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도에 떨어져도 음악 - 멋대로 듣고 대책 없이 끌리는 추천 음악 에세이 
권오섭 지음 / 시공아트(시공사)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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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어렸을 때 그러니까 당시 국민학생이라 불리던 10세 전후에는 동요 이외에 딱히 알던 노래가 없었다. 가끔 TV에서 듣게 되는 유행가는 있었지만 즐겨 부를 만큼은 아니었다. 생각해보면 그 때까지 아직 음악에 대한 호불호(好不好)가 없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음악 때문에 충격을 받은 일이 생겼다. 6학년 가을 운동회 때 여자애들이 준비하던 매스게임(단체로 리본을 들고 율동을 하는 것이었다.)에 사용된 음악을 듣는 순간 가슴이 뛰어서 너무 놀랬다.

바로 아바의 'Super Trooper'였다. 아바의 곡의 사촌 형의 LP판으로 한 번 들었었지만 기억하기 있지 못하다가 운동회 준비를 통해 이 후 계속 좋아하게 되었다. 지금도 아련하게 처음 들었던 때의 느낌이 기억난다. 나중에 당시 친구들의 많은 수가 여러 경로로 아바를 알고 있었다는 사실에 또 한번 놀랐다. 


필자가 소유한 최초의 것은 LP도 아닌 새것도 아닌 중고 테이프였다. Super Trooper’와 ‘Honey Honey’가 포함된 아바의 앨범이었다. 이 테이프가 늘어나서 이상한 소리가 날 때까지 들었다. 중학교 시절에는 퀸이 대세였던 것 같다. 필자의 아버지가 외국에서 사오신 소니 공 테이프를 하나를 주는 조건으로 퀸을 녹음해준다는 친구에 말에 필자는 또한 번 벽을 느끼게 되었다. ‘퀀이 뭐냐?’ 중학생이 되면서 부모님이 ‘포터블카세트’를 사주셨다. 당시에는 음향기기를 사면 데모용 매체를 하나씩 주었는데 당시 금성사는 척 멘지오니의 ‘Feel So Good’를 대우전자는 가제보의 ‘I Like Chopin’이 포함된 데모 테이프를 주었다. 이 두 테이프를 시작으로 필자는 음악을 찾아 듣기 시작했다. 라디오는 중학교 시절부터 듣기 시작했다. 좀 빠르게 팝을 듣기 시작한 친구들에 비하면 많이 늦은 것이었는데 일단 늦게 시작한 만큼 흡수는 빨랐다. 우리 세대라면 거의가 해보았을 일들 예를 들면 라디오에서 음악을 틀어주면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하여 나만의 앨범 만들기. 레코드 점에 원하는 곡을 적어서 테이프를 만들어 달라고 주문하기 등등… 

대학생이 되어서야 집에 LP가 생겼다. 동생이 직장에 다니면서 음반을 모으기 시작했다. 나도 중고앨범을 몇 장 사기는 했지만 여전히 이동하면서 음악을 듣기에는 카세트테이프가 더 좋았다. 그랬기 때문에 나의 첫 LP는 정작 선배가 사주었다. 척 멘지오니의 ‘Children of Sanchez’ 앨범이었다. 그 형은 군대가 가기 전날에 이걸 사주어서 지금도 기억이 난다. 또 당시에는 CD가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역시 플레이어 가격이 만만치 않아서 역시 테이프 구입이 더 많았다. 필자가 처음 구입한 CD는 수전 베가의 ‘Tom Dinner’였다. 플레이어가 없어서 4년 후에야 들어볼 수 있었다.

둘째 동생이 음반회사를 다니게 되면서 집에는 음반이 갑자기 많아지기 시작했다. CD는 물론이고 LP도 많이 늘었다. 필자도 직장에서 월급날 팀 동료들과 음반을 하나씩 사서 돌려 듣는 습관이 생겼고 집의 한쪽 벽에는 아예 CD LP만 놓는 장이 들어섰다. 동생은 잠깐 플로스레시브와 해비메탈 담당을 한 후에는 앨범의 대부분이 이들 장르였다. 대부분의 난해한 음악이었고 뉴트롤스, 쉐이드를 알게 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재즈음반도 꽤 수집했기 때문에 하루 종일 집에 있는 날에는 동생의 재즈 음반중에서 괜찮은 곡을 찾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었다. 당시에는 GRP(데이브그루신, 리리트너, 펫메시지) 레이블을 많이 들었던 것 같다.


 

필자는 클래식, OST, , 가요를 주로 수집했는데 말랑 말랑한 음악을 싫어하는 동생이 본의 아니게 음반을 정리하면서 내 OST들을 팔아 버리기도 해서 약간의 분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필자의 책은 사실 이전에 몇 권의 입문학과 정치 관련 책을 읽고 나서 머리를 식힐 요량으로 든 책이다. 옴니버스 형식의 책 구성도 그리 좋아하지 않고 ‘뭐하기 좋은 음악 100선’ 이런 식의 선곡도 딱히 좋아하지 않아서 별 기대 없이 잡아든 책이다.

 

저자는 소위 486 세대라고 볼 수 있는데 치열했던 젊은 시절을 보내면서 아날로그 문화의 전성기를 겪은 분들 중에 하나일 것이다. 요즘 20대는 알 수도 없는 정치적인 격동기를 겪었고 경제적으로는 늘 부족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문화적으로는 다양성의 혜택을 충분히 겪은 세대이다.

저자가 지금 작곡가로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책을 쓸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것은 어린 시절에 충분히 흡수한 순전히 아날로그적 감성과 경험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책에서 소개하는 앨범의 호불호(好不好)를 떠나서 이런 문화적인 자산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부러울 따름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에서 소개된 앨범 중에 딱 만반 좋아한다. 필자는 그냥 듣기 좋은 음악을 좋아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호텔 캘리포니아도 딱히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반 정도는 그냥 기계적으로 읽어나갔다.

그러나 나머지 반은 나름 필자도 좋아하는 곡이고 또 그 중에 반은 매우 좋아라 하는 곳이라 그 부분을 읽을 때는 느낌이 좀 더 다르다. 또 그 중 반은 본가 CD장에 지금도 있고 CD_R 어딘가에 MP3로 변화되어 있을 것이다. 이 곡들은 지금은 거의 안 듣는다. 정확히는 요즘 음악을 잘 안 듣는데 그래도 이 곡명들을 보거나 듣는 것 만으로도 이 곡과 관련된 나의 극히 개인적인 추억들이 되살아난다.

