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랑화사 1
정연 지음, R.알니람 그림 / 영상출판미디어(주) / 2014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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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블엔진 팝 대상을 받은 책이다.

제목과 책 디자인 그리고 책의 내용을 보고 무척 궁금했던 책이다.

그런데 1권만 나온 상태라 구매하기가 망설여졌다.

그리고 2권이 완결이 아니라는 것.

아직 몇 권까지 나올건지는 모른다.

그래서 우선 1권을 구매해서 읽어보고 마음에 들면 소장하기로 했다.

 

<밤을 걷는 선비> 8권을 구매하면서 <유랑화사> 1권도 함께 구매를 했다.

2권이 나오면 함께 읽을까 생각하다가 너무 궁금해서 읽기 시작했다.

손에서 책을 땔 수가 없었다.

한마디로 푹 빠져 버렸다는 것.

 

엄마를 잃어버린 10살 소녀 여우 리아

리아는 엄마를 찾아 나서다가 우연히 도움을 받게 된 화사

 

난 1권에서 2권으로 이어지는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였다.

1권에서 이야기가 끝나고 다음 편인 2권으로~

이 책을 하루만에 다 읽고 다시 읽고 있는 중이다.

이번에는 천천히

 

이 책을 읽고 가슴이 아팠던 이야기는

<웃는 모란화>

<월궁선녀>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2권 3권... 빨리 나오면 좋겠다.^^

이 책은 소장하면서 두고두고 읽을만한 책이다.

그래서 시리즈를 모으기로 했다.

 

여우도 그렇고 도깨비도 떡을 엄청 좋아하네

물론 도깨비가 떡 좋아하는 걸 알고 있었지만...

여우는...

그리고 난 여우가 좋아졌다.^^

 

내용이 길어서 많이 생략했다.

중요한 부분을 밑줄긋기~

 

 

아름다운 새 신부

혼례를 앞두고 불꽃에 휩싸였다

죽어도 눈을 감지 못해

활활 불타면서

오늘 밤도 찾아온다

 

-73페이지

그것이 나타났다.
"헉!"
창백한 얼굴로 버티던 신랑이 휘청거렸다.
처음 보는 것이 아닐 텐데도 견디기 힘든 모양이었다.
하긴. 지금껏 온갖 잡귀들에게 쫓겨봤던 리아마저도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것 같았으니까.
이보다 더 끔찍할 순 없었다.
화려한 족도리도, 구름 같은 머리칼도, 치렁치렁한 비단 옷도 전부 타올라 재가 되어 뚝뚝 떨어졌다. 불꽃의 열기에 하얀 피부가 우그러들고 있었다. 배에는 칼이 박혔고 어깨에는 화살이 꽂혔다. 군데군데 부적이 붙은 곳에서는 파지직 번개가 일었다. 무엇보다 무시무시한 것은 그 얼굴이다. 부적을 맞은 한쪽 눈에 구멍이 뚫려 검은 소용돌이로 변해 있었다.
그런 끔찍한 모습을 한 채로.
모란화는 웃고 있었다.
나지막한 웃음에 콧노래가 섞여 있었다. 그 섬뜩하고 소름 끼치는 메아리가 귓속을 파고들었다.
모두 얼이 빠져 있는 사이, 이 불타는 화염 덩어리가 신랑을 확 덮쳤다.
"나리!"
무당들이 비명을 질렀다.
신랑은 공포에 완전히 사로잡혀 꼼짝도 하지 못했다. 사색이 되어 두 눈만 질끈 감았다.
그러나.....
뜨거운 열기가 돌연 사라지며 바람이 얼굴을 휙 스쳤다.
신랑은 놀라서 눈을 떴다. - 124~125페이지

