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인되다 1 - 그 남자의 얼굴
비설 지음 / 마루&마야 / 2018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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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설 작가님의 각인되다! 표지가 넘나 예쁘고 고급진데, 끊어 읽기는 싫어 둘 다 가지고 다녀야는 하겠고 북케이스는 사지 않았고 해서 어쩌나 싶었는데 다행히 그랑데용 케이스가 맞아서 케이스에 넣어 다녔어요! 그랑데도 없는데, 그랑데용 케이스를 사서 이렇게 써먹었습니다ㅎㅎ

폭신폭신한 케이스 덕에 구김도 없이 끝까지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이 엽서! 너무 예쁘지 않나요. 초판한정이랍니다. 준도 씨 나쁜 남자 매력 뿜뿜하고 있지만 알고 보면 다정남이어요...


※ 제가 작성한 리뷰에는 스포가 다량 포함되어 있습니다.


주인공 

강준도 - 정의감이 충만했던 유도 소년. 잘못된 인연으로 인해 조폭이 되었음. 현재 로아주 대표.

한설희 - 풍족한 유년 시절의 끝을 비극적으로 마감하였으며, 그 후유증으로 시력을 잃음. 각막기증자를 기다리며 안마시술소 역삼동 루비에서 돈을 모으다가 강진도를 만남.

책 첫 장부터 심상치 않게 시작해서 마음을 무겁게 하고 읽었는데, 초반부는 생각 외로 경쾌하게 넘어갑니다. 어린 시절 불의의 사고로 시력을 잃은 설희가 안마시술소(순화표현) '루비'에서 만난 강준도에게 닫혀있던 마음을 조금씩 열고 둘이 꽁냥거리며 데이트도 하고 거리를 좁혀가는 과정이 참 보기 좋았어요.

조폭 냄새를 없애고 양지로 나가고자 하는 대표의 뜻에 따라 업장을 정리하기 위해 루비를 찾았던 강준도는, 처음 만난 시각장애인 고용인 한설희에게 묘한 호감을 느끼며 빠져듭니다. 

장애가 있지만 굴하지 않고 열심히 사는 설희에게 준도가 빠져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릅니다.(물론 설희의 미모가 한몫했을...)

첫 데이트를 나가는 날, 설희를 기다리며 두근거리는 준도. 하지만 준도는 조폭이고 설희는 평범한 시민이기에 준도의 마음 한켠에는 항상 불안감이 있습니다.

반면 설희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준도의 존재가 부담스럽고 두렵기만 합니다. 하지만 어떤 사건을 계기로 준도와의 거리가 좁혀지고 결국 준도를 향해 마음을 열어가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그가 '설희야.'라고 불렀다.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남자의 목소리가 낯설어 자신의 이름까지 낯설었다. 

내 이름이 설희였구나.

그 사람의 목소리는 설희에게 자신의 이름을 새삼 와닿게 하는 이상한 깨달음을 주었다.

각인되다에서 이 장면이 최고로 좋았습니다. 끝까지 다 읽은 후에도 이 장면이 제일로 좋네요. 나의 이름이 다른 사람의 입에서 흘러나와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되는 것. 제대로 취향입니다. 

한번 마음을 열고나니 걷잡을 수 없이 준도에게 빠져드는 설희의 심리 변화도 자세히 묘사되어서 좋았어요.

서로에게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든 두 사람은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배려심 깊은 준도가 설희를 위해 마련한 데이트 코스(동물원 - 시각장애인과 데이트할만한 장소가 없더라. 피아니스트 랑랑의 연주회 - 설희가 좋아함)에서 즐거운 한때도 보내고 설희의 반지하 집에서 벗어나 준도의 집으로 옮기면서 불타는 나날을 즐기던 그 어느 날...

- 이하 스포 가득 -

설희의 사고에는 남에게 말하지 않은 비밀이 있습니다. 소설 중간에 언급되지만 아버지는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고, 그랜드 피아노에 기름을 붓고 누군가가 방화를 합니다. 이게 좀 불안했던 데다가, 냄새를 잘 맡는 설희가 준도를 인식한 첫 계기 강한 향수에 대해 준도는 이런 설명을 합니다.

괴물. 울컥, 역겨움이 몰려들었다. 주도의 손은 서둘러 회색 유리병 하나를 찾아 집었다. 어둡고 달콤 쌉싸름한 향이 그의 온몸을 갑옷처럼 뒤덮었다. 

쎄하죠.

드디어 각막 기증자를 찾은 설희가 시력을 되찾으면서 숨겨 왔던 사연이 밝혀지는데, 저는 이 부분에서 급격히 집중력을 상실했습니다. 설마? 했던 내용 그대로 사건이 흘러버렸어요. 강준도는 동생이 족쇄가 되어 큰 범죄에 연루되어 조폭이 되었는데, 그 희생양이 윤설희의 아버지였고 윤설희의 아버지가 죽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조폭 회장 장인철의 아내와 사랑을 하여 도망갔기 때문이며 가벼운 날라리 이경빈은 윤설희 아버지에게 은혜를 입은 과거가 있어 장인철에게 복수를 하고자 합니다. 

