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다운 페미니즘
코트니 서머스 외 지음, 켈리 젠슨 엮음, 박다솜 옮김 / 창비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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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페미니스트인 것을, 당당하게 얘기해도 될지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었다. 고작 열여덟 살이라서, 페미니즘에 대해서 아직 많이 알지 못하고, 부족한 것이 많아서,라는 이유로 페미니즘을 믿고 지지하지만 나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규명해도 될지 망설여졌다. 이 책은 나에게 이 부분에 있어서 지산감과 믿음을 주었따. 다양한 직종에 몸을 담그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소설을 쓰는 작가분들의 이야기에 나도 모르게 더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내 꿈이 소설가라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코트니 서머스가 말했다. 소설의 세계는 호감의 규칙이 지배한다고. 호감의 규칙은 '여성 인물은 다른 무엇보다도 호감이 가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독자의 이상에서 어긋나니까.'였다. 나는 여기서 뒤통수 한 대 맞은 기분이 들었다. 내가 놓치고 있던 부분이었던 것이다. 나는 지금껏 내가 읽은 책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 그럴 수 기회가 없었다. 기껏 해봐야 학교 친구들, 그중에서도 여자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독서 취향이 비슷한 친구들이었고 모두 소설 인물에게 호감을 갖는 데에 성별은 상관없는 아이들이었다. 우리는 소설 속 여성 인물에게 남성과는 다른 잣대를 들이밀지 않았따. 우리가 그런다는 사실조차도 몰랐다. 까다롭고 상처받았다는 이유로 여성 인물들이 사랑받을 가치가 없다고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여성 인물들에게 우리를 투영하고, 공감하고, 안쓰러워하며 그 인물을 진심으로 응원하게 된다 하지만, 실제 많은 사람들은 소설 속 여성들뿐만 아니라 현실 속 여성에게 이상한 잣대를 들이댄다. 그 잣대가 여성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절대로 미미하지 않다. 나는 현실 속 여성들에게 들이대는 그 이상한 잣대(남성에게는 들이대지 않는 잣대)는 보았지만, 그것이 소설 속에서도 움직이는 것인지 몰랐다. 현실에서도 우리는, 고통을 숨기고 호감 가는 행동을 해야만 사랑받을 자격이 생긴다고 배운다. 여기서 '호감 가는 행동'은 얌적하고, 이타적이고,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조심스럽고, 조용하고, 공손한 것(p.120)이다. 남성보다 똑똑하지 않고, 남성보다 나서지 않고, 남성이 이끌어주길 구해주길 기다리는 것이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이 사실을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결심했다. 앞으로 내 소설의 주인공은 모두 여성이 될 것이며, 남성 인물이 등장하더라도 사회에서 정하는 '남성성'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 인물이 될 것이다.


코트니 서머스는 이런 질문을 글에 남겼다. 독자로서 당신을 어느 쪽인가? 소설 속 여성 인물들이 호감가게 행동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타인의 호감을 얻는 게 여성의 유일한 존재 목적은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는가?


나는 아주 분명하게 후자다. 내가 바로 그 여성이고, 나는 타인의 호감을 얻는 데에 큰 관심이 없다. 나에게 중요한 사람이 아니라면 호감 같은 거 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이것은 개인적인 생각이다). 그러니 당연하게 소설 속에서도 여성 인물들이 호감 가는 행동을 할 필요는 없다. 착할 필요도 없다. 현실 속 여성들이 모두 호감가게 행동하는 것도 아니고 모두 착한 것도 아니니까 말이다. 다양한 성격의 사람들이 존재하고, 다양한 성격의 여성들이 존재한다. 소설에서는 그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 숨 쉬게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성별뿐만 아니라 젠더, 인종, 종교가 다양한 사람들이 소설 속에서도 살아 숨 쉬게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앞으로 내 소설에 등장할 인물들에 대해서 고민이 생겼다. 다양한 젠더와 성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은 쉽게 만날 수 있지만, 다른 인종과 종교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쉽지 않고, 그것은 내가 그들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즉, 작가인 내가 등장인물을 이해하는 능력이 미치는 범위가 꽤나 한정되어 있따는 것이다. 대충 짐작하며 이 사람들은 이렇겠지, 라는 생각ㅇ으로 쓰면 안 되기 때문에 조심스럽기도 하다. 그래서, 일단은 아픈 소녀들을 쓰기로 했다. 까다롭고 반항적이면서 상처받은 동시에 우울한 소녀들을 드러내기로 했다. 진실을 말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크게 느낀 것이 있따면 그것은 부모님의 도움의 부재다. 이 책의 페미니스트들의 절반 이상은 어렸을 적 어머니 혹은 할머니에게 페미니즘 이야기를 듣고, 제대로 된 가르침을 받고, 페미니즘 책을 추천받는다. 여기서 나는 이들과 내가 많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따. 우리 부모님은 아직 나에게 페미니즘을 완전히 허용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내가 스스로 선택하고 그대로 행동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은 부모님 탓이 아니다. 부모님도 그런 교육을 받지 못했고, 배우지 못해서 그런 것이다. (이건 사회 문제다. 그렇다고 그냥 넘어갈 문제도 아니지만.) 하지만 그것을 알면서도 나는 내심 슬프고, 아쉽고, 서운하다. 부모님의 페미니즘 교육이 있었더라면, 적어도 나는 내 젠더와 성 정체성을 가지고 혼자 끙끙 고민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나에게 젠더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 사람이 없었다. 아무도 나에게 세상에 이성애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고, 내 주변에 퀴어가 있을 거라는 걸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고, 섹스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고, 야동은 남자들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다. 학교에서 하는 성교육 시간은 여자아이들만 부끄러워하는 시간이 되어선 안 된다는 걸 알려주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는 건 슬픈 일이다. 나는 이 부분이 조금, 아주 조금 부러웠던 것 같다.