모란화가 그의 옆을 무심히 스쳐 지나고 있었다. 어어? 이럴 수가. 신랑의 얼빠진 눈빛이 그녀의 뒷모습을 따라갔다.
"역시."
바람이 일었다.
"그것 봐라. 내가 아니라고 했잖아. 왜들 말을 안 들어. 신랑을 노리는 것이 아니라니까."
화사는 번개같이 모란화의 뒤를 쫓았다.
"기다려!"
리아도 잔해 더미를 뛰어넘으며 따라갔다.
귀신의 모습이 눈앞에 가까이 다가왔다.
정말 이 광경은 아무리 봐도 적응되지 않는다. 불타오르는 신부의 몸에서는 타닥타닥하는 소리마저 들렸다. 가까이서 자세히 보니 더욱 끔찍했다.
"아프시겠네. 아프시겠어."
화사는 듣지도 않는 그녀를 향해 말을 걸었다.
"어쩌겠나. 육신이라는 감옥에 갇히면 그렇게나 겁이 많아지는 것을. 말이 안 통하면 그저 닥치는 대로 찌르고 던져대지. 어쩔 수가 없어. 일단은 그 고통부터 덜어 드릴 테니까."
자리에 앉아 다시 물감 통을 내려놓았다.
"어디 보자. 어떻게 할까......"
그는 나무함의 뚜껑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잠시 후 종이 한 장을 꺼냈다. 물감을 찍어 순식간에 그림을 그려나갔다.
꽃이었다. - 125~126페이지

가장 닮은 것을 꼽으라면 연꽃이겠으나, 무엇보다도 알록달록한 꽃잎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이 달랐다. 붓끝에서 꽃잎들이 활짝 피어나더니, 완성되자마자 밖으로 튀어나왔다.
늙은 무당이 주름진 눈을 비빈다.
"마하만수사화摩訶曼殊沙華......?"
꽃송이가 점점 커지며 공중에 떴다. 흰색, 푸른색, 붉은색, 노란색 꽃잎들이 쏟아져 내리더니, 어느 순간, 맑은 소리들이 땅을 톡톡 두드리기 시작했다.
"아, 바다!"
리아는 머리를 감쌌다. 시원하고 향기로운 꽃비가 손가락 사이로 떨어져 옷을 적셨다.
놀라운 일이었다.
모란화의 몸에 붙은 불길이 서서히 잦아들었다. 군데군데 아주 작은 불씨만 남았다.
"무슨 일이오? 어찌 된 것이오?"
어느새 기루의 주인인 행수기생이며 다른 기생들이 와서, 마흔여덟 신장이 지키는 수호진 밖에서 숨을 죽이고 구경하고 있었다.
하아.......
귀신의 탄식이 울려 퍼졌다.
화사는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갔다.
"이제 좀 괜찮습니까?"
모란화는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봤다.
불길이 꺼지자 그녀의 흉한 모습이 낱낱이 드러났다.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리아는 고개를 돌리고 싶은 것을 꾹 참았다.
아아....... -126~127페이지

귀신의 불탄 입술이 움찔거렸다. 안 그래도 무시무시한 얼굴이 더욱 끔찍하게 일그러졌다.
이.......
겨우겨우, 형태를 가진 소리 비슷한 것이 새어 나왔다.
"듣지 마라! 저주다! 이런 요사한!"
늙은 무당이 장검을 뽑아 들었다.
화사는 말없이 한 손을 들어 무당의 행동을 제지했다. 그 간단한 동작에, 뭐라 말할 수 없는 위압감이 깃들어 있었다.
"저주인지 아닌지. 잘 들어보시지."
리아는 귀신을 쳐다봤다.
귀신은 지금 잘 움직이지 않는 입술을 움직이며, 뭔가를 말하려 하고 있었다.
이, 이.......
이, 일.......
귀신이 드디어 말했다.
"일찍...... 오셨구나......."

"아직...... 더 기다려야...... 할 텐데. 어쨌든...... 잘 오셨어요...... 화사님. 이따가...... 나 혼례 올릴 때...... 예쁘게 잘...... 그려주셔야 해요......."
모란화의 귀신은 더듬더듬 힘겹게 말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화사는 미소를 지었다.
"평생의 재주를 다해서 아주 아름답게 그려드리겠습니다. 안 그래도 아름다우시지만."
"아, 아름답기는....... 어제 잠을 설쳐서...... 보세요...... 눈이 붓지 않았나요......."
눈이 부은 게 아니라 눈이 없다니까. -127~129페이지