 



 

 

최근 요행하는 곡들이 20년 정도 지난 후에 어떤 이들의 추억으로 남고 누군가는 여전히 계속 들으면 꼽십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건 아날로그 감성이 가지는 강점 중에 하나이다. 아날로그 감성을 먹고 자라고 디지털 감성을 만들어온 세대로서 그 문화적 풍부함이 내 안에 있다는 것에 너무 감사한다아날로그 감성을 모르는 세대라면 선배/부모들이 듣던 음악을 진지하게 들어보면서 가슴이 따스했던 그 들을 이해하는 기회를 가져볼 것으로 감히 조언해 본다.



 
 
 
아프리카에는 아프리카가 없다 - 우리가 알고 있던 만들어진 아프리카를 넘어서 
윤상욱 지음 / 시공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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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에는 아프리카가 없다– 같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 대륙아프리카


붕어빵에 붕어가 없다.

붕어빵에 붕어가 없어도 우리는 붕어빵 안의 단 팥소를 좋아한다붕어빵 안에는 붕어 내장과 뼈가 들어가야 하겠고 최소한 붕어빵에 조금의 생선살이라도 섞여야 이름에 대한 진실성이 있겠지만 누구도 따지는 사람이 없다‘붕어빵에는 붕어가 없다.’라는 말은 그냥 웃자고 나온 말이고 붕어빵 자체보다는 다른 것들의 모순을 빗대는 말로 사용이 된다. 

그렇다면 이 책의 제목 ‘아프리카에는 아프리카 없다’가 의미하는 것은 어떤 것일까?



아프리카자세히 물어보면 들어나는 실상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프리카’을 알고 있다잘 알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유럽 바로 밑의 거대한 대륙 아프리카를 알고 있다고 말하고 그곳에는 흑인이 살며초원과 밀림 지역에 동물의 왕국(?)이라 말한 것이다좋다 그럼 더 말해보라고 하면 아프리카 인들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검은 피부를 가졌고 등등… 그럼 됐고 아프리카 나라들을 말해 보라고 하면 ‘케냐가봉이디오피아이집트콩고리비아리비아’을 말한 것이다그런데 나라 이름을 나열하면서 머뭇거리기 시작한다리비아는 얼마 전 시민혁명으로 TV에서 자주 봐서 아는 나라이다그런데 수없이 TV에 나오던 ‘가다피’의 얼굴색을 생각하니 리비아가 아프리카 국가인지 헛갈리기 시작한다리비아는 분명 현재의 아프리카 대륙에 있다지중해 연안의 북아프리카 지역에 위치한다그리고 인종적으로는 아랍인으로 본다정확하게는 아랍인과 흑인의 혼혈이지만 문화적으로도 아랍권에 속한다우리가 익히 아는 아프리카 인은 피부가 극도(?)의 검은색이다그런데 리비아 인은 그렇지 않다동양인의 피부와 흑인의 피부 중간 정도에 이목구비가 또렷하다그럼 리비아인은 아프리카 인이 아닌가?
그런데 이런 혼란은 리비아로 끝이 아니다 바로 이웃 이집트를 보자 이집트는 분명 아프리카에 있다그런데 우리가 잘아는 클레오파트라 영화에 보면 신 이집트 왕조의 후기 권력자인 클레오파트를 연기한 여배우는 서양인이다그리고 왕궁의 고위 관리들도 거의 피부색이 갈색에 가깝다물론 영화가 헐리우드에서 만들어졌다면 미국인 배우를 써야 하니 당연한 거 아니냐아프리카인과 동일한 외모에 연기력을 갖추 배우를 어디 찾겠느냐할 것이다맞는 말이다그러나 만일 클레오파트라가 다큐멘터리에서 볼 수 있는 중남부 아프리카인의 모습이었다면 로마의 권력자 안토니우스가 그녀의 유혹에 넘어 갈 수 있었을까?

우리가 알고 있는 아프리카에 대한 고정 관념부터 깨보자

  1. ‘아프리카 관련된 뉴스나 이야기에 자주 등장하는 나라들인 이집트나 리비아는 정확하게는 아프리카 인의 나라가 아니다국민의 대다수가 성경 창세기에 나오면 샘 인종이다아랍계 인종에 속한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프리카라는 명칭의 어원은 고대 아랍인들이 ‘태양의 땅’이라는 말하던 지중해 남부 지역즉 지금의 북아프리카에 국한된 명칭이었다.
  3. 아프리카는 동식물의 천국이다물론 아프리카는 여전히 다른 대륙에 비해 인간이 손대지 않은 자연이 많아서 동식물의 다양성이 크고 개체수도 상당히 많은 대륙이다그러나 우리가 동물의 왕국에서 보았던 장면들의 대부분의 중부의 특정지역에서 촬영된 것들이다‘마사이마라’세렝게티’‘오카방고’ 등등 중부 또는 중남부 중에서 특정 지역으로 전체 아프리카 대륙에 10%가 될까 말까 할 정도의 지역이다아프리카에는 세계 최대의 사막인 사하라는 대륙의 20% 이상을 차지하고 있고 그 크기는 매년이 엄청난 속도로 확장하고 있다더구나 동물의 왕국도 비가 몇 달 동안 전혀 안 오는 건기에는 제 아무리 사자라도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기도 하는 곳이다.
  4. 아프리카에서는 천연자원이 많이 생산된다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리다천연자원이 많이 매장되어 있긴 하다 대륙자체가 지구상의 다른 대륙보다 오래되고 개발도 최근에 시작해서 매장량은 많다하지만 개발 기술이 전무하여 채굴권은 대부분은 서구국가(이 중 대부분은 과거 그들의 식민지배 국가들)의 대기업들이 소유하고 있어서 생산량 중 매우 작은 부분만 아프리카의 것이 된다.
  5. 흑인들은 게으르고 지저분하다현실이 어려우니 대다수가 빈민층 이하의 삶인 상황에서 청결은 문제조차 되지 않는다공식 실업률만 20%에 육박하는데 안정적인 취업 상태가 아닌 사람들까지 산정해 본다면 수치는 2~3배가 될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이런 상황에서는 설사 아프리카 인들이 게으르지 않다고 해도 현실에 위안이 될지는 의문스럽다.



몇 가지 나열하고 그 진위에 대해 잠깐 나름의 설을 풀어보았는데 그 진위나 목적이 무엇이건 간에 아프리카에 대한 이야기들의 대부분이 부정적인 것들이다인종차체에 대한 혐오뿐 아니라 아프리카의 정치/경제 등의 상황을 생각해 보면 아프리카 스스로도 타인들의 선입견에 기여한 바 크다.

