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빈센트를 잊고 있었다 - 빈센트 반 고흐 전기, 혹은 그를 찾는 여행의 기록
프레데릭 파작 지음, 김병욱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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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빈센트를 잊고 있었다>

프레데릭 파작 지음 | 김병욱 옮김 | 미래인

 

 

     그는 니체와 마찬가지로 시대를 너무 앞서 태어난 것이 아닐까.

이번에 만나게 <나는 빈센트를 잊고 있었다> 니체가 살았던 19세기 후반에 그와 동시대인으로서 네덜란드, 프랑스와 벨기에 등을 떠돌았던 방랑자 화가에 대한 이야기이다. 내가 가련한 요절 화가의 삶을 따라가면서 떠올렸던 사람은 니체였다. 이들은 시대를 너무 앞섰다는 대가로 우울증과 간질, 발작을 자신의 앞에 지불했어야 했나하는 생각마져 들었다. 물론 역사 앞에 이런 가정과 의문은 억지스러운 나만의 상상이라는 점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인물들의 삶의 어느 부분을 들여다보면 유사해보이는 점들도 많이 발견된다. 목사 집안의 자녀로서 본인들도 자의로 혹은 타의로라도 목사가 되려는 과정에 발을 담그기도 했다는 , 그리고 이들 모두 아버지와의 불화를 겪은 점도 그렇다. 가식없는 . 고흐와 니체 모두 자신의 또는 신념과 자신들의 작품들과 주인공들의 삶은 정확히 일치했다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언젠가 빈센트   고흐의 편지를 읽었던 기억이 난다. 자신의 귀를 자르고, 발작을 겪고, 알코올 중독 증상에 정신착란 증세 등으로 내가 고흐에 대해 갖고 있던 편견은 여지없이 무너졌던 기억이 있다. 고흐는 명민하고 매우 합리적이고 지적인 사람이었음을 알게되었던 것이다. 다만 지나치게 양심적이었던 것인지 세상의 고통을 자신의 영혼과 육체로 감당하려다 괴로워하고 결국 스스로를 파괴하기에 이른 것이 아닐까. 고흐라는 제목의 영화에서는 빈센트의 자존심강하고 상대하기 까다로운 성마른 성격과 아버지와의 불화가 드러났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의 성격과 삶을 이루는데 영향을 주었을 법한 초기의 경험들에 대한 소개가 다소 부족했다는 것이 <나는 빈센트를 잊고 있었다> 읽고 새롭게 느낀 점이다.

 

     고흐가 상대적으로 유복한가정에서 태어났음에도 사회성이 부족하고 침울하게 광신적인그리고 성마른 성격의 방랑자가 되어버린 정황을 좀더 엿볼 있었다. 예민하고 자존심이 강했던 고흐가 11 되던 어느 가족은 빈센트를 어느 기숙학교로 보냈던 것이다. 책의 저자 프레데릭 파작이 지적하고 있듯이 기숙학교 이후의 삶은 빈센트에게 고독 의미했고, 스스로가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한 이방인으로서 스스로를 바라보게 만든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고흐를 소개하는 전기나 책자는 너무나 많지만 <나는 빈센트를 잊고 있었다> 담담한 어조로 고흐가 마주대했을 법한 고뇌들의 모습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 말하자면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하고 방랑자로서 평생을 이방인으로 살았던 고흐의 침울하게 광신적인인물의 삶이 전보다도 , 그리고 고흐의 눈빛이 이해가 된다. 아들 빈센트에게 더러운 짐승이라고 말했던 아버지와의 불화는 고흐가 스스로 서서 고난과 절망을 극복해내지 못하고 환대받지 못한 , 평생을 자신을 찾아 떠돌게 되는 계기를 마련해주었을 것이다. 저자인 파작은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그는 우울한 방랑에서 벗어날 탈출구를 찾고 있다.”(89)

 

     너무나 알려져 있듯이 6 어린 남동생 테오와의 관계는 고흐의 삶에서 제외하고 생각할 없는 주제다. 고흐의 편지가 주로 동생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가 많았던 만큼 형제의 관계와 이들이 어떤 생각을 했던가를 속속들이 아는 데는 이들이 교환했던 서신을 참고하면 것이다. 고흐는 정신적 물질적 후원자였던 테오의 지원을 받으면서 짧은 생애에 이루기 매우 힘든 업적을 남긴셈이다. 특히나 화상을 하던 테오로부터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들과 화가들을 만날 있었던 , 그리고 고흐의 화풍에 영향을 일본판화 작품들을 접하게 것들 모두 사실상 테오의 역할이라고 있다. 고흐도 그의 편지에서 인정하듯, ‘무조건적인 테오의 애정 대한 반대급부로서 고흐는 편으로 자신은 어쩔수 없는 실패자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자괴감의 감정이 그의 영혼을 갉아먹기 시작했을 것이다. 고흐의 삶에서 되풀이되는 감정이 바로 자신은 실패했다는 절망, 열패감이었다. 바로 사회 속에 자리를 갖지 못한 , 앞으로도 영원히 갖지 못할자, 무능하기 짝이 없는 로서 말이다.