리아는 몸을 떨었다. 보아하니 이 모란화의 귀신은 자신이 죽었다는 것을 전혀 자각하지 못하는 듯했다. 아직도 혼례식 당일인 줄 알고 있었다.
"어디 보자....... 전혀 아닌데요."
화사는 그 끔찍한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눈썹 하나 까닥하지 않고 대꾸했다. 산 사람을 대하는 것과 전혀 다름이 없었다.
리아는 새삼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능구렁이. 강철 같은 신경을 가진 능구렁이.
모두 찍 소리도 내지 않고 이 기묘한 광경에 주목했다.
"그런데 왜 잠을 설치셨습니까? 너무 떨려서요? 혼례가 처음이신가."
"아이, 참. 화사님도......."
모란화의 발음이 점점 더 또렷해지고 있었다.
그녀는 불탄 소매를 들어 입을 가리며 쿡쿡 웃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그 자태만큼은 우아했다.
모닥불에 반쯤 굽다가 꺼낸 닭 같은 꼴을 하고 있지만 않았어도, 다들 넋을 잃었을텐데.
"재미있는 분이시네. 안 그래도 떨리고 긴장됐는데. 화사님과 이야기를 나누니 점점 마음이 가라앉네요. 마음 같아선 차라도 대접하며 더 이야기를 나눌 텐데. 제가 지금 너무 바빠서."
-129~130페이지

"그러고 보니, 뭐가 그리도 바쁘십니까? 혼례를 앞두고 원삼까지 전부 갖춰 입었으니, 이제 새신랑이 나귀 타고 맞이하러 오기만 얌전히 기다려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여기서 뭘 하고 계십니까?"
"무엇을 좀 찾고 있어요."
"무엇을?"
"그것은 비밀이랍니다."
모란화는 장난스러운 태도로 빙글 돌아섰다.
"제가 맞혀볼까요? 저기 저 장롱과 관련이 있지 않습니까?"
"어머나!"
모란화는 펄쩍 뛰었다.
"참으로 여우같은 분이시네. 이 모란화가 천하의 제일가는 백여우인 줄 알았는데, 잘하면 저하고 쌍벽을 이루겠는데요? 도대체 그것을 어찌 아셨담."
"그야......."
"쉿! 누가 듣겠네요. 더 이상 말하지 않겠어요. 모든 것은 혼례식까지 전부 비밀이어요. 기다리셔요. 모든 사람 앞에서 다 밝힐 테니까."
"그러지 말고 말해주시지."
화사는 웃는 얼굴로 재촉했다.
"궁금한데 그때까지 어떻게 기다립니까. 어차피 오다가다 들른 떠돌이 화사인데. 살짝 귀띔만 해주십시오. 사실 입이 근질근질하지 않습니까. 빨리 누구한테라도 털어놓고 싶어 안달이 나지 않습니까."
"아이 참. 안 돼요."
모란화는 어쩔 줄 몰라 양손으로 뺨을 감쌌다.
참 이상하기도 하지. - 130~131페이지

리아는 눈을 깜박거렸다.
그토록 흉악한 모습의 그녀가 점점 신부답게 보이기 시작했다. 행복에 취한 아리따운 새신부. 좀 전까지 사색이 되어 있던 신랑도 어느새 고개를 들고 넋을 잃은 채 바라보고 있었다.
"좋아요, 화사님. 이것은 절대로, 절대로 비밀인데......."
모란화는 그러다 키득 웃음을 터뜨렸다.
"아아. 남들 앞에서 내색하지 않으려니 얼마나 힘든지. 이 행복한 마음을."
"무엇이 그리도 행복하십니까? 이제 양반 나리의 부인이 되어 호강하게 되어서? 그것도 연모하는 나리의."
"어머! 누가 연모한다고 그래요! 농담도 참."
모란화는 한쪽밖에 없는 눈으로 화사를 흘겨봤다.
"그렇습니까? 죄송합니다. 오해했나 봅니다. 듣기로는 돈 때문에 첩실이 되기로 했다는데. 이렇듯 들뜬 모습을 보아하니 혹시 신랑감이 정말로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닌지 해서......."
"틀렸어요. 틀렸다고요. 두 번 다시 그런 소리 마셔요. 얼굴이 잘생기기를 했나. 여자가 안기고 싶을 만큼 체격이 당당하기를 했나. 허여멀건 얼굴에 바람 불면 휙 날아갈 허약한 체격. 기생이 애교 몇 번 부려주니 바로 눈이 풀려서 정신 못 차리는 모습이 우습기만 한데.......
- 131~132페이지