우리가 알고 아프리카와 실제 아프리카와는 차이가 많다는 것이다우리(대부분의 비 아프리카 국가들)가 잘못 알고 있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첫 번째 이유는 지리적 고립성 때문일 것이다사하라 이남 지역은 통과하기에 어려운 거대한 사하라 사막은 물론이고 수면증을 일으키는 흡혈 파리가 창궐하는 밀림 때문에 19세기 말까지도 이동이 거의 불가능하였다두 번째는 노예무역에 대한 정당성 부여를 위해 아랍인들이 아프리카 인에 대한 왜곡을 시작했고 그 뒤를 이어 유럽의 노예상과 노예를 사들인 기독 인들이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성기 위해 아프리카 인들에 대한 철저한 왜곡을 해왔기 때문이다세 번째는 바로 아프리카인 스스로 그렇게 만들었다.

 

우리가 아는 아프리카는 아랍인과 서구인들에 의해 철저히 왜곡된 지식에 의거하기 때문에 우리가 아는 아프리카에는 진정한 아프리카가 없다는 것이다.





남들이 지어준 이름 – 아프리카

아프리카는 그 이름부터 진정 아프리카를 대표할 만한 이름이 아니다. ‘아프리카라는 명칭은 아랍인들이 처음 쓰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그 어원은 태양의 땅이라는 의미이다아랍인들이 지중해 납부 지역을 지칭하던 말이다필자도 앞에서 아프리카의 지리적 고립성을 이야기 했듯이 수면 병 때문에 사하라 이남 지역으로 이동이 거의 불가능했다지중해에 접해 있는 북부 아프리카는 이미 오래 전부터 이집트가 자리잡고 있었고 알렌산더의 정복시기에는 지금의 리비아에는 마케도니아 인들의 식민지가 있었다현재도 이 지역은 아랍계가 주로 거주한다아랍상인들도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에 대해서는 궁금해 했고 오래된 아랍의 기록에 현재의 킬리만자로에 대한 기록이 있는 것을 봐서는 소수의 아랍인이 중부 아프리카지 들어갔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사하라 이남의 지역에 대한 아랍인들의 관점은 호기심 보다는 두려움에 가까웠다미개하고 호전적인 종족어두운 밀림무서운 독충과 괴물들의 땅으로 인지하였다이런 선입견은 서구열강이 식민지를 건설하는 과정에서도 여전히 계승(?)되어 아프리카의 미개성과 사악한 면을 강조하면서 식민지배의 당위성의 도구로 사용되었다.

 

수단이라는 명칭은 고대 아랍어로 검은 땅이란 뜻인데 검다는 의미가 단순히 아프리카 인들의 피부색만을 의미 하는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구약시대에 아프리카인 들의 조상은 갈색 피부였는데 죄(성교를 너무 좋아해서 아프리카 인들의 성기가 크다는 이유로 일방적으로 강요한 선입견이다.)를 지어 피부가 타 들어 갔다는 설명을 하면서 신에게 죄를 지었고 동물 같은 존재인 아프리카 인들에게 고통을 주는 것의 정당성을 확보하게 된다.

 

 

 

우리가 제대로 알고 있는 것도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우리가 아는 아프리카에는 정말 아프리카가 있었다아프리카라는 이름부터가 타인들이 붙여진 이름이고 그들의 삶도 타인에 의해 정해진 한계가 많았다심지어 정체성까지는 왜곡되었는데 그 결과는 너무나 참혹하여 아프리카인 스스로 자신들의 정체성에 대해 혼란을 겪을 정도이다그런데 이런 역사적 배경으로 인해 아프리카 인들에게는 현실의 많은 부정적인 문제들을 과거 식민지배 시기와 식민지배를 한 유럽국가들의 책임으로 돌리는 의식이 자리잡고 있다자신들이 가난한 이유도 전쟁이 끊이지 않는 이유도 모두 식민지 지배 때문이라고 한다그런데 아프리카인 들의 현실을 자세히 살펴보면 현재의 문제가 온전히 식민지배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어 보인다.그런 시각을 가지고 모든 식민지배를 겪은 국가들을 바라보면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비현실적인 경우가 된다아프리카의 경우는 제국주의 시대 이전에 이미 노예사냥이라는 심각한 문제를 겪었다이 것이 식민지배 보다는 더 큰 타격을 안겨주었다고 보는데 남녀 젊은이와 어린아이까지 잡아가는 바람에 사회구성 자체를 흔들어 버리는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이다그런데 이 노예사냥의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르게 아랍과 유럽의 노예상인들 보다는 타 부족즉 아프리카인들 스스로에 의해 자행되었다싸구려 물건으로 유혹한 노예상인들이 잘 한 것은 아니지만 그들에게 넘어가 전쟁포로를 팔거나 물건과 교환할 욕심에 본격적으로 타 부족을 사냥하기 시작했다경쟁 부족의 씨를 말린다는 효과까지 노린 것이다생존으로 위한 방편이었지만 오랜 동안 타 지역부족에 대한 불신이 컸던 아프리카 사회의 특성은 노예사냥을 계기로 타 경쟁부족과 한 번도 본적은 없는 잠재적인 경쟁자까지 파괴하는 극단적인 사회 현상을 확대 된다현재 아프리카 사회 전반에 뿌리 박혀 있는 부족 중심주의는 이 사건의 영향이 크다고 볼 수 있다.

 

유럽인들의 식민지배를 탓하기 전에 노예사냥에 대한 심각한 고찰이 필요해 보이지만 이런 사실을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는 아프리카인들 대다수이다.문제의 해답을 자신들에게서 찾으려는 노력보다는 식민지배를 했던 유럽국가에 돌리면서 자신들의 문제는 덮어 버리고 있다.

예의 바르게(?)도 대부분의 유럽국가들은 과거 식민지배에 대한 보상이라고 하듯이 아프리카 지역에 막대한 원조를 해왔고 지금도 하고 있다특히 과거 식민지역 국가에는 좀 더 각별한(?) 관계를 가지는 데 이런 각별한 관계 중에는 양국 모두에 나쁜 영향을 주는 나쁜 사적(?) 관계도 있다최근에 이 문제가 불거져 프랑스 정계가 시끄럽다.

 

유럽을 비롯한 전세계의 원조는 아프리카의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프리카의 미래는 여전히 어둡다당장에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한 원조는 결과적으로 아프리카 인들을 의지 박약으로 만들고 있다. 60년대부터 시작된 원조는 아직도 여전하지만 사하라 이남 대부분의 아프리카의 불행은 독립 직후 보다 더하면 더 했지 나아진 것이 없다.

 

앞에서 언급 했듯이 아프리카인 들의 뿌리깊은 부족간의 갈등과 바로 뒤에서 이야기할 극도로 타락한 정치상황은 국제적인 지원도 무색하게 할 정도이다.

 

 



부끄러운 손이고노믹스여전히 어두운 밤.


