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는 읽을 때마다 새로운 깨달음을 준다. 그는 언제나 사람들의 마음을 격동케 한다. 경제학 영역에서 가장 낭만적이고 인간적이며 이제나저제나 인간에 대한 관심을 강조하는 것이 바로 마르크스 사상이다. 그의 기본 신념은 인간의 진실성에 대한 변함없는 관심이며, 사람이 ‘소외’에서 벗어나 자신이 주인이 되어 진실한 삶을 추구하고 실천할 수 있는 사회를 구현하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한 가지 명확한 판단 기준에 따라 자본주의를 비판했다. 다름 아닌 인간의 ‘진실성’이다. 인간의 진실성이란 인간이 영위하는 삶이 자아의 잠재능력과 하나로 합치되어 별도로 다른 외부 기준에 맞춘 자아를 만들거나 외부 기준에 맞출 필요가 없는 상태이며, 이런 인간이 진정한 인간이다. 인간은 완전히 소외당하지 않고 자신의 진실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그의 한결 같은 믿음이다.

 

 

마르크스를 읽는 이유는 우리가 자본주의와 시장 경제가 승리해 주류가 된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와 시장 경제는 홀로 거대하여, 그 오만한 논리가 거의 극단까지 발전했다. 어떠한 도전이나 질의도 받지 않고 절대 진리라는 권력을 가진 사상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 마르크스 경제학은 그와 전혀 다른 관심으로 우리에게 자본주의와 시장 경제 속에 철저하게 함몰되지 말 것을, 이를 필연적이고 유일한 선택으로 보지 말 것을 일깨운다.

 

 

서양 경제학은 현실 가격의 법칙을 해석하려 하지만 마르크스 경제학은 우리에게 현실 세계의 논리에 어떤 문제가 방생하는지 지적하려 한다. 마르크스 경제학은 해석이 아닌 비판에 있다. 해석은 우리에게 현실 문제를 확실히 알게 하는 것뿐이다. 비판은 현실이 왜 인류에게 이처럼 거대하고 보편적인 왜곡과 고통을 가져다 주는지 보는 것이다. ‘어떻게 같은 노동에 다른 보수를 줄 수 있느냐!’라고 분노할 수 있다면 당신은 마르크스를 읽을 수 있다. 노동에는 내재 가치가 존재하고 같은 노동에는 같은 내재 가치가 존재(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하므로 다른 보수를 받아선 안 된다고 믿는다는 뜻이다. 당신은 시장 경제학의 원칙을 부정하고 마르크스식 사고방식을 긍정하는 것이다.

 

 

마르크스를 읽으면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을 향해 ‘나는 삶 속에서 얼마나 자유로운가?’ 얼마나 많은 요소와 힘이 나를 구속하여 내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 될 수 없게 만들고, 심지어 내가 어떤 사람이 될 수 있는지 상상조차 할 수 없게 만드는 지 알 수 있다. 18세기 사람들은 40세에서 45세까지밖에 살지 못했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그들이 우리보다 더 짧게 살았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들은 아침 6시부터 진실한 생활을 시작한 데 비해 임금 노동자가 된 우리 생활은 오후 6시 퇴근하고 나서야 비로소 시작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임금 노동’ 후의 자유로운 생활을 누릴 수 있는 능력조차 상실하게 된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읽으면 우리는 그의 참담과 우울, 심지어 비분을 읽어 낼 수 있다. 오늘날 전 세계에서 평생 70년을 살며 진정으로 자기를 위해 사는 날은 며칠이나 될까? 그런데도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인생이 마땅하고 당연한 것으로 간주한다.

 

마르크스 경제학에서 노동력은 상품이 아니라 모든 상품 가치를 창조하는 근원이다. 이 때문에 상품 시장의 논리로 노동력을 대해서는 안 된다. 노동력이 재생산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노동력의 최저 임금이 분명해야 한다. 게다가 하루 평균 수 백만 원씩 버는 대기업 고위 경영인의 임금이 왜 불합리한지 문제도 따져봐야 한다. 시장 경제학 입장에서 보면 당연히 합리적이다. 하지만 우리 상식에서 가격과 가치를 전혀 구분하지 않고 넘어가기란 쉽지 않다. 일상 언어로 ‘너무 비싸다’ 혹은 ‘너무 싸다’라고 말하는 것도 그 의미를 잃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관념은 가치와 가격이 서로 차이가 날 때라야 성립한다. 시장 경제학은 CEO가 받는 수입이 노동자보다 왜 그렇게 많은지 설명할 수 있지만 이러한 분배가 공평한지는 대답하지 못한다.