그래도. 우스웠어요. 그것이 첫인상이었답니다."
"그래서요?"
"및천까지 털린 꼴이 불쌍해서 동곳만은 돌려줬어요. 아니나 다를까 축 쳐져서 돌아가는 꼴이라니. 혀를 쯧쯧 차면서 돌아서는데, 문득 그가 흥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어요. 그것은 바로, 그날 제가 연주했던 바로 그 가락이었답니다. 그 사실을 깨닫고 깜짝 놀랐지요."
"어째서요?"
"그것은 무척 어려운 곡이에요. 그런데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정확히 흥얼거리더군요. 제아무리 머리가 좋은 사람이라도 하루 만에 외울 수는 없어요. 이 모란화조차도 닷새는 걸렸는데."
"과연. 그분은 그 가락을 지금까지도 외우고 계시더군요. 총명한 것은 맞는 듯합니다."
"총명한 것이 아니어요. 음률을 모르는 분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진정한 기재라 할 수 있지요. 그 놀라운 집중력과 암기력이라니. 만약 그렇게나 집중한 상대가 이 모란화가 아니라 서책이었다면 단번에 장원급제를 할 재목이 아니겠어요?"
귀신은 어느덧 신이 나 있었다.
-132~133페이지

"이 모란화는 어릴 때부터 기루를 전전하며 수많은 사람을 봐왔어요. 사람 보는 눈 하나는 자신할 수 있어요. 그분은 그냥 한량이 아니었어요. 누군가가 잘 밀어주기만 하면 분명 큰 인물이 되실 분이었어요. 그것을 깨닫는 순간 소름이 돋았지요. 좋아. 모란화. 어디 한번 큰사람 하나 만들어보자. 그렇게 마음을 먹었지요. 그리하여ㅡ."
"작정하고 털어버렸다?"
"어머! 어머! 어찌 아셨나요! 모든 것은 이 모란화의 계획대로 진행되었지요. 예상에서 벗어난 것은 단 하나. 그분이 수모를 당하고도 끝내 저를 맞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는 것이어요. 그래서 시간이 없었어요. 그것을 꺼낼 시간이. 결국 이렇게 혼례식 날이 성큼 와버리고 말았네요. 겨우겨우 고집을 피워 기루 옆 뜰에서 혼례를 올리도록 하는데 성공했으나, 도대체 어떻게 해야 이 방에 몰래 숨어들어올 수 있을까. 궁리하고 있던 와중에, 글쎄 불이 났다는 소리가 들리지 않겠어요? 그래서 이렇게 정신없이 달려오고 말았지요."
모란화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지금은 괞찮지만, 아까까지는 얼마나 뜨거웠는데요. 제옷자락에도 불이 붙는 바람에 어찌나 놀랐는지."
-133~134페이지

"그럼 어서 나가셨어야지요."
"안 돼요. 그것이 재가 되어버리면 안 돼요. 온몸이 활활 불타는 한이 있어도 그것만큼은 반드시 지켜내야 해요. 다행히 불은 꺼졌는데, 어찌 된 일인지 각양각색의 커다란 뱀들이 그곳을 빙 둘러싼 채 못 들어가게 막고 있어서......."
모란화는 주위를 빙 둘러봤다.
"화사님께서 치워주셨군요."
"예. 치웠습니다. 가시라고 치워드렸습니다. 자, 그러니까 어서 가보십시오."
귀신은 장롱에 가까이 다가갔다.
농의 서랍을 하나하나 빼고 빈 몸체를 번쩍 들어올렸다.
농발 대신에 괴어놓은 낡은 종이 뭉치를 빼냈다.
"아, 그거였군."
화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귀신의 불타버린 얼굴이 빛나고 있다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기쁨과 자랑스러움이었다.
"어때요? 아주 감쪽같지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어요. 이것이 바로ㅡ."
"땅문서. 맞지 않습니까?"
"참 눈치도 빠르셔. 어떻게 아셨나요?"
"꼭 지켜야 할 귀중한 종이라면 땅문서밖에 더 있습니까. 과연. 교묘했군요. 농발을 감싼 종이로 위장해서 눈에 안 띄게 숨겨놓다니. 조금만 더 자세히 봤다면, 알아차릴 수 있었을텐데."
-134~135페이지

