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떠나는 산티아고 순례길 가이드북 - 2022-2023 최신판 #해시태그 트래블
조대현 지음 / 해시태그(Hashtag) / 202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여행 책자를 제대로 보는 건 두번째인것 같다. 8개월간 미국에 있으면서 바이블마냥 들고다녔던 미국 서부 안내책자, 그리고 두번째가 바로 해시태그의 "처음 떠나는 산티아고 순례길 가이드북"이다.

대학시절 제2외국어로 3학기나 스페인어(난 '서반아어'란 표현이 더 좋다)를 했는데, 늘 동사변형에서 막히곤 했던 기억이 난다. 덕분에 에스파냐어 실력은 전무한 수준... 그래도 스페인에 대해 남다른 특별한 감정을 갖게 된 것은 덤. 언제고 스페인어를 다시 배우고 싶다는 건 부담. 이런 느낌도 20년이 넘은 상태라 흐릿해질즈음인데,, 그 생각이 이 책을 통해 다시 떠오른다.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한 이야기는 국내방송 걸어서 세계여행인가 하는 TV프로에서 몇번 접한 것 같다. 이제 생의 반을 돌고, 작년에는 친우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는 경험을 하면서 저 순례길을 걸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늘 그렇듯 how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생각에 머물게 된다.

그런데 산티아고 순례길 가이드북은 how에 대한 걱정을 말끔히 걷어준다. 순례길을 떠나기 전의 마음가'짐'과 배낭'짐'을 얼마나 덜어내야 하는지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걸어가면서 나의 몸에서 가장 천시받는 '발'을 얼마나 소중히해야 하며 어려움이 있을때 어떻게 해야할 지 자상하게 가르쳐 준다. 이렇게 첫 출발의 마음의 '짐'들을 최대한 덜어내어 주고 마음을 편안하도록 가르쳐준후 순례길의 여정을 시작해준다. 아마 저자 조대현이 사업에 실패한 후 7번 순례길을 걸으면서 매번 덜고, 덜고 덜어서 마침내 남은, 하지만 시작할 때 정말 중요한 알짜의 것들을 이 책에 남겨주었기 때문일지 모르겠다.

산티아고, 즉 성 야곱의 무덤이 있는 이곳으로 향하는 순례길은 매우 많다고 하지만, 이 책은 가장 유명하고 잘 정비되어 있는 '프랑스길' 즉, 프랑스 생장피드포트에서 출발하는 800Km 구간의 순례 여행길을 안내해준다. 매일을 20~30Km 정도로 나누어 33일간의 코스로 세분화한다. 물론 코스는 짜기 나름이고 어느 구간에서 구경을 위해 더 짧게 어느 구간은 더 걸을 수도 있지만, 그가 짜놓은 구간을 보면 한 달이상을 꾸준히 걷기 위해 최상의 코스를 보여준것 같다. 하지만, 그가 이야기한대로 이 코스는 다시 내 자신의 몸과 마음의 상황에 맞게 다시 변주될 수 있다.

각각의 날짜가 챕터가 된다. 각각의 날의 걷는 특징을 한 줄로 요약해주는데 처음엔 그러려니 했지만 뒤로 갈수록 그 한 줄 만으로 하루동안 걸어야 할 코스의 난이도와 그를 위한 나의 마음가짐을 순간 깨닫게 되는 게 놀라웠다.

자세한 코스가 수평적으로 그리고 단면적(고도)으로 제시된다. 평지인 길, 산으로 가파르게 오르는 길, 고원이 펼쳐진 길, 숲속을 통과하는 길, 종종 찻길 옆으로 가면서 위험할 지 모르는 길들. 내려갈 땐 몸이 편할지 모르지만, 오히려 발이 접질릴 위험이 있으니 조심해야 하고, 자갈길이 이슬이나 비/눈과 만나 미끄러울 수도 있는 길들. 한편으로 스페인의 옛 것이 잘 보존된 성당, 집들을 만나 듯 책을 읽고 있는 나를 느끼게 되기도 한다.

후단으로 갈수록 전단에 안내된 지식적 측면의 이야기들이 반복되지 않고 압축적으로 표현되기에 20일 쯤 지난 후부터는 저자가 순례하면서 만났던 동료들과의 이야기가 종종 나온다. 그것도 좋다. 실제 순례의 반 이상을 돌면 몸의 부담 보다도 마음의 부담들, 외로움이 더 다가올테니까.. 하지만 순례의 길을 외롭지 않은가 보다. 저마다 마음의 짐을 내려놓으려는 이들이 오다보니까 순례의 길에서는 모두가 친구가 되는 것 같다.

800Km, 프랑스길. 그 길을 33일의 여정에서 순례의 동지들과 함께 걷는다. 33일이란 것이 예수님이 돌아가실 때의 나이니까, 하루하루를 1년으로 잡으면 예수님의 생애노정을 따라간다는 의미도 될 것 같다. 아마 저자가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만, 33일로 나눈 의미가 있을 것 같디고 하다. 물론 순례의 길은, 저자가 자세히 안내해준대로 300km, 200km, 110km로 단축된 코스도 있다. 내가 약하면 약한대로 강하면 강한대로 선택하면 된다. 순례의 길은 나의 길이니까.

그 가운데 많은 풍광들을 맘 속에 간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 책에서 코스 곳곳의 사진들로 가득하다. 그래서, 책을 다 읽었을때 마치 순례길을 한번은 가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럼 이제 난 2번째 순례의 길로 갈 수 있는 용기가 솟아나겠지. 책을 다본후 앞부분을 다시 살펴본다. 본격적인 일정의 시작 앞에 "기적의 미셀(Michel)"이란 한 노년의 남성이 이야기는 나도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준다. 나도 저자처럼 산티아고의 목적지에서 동료 순례자들과 웃는 얼굴의 사진을 찍어보고 싶다.

순례길에서 가장 큰 행복은

하루의 걷기가 끝날 때,

전날보다 더 나아진 자신을 느낄 때이다.

내가 걷는 이 길이 나를

더 행복하게

만들어주었으면 좋겠다.

조대현, '처음만나는 산티아고 순례길 가이드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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