내가 이 책을 읽고 싶었던 것은 책 뒷면에 있는 구절 때문이었다. 페미니즘을 어떻게 나에게 가져올지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서 목말라 있던 내가 본 것은, '청소년들이 오늘날의 페미니즘에 대한 정의를 이해하고, 확장하고, 상상하도록 돕는다'는 말과 '사실 이 책의 가장 큰 강점은 쉽다는 거다'라는 말이었다. 나는 이 책을 나와 같은 청소년들이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 특히 남자아이들이. 


그리고, 나는 페미니스트다. 

피해자의 증언이 무시당하는 이유는, 피해자의 말을 믿으면 강간범들을 구속하고 처벌하고 교도소에 집어넣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남자들은 자기 자신이나 아들을 강간범으로 생각하는 걸 싫어하죠. 추악한 진실을 대면하고 자기 행동에 책임을 져야 마땅한데 이를 외면하고 증언을 무시하는 겁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남학생들이 ‘산만하지 않은‘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여학생들의 복장을 단속합니다. 여성의 생식권을 적극적으로 부정하고, 여성의 성과보다는 외모를 중요하게 생각하죠. 완벽한 외모를 가꾸지 않는 여성은 한없이 깎아내려요. (생략) 이처럼 여성을 하찮게 취급하는 문화에 영향받지 않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저는 누가 피해자 탓을 하는 걸 보면 그 원인이 세상에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당해도 싸다, 자기도 사실은 당하고 싶었을 거다,라는 식의 말을 하는 건 여자가 중요하지 않다는 메시지를 일상적으로 전하는 세상에 물든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페미니즘이란 스스로 선택하고 그대로 행동할 능력을 가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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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꿈이었다 시요일
강성은 외 지음, 시요일 엮음 / 미디어창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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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너를 잊은 적이 있다

그런 나를 한번도 사랑할 수 없었다

 

- 남진우, 언젠가 너를 사랑한 적이 있다

 

이 책은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한 편의 시 정도는 깊은 여운을 남기게 할 것 같다. 나는 읽는 내내, 지난 나의 사랑들을 떠올렸다. 굳이 떠올리려 하지 않아도 떠올랐다. 사랑만큼 우리의 감정을 깊이 관찰할 수 있는 건 없을 것 같다. 비록 그 범위가 제한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나는 과연 지난 사랑들을 진정으로 떠나보낸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 한 편 한 편 읽을 때마다 오래된 감정의 조각에게 찔리는 느낌이었다.

 

모든 사랑이 끝났다고 생각될 때,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그렇다고 무언가에 대해 희망을 주는 것은 아니다. 그저 그 사랑에 대해, 그 연애에 대해 좀 더 생각해볼 수 있다. 인연이 끊긴 것인지, 끝난 것인지.

 

우리가 느끼고 있는 감정들을 좀 더 유심히, 세심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혹여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이 있는 건 아닌지, 매번 뒤를 돌아본다. 그리고 시집을 통해 놓쳤던 것들을 다시 담아가곤 한다. 이 시집 또한 그랬다. 완벽할 순 없다. 항상 놓치는 것들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다시 되새기면 되는 거다. 나는 <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꿈이었다> 를 통해 이 과정을 거쳤다. 나는 지난 사랑을 잊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묻어두고, 다신 꺼내지 말아야 할 추억쯤으로 여겼다. 그리고 그런 나를 가만히 둘 수 없었다. 용서할 수 없었다. 나는 나를 사랑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지난 사랑을 잊을 수도 있다는 것, 그들을 다시 추억해도 된다는 것, 다시 사랑해도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럴 수도 있지, 뭐.

 

사랑한다는 건, 결코 나쁜 행동이 아님을 새기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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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 - 번식장에서 보호소까지, 버려진 개들에 관한 르포
하재영 지음 / 창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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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내내 드는 생각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동물권이 처참한 사태를 모르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나는 내가 한때 수의사를 꿈꿔왔고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으로서 동물권이 지켜지지 않는 현장에 대해 많은 관심이 있었다. 다른 동물보다 개를 인간보다 하등한 존재로 여기고 사람이 지배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일부 사람들의 저지르는 악행이 너무나도 끔찍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는 좀 더 동물에 대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많은 사람들이 동물권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아직 많이 부족하다. 여전히 많은 개들이 죽느니 못한 삶을 살고 있지만 그 누구도 선뜻 직접 나서지 않는다.

 

우리는 지켜야할 동물권의 범위를 영원히 정의할 수 없을 것 같다. 나는 동물애호가라는 말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이 책을 읽고 깨달았다. 다른 것들에선 애호가라는 말을 쓰지 않으면서 동물에 대해선 애호가라는 말을 쓴다는 것 자체가 우리의 생각에 모순이 있다는 것이고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이 부분을 지적받은 것이, 내가 이 책에서 가장 크게 얻은 부분이다.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세상의 살아있는 모두가 이 책을 읽어줬으면 좋겠다. 실제로 그럴 순 없겠지만, 그만큼 우리 인간이 놓치고 있는 것이 아주 많다는 것이다. 우리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나는 언제나 하는 생각이었지만, 내 능력이 닿는 곳까지 동물들을 보호할 것이다.

 

이 책에서는 동물들 중에서 개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개만큼 인간을 사랑하는 동물은 없다. 우리는 이 사실을 가슴 깊이 새기고 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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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kai No Owari - 싱글 Rain [영화 '메리와 마녀의 꽃' 주제가]
세카이노오와리 (Sekai No Owari) 노래 / 소니뮤직(SonyMusic)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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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든 다시 들을 수 있는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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