"어머나, 화사님. 혹시 제 방에 전에 와보셨나요?"
"아아, 아닙니다. 그런데, 아무리 땅문서라 해도 망설임 없이 불 속으로 뛰어들다니. 그것은 무모한 짓이 아닙니까? 그랬다가......."
화사의 얼굴에 잠시 씁쓸한 듯한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
"그랬다간 화상이라도 입으면 어찌하시려고."
"알아요. 돈이야 또 모으면 되지요. 화사님의 말씀이 옳아요. 하지만 이것은 보통 돈이 아니랍니다."
"돈이 다 돈이지. 돈에도 양반과 상놈이 있다는 겁니까? 엉뚱한 말씀을 하시는군요."
"아이, 그런 것이 아니라요. 이것은 제 돈이 아니란 말이어요. 제 돈이라면 불길 속으로 뛰어들지는 않지요. 남의 돈을 잠시 맡아둔 것이랍니다."
"틀렸습니다. 틀렸어요."
모란화의 귀신은 어리둥절해졌다.
"틀리다니요? 제 말이 틀렸다고요?"
"그렇습니다. 그것이 어떻게 남의 돈입니까? 이제 곧 맺어질 낭군님인데, 어직도 남이라고 칭하는 것은 너무 매정하지 않습니까?"
귀신은 당황했다. 가뜩이나 화염에 둘러싸여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이 더욱 붉어지는 것이 보였다.
그러더니, 어깨를 흔들며 웃기 시작했다.
-135~136페이지

"그래요. 그분의 돈이어요. 악착같이 뜯어내서, 한 푼도 안 쓰고 모아뒀지요. 왜냐하면, 그분은 돈을 쓸 줄 모르니까요. 부잣집 도련님답게 아주 기분파랍니다. 전에 뱃놀이를 갔는데, 사공한테 엽전 한 꾸러미를 덥석 쥐어주는 걸 보고 어찌나 기가 막히던지. 차마 내색은 못했지만 뒷목이 다 뻣뻣해지더라니까요. 이 모란화가 작정하고 전부 뜯어내서 모아두지 않았다면, 전부 어디로 샜는지도 모르게 다 사라졌을 것이어요. 그걸 아세요? 과거에 급제했다고 전부가 아니랍니다. 벼슬아치도 높이 출세하려면 돈이 필요하지요. 그래야 호랑이에 날개 달 듯 높이 올라갈 수 있어요."
"과연. 그런 깊은 뜻이 있었군요."
조용한 가운데 화사의 목소리만 울려 퍼졌다. 모두 찍 소리도 내지 못한 채, 멍한 얼굴로 그저 모란화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야 이해가 가는군요. 이 땅문서는 단순한 돈이 아닙니다. 그동안 고이 간직해 온 마음이자, 낭군을 위해 모든 일을 벌였다는 증거입니다. 그 증거가 잿더미가 되는 것. 낭군에게 자신의 진실한 마음을 알릴 길이 영영 사라지는 것. 그것이 두려웠군요. 낭군이 당신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것. -136~137페이지

그것이 뜨거운 불꽃보다도 더 무서웠군요."
"어머나, 누가 그렇대요? 정말이지, 이 화사님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잘하셔."
"그런데 그것이 다가 아니지요? 또 있지 않습니까? 불꽃에서 지키려 했던 보물은 둘입니다. 하나는 낭군을 위한 것. 다른 하나는 자신을 위한 것. 불구덩이에 뛰어들어서라도 지키려 했던 또 다른 보물이 있지 않습니까? 목숨보다 귀중한 것이."
모란화는 또다시 눈이 띄게 당황했다.
"아이 참. 정말 당해낼 수가 없네. 그래요. 화사님의 말씀이 맞아요."
귀신은 둘둘 감긴 종이뭉치를 폈다. 그 안에 감춰져 있었던 것은, 바로 풀뿌리로 만든 비녀였다.
"아니, 그것은 창포비녀가 아닙니까?"
"어때요. 예쁘지요?"
"글쎄요. 솔직히 형편없는데요. 참 못 만들었군요."
"그래도 제 눈에는 그 어떤 옥비녀보다 예쁘기만 하네요. 세상의 금은보화를 전부 준다고 해도 바꿀 수 없어요. 이것은...... 제 목숨만큼이나 소중한 보물이니까요."
"그 엉터리 비녀가요? 믿을 수가 없군요."
"정말이어요. 그날. 집까지 팔아넘긴 날. 그분은 어딜 그렇게 헤매고 다녔는지 온통 흙투성이가 되어서는 이것을 내밀었지요. -137~138페이지