이고노믹스잘 지은 명칭인 것 같다국가의 경제가 살아야 국민의 삶도 나아지는데…(이거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은데…^.^;;;;) 대부분의 아프리카 경제는 현재 원조에 의존하고 있다앞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원조는 말 그대로 배고픔을 구제하기 위한 도움이다아무리 규모가 크다고 해도 원조로 국가 경제를 지탱할 수는 없다또 원조는 타인에 의지에 의한 것이라 언제라도 끊겨질 수도 있다는 점에서 아프리카의 원조경제는 위험하기 짝이 없다

국제사회는 어마 어마한 규모의 원조를 아프리카에 하고 있다또 아프리카의 자원을 담보로 큰 규모의 투자와 대출을 하고 있는데도 아프리카의 경제는 오히려 후퇴를 하고 있다그 이유는 바로 대부분의 아프리카의 지배구조에 그 문제를 두고 있다.
대부분의 아프리카 국가들은 독재체제하에 있다최근에 시민혁명으로 독재자가 퇴출된 튀니지리비아 그리고 시민의 불복종 운동으로 다소간 정치적으로 유연해진 이집트 같은 북아프리카 국가도 사실상의 1인 독재정치가 이루어져 왔다아프리카 사회의 특성상 한 부족의 일원이 권력을 잡으면 같은 부족들이 그 밑에서 정권과 경제권을 독점하게 된다심지어 정권을 잡은(?) 부족은 다른 부족의 씨를 말리는 소위 인종청소가 자행 하기도 한다르완다와 수단의 다르푸르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 국제사회가 경악을 했다.

 

씨족들이 권력과 경제를 장악하게 되면 기다렸다는 듯이 각종 부정부패가 일어난다대통령이 대놓고 자기 이익을 챙기는 마당에 장관들은 물론이고 지방에 하급 관리가 집안찬치(?)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관청의 경비 하나까지도 부족 사람으로 채우니 비위 사실이 적발이 되도 부족끼리니까 서로 눈감아준다지위가 높으면 높은 만큼 낮으면 낮은 만큼 각자의 분량(?)대로 국가 재산에 손을 대는데 대통령 개인의 부정축제만 해도 웬만한 서구 국가의 일년 예산에 가까울 정도라고 한다이에 대한 공식적인 자료는 없지만 국제사면위원회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스위스 비밀은행 계좌의 예탁금만 산정해도 그 정도인 독재자도 있다고 한다거기다가 아프리카의 경제 규모를 고려하면 독재자들의 부정 축재 규모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이쯤 되면 오랜 동안의 어마어마한 국제원조와 서방기업들의 투자가 유입되어도 국민들이 굶어 죽는 상황이 지속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구 소련 붕괴 이후 서방사회는 도덕성인권존중투명한 정치를 원조 조건으로 내걸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그렇지 못한 나라에 여전히 원조와 투자가 진행되고 있는 데는 서구 사회내의 어두운 면도 작동하고 있다석유 채굴권만 따내면 되지 그 이익이 유전지역 주민과 생태계 지원을 위해 사용되던 말던 신경을 쓰기 싫어하는 기업들과 부패한 정권이 찔러주는 쌈지 돈 맛에 그들에게 여전히 원조를 하는 정치인은 모두 부패한 아프리카 독재들과 그 부류가 다르지 않다.

 

국제 사회는 아프리카의 저개발 문제에 보다 신중해지고 있다원조 실적 보다는 그 성과 측정을 더 중시하고 던져주는 것보다는 같이 참여하는 방법으로 접근하고 있다하지만 아무리 좋은 방법도 아프리카 인들 스스로 방법을 찾지 못한다면 아프리카의 문제는 꽤 오랫동안 지속이 될 것이다아니 점점 더 미궁에 빠질 것이다.

 






우리는 북아프리카 시민혁명을 보면서 약간의 기대를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그러나 그 영향을 미미했다재스민 혁명이 성공한 원동력은 학생들이 일으킨 불씨에 시민들이 기름을 지속적으로 부어주었기 때문인데 남아프리카에는 시민계층 즉 하루하루 끼니 걱정을 하지 않아 먹고 사는 문제 이외에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중산층이 너무 부족하다.

 

그래서 아프리카 문제는 우선 국가의 발전과 부가 공정하게 분배되는 정치구조를 가져야 한다는 결론이 도출된다하지만 내부적으로는 그 폭력상황을 타파할 기운이 없다그래서 아프리카 문제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미궁에 빠진다



 
 
 
시크릿 오브 주얼리 - 추억을 간직하는 보석 이야기 
송경미 지음 / 시공사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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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얼리’는 알겠는데 ‘앤틱 주얼리’는 무엇인가? 할 분들이 혹시 있을지 모르겠다. ‘앤틱’이라는 의미가 ‘오래된’ 이란 뜻이니 오래된 장신구 정도가 될까? 저자는 필자의 이런 구태의연한 이런 말 풀이에 ‘나는 반대일세!’ 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앤틱 주얼리’라는 개념은 제작연도로 구분하여 제작된지 100년 정도된 장신구 중에 희소성, 예술성, 제작에 사용된 보석들 자체의 가치 등을 따져서 대략의 기준 이상이 되는 장신구들을 말하는데 저자는 여기에 앤틱의 특성상 처음 제작된 이후 여러 사람들의 손을 거쳐서 현재의 주인에게 오기 때문에 내가 관심을 가진 주얼리가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 보는 것은 ‘앤틱 주얼리’에만 부여되는 가치라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정서상 남이 쓰던 물건을 내가 쓰는 것에 대해서는 다소 부정적인 인상을 먼저 갖기 때문에 앤틱 주얼리에 대한 거부감이 다소간 있을 것이다. ‘집안에 어떤 것이 들어오면 집안에 우환이 생긴다.’ 라는 이야기처럼 어떤 이들에게 중요한 어떤 것이 나의 것이 된다는 것은 결코 쉬운 결정은 아닌 것 같다. 앤틱 주얼리가 대략 100년 전후에 유럽에서 제작된 것들이 주류를 이루다 보니 프랑스 혁명 당시에 왕족, 귀족들이 소유했던 주얼리 중에는 그 주인이 처형된 경우가 종종 있어 이런 사연이 있는 주얼리에 대한 거부감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반면 패션에 대해서는 선진국이라는 서구 유럽국가와 미국에서는 한 동안 앤틱 주얼리가 일종의 유행을 타고 있다. 피자의 글에 의하면 최근 시상식 등에서 유명 연예인들이 최신 스타일의 메이저 주얼리 보다 엔틱 주얼리를 더 많이 사용한다고 한다.



