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중국의 상하이세계금융센터는 중국에서 가장 높은 빌딩으로(492m) 상층부에는 바람에 의한 건물의 흔들림을 방지하기 위한 사각형의 환기구를 만들어놓고 2008년 완공되었다. 그러나 사각형의 환기구는 원래 원형으로 설계되었는데 과거 일제가 중국을 점령하려 일장기를 높이 들고 침입하는 모습을 연상시킨다는 의견 때문에 사각형으로 수정되었다.

2. 타이(태국)에서 타이의 지폐를 고의적으로 밟거나 훼손할 경우 국왕에 대한 모독으로 간주되어 처벌받는다. 그러나 국왕이 직접 심판하여 용서하는 경우도 있다.

3.생물이 살지 않기에 불리는 죽음의 바다 즉, 사해에도 생물이 살고 있다. 위의 사진은 브라인 새우(Brine Shrimp)로 염분에 저항하는 몸을 가지고 있어서 높은 염도의 사해에도 살 수 있다.

4.김의 이름은 조선시대의 김여익(金汝翼 : 1606∼1660)이 양식법을 찾아낸 공로로 특별히 부를 이름이 없어서 그의 성의 따서 붙여진 것이다.

5.모든 천체에는 자전 주기(천체가 그 자리에서 한바퀴 도는데 걸리는 시간)가 일정한데 그렇지 않은 천체도 있다. 토성의 위성인 히페리온(Hyperion)은 자전주기가 일정치 않은데 이는 다른 토성의 위성들의 중력에 영향을 받아서 자전축이 흔들리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에 의하면 모든 천체들이 과거에 히페리온과 같은 현상을 겪었음이 밝혀졌다.

6.태국은 입대 결정이 제비뽑기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빨간색 제비를 뽑으면 입대 결정이고 검정색 제비를 뽑으면 군 입대가 면제된다고 한다.

7.지구의 자전 주기는 정확히 23.93 시간으로 24시간에 약간 못미치는 수준이다. 그렇기 때문에 매일 오차가 조금씩 생기며 이 과정이 4년 동안 반복되어 오차가 모아지면 24시간 쯤 되는 시간이 생긴다. 이것을 채우기 위해서 4년마다 윤년이 있는 것이다.

8.언어에서 음절은 개음절(자음+모음)과 폐음절(자음+모음+받침)로 나뉘어져 있는데 모든 문자가 개음절도 폐음절도 아닌 언어가 있다. 남도어족인 고산족의 파제흐어(Pazih)의 발음은 개음절인지 폐음절인지 구분할 수 없다고 한다. 즉, '자음+모음'의 형태인지 받침도 들어가있는 형태인지 구분할 수 없는 매우 애매한 발음으로만 이루어진 언어라는 것이다. 이는 언어학에서 음절의 기본 사항과 법칙에 철저히 위배되는 것이라 논란이 끊이질 않는다.

9.혜성의 꼬리기체는 1cm³에 분자가 1000개 미만이다. 이는 인류가 현대 기술로 구현할 수 있는 진공 상태보다 더 완벽한 진공 상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혜성의 꼬리는 밤하늘에서 매우 밝게 빛난다.

10.이스라엘에는 화폐를 제조하는 자체적인 조폐국이 없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주화인 신 셰켈(שקל חדש)은 한국 조폐공사에서 제조되고 있고, 지폐는 스위스에서 제조되고 있다.

11.음펨바 효과(Mpemba Effect)는 뜨거운 물이 차가운 물보다 빨리 어는 현상으로, 그 이유는 아직까지밝혀지지 않았다.

12.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은 에베레스트 산(8848m)이라고 알고 있지만 해저에서부터 잴 경우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은 하와이의 마우나케아 산(Mauna Kea)이다. 마우나케아 산의 높이는 지표면에서부터만 잴 경우 4205m 이지만 해저에서부터 재면 10203m 나 된다. 만약 지표면에서부터 저 정도 높이라면 대류권을 돌파하는 엄청난 높이이다.