글쎄, 이 조그만 물건 때문에 하마터면 큰일이 날뻔했다니까요. 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될 뻔했지 뭐예요."
"어째서요?"
"보셔요. 태어나서 칼이라고는 쥐어본 적도 없는 글방서생이, 어디서 남들 하는 것은 봐가지고, 이 천하디 천한 기생에게, 한 해 동안 건강하고 복 많이 받으라고 수복이란 두 글자를 새겨 가지고 온 그 풀뿌리 비녀......."
귀신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그것을 보고 있으려니 갑자기 마음이 약해지는 것이었어요. 도저히 못 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억지로 마음을 다잡았지요. 그분에게는 동기가 필요했으니까. 죽기 살기로 글공부를 해야 할 동기가 필요했으니까. 그분을 위해 해내야만 한다. 그렇게 중얼거리며 이를 악물고 해냈어요. 큰 상처를 받고 떠나는 그 뒷모습을 보며, 따라가서 붙잡고 싶은 것을 어떻게 참았는지. 대신에 그저 이것이나 소중히 간직했답니다. 그리고 가끔...... 그분이 생각날 때마다...... 남몰래 꺼내봤어요."
휘청휘청 버티던 신랑은 기어코 쓰러지고 말았다.
나뭇조각의 잔해가 그의 다리를 때렸으나 아픔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138~139페이지

그는 완전히 넋이 나가버린 채로 모란화의 혼령을 뚫어지라 바라보고 있었다. 눈도 깜박이지 않았고 심지어 숨 쉬는 것조차 잊어버린 듯했다.
"참으로 다행이어요. 불길에서 이것을 구해내다니. 화사님, 저는 이따 혼례식 때 용비녀 대신 이 창포비녀를 꽂고 그분 앞에 나타날 생각이어요. 무슨 말이라도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아마 가슴이 벅차서 아무 말도 못 하겠지요. 그래도, 그래도......."
"그럼요. 그래도 알아줄 겁니다. 당신의 마음을."
"정말로요?"
모란화는 뛸 듯이 기뻐했다.
"뭐, 따지고 보면 나리도 아주 못난 것만은 아니랍니다. 하얀 종이를 떡하니 펼쳐놓고 일필휘지로 글씨를 써내려갈 때는 제법 봐줄 만하단 말이어요. 우리 나리도. 사모관대를 한 모습이 참으로 근사하겠지요? 문제는 저인데......."
귀신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창포 비녀를 머리에 꽂았다.
"어떤가요?"
"참 잘 어울립니다. 지금까지 돌아다니며 수많은 새신부를 봤지만, 이렇게 아리따운 신부는 처음 봅니다."
"거짓말도 잘하셔."
눈부신 빛이 그녀를 감쌌다. 불타버린 피부가 새하얗게 되살아났다.
-139~140페이지