이 책은

스크릿 오브 주얼리- 앤틱 주얼리에 대한 입문서이다.
필자는 이 책을 그냥 가볍게 읽자고 집어 들었다. 제목 만 봐서는 어떤 스타일의 책인지 알기 어려웠지만 책을 본격적으로 읽기 전에 차례와 몇 페이지를 미리 보니 무거운 책이 아니라는 판단을 내려서 무거운 책 두 권을 읽은 후 머리를 식힐 요량이었다.

필자나 필자의 가족들은 주얼리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관심도 없는 사람들이라 보통의 여자들과 매우 스타일쉬한 일부 남자들이 주얼리를 대할 때의 느낌을 이해하기 너무 어렵다. 따라서 저자가 채의 초반과 결론으로 이야기한 것들(자신만의 주얼리 컬랙션을 가져보라는…, 특별한 주얼리는 만났을 때의 느낌….)에 대한 공감을 할 수 없다. 그런 느낌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세상에는 워낙 다양한 사람들이 사니까 같은 것에 대해 이런저런 다른 느낌을 가질 것이고 특정 분야에 대해 필자의 경우처럼 전혀 감흥이 없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필자가 이 책을 읽으면서 도움이 되었던 부분은 2장에서 소개하는 근대와 근 현대의 주얼리의 개략적인 역사이다. 사실 필자가 이 책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이 책에 대해 바랐던 부분이 바로 이 것이었다.



고가 주얼리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

저자가 1장에서 자신이 앤틱 주얼러가 된 이유를 이야기한다. 우연치 않은 어떤 경험이 결국 자신을 앤틱 주얼러가 되게 했고 다른 사람들도 자신의 느꼈던 소중한 느낌들이 함께 하길 바란다고 말한다. 또 책의 결론에서는 주얼리 컬렉션을 장점을 이야기하면서 그 신비롭고 사랑스런 세계를 함께 경험하자도 한다.

저자는 주얼리에 대한 우리나라의 전반적인 인식 부족을 말하는 부분에서 고급 주얼리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에 대해 이야기 한다. 부유층에서 고가의 주얼리를 구매하면서 다른 이들에게 알려지지 않도록 비밀스럽게 구매하는 헤프닝을 소개하면서 이런 행태와 자기의 돈을 쓰면서 남의 눈치를 보는 이상한 분위기를 이해 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 말은 사실이다. 자기 돈을 쓰면서 왜 그럴까? 국내에서 골프를 치러 다니면 이러쿵 저러쿵 말들이 많다고 동남아시아로 골프를 치러 다니는 사람들도 있다. 국내에서 소비하면 우리나라 내수 진작에 도움이 되는데 왜 굳이 해외에 나가서 그래야만 할까? 그 대답은 이 책에서도 약간 다룬 고가의 미술품 수집 문제에서 찾아 볼 수 있다. 필자의 바램처럼 미술품이나 주얼리의 가치를 알아보고 나의 마음에 쏙 드는 것을 구매해서 마음껏 사용하고 때로는 남들에게도 보란 듯이 자랑하면서 즐기는 것은 그 것을 빚을 내서 사던 말던 다른 이의 취향이나 경제 상황에 대해서는 참견 할 바 아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타인의 평가로 나의 존재감을 확인하려는 사람들이 많다. 자존 감이 약하다고 말할 수도 있는 부분이다. 긍정적인 면에서는 내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라는 것을 생각한다는 점도 한 가지 이유이다. 내가 아무리 소중해도 보통의 사람들과 확연히 다른 무언가를 한다고 것은 쉽지 않다. 이런 두 가지 면이 긍정적으로 발휘가 되어 노블레스 오블리제를 따른다면 무엇을 해도 당당하겠지만 우리나라의 많은 부자들(상당 수 졸부 포함)이 세속적으로는 ‘노블리스’인데 도덕적으로는 오블리제를 실행하지 못한다. 그러니 당당하지 못하니 이상한 행동들을 하는 것이다.


이 책은 주얼리에 대해서만 다루지 때문에 이상한 고가 주얼리의 거래 행태의 원인에 대해서 깊게 이야기 할 바는 아니지만 필자가 개인적으로 생각하면 문제에 대해 잠시 언급해 보았다.

막대한 기부를 하고 봉사활동을 위해 몇 달은 아프리카 오지에서 생활하기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고가의 사치품을 구입하고 개인이 소유하기 어려운 제트기를 구입하는 등 악마와 천사를 오가는 개인사를 보여주는 헐리우드 배우들의 삶을 보면 우리의 현실은 좀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기도 하고 다르게 생각해 보면 영영 불가능한 이야기 같기도 하다. 우리네 부유층들 중에는 손이 큰 사람들은 많아도 마음이 큰 사람은 극히 드물다.

 

 

 

 

 

 

이런 우리의 현실을 생각할 때 고급스런 주얼리, 가치 있다고 판단되는 주얼리를 취급하는 시장이 커지고 대중화되기는 상당히 어렵다고 본다. 앤틱 주얼리도 일부 부유층 위주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앤틱 주얼리 샵을 운영하는 ‘주얼러 로서 저자의 좀 고민이 클 것으로 보인다.

 

 




 
 
 

 

김용민 전(ㅋㅋㅋ 인생사 세옹지마라더니…)후보의 막말파동은 결국 선거에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김용민 막말파동의 단초를 제공한 김구라도 결국 자신의 과거 막말에 걸려 넘어졌다. 일각에서 들리는 이야기로는 김구라가 김용민 후보를 지지하는 영상을 만들어 인터넷에 공개하자 김구라가 진행하는 라디오에 나와 김구라와 막말 장단을 맞춘 김용민 전(?)후보 막말인터넷에 화제가 되었다. 참 대단하시게도 빨간색을 쓰는 당의 어떤 의원께서 찾아냈다고 하는데 그 이야기의 진위 여부를 떠나서 선거기간에 그것도 나꼼수로 젊은 층에 상당한 지지를 받던 후보를 향한 다분히 계획적인 흑색선전으로 보인다.

 

 

 

 

아무튼 듣기에 거북한 말 그대로 막말을 한 것이 사실이고 일단 당사자는 할말이 없게 되었다. 상대당의 공세라고 판단해서인지 강경하게 버텼지만 이유야 어찌 되었건 결과적으로 이번 선거에서는 패배 하였다. 후보의 자질 문제를 이야기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사실 과거의 막말제보만 아니었다면 빨간색 좋아하는 당 입장에서는 만만치 않은 상대와개표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싸움을 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항간에 이야기에 의하면 김용민에게 막말을 하게 했다는(?) 당시 라디오 프로그램의 진행자였던 김구라도 결국 도마에 올랐다. 김구라는 공중파에 출연하기 전에는 인터넷 라디오 방송으로 악명을 떨쳤다. SBS공채 동기였던 노숙자, 황봉알과 진행하는 프로그램에서 이 들은 막말 정도가 아니라 육두문자에 노골적인 비하 발언, 계속 듣기 어려운 상식 수준 이하의 이야기들이 난무하던 방송이었다. 이들은 SBS공채 개그맨이지만 무명으로 지내다가 SBS을 나와 재야(?)에서 말초적인 방송을 하여 유명해진다. 이런 저질 방송이 유명해진 것은 그 방송을 즐겨(?) 듣는 이들이 있었고 그들 입장에서는 이들이 쏟아 붓는 욕설이 현실에 대한 비난으로 들리고 나름의 카타르시스(?) 경험했을 것이다.(필자 주변에 이 프로그램의 팬이 있어서 들은 이야기이다.)

