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주정뱅이
권여선 지음 / 창비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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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경은 마흔 셋의 봄에 수환을 만났다. 각자의 친구 결혼식에서 처음 대면한 그들은 한눈에 상대가 삶의 낭떠러지에 가까이 서 있음을 알아본다. 스무 살 때부터 쇠를 다루던 수환은 서른 아홉에 신용불량이 되었고, 중등 국어선생이었던 영경은 결혼에 실패하고 아이도 시댁에 빼앗긴채 알코올에 의존하는 인생을 살았다. 함께 산 지 십이 년. 수환은 류머티즘 관절염에 걸리지만 의료보험이 없어 치료 시기를 놓치고 염증이 골수까지 파고들어 영경과 함께 요양원에 입주한다. 수환의 병이 깊어지는 만큼 영경의 알코올중독도 심해져 갔다. 요양원에서는 술을 마실 수 없기에 때때로 외출하여 알코올에 대한 갈증을 채웠던 영경. 어느 날 영경은 또 다시 외출하고, 수환은 간병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마지막 숨을 거둔다. 영경은 술에 흠뻑 절여진 채 의식불명이 되어 수환의 장례가 끝난 후에야 앰뷸런스에 실려 요양원으로 돌아오고, 끝내 그녀는 수환의 존재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알코올성 치매 상태가 된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인생에서 뭔가 엄청난 것이 증발했다‘는 걸 느끼고 이따금 오랫동안 울었다.

권여선의 단편집 <안녕 주정뱅이>는 이렇게 처연한 비극 <봄밤>으로 시작한다. 여기 실린 일곱 개의 단편은 죄다 술과 연관된 이야기들이다. 삶은 우스운 비극이고, 그 비극을 견디는 방법은 주정뱅이가 되는 길 밖에 없다고 말하려는 듯, 등장인물들은 수시로 술을 퍼마신다. 그들은 술을 즐기는 게 아니라 술을 섭취하는 것이다. 마치 물이 없으면 인간은 살 수 없는 것처럼 그들은 술이 없이는 살 수 없는 상태니까.

술로 인한 희로애락 중 거진 ‘哀‘만 느낄 수 있는 책이지만, 그 ‘哀‘가 술 때문에 희석되고 몽롱해지는 듯하다. 하기사 슬픔을 술로 잊는 게 사람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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