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내 심장을 느끼게 될지도 모르니까 현대문학 핀 시리즈 시인선 24
정다연 지음 / 현대문학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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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액션

 

 

 

 

네가 날 쳐다보면

쳐다보지 않는다

 

 

 

네가 박수를 치면 박수를 치지 않고

네가 끄덕이면 고개를 갸웃한다

 

 

 

뭘 보는 거니

네 의견엔 동의하지 않아

방금 그 말은 정말

나눠 줄 웃음이 없다

 

 

 

매 각도로 표정을 단속한다

단속으로 표현한다

무심코 돌아가는, 반성도 없이

제 이름에 반응하는 목은 꺾어버리기로

 

 

줄줄이 쓰러지고 엎어지는 도미노

편리한 호명과 위계

출입문 닫습니다 출입문 닫습니다

안을 안심하게 만드는 것들

 

 

일순간에 차가워질 것

침묵을 깰 것

동의하지 않습니다

동의하지 않습니다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굳어지는 순간에

적확히 무너질 것

 

머리의 숩관

 

 

 

1

 

목에 얼굴을 올려두고 있었을 뿐인데 아침이 온다

 

 

 

아침이 머리통처럼 굴러온다 창문에 기대 빛을 쐬고

어제보다 조금 더 자란 식물의 길이를 생각한다

 

 

........ 생략

 

 

 

 

3

 

 

 

 

오늘 밤, 안잔하고 착한 머리통은 다 어디로 굴

러가나 군화에 짓밟힌 머리통, 밧줄에 매달린 머

리통, 뗏목과 함께 난파하는 머리통, 해저에 처박

힌 머리통, 먹이가 된 머리통, 수용소의 머리통, 가

스로 가득 찬 머리통, 기차에 부서지는 머리통, 신

원 미상의 머리통, 시위하는 머리통, 인파에 짓눌린

머리통, 기름 붓는 머리통, 우아하게 뾰족구두 신

고 걸어가는 머리통, 탈을 쓴 머리통, 무표정의 머

리통, 주일의 머리통, 태아의 머리통, 기조하는 머

리통, 국가에 묵념하는 머리통, 아이의 머리통, 칠

판을 바라보는 머리통, 선생의 머리통, 운동장의 머

리통, 떼거리로 교각을 건너는 머리통, 흔들리는 머

리통, 절벽으로 추락하는 머리통, 폭파하는 머리통,

동시다발적인 머리통, 피 흘리는 머리통, 눈을 감거

나 뜬 머리통, 발밑에서 끝없이 차이는 친구들의 머

리통

 

 

 

식탁 아래로 통 통 통 떨어지는데

 

 

 

우리는 서로의 얼굴에 대고 아침이야, 말한다

 

변신

 

 

 

얼음, 뱀파이어

 

 

네가 날 송곳니로 물 때

 

 

나는 바위에 흐르는 피

 

 

수쳔 년 동안 달을 파낸 크레이터

 

 

얼음 벽돌을 딛고 널 찾으러 가는 백골의 신부

 

 

어지러운 온도, 깊어지는 추위 속에서

 

 

내가 널 물 때

 

 

더 멀리 질주하기

 

 

착한 얼굴이 깨끗한 반쪽이 될 때까지

 

 

너의 몸통과 나의 손발이 찐득하게 붙을 때까지

 

 

서로에게 달라붙어

 

 

함께 사라지기

 

 

아무런 예감 없이

 

 

서로의 텅 빈 눈두덩 속으로

 

 

진창 속으로

 

 

빨려 들기

 

 

사라지기

 

 

사라지기

 

 

사라지기

 

 

그림 없는 그림

 

 

 

백지를 걸어두고 그 속에 앉아 기다렸지요

 

 

두꺼운 얼음을 가르며 오는 배 한 척 없이

조용했지요

 

 

 

깊은 하양 속에 손을 묻고

바닥을 해집어도

물풀 하나 떠오르지 않고

놀라 도망치는 물고기 하나 없어

 

 

 

백지를 망치고 싶었지요

 

 

 

가짜 입을 그려 말을 지어내고

없는 상처를 만들면

그것이 나인 것 같았지요

 

 

 

비가 오면 적시기 좋고

불태우면 그대로 그을리는

눈물 얼룩 하나 없는 표면으로

기다렸지요

 

 

 

모든 것이 되어보려

사라진 내가

조심조심

세계를 비추려

물드는 순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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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날이나 저녁때 현대문학 핀 시리즈 시인선 19
황인숙 지음 / 현대문학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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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도 썼다

 

 

 

잠 깨려고 커피를 마신 적 있나?

있다

있긴 있다만

대개는 잠을 깨려고 마시기보다

깨어 있어서 마셨다,

라고 나는 썼다

커피는 썼다

인생이 쓰고 즘생도 쓰고

뭐든지 쓴 밤

쓰지 않은 건 잠뿐

트리플 샷을 마셔도

쏟아지는 잠

그래, 커피는

마시는 것보다 쏟는 개

더 잠을 깨게 한다지

뭐라도 써야 하는 밤

 

 

망중한

 

 

 

땀에 푹 젖은 손수건들

물에 헹궈 짜서 의자 등받이에 걸쳐놓았다

숨을

물속에서 쉬는 것 같다

짜고, 따뜻한 물 후루룩

빨려 들어오고

훅, 빠져 나간다

나이 들면 땀에서

나쁜 냄새가 난다지

숨에서도 그럴까

날숨, 날숨, 날숨

냄새를 맡아볼 날숨 만들려고

들숨, 들숨, 들숨

깊게도 쉬어보고 얕게도 쉬어본다

잘 모르겠네, 코가 맹맹하다

물고기 눈읋 벙벙

한여름 하오

들숨날숨

숨 쉬기 놀이

 