 

 

마르크스 경제학은 자본주의와 시장 경제학의 가장 강하고 유력한 논적이다. 마르크스 경제학에는 전혀 다른 전제, 전혀 다른 가치 순서, 전혀 다른 이론 모델이 있기 때문이다. 평소에 우리는 현실 사회의 논리가 옳다는 가설을 시작점으로 삼고 이런 현실에서 자신의 다음 행보를 어떻게 할지 판단한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우리에게 이러한 논리가 애초 잘못되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사고하도록 자극한다.

 

 

시장 경제학은 최대한 보편적이고 운용 범위가 넓은 법칙을 찾는 쪽으로 흐른다. 이러한 전재 아래 개인 차이를 고려하지 않는 힘인 시장을 찾아낸 것이다. 가장 보편적인 법칙을 절실하게 찾아내고자 했기에, 시장에서 어떠한 개인 차이도 초월하는 현상을 좋아하며, 나아가 이를 부각시키려 한다. 반면 마르크스는 경제 활동을 사회 활동이자 인간관계 행위로 간주한다. 모든 사회관계와 마찬가지로 생산관계에서의 역할과 입장은 상대적이다. 사람마다 서로 다른 이익을 추구하기에 이러한 관계에 대해서도 서로 다른 견해를 갖는다. 시장 경제학에서는 자신들이 신분과 개인적 차이를 초월하는 보편적인 경제 원칙이라고 말하지만, 마르크스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누구 입장에서 서서 그런 분석을 한 것이냐고 집요하게 따져 묻는다. 이런 문제에서만 출발해도 시장 경제학이 더 이상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경제법칙이 아니라 자산 계급의 이익을 보호하는 입장이며, 노동자를 착취하는 합리화 이론임을 알 수 있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노동자의 경제학이자 노동자 입장에서 출발한 경제 활동 분석이다. 노동자는 노동자 자신의 경제학을 가져야 한다. 자본가는 일찌감치 자본가만의 경제학을 갖고 있는 데다 이 경제학을 운용하여 노동자를 미혹시키고 노동자의 ‘노동 가치’를 착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가의 경제학은 자본가에게만 유리하다. 노동자가 이런 경제학을 받아들여 노동 가치에 대한 자본가의 정의를 순순히 인정한다면 착취는 당연하게 여겨질 것이고 결국 노동자는 피착취 상태에서 벗어날 기회를 잃을 것이다.

 

 

정상적이지 못하고 공정하지 못해 시대를 변화시키고자 한다면 먼저 구조를 바꾸어야 한다. 노동자와 자본, 자본가 사이 관계를 바꾸어야 한다. 불공평한 착취가 없다면 자본 이득도 없을 것이고 금전을 원래 수단, 즉 일상생활에서 가치를 중개하는 도구로서의 본질로 환원시킬 수 있을 것이다."

 

 

 

 


소외란 원래 목적을 달성하려고 설계한 수단이 목적 자체가 되어 우리가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없애 버린 꼴이 됨을 말한다. 예를 들면 신은 인간의 창조물이다. 인간은 자신이 마땅히 갖고 있어야 하는데도 현실에서는 갖지 못한 가장 아름다운 성질을 신에게 투영했다. 이 때문에 신의 지정한 모습은 ‘가장 진실한 인간’이 된다. 현실적이지 않은 이상은 반대로 현실보다 더 진실한 것으로 벼해 현실을 비판하고 평가하는 기준이 된다. 다시 말해 신이 존재하는 목적은 인간을 신으로 만드는 것, 인간을 신처럼 순수하고 진실하게 변화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진실한 인간을 나타내는 신을 창조하여 이를 숭배 대상으로 삼았을 뿐 아니라, 철저하고 절대적으로 인간과 분리시켰다. 인간은 오로지 신을 숭배하고 더 나아가 맹목적으로 신의 뜻에 복종할 수 있을 뿐이다. 이것이 바로 마르크스가 말한 소외다.

마르크스 사상 체계는 자신도 미처 완성할 수 없었고, 심지어 정리할 방법조차 없을 정도로 방대하다. 이는 커다란 결점이자 이상하게도 그의 이론이 사람들에게 큰 흡인력을 갖는 요인이기도 하다. 그는 수많은 문제를 제기했지만 제때 완성된 해답을 내놓지는 못했다. 그가 제기한 문제들이 전부 온전한 해답을 있었다면 마르크스 사상은 아마도 후세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수많은 사람이 자신의 길을 따라 논의하고 논쟁하도록 자극했다. 또한 자기 생전에는 사상의 지도에 간단한 그림만 그리고 직접 탐색할 여유가 없었던 여러 영역을 후대 사람들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가능성을 열어 주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나중에 보완한 설명이 더해져야 마르크스 사상 체계의 내재적 연결이 뚜렷하게 보이고, 이 체계의 세계관이 가져다주는 충격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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