 

 

 

김구라가 최근에 TvN을 통해 인터뷰에서 밝혔 듯이 그가 공중파에 입성하면서 방송계에서는 이전의 행적들에 대해서는 용서를 하고 덮어주자는 분위기였다. 김구라 스스로도 막말 보다는 정곡을 찌르는 대화법으로 전환하여 이미지 개선을 시도한다. 또 한 인터넷 발송시절 그에 입에서 평가절하되고 비하되어 갈기갈기 찢어져 버렸던 동료 연예인들에 대해서는 공식적인 채널을 통해서도 사과를 했다. 대표적인 예가 절친노트를 함께 진행했던 문희준이고 신체에 대해 노골적인 이야기를 들어야 했던 이효리에게도 사과를 했다. 일단 그에게서는 과거에 대한 반성과 사과의 모습에 나름의 진정성이 보이고 이후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었던 것 같다. 현재의 김구라의 모습은 여전히 독설가의 모습은 남아있다. 해박하고 폭넓은 지식과 통찰력으로 문제의 정곡을 찌르는 발언은 연예오락 프로에서 새로운 재미를 만들어 내는데 그로 인해 많은 연예오락 프로의 MC을 맡고 있다. 김구라의 방송중단 선언에 그가 출연하는 많은 연예오락 프로그램의 제작진의 고민이 크다고 한다.

 

 

 

 

 

 

 

 

 

 

용서 못할 과거 라면

과거 인터넷 방송시절의 김구라를 찾아봤을 정도이면 김구라가 어떤 사람이었나를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김용민의 경우에는 소위 위트있는 직설화법으로 정치적인 발언을 하던 사람이라 방송에서 막말을 했다는 것이 좀 의외였지만 김구라의 경우에는 다르다. 현재의 모습만 보아도 어던지 삐딱하고 거친 모습이 보인다. 김구라는 막말을 할 사람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그도 인정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의 과거를 덮어 두었던 마당에 갑자기 불거진 10년 전 막말파동은 필자에게는 다소 황당하다. 그가 했다는 정신대 관련 막말은 김구라 본인도 기억이 정확히 안 났을 것이고 이렇게 다시금 인터넷에 유포되지 않았다면 대부분 국민들은 알지도 못했고 기억해 내지도 못했을 과거의 악령이 미래로 날아온 것이다. 오래 된 과거의 일이라도 본인의 기억에서 지워졌다고 해도 과거의 잘못에 대한 책임은 반드시 지어야 하고 묶인 매듭은 본인이 풀어야 한다. 책임지고 사과를 해야 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이런 정의잣대는 매우 편파적일 때가 많다. 어찌 되었던 이런 막말을 하는 사람들는 언젠가는 응징을 받아야 한다면 이런 사람들은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우리가 잘아는 바 거짓말조금 가볍게 이야기해서 뻥을 잘 치는 인간들이 있다. 바로 정치인들이다. 선거 때만 되면 국민의 머슴이라 스스로 칭하지만 임기 4년의 대부분의 주인장 얼굴도 모르는 프리랜서 머슴이다. TV에 나오는 행색을 보면 머슴 티는 예 저녁에 벗어버린 듯 하다. 거기다가 고성방가에 막말도 가끔 할 줄 알고, 심지어 싸움도 좀 하는 것 같다. 몇몇은 국민이 주는 고액의 세비 받아가면 국회에서 개그 같은 짓을 하기도 한다. 우리가 그리 싫어라 하는 정치인만 그런 것이 아니다.

 

 

소위 지도층이라는 사람들이 일반인도 이해가 안되는 상식이하의 짓거리를 버젓이 한다. 대부분이 그들 내부에서 마감을 해버리기 때문에 우리가 모르는 황당한 사건들이 많다.

 

 

 

 

용서하지 못할 과거에도 순서와 정도가 있다. 부적절한 행동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면 그것에도 순서가 있다는 것이다. 남을 판단하기 전에 먼저 자기를 돌아보라고 한 선현의 말씀은 단순히 양심에 생길 상처 때문만은 아니다. ‘인생은 세옹지마라 세상사는 돌고 돌아 언젠가는 그 자리로 돌아온다. ‘큰 자가 작은 자 되고 먼저 된 자가 나중 되리라한 성경의 말씀은 남을 정죄함에 있어 스스로를 돌아보고 나서 신중할 것을 권한다. 내가 누군가에게 던진 돌이 되돌아 나를 칠 수 있다는 것이다. 남의 허물이 실상은 거울 앞에서 나의 것을 보는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무슨 무슨 하는 헤프닝 들에서 우리는 사회는 작은 각성들을 했었다. 전후 사정도 모르면서 당사자 중 일방의 격앙되어 경솔할 수 있는 이야기(변명이나 진술)만을 듣고 상대를 지옥에 쳐 넣는데 아무 생각 없이 일조했던 사람들은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 성인군자가 아닌 아니기에 언젠가 나도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마음의 공허는 사랑으로 채워야 한다.

 

 

오늘날의 매체들은 소비자들에게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강렬한 이야기를 전해주면서 광고의 효과를 높이려 한다. 그러다 보니 정보 소비자의 눈에 띄도록 과장된 이야기를 유포시킨다. 때로는 허위에 가까울 정도의 과장된 내용이나 진실이 빠진 사실들을 전달한다. 이런 가볍고 자극적인 이야기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에는 현대인의 목마름 때문이다. 물질적으로는 풍부하지만 정신이 공허한 현대인들은 종종 타인을 괴롭히면서 자신을 즐겁게 하며 허전한 곳을 채우려 한다.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라는 말은 이런 맥락에서 공감이 가는 말이다. 남을 나보다 더 외롭게 만들면 가해자인 나는 그 사람보다 낳은 상황이 되니 일시적으로 마음이 풍족해진 듯 착각을 한다. 나 스스로 존재하지 못하고 타인의 시선이나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존재감을 찾기 때문에 상대방을 공격하여 나보자 불행하게 만들면 상대적으로 나는 그보다는 행복하다고 착각을 한다.

