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저자의 다른 책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를 읽고 무척 놀랐다. 그의 책은 물리학자 글이 아니었다. 어떤 이웃님이 말씀하신 뜻처럼 ‘김상욱 교수의 글이 물리학 박사 과정 학생 정도의 글이라면 카를로 로벨리는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완숙한 철학자 글이다.’ (김상욱 교수 글이 미흡하다는 것이 아니라, 굳이 비교하면 상대적 차이가 그렇다는 의미일 듯 하다.)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가 좋았던 독자라면, 이 책 <모든 순간의 물리학>에서도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겠다. 이전 책보다 훨씬 짧지만, 여전히 한 문장 한 문장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물리학 책에서 철학 의미까지 곱씹게 하는 글을 만나기란 분명 흔한 일이 아니다.

 

 

 

 

 

 

 

 

 

 

 

 

 

 

 

 

 

‘현재’란 무엇일까? "현재는 흐르고 있고, 사물들이 하나씩 차례로 존재하게 만드는, 이 세상에서 객관적인 것일까? 특수상대성이론을 통해 현재의 개념이 주관적인 것으로 증명되었기에 전 세계가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현재에 대한 생각은 환상이며, 보편적인 시간의 흐름은 없다.

 

 

 

그렇지만 우리는 시간의 흐름을 생생하게 경험한다. 특히 시간과 열의 밀접한 관계, 곧 열의 흐름이 있을 때에만 과거와 미래가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과, 열이 물리학적 확률과 관련되는 상황에서 시간을 느낀다. 세상의 미세한 상호작용이 하나의 체계(예를 들면 우리 자신)에 의해 시간적인 현상을 발생시키고, 이때 체계는 무수한 변수들의 평균을 통해서만 상호작용을 한다. 우리 기억과 의식은 이러한 통계적인 현상에 의해 만들어지고, 현상은 시간이 흐르면서 변화할 수 있다. 우리가 모든 것을 통찰할 수 있어서 아주 예리한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흐르는 시간은 존재할 수 없다. 하지만 의식이 있는 존재인 우리 인간은 세상의 퇴색한 모습만 보기에 시간을 살게 된다.

 

 

우리는 에너지 전이로 과거와 미래를 구분할 수 있다. 좌우로 움직이는 진자운동을 지켜보면, 진자는 마찰 때문에 지지대를 약간 가열시키면서 에너지를 잃고 움직이는 속도가 줄어든다. 마찰은 열을 생산한다. 진자는 정지된 상태에서 출발해 왕복운동을 시작할 때 지지대의 열을 흡수해 얻은 에너지를 사용한다. 과거와 미래의 차이는 열이 있을 때만 발생한다. 과거와 미래를 구분하는 기본적인 현상은 열이 뜨거운 곳에서 차가운 곳으로 이동한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한다.

 

 

 

그런데 왜 열은 뜨거운 곳에서 차가운 곳으로만 이동하고 그 반대로는 이동하지 않는 걸까? 이는 그저 확률적으로 그럴 가능성이 많을 뿐이다. 통계적으로 뜨거운 물질의 원자가 빠른 속도로 움직이다가 차가운 원자에 부딪히면서 약간의 에너지를 전달할 가능성이 많고, 반대로 차가운 원자가 뜨거운 원자에게 에너지를 남겨줄 가능성은 적기 때문이다.

 

 

사실 열역학에서 말하는 가능성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 우리 무지와 관련 있다. 분자들이 물체 안에서 얼마나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지, 각각 분자가 정확히 어떤 위치에 있는지 모른다. 그렇기에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 그렇지만 모든 것을 정확하게 예상할 수 없지만 이런저런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은 예상해볼 수 있다. 언뜻 보기에는 우리가 정확히 알지 못하면서 이 세상의 습성과 관련된 무엇인가를 연구하는 것이 비이성적을 보일 수 있다. 우리가 아는 것이 있든 없든, 찻잔 속에 잠긴 차가운 스푼은 뜨거워진다.