초반 밝은 분위기에 흐뭇했던 저는 중반 이후의 음침해진 분위기에 왜 작가님이 글을 쓰면서 감정 소모가 컸다고 하시는지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둘이 가진 과거의 무게가 지나치게 무겁고, 사랑했던 마음이 사라지는 게 아니어서 상대방을 놓을 수 없어 힘들고, 아버지를 생각하면 미워해야 할 준도를 미워할 수는 없고, 설희의 사정을 모르는 준도는 자신을 피하기만 하는 설희가 야속하고, 설희가 좋아진 경빈이는 가운데서 속만 썩고 있고, 그걸 보는 독자는 참 안타까웠습니다. 꼬여도 이렇게 꼬이다니. 얘기를 잘못 이끌어 나가면 끝도 없는 신파가 될 텐데 담백한 문장에 깔끔한 성격을 가진 설희가 무게중심을 잘 잡아서 다행히 신파로 빠지진 않았어요.

 윤설희의 아버지를 죽게 만든 원흉, 강준도를 나락에 빠트린 악마, 설희가 복수하고자 했던 장인철 회장은 설희도 준도도 아닌 경빈에 의해 정리되고 준도와 설희, 경빈은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로 합니다.

이 이야기가 해피엔딩으로 끝나기 위해서 약간의 무리수를 둔 감이 있기는 하지만 책의 3/4가 무거웠던 소설이 그 끝마저 슬펐다면 제가 너무 힘들었을 것 같아요. 물론 새드엔딩도 어울릴 것 같은 분위기이긴 했습니다. 실제로 작가님의 후기를 읽어 보면 슬픈 이야기였지 않을까 생각되기도 합니다. 

본편이 무거웠던 만큼 외전은 가벼울까 했는데, 외전에서 밝혀지는 설희 아버지와 장 회장 그리고 그 아내의 이야기는 짠하기만 합니다. 둘의 후일담도 초반에 비하면 담담하게 그려져서 단맛이 부족해 아쉬웠습니다.

글도 깔끔하고 설희의 강단있는 성격, 다정한 준도, 깨방정이지만 미워하기 힘든 경빈, 묵묵히 옆을 지키는 매력이 있는 김재형 등 등장인물들의 개성이 뚜렷해서 술술 잘 읽혔습니다. 영화로 만들어도 참 재미있을 것 같았어요. 연재로 읽는 것 보다는 책으로 읽는게 호흡조절에 훨씬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이런 책은 감정을 끝까지 유지해야지 한 번 끊기면 밍숭맹숭해질 가능성도 있고, 뒷부분이 너무 무거워서 앞의 가벼움을 이어가지 못하면 읽다 지칠수도 있겠다 싶었거든요.

다만, 지하실 가득한 곰팡이 냄새를 후각이 예민한 설희가 깨닫지 못한다거나(지하실 냄새랑 곰팡이 냄새는 다름) 준도의 목소리가 낮고 깊은 울림이 있다는 묘사에도 말투가 가벼워서 상상이 잘 되지 않았다는 점, 배신을 잘 당해서 예민한 장인철 회장이 이경빈의 고자질 전에는 아무것도 깨닫지 못했다거나 이경빈이 뒷통수 칠거라는 것을 인식도 못했다는 점, 갑자기 나타나 강준도의 옆을 차지한 한설희에 대한 조사를 충직한 김재형이 자발적으로 해볼 생각도 안했다는 점, 초반에 의연하고 강단있던 설희가 각막이식 수술 이후 성격이 변해 자꾸 동공지진 했다는 점(충격이 워낙 컸을테니 이해 못하는건 아닙니다) 주인공 둘의 이야기는 괜찮은데 장 회장의 사연은 신파였다는 점이 좀 아쉬웠어요.

초반의 잔잔하고 따뜻한 분위기에 비해 후반부는 긴장감있게 흘러서 끊지도 못하고 몰입해서 읽었어요. 독특했던 초반에 비해 후반부는 다소 예상대로 흘러 아쉬웠지만 작가님이 글을 잘 쓰셔서 나쁘지 않게 읽었습니다. 외전이 달달함이 적은 것은 서운했지만, 글을 마무리하기에는 딱 좋은 내용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대로 끝났으면 끝까지 짠하게 남았을 경빈의 새로운 사랑과 설희와 준도의 밝은 미래가 되어줄 2세 이야기로 마무리 하셔서 꽤나 무거운 이야기였지만 마음은 가볍게 끝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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