 못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나도 결혼하고 세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친정에 갈때마다 선생님을 만나고 싶었지만 가지 못했고, 이웃에 살던 친구에게 근황만 듣고 왔다. 10년 전 쯤, 내 모교의 교장이 된 선생님이 EBS에 나온다는 친정언니의 전화를 받았다.  

"너, 그 선생님 되게 좋아했잖아~ 지금도 좋아하냐?" 
"그럼, 일편단심 내 마음이 변하겠어!"
 

그 후 모교 교장실로 전화를 드렸더니 내 이름만 듣고도
"너, 눈 쬐끄만 순오기잖아!" 하셨다. 우하하하~ 20년이 지났는데도 기억해 주시니 그 황홀함이 첫사랑으로 설레일 때와 다르지 않은 무한감동으로 다가왔다.^^ 그 후에도 가끔씩 전화만 드렸을 뿐, 아직도 만나진 못했다. 선생님께선 내가 인천에 오면 연락하라고 하시지만, 내 첫사랑의 환상이 깨어질까봐 겁나서 못 만난다. 그때 내 마음에 담긴 그 모습 그대로 영원히 간직하고 싶다.^^

벚꽃잎이 눈처럼 내리는 벤치에서 첫사랑을 읽으며, 내 첫사랑을 추억하는 그 아찔한 황홀경을 선생님은 아시려나? 작가도 서문에서 밝혔듯이 어떤 사랑이든 몇 번째 사랑이든 그 마음은 첫사랑과 같을 것이라는 말씀에 동감이다. 두근거리는 첫사랑의 추억을 간직한 쉰 개의 나이테에도 사랑이 찾아온다면, 혹은 이순과 고희에 찾아온 사랑도 다르지 않을 거라 짐작한다.  

첫사랑, 그 떨림과 서투름을 우리의 주인공 동재도 겪게 된다. 나흘 전 아빠의 재혼으로 뒤엉킨 가시덤불이 찔러대는 '하필 그 때' 한줄기 햇살 같은 연아가 나타난 것이다. '연아가 어떻게, 왜 좋은지 설명할 수 없고, 한 교실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이런 감정은 첫사랑을 경험한 모든 이가 공감하리라.  

새혼가족이 된 동생 은재에게 코치를 받아가며 연아에게 다가서고 선물을 주며 프로포즈를 하는 초등 6학년이 내겐 너무 낯설었다. 우리 세대는 행여나 누가 알까 부끄러워 내숭을 떨었는데, 당당히 선언하고 사귀는 요즘 아이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는 즐겁지 않았다. 초등 6학년 때 나를 좋아했다는 소년은 30년이 지난 동창회에서, 내가 있으면 변소도 못 갔노라는 고백을 했었다. 내가 생각하는 첫사랑의 감정은 이런 떨림이고 부끄러움이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TV의 짝짓기 프로그램에서 여과없이 보여지는 행태를 모방하고 답습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이런 내가 보수적이고 시대에 뒤떨어진 엄마라도 할 수 없지만, 내게 첫사랑은 여전히 떨림이고 서투르기에 아름답다.  

책을 읽은 중2 막내는 "요새 애들 정말 웃겨!" 라는 말로 스스로 어른이나 된 듯, 철부지 초딩들의 첫사랑에 조소를 보냈다. 하지만 그 마음을 잘 묘사한 작가의 표현에 동감하며 "이금이스럽다!"는 말로 감상을 피력했다. 이금이 작가의 작품을 서른 권쯤 보았으니, 자기 마음에 담긴 이금이 작가의 이미지와 스타일에 익숙한 독자로 내린 평가였다. 덧붙이길, "이금이샘은 아들 딸도 다 컸는데 어떻게 초딩들 마음을 이렇게 잘 그려냈지? 난 초등 졸업한 지 2년밖에 안됐어도 요새 초딩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던데!" 라면서 감탄했다. ^^  

동재 아빠의 조언처럼 '사랑은 타이밍이 중요하지만, 움직이고 변하기에 제대로 유지하려면 끊임없이 페달을 굴려야 한다'는 자전거 사랑학을 배워야 한다. 동재 엄마와 헤어지고 은재 엄마와 새로 꾸린 가정을 가꿔가는 중년의 사랑이나, 젊은 날에 이루지 못한 사랑을 황혼기에 완성하는 앞집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노년의 사랑까지, 모든 사랑에 최선을 다하면 해피엔딩이다. 동재의 서투른 사랑을 거절한 연아도 동재와 함께 했던 모든 일이 나쁘지는 않았을 테고, 지금 동재에겐 아픈 기억일지라도 훗날 되새긴다면 아름다운 첫사랑으로 기억되지 않을까?  

작가의 따님이 그린 표지 소년의 발그레한 볼과, 가슴에서 솟아나는 사랑의 하트처럼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되길 바란다. 자녀들의 첫사랑이 궁금하거나 혹은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같은 나의 첫사랑을 떠올리고 싶다면, 동재의 첫사랑에 퐁당 빠져보시라!^^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요즘은 '재혼가정'이라 하지 않고 '새혼가정'으로 바꿔부르는데, 이 작품에서도 '재혼'이라 하지 않고 '새혼'이라 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어린이부터 다양한 독자층을 확보한 이금이 작가의 위력이라면 '재혼'을 '새혼'으로 바꿔부를 수 있게 인식전환을 도모했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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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9-04-16 0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억이 묻어나는 리뷰네요^^

순오기 2009-04-16 18:29   좋아요 0 | URL
하하~ 첫사랑의 추억이 묻어나죠.^^

마노아 2009-04-17 2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작가님 따님이 표지를 그렸어요? 예술을 하는 가족이군요.^^
첫사랑의 떨림과 풋풋함이 아름답지만, 그 이후의 사랑도 모두 아름다운 모습들이 있는데 드라마에선 넘흐넘흐 첫사랑에만 매달린다는 거죠. 특히 남자는 첫사랑을 못 잊는다는 설정들이 맘에 안 들어요.(쓸데 없이 버럭하는 외로운 처녀 마노아...;;;;;)

순오기 2009-04-17 09:07   좋아요 0 | URL
하하하~ 드라마가 외로운 처녀의 심기를 건드렸어요.ㅋㅋ
작가의 따님은 미국에 교환학생으로 가서 자유를 누리는 빛나는 청소년이에요. 부럽더라고요~~ 벼랑도 그리고 여러 작품을 그렸는데, 엄마는 소설쓰고 딸은 삽화와 표지 그리고~ 정말 환상적인 조합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