 

 

 

 

착각하지 말자 내가 타인에게 행하는 것 대로 누군가는 나를 그렇게 대한다. 내가 누군가를 공격하고 있을 때 내 뒤에 누군가는 나를 공격할 준비를 할 수도 있다.

 

 

 

 

 

 

 

P/S 김구라는 경솔했던 과거에 대해 시인하고 사과를 하면서 공격자들이 원하는 대로 방송을 중단하기로 했다. 개념있는 그의 행동과 담대함에 박수를 보낸다.

 



 
 
 
나의 투쟁 고전으로 미래를 읽는다 12 
아돌프 히틀러 지음, 이명성 옮김 / 홍신문화사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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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범에서 광기까지 - 아돌프 히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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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세계대전은 인류에 역사에서 가장 넓은 범위에 피해를 입히고 가장 많은 물자와 인력의 손실을 가져온 전쟁으로 기록이 되어있다. 1차 세계대전이 유럽 대륙내의 전쟁이라면 2차 세계대전은 미국과 일본의 참전으로 범 지구적인 전쟁이 되었다그리고 대전 중에 전투원 못지 않게 민간이 사상자가 많았던 점에서도 인류 역사상 최악의 전쟁의로 꼽히고 더구나 또 전투와 상관없이 유대인과 동구유럽인들에 대한 민족말살을 목적으로 한 구금강제노역과 대량학살로 씻기 어려운 상처를 인류에게 남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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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자가 누구인가 묻는다면 대부분의 사람이 지목하는 인물이 바로 아돌프 히틀러이다역사에 대한 건전한 고찰이 있는 사람이라면 역사의 큰 사건들이 어떤 개인 하나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으로 잘 알기에 모든 책임을 히틀러 한 명에게 그 죄를 물을 수만은 없다하지만 히틀러의 대한 평가는 그 것이 자체에 대한 논하기 조차 어려울 정도는 확고여 재고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한편 지난 세기의 세계대전을 겪지 못한 세대가 많아지면서 히틀러에 대한 악몽(?)은 사라져 가면서 최근에 그에 대해서 좀 더 학구적인 평가를 시도하기도 했지만 아직은 그에 대한 평가는 전혀 변함이 없어 보인다기존과 좀 다른 시각의 평가라면 그가 미술에 소질이 있었다는 것과 최근에 와서는 그가 사랑했던 여인을 대한 이야기 등이다.


부담(?)이 되는 책

필자는 오래 전부터 꼭 읽어보고자 했던 책들이 몇 권이 있었다어린 시절부터 익히 들어왔지만 선뜻 잡기에는 망설여지는 이유는 두꺼워서’, ‘구하기 어려워서’ 등으로 대 부분은 읽기 쉽지 않은 책들이었다그 예를 들면맹자돈키호테유토피아체 게바라 평전 등인데 최근 들어서  매 년 2권 정도를 소화해 내고 있다가장 최근에 읽은 것이 바로 이 책  아돌프 히틀러의 나의 투쟁이다.  이 책은 국내에는 양장본을 찾아보기 어려워서 문고판으로 읽게 되었다악마로 지칭되는 히틀러가 쓴 책이 있다는 사실은 고등학교 역사 수업시간에 들었던 것 같다당시에 이 책의 존재(?)을 일깨워준 선생님이 부연 설명을 하긴 했지만 히틀러가 쓴 책이라면 당연히 쓰레기 일 것이라는 생각을 먼저 했었다.

성인이 된 이후 히틀러가 독일국민들의 광기로 몰아갔던 소위 ‘선전’이라는 것이 어떤 것일까 하는 궁금증은 결국 이 책을 입수하게 된 것이다.





병적인 집착

어린 시절 아돌프 히틀러는 또래에 비해 조숙했고 일찍부터 그림에 소질을 보였다고 한다그러나 그의 소질을 키워줄 만큼 부유한 가정도 아니었고 그의 부모특히 아버지는 비실용적인 예술을 공부하라고 배려할 정도의 안목을 가지 부모는 아니었다자신이 어렵게 얹은 공무원의 안정된(?) 삶을 이어가길 원했기 때문에 부자간의 갈등은 계속되었다결국 자신의 의지대로 미술공부를 하게 되었지만 여러 가지 여건은 녹녹하지 않아서 배고픔과 외로움을 겪으며 현실을 비판하는 의식이 높아졌다성인이 되기 이전에 그는 자신의 정체성과 자신이 속한 독일민족의 문제에 대해 나름의 생각을 정리하는 등 사고능력도 남달랐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그는 아버지로부터 독립(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으로…)하여 미술공부를 시작하지만 경제적으로 고아와 같은 그의 인생에서 그나마 위안이던 미술실력도 그의 열악한 환경에는 큰 위안이 되지 못한다그 저 밥벌이 도구 일뿐이었다그는 그가 처한 불우한 환경의 원인을 독일민족의 위기 때문으로 인식하게 된다독일민족의 문제를 소위 권력층부르주아 층합스부르크 왕가의 부패와 무능함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어린 시절에 이미 내려버린 이 결론은 그의 일생 동안 그의 가치 판단의 기준으로 자리 잡게 된다.

인종차별 또한 그의 청년기 이후 그의 모든 행동에 묻어나는 집착 중에 하나였다.

그가 정립한 인종차별의 근거는 바로 아리안 인종이 선택 받은 인종이라는 관점으로부터 시작된다그의 독일민족(게르만족)은 아리안족 중에서 가장 도덕적이고 우수한 종족이라는 것이다그의 인종론은 더 넓게 아리안족의 우수성과 순수성 까지 말하지만 결국 그가 말하는 인종의 우수성이라는 것은 편협한 국수주의이며 경제적으로 약자인 그가 부르주아와 유대인 부자들을 심판(?)하기 위해 만든 변명일 뿐이다.

 
아리안족은 유럽뿐 아니라 인도인까지 포함하는데 이 책의 곳곳에서는 아리안족인 인도인은 물론이고 황인종에서는 유일하게 그 우수성을 인정한 일본인들에 대해서도 결국에는 유색인종은 미개하고 추악하기 때문에 백인 아리안족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그리고 그 중에서도 가장 혐오했던 유대인에 대해서 학살이라는 종국의 방법으로 분노를 표출한다..