 

너희 매미들아, 쉬어가며 울렴

숨 막히겠다

 

 

옛이야기

 

 

아무리 애 터지는 슬픔도

시간이 흐르고 흐르면

흐릿해지지

시간은 흐르고

흐려지지

장소는

어디 가지 않아

어디까지나 언제까지나

 

 

영원할 것 같은

영원한 것 같은

아플 것 같은

아픈 것 같은

 

 

아무 날이나 저녁때

 

 

 

1

 

 

온종일

저녁 같은

 

 

 

창밖 멀리 하늘,

그 아래 건물들도

어딘지

삭아가는

시멘트 빛

 

 

 

아, 정작

저녁이 오니

건물들이 희게 빛나네

하늘과 함께

건강함의 진부함을

뿜내네

 

 

2

 

 

 

어제 우연히 발견한

10년은 좋이 지난 너의 메모

좋은 펜으로 썼나봐

글자가 선명하네

'아무 날이나 저녁때'

 

 

 

내게 아직

진부하게도

저녁이 있었을 때

아무 날이나

저녁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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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에서 돌아온 남자 - 옛날 귀신 편 문화류씨 공포 괴담집
문화류씨 지음 / 요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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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눈앞에 있던 물건이 사라질 때가 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귀신의 장난일 수도 있다.

당신이 방금 전 사라진 물건 때문에 당황하고 있다면, 옆에서 모든 걸 지켜본 귀신이 깔깔대며 비웃고 있을지도 모른다.

박장대소하며 즐거워할 귀신의 모습을 생각하니 약간 괘씸하기도 하다.

 

 

 

 

 

 

문제는 심보가 고약한 귀신이다.

원한을 품은 귀신과 달리 살아 있는 인간을 무조건 싫어하는 녀셕들이 있다.

이들은 인간의 안녕과 행복이 가장 꼴 보기 싫다.

해를 끼치기 위해서라면 잔인한 짓도 마다하지 않는다.

 

 

 

 

 

"여보, 아가들아, 오늘부터 이곳이 우리 집이여.

이 집에서 행복하게 잘 살아보자구!"

 

 

준택은 다행이라 생각했지만, 아내는 그 집이 반갑지만은 않았다.

땅이 아래로 푹 꺼진 듯했고, 한여름인데도 냉기가 들었다.

준택은 기분 탓이라며 낡은 것을 고치고 곳곳을 손보면 문제없을 거라고 했다.

 

 

 

그곳에서의 첫날 밤, 준택의 아내는 꿈을 꾸었다.

돌아가신 친정어머니가 집에 찾아온 것이다.

그런데 어머니께서는 반가운 기색도 없이 애가 타는 표정을 짓고 계셨다.

급기야 팔을 잡고 집 밖으로 나가자고 했다.

 

 

 

"얘야, 빨리 나가자. 이런 집에서 살면 안 돼. 어서 빨리 나가자꾸나."

 

 

놀란 준택의 처는 잠에서 깼다.

흉흉한 꿈을 꾼 탓일까.

온몸에서 식음땀이 흘렀다.

싱숭생숭했다.

깊은 숨을 쉬며 머리맡에 둔 주전자의 물을 따라 마셨다.

그런데 옆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렀다.

 

 

"케게게게....켁....케게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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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9 11: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24 15: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꼬마요정 2019-07-20 0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뒷 이야기가 궁금하면 이 책을 읽어야 하는거죠? ㅎㅎ 궁금합니다.

더운 여름 건강하게 잘 지내시나요?

후애(厚愛) 2019-07-24 15:53   좋아요 0 | URL
제가 뒷 이야기가 궁금하게 밑줄긋기를 올렸군요.^^;; 이 책은 읽다보면 약간의 중독성이 있는 것 같아요.

물리치료를 좀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간 날 때면 서재에 들어오네요.
대구는 찜통속입니다..ㅠㅠ
꼬마요정님께서도 잘 지내시죠.
더위조심하시고 항상 건강하세요.^^
 
엄마 - 다르지만 똑같은, 31명의 여자 이야기 밝은미래 그림책 37
엘렌 델포르주 지음, 캉탱 그레방 그림, 권지현 옮김 / 밝은미래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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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평화를 가져다줄께. 약속해.

우리 다시 만나는 날에는

너에게 비행기 이야기를 들려줄께.

그곳의 삶이 어떤지를,

엔진 고치는 법을,

헤어진 사람들이 다시 만날 수 있도록 돕는 법을,

도움을 주는 법을 가르쳐 줄께.

왜 내가 네 곁에 없었는지 설명해 줄께.

네가 이해해 줬으면 좋겠구나.

엄마가 되는 것이란

모범을 보이는 것임을.

그리고 내가 너에게 보인 모범을 좋아했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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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개다 그림책이 참 좋아 56
백희나 글.그림 / 책읽는곰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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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람들은 나를 "구슬아!" 하고 부른다.

 

 

 

수년전

슈퍼집 방울이네 넷째로 태어나

엄마 젖을 떼고

처음 밥을 먹기 시작했을 때

이곳으로 보내졌다.

 

 

 

그렇게 가족이 되었다.

 

 

 

 

우리 엄마, 방울이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하자면

이 구역의 왕엄마시다.

 

 

 

 

해마다 새끼를 엄청나게 낳은 것이다.

 

 

 

 

 

어쩌면 동네에서 마주치는 개들이

거의 다 내 형제자매일지도 모른다는 소리다.

 

 

 

얼굴도 냄새도 희미하지만

다들 열심히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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