 

 

사물의 운동에 대한 예측 가능성과 불가능성은 사물의 정확한 상태를 우리가 아느냐와 상관없다. 관련있는 것은 우리와 상호작용을 하는 사물의 한정적인 특성 수준이다. 특성 수준은 우리가 스푼과 상호작용을 하는 방식에 따라 달라진다. 따라서 예측 가능성은 사물 자체의 변화와도 관련 없다. 다만 사물이 다른 사물과 상호작용할 때, 사물이 가진 특성의 각 부분이 얼마나 어떻게 변하는지와 관계 있다. 차가운 스푼이 뜨거운 찻잔 속에서 따뜻해지는 이유는 차와 스푼이 상호작용하기 때문이다. 상태(예를 들면 온도)를 특징짓는 수많은 변화 가능성 중에서 단 몇 가지 요인들로 인해 상호작용이 일어난다. 이러한 요인들의 변화만으로 앞으로 일어날 사물 움직임을 예상하기는 충분치 않지만, 스푼이 따뜻해질 거라는 가능성은 최대한 높여줄 수 있다.

 


세상 사물은 꾸준히 서로 상호작용을 하고, 그 과정에서 상호작용을 함께한 다른 사물의 상태를 알고 흔적을 얻는다. 이러한 의미에서 사물은 서로 정보를 지속적으로 교환한다. 하나의 물리 체계가 갖고 있는 다른 체계에 대한 정보는 전혀 의식적이거나 주관적이지 않다. 물리학은 그저 어떤 무엇인가의 상태와 다른 무엇인가 상태의 관계를 규정하는 조건일 뿐이다. 사물이 주인인 세상이 아니라 사물 사이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사건들로 인해 좌우되는 세상이다.

 

 

비 한 방울에는 하늘에 구름이 있다는 정보가 담겨 있고, 한 줄기 빛에는 빛이 나온 물질의 색상 정보가 들어 있다. 시계에는 하루 시간에 대한 정보가, 바람에는 근처 지역의 천둥 번개에 대한 정보가, 감기 바이러스에는 우리 코의 취약성에 대한 정보가 있다. 우리 DNA에는 우리가 아버지를 닮게 만든 유전자 코드에 대한 모든 정보가 포함되어 있고, 우리 뇌에는 우리가 경험하는 동안 쌓은 정보들이 무리를 이루고 있다.

 

 

대상의 상태는 ‘물질 그 자체'가 아닌 우리와 ‘상호작용을 하는 방식’에 달려 있다는 저자의 자연과학 관찰은 경제학자 칼 폴라니 책 <거대한 전환>의 다음과 같은 유사한 통찰을 떠오르게 한다.

 

 

“인간사란 워낙 깊게 얽히고설켜 있기 마련이라, 제아무리 지혜로운 자라 할지라도 그 인과 관계를 전부 다 풀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 나라 체제나 국제 체제도 그러한 자동적인 규제 장치에 의존할 수 없다. 균형 재정과 자유 기업, 세계 무역, 국제 청산소, 고정 환율제 같은 것들이 국제 질서를 보장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폴라니가 강조하는 단어가 바로 ‘사회’(상호작용)다. “인간은 사회를 발견해야 한다. 사람들은 사회 단결과 유대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깨닫지 못한다. 경제적 자유는 어느 정도 계획 또는 지도되는 규제에 종속되어야 한다. 인민과 집단의 권리 그리고 국가 사이에서 상대적 우선권이 다른 층위에서 결합되며, 그리고 전체적으로 개인주의적 가치와 사회적 삶의 필요성이 일반적 질서 내에 상호 종속하면서 결합되어야 한다. 경제를 정치에 복속시키고 지구 경제를 국제 협력의 기초 위해서 재건하는 노력에 함께 매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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