 

 

그의 주장처럼 유대인들은 경제력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생존권을 유지해왔고 유대인들은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세계 지배를 노리고 있다세계의 돈 흐름을 쥐고 있는 유대인들은 마음만 먹으면 세계지배의 꿈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이 보인다. 20세기 초에도 상황은 동일했던 것 같다강한 독일 민족의 부흥과 세계 지배자를 꿈꾸던 그에게 경제력으로 권력의 뒤에서 국가를 쥐고 흔드는 유대인들은 당연히 제거해야 할 대상이었다유대인의 특성역사적인 사실들 이런 모든 것들을 열거하여 유대인을 제거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말하지만 사실은 권력과 돈이라는 추악한 의도를 포장한 것뿐이다대부분의 독재자나 비뚤어진 권력자(정치인)이 그랬던 것처럼

 

 


대중 선동과 선전


 이 책은 그가 이끌던 독일사회주의노동당(이 당이야 말로 보수가 말하면 보수좌파이다.)이 대중의 지지를 받자 혁명(쿠테타)을 우려한 기득권 세력과 집권자들에 의해 당은 해체되고 감옥에 투옥이 되었던 시기에 그의 청년시기의 생각들과 입당한 후 선전활동에 전념했던 시기 그리고 정치활동 후에 확고해진 그의 민족관세계관을 비롯한 그의 가치관 전반을 기록한 책이다


히틀러는 스스로 인정했듯이 연설을 통해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는 선동가이지 저술가는 아니었다그러다 보니 그의 저술은 다소 난해하며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도 상당히 나타난다.

 

필자가 이 쉽지 않은 책을 들게 된 이유가 바로 히틀러가 늘 주장하던 대중선동에 대한 그의 생각을 읽고 싶었다.

 

필자는 지금하고 있는 일을 하면서 잠깐 아마추어로 광고관련 일을 했었다물론 지금도 같이 일하는 분들 중 많은 분들이 광고회사 분들이라 전혀 동떨어진 분야는 아니지만그 때 광고쟁이들이 나치의 대중선동 방법에 대해 연구하고 그것을 광고기법으로 받아들이거나 받아드리려고 시도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괴벨스는 나치의 대중선동 책임자인데 그의 지휘아래 독일국민과 일부 친 나치 세력동맹국을 대상으로 나치의 활동과 이념을 선전하여 동조하게 만드는 일을 했다그 들의 선전선동 방법은 매우 정교하고 과학적이었다고 한다.

 

아마도 나치가 선동선전에 탁월했던 것은 아돌프 히틀러와 연관이 있다고 보았다지금은 터무니 없어 보이는 그의 생각들이 1차 대전과 2차 대전 사이에 독일국민 사이에는 엄청난 동감을 얻어냈다. 1차 대전 후 작은 정치모임이 독일을 독재하는 당으로 커진 것에는 히틀러의 대중 선동의 몫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대중이 원하는 바를 정확히 인지하고 그들이 좋아하는 말로 자신들에 정치입안에 동조하며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따르게 하는 기술그것이 대중선동이고 히틀러는 강력하고 거침없는 대중연설을 통해 이를 실행하고 얹고자 하는 바를 가질 수 있었다히틀러의 연설은 지금 독재자들의 모델이 된 것 같다현존하는 독재자들의 연설 방식과 다르지 않다자극적이고 선동적인 문장들 말초를 자극하는 막말도 서슴지 않았다.

 

 

 

비틀어지고 곪아 터짐

 

히틀러는 독일이 강해지기 위해서는 국민들을 먹여 살린 추가적인 국토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그것도 다른 대륙이 아닌 근접한 유럽에서 새로운 영토를 확보하자고 했다.  전쟁을 피하(전쟁은 가진 자들에게는 어떤 이유에서건 달갑지 않을 것이다.)고 싶었던 바이마르 공화국/부르주아들은 경제 정책을 통해 국민을 먹여 살릴 수 있다고 하여 다른 나라의 교역 등을 확대했는데 히틀러는 이 정책의 배후에는 유대인들의 숨은 의도가 있고 대외 교역은 결국 경제적으로 낙후한 독일을 주변 강대국들의 식민지가 될 것이라는  주장을 했다.

 

더욱 어려워진 정국에 다시 복귀한 히틀러는 구체적으로 적들을 공격할 준비를 한다당시의 독일 사정으로는 군비는 몰론 이고 프랑스나 영국을 상대할 최신 군수품을 마련할 길이 없었다.

이때 그의 삐뚤어진 욕망에 기름을 부어준 이들이 있었다유대인들은 잃어버린 약속의 땅’ 즉 가나안 지역에 유대인 국가를 세우길 원했다그리고 유럽각지에 흩어진 유대인들을 팔레스타인으로 이주시키려 한다이때 가장 반대가 컸던 독일과 오스트리아 등 게르만 계열의 나라에 영향력을 발휘하고 싶었다방법을 물색(미국의 정보기관이 이 일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하던 중 히틀러가 눈에 뜬 것이다유대인의 돈을 쓰는 것은 그의 주장이나 가치관에 대치되는 것이었지만 그의 가치관이나 그가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했던 강령은 결국 목적을 위한 수단이었을 뿐이다미국은 당장에 돈이 궁했던 히틀러에게 거액을 대주고 심지어 그의 요청을 들어주어 당시에는 최신 첨단 기술들까지 이전해준다그 때 제공된 자금과 기술은 장갑차잠수함 등 연합군을 혼란에 빠트린 최신의 군사장비를 만드는데 사용이 되었다.

 

욕심쟁이들과 미친놈이 합작을 하니 결국 일이 터지고 말았다.

사실상 독일을 장악한 나치는 국민들을 선동하여 극단의 국수주의를 퍼트리고 그 도구의 일부로 유대인을 이용한다집단적인 따돌림폭력/협박에 이어 재산몰수강제수용소 그리고 학살에 이루게 한다대외적으로 폴란드 침공을 시작으로 프랑스와 주변 국가를 점령한다심지어 소련의 모스크바까지 침공 하는데… 히틀러의 위험성을 무시하고 그의 움직임을 독일만의 문제로 생각하던 주변 국가들은 역사상 최악의 전쟁과 대면하게 된다이 후 늘 그렇듯이 미국은 키우던 개에게 물리게 된다.

 

 

 

미친놈이었다.

 

히틀러가 미술에 상당한 소질이 있었다’ 라던가, ‘의외로 감성적이었다거나 그런 걸 바라보고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은 아니다또 대중선동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가라는 의문도 사실은 처음부터  부정적이었다결론을 말하자면 히틀러가 생각한 조각 조각들의 생각 중에는 훌륭하다고 할만한 것들도 분명히 있다나름 독특하며 도덕적이기도 하다또 종교적인 논조로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그러나 이런 것들은 결국 독일 민족의 이익이라는 것이 대입되면 여지없이 왜곡이 된다.

 

그가 일찍부터 국가와 민족의 문제에 나름의 판단과 그 미래에 대해 가치 판단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비범함 때문이지만 왜곡의 도를 넘어서는 순간 광기가 되어 간다.

 

결국 그는 역사가 말해 주듯이 인류 역사상 최고(?)의 미친놈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