 

     환대받지 못하던 방랑자의 이미지를 다른 문학작품들에서 떠올려본다. 바로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 나오는 홀든 콜필드를 먼저 생각해낸다. 콜필드는 기숙학교에서 퇴학당하고 집으로 바로 들어가지도 못한 , 뉴욕 맨하탄의 밤거리를 배회하는 자다. 한편 고흐는 콜필드와 마찬가지로 사회의 세속적 성공과 사회 전체를 경멸한다. 또다른 방랑자 이미지로서 고흐를 닮은 캐릭터도 있다. 바로 <좀머씨 이야기> 주인공 좀머씨이다. 물론 좀머씨는 성가신 미술 도구 대신 길다란 지팡이 하나에만 의지한 끊임없이 광야를 걸어가는 캐릭터이다.

입에 파이프를 물고, 모직 팬츠를 입고, 밀짚모자를 쓰고, 성가신 미술 도구들과 보따리를 하나 짊어지고, 그는 호헤베인 역가지 걸어간다. 주민들의 욕설과 야유를 들으며, 작은 마을들을 가로지른다. 눈과 바람을 무릅쓰고, 절망으로 눈에 눈물을 가득 머금은 , 쓸쓸한 광야를 시간 동안이나 걸어간다.”(116)

 

물론 콜필드든 좀머씨이든 허구의 이야기에 나오는 등장인물인데 반하여, 고흐는 실존 인물이라는 사실에 낯설어지는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다.

 

      책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을 언급해보자면, 작가이자 화가인 저자의 그림들이 상당수 자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림들은 정방형 프레임을 갖는 중형카메라를 통해 바라보는 영화의 장면들처럼 보인다. 혹은 타인의 혹은 뒤에서 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거나 무관심해 보이는 풍경을 포착한 사진처럼 제시되고 있다. 흑백의 단색 판화같은 파작의 그림들을 책의 매력이기도 하지만, 본문의 텍스트와 매치가 되지는 않는 듯하다. 마치 영화에서 대사와 배우들의 입모양이 어긋나있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한다. 달리 생각해보면 이런 모호하고 일관성이 없어 보이는풍경의 배열은 마치 점점 환각과 정신착란을 겪게되는 고흐의 내면 풍경과 추억의 편린들을 보여주려는 저자의 의도는 아니었을까.    

 

     프레데릭 파작의  <나는 빈센트를 잊고 있었다>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하고절망과 방랑의 짧은 삶을 살다간 고흐의 삶을 치밀하게 재현해놓았다. 고흐의 슬픔과 우울은 자신이 세상을 구해야한다는 믿음 내지는 열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자신이 그럴 존재가 도지 못한다는 자괴감은 다시 자신에게 돌아와 자신을 파멸시키게 원인이 것은 아닐까. 단순히 광인이라는 단어로 빈센트를 평가해버리는 것은 오히려 무책임하다고 생각한다. 한편 평생동안 가족, 특히 동생 테오에게 부채의식을 느끼며 자신을 다그쳤을 고흐의 모습을 책을 읽어나가며 상상해볼 있었다.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빈센트가 아버지를 죽였다 비방한 누나와 냉담하던 어머니를 탓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다만 이들이 빈센트를 좀더 환대해주고, 격려의 손을 내밀었다면 어땠을까하는 안타까움이 밀려온다. 어떠면 빈센트가 술취한 상태에서 자신의 귀를 자른 것도 환대 받지 못한 세상에 대해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한 행동의 표출이 아니었을까. 책은 작가이자 화가로서 프레데릭 파작이 빈센트의 그림과 삶을 면밀히 들여다보고 고민한 흔적의 결과이다. 빈센트의 편지와 그림에 대한 수많은 해설서 등으로 다소 부족해보이는 보다 면밀한 화가에 대한 낯선 기록이기도 하다.

 

 

30년이나 떠돌아다녔기에, 내겐 갚아야 부채와 완수해야 과업이 있으며, 세상이 내게 관심을 갖는 오직 내가 감사의 표시로 추억거리를 하나 남기는 한에서인 것이다.”(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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