눈구멍이 저절로 메워지며 반짝이는 눈동자가 돌아왔다. 엉망이 됐던 신부의 의상도 깨끗하고 화려한 모습을 되찾았다.
정말 한 송이 모란꽃처럼 아름다운 신부였다.
"되었어요. 이제 나리만 오시면 돼요."
"저, 실은 아까부터 지넉하고 싶은 것을 참았는데, 나리가 아니라 이제는 서방님이 아닙니까?"
"아, 그렇지. 서......."
막상 말하려니 부끄러운지, 모란화는 입속으로 얼버무리며 고개를 돌렸다.
"빨이 오시어요. 그동안 능멸한 죄를 달게 받을 터이니. 큰 인물 되시도록 정성껏 보필하고, 집안을 화평하게 다스리고, 예쁜 아이들을 잔뜩 낳아, 오래도록 행복하게 해드리겠으니......서방님."
저 멀리 어디선가 나귀 울음이 들렸다.
"아, 오셨군요."
모란화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 순간, 넋이 나가 있던 신랑이 벌떡 일어났다.
"그래! 모란! 나냐! 내가 왔어!"
앞뒤 가리지 않고 무작정 달려갔다.
"서방님!"
모란화도 기쁜 얼굴로 달려왔다.
하지만 품에 와락 안기는 순간, 신부는 그대로 신랑의 몸을 통과해 사라져 버렸다. 그 자리에 오직 작은 빛무리만 남았다.
그것마저도 곧 사방으로 흩어져 버렸다.
신랑은 허망하게 주저앉았다.
"모란......." -140~141페이지

그녀의 이름만 한없이 뇌까리다가, 엉금엉금 기어가다시피 하여 장롱에 손을 뻗었다.
농을 받친 종이뭉치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신랑은 떨리는 손으로 그것을 꺼내어, 둘둘 말린 종이를 폈다. 말라비틀어진 창포뿌리 비녀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바보. 바보. 난 당신이 똑똑한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세상에서 제일가는 바보였네. 돈이야 또 모으면 되고 창포비녀는 얼마든지 더 깎아줄 수 있는데. 그런 것이 없다고 내가 당신의 마음을 몰라줄 것 같았나. 바보......."
문득 차가운 것이 똑 떨어졌다.
리아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빗방울이었다. 이번에는 화사가 그린 것이 아닌 진짜 비였다.
한 방울, 두 방울이 곧 빗줄기로 변해 땅을 두드려댔다.
그 뿌연 장막 속에서, 신랑은 천천히 아내의 유품을 뺨에 댔다.
"정말 바보야, 모란은......."
더 이상 말을 잊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141~142페이지



 
 
후애(厚愛) 2014-08-27 17:09   댓글달기 | URL
월궁선녀도 올리고 싶은데... 그냥 넘어갈까...
아.... 2권이 기다려진다...
2권에서도 어떤 슬픔 내용들이 담겨 있을지...

2014-08-28 09: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8-28 14: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미소만 지어도 마음에 꽃이 피어납니다 - 당신이 잊고 있던 소중한 것들
와타나베 가즈코 지음, 최지운 옮김 / 21세기북스(북이십일)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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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우리의 인생이 '여행'이라는 것은 변함이 없습니다.
즐거운 일도 있겠지만 괴로운 일,
위험한 일이 많은 나그네길인 것입니다.
다 준비되어 있기는커녕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을 만나고,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나그네길이지요. -페이지233



 
 
 
미소만 지어도 마음에 꽃이 피어납니다 - 당신이 잊고 있던 소중한 것들
와타나베 가즈코 지음, 최지운 옮김 / 21세기북스(북이십일)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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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는 끝없는 욕망이 있습니다.
물건을 마음껏 사용하고 싶다,
계속해서 새로운 물건을 갖고 싶다.
그런 욕망을 억제하며
작은 불편을 참고
검소하게 사는 습관을 들일 때
그 '아픔'은 '사랑'으로 변하게 됩니다. -페이지196



 
 
 
미소만 지어도 마음에 꽃이 피어납니다 - 당신이 잊고 있던 소중한 것들
와타나베 가즈코 지음, 최지운 옮김 / 21세기북스(북이십일)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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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사용하는 방법'은
'생명을 사용하는 방법'이므로
자신이 주인으로 있을 수 있는
자기다운 시간을 보다 많이 보내세요. -페이지164



 
 
 
미소만 지어도 마음에 꽃이 피어납니다 - 당신이 잊고 있던 소중한 것들
와타나베 가즈코 지음, 최지운 옮김 / 21세기북스(북이십일)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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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 속에서 자연스럽게
규칙을 배우면서 자랐습니다.
순서를 기다리는 것, 양보하는 것,
나이 많은 아이는 나이 어린 아이를 감싸는 것,
싸움의 한계를 판단하는 것 등.
이와 같은 규칙은
인생의 규칙, 인간관계의 규칙이 되었습니다. -페이지1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