13. 덴마크 코펜하겐의 뉴 칼스베아 글립토테크(Ny Carlsberg Glyptotek) 미술관에는 코를 조각한

작품만 모아놓은 표본이 있다.

14.존 폰 노이만(John Von Neumann)은 미국의 천재 수학자이자 암산왕으로 알려져있다. 어느 정도냐면, 그는 자신이 만든 컴퓨터와의 암산 대결에서 컴퓨터보다 14초나 더 빨리 암산해서 이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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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하늘 2013-01-29 0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후애님 덕분에 알고 있던것도 있지만 몰랐던 사실들 정말 많이 알고가요~~ㅎㅎ

후애(厚愛) 2013-01-29 19:47   좋아요 0 | URL
저는 좋은 공부를 하고 있답니다.ㅎㅎ
재밌어요.^^
 

1. 심폐소생술의 본래 목적은 혈액의 순환을 도와서 뇌세포 파괴를 막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심폐소생술의 영문 용어도 Cardiopulmonary Cerebral(뇌의) Resuscitation 이다.

2. 상어는 사실 뼈가 없고, 뼈로 불릴만한 기관은 연골로 대체되어 있다. 연골은 뼈와 달리 말랑말랑하고 부드럽다. 때문에 이것이 화석으로 남지도 않는데, 상어의 몸에서는 유일하게 딱딱한 부분인 턱과 이빨만이 화석으로 남게 된다.

3. 그리스어는 고대 시대부터 현재까지 거의 변하지 않은 세계에서 유일한 언어이다.

4. TV를 볼 때 두뇌는 심각할 정도로 활동을 거의 하지않는다고 한다.

어느 정도냐면, 차라리 그 시간에 책을 읽는 것이 무려 2000배나 두뇌를 더 활동적이게 한다고 한다.

5. 영국의 물리학자인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은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가 사망한지 정확히 300주년이 된 날에 태어났다.

6. UFO의 반대 개념인 'USO(Unidentified Submarine Object, 미확인 수중 물체)라는 것도 있다. 이것은 하늘이 아닌 바다를 헤엄쳐 다니는 미확인 물체로, UFO와 마찬가지로 아직 밝혀진 것이 없다. 일반적으로 UFO는 하늘을 다니기 때문에 확인 가능하지만, 인간의 기술은 비행하는 것보다, 잠수하는 것이 더 미개발되어있어서 USO는 훨씬 확인하기가 어렵다.

7. 2011년에 발사된 탐사선 '유노(Juno)'에는 레고 인형 3개가 들어있다고 한다. 그것은 갈릴레이(Galilei), 헤라, 제우스를 만든 것인데, 이는 목성의 위성들의 이름과 관련된 신화, 갈릴레이 위성 등을 기리는 의미에서 제작되었다.

8. 알비노 현상(Albino)은 식물에게도 나타나는데 동물과는 달리 후천적이라고 한다. 그리고 광합성에 필요한 엽록소를 만들 수 없기 때문에 반드시 죽는다고 한다.

9.피라미드는 원래 피라미드라고 불리지 않았다. 피라미드의 원래 이름은 메르(Mer)였는데 중세 그리스인들이 피라미드를 감상하고 본국으로 돌아가 그것을 현지인들에게 묘사하려고 그리스 전통 과자인 피라미스(Pyramis)를 사용하게 된 것에서 이름이 굳혀졌다.

10. 여자만 쓰던 문자가 있다고 한다. 누슈 문자(女書文字)는 청나라의 장융 현 여성들이 쓰던 한자의 파생어이다. 그때 당시 장융현에는 여성들은 한자를 쓰면 안된다는 지방법이 있었다. 때문에 여성들 사이에서 누슈 문자를 창조하게 되었다. 남자들 몰래 사용하면서 딸이나 의자매에게 문자를 전수하였다. 그러나 1930년 일본이 중국을 침략하면서 발각되어 이 문자를 사용하는 여성들은 점점 줄어들게 되었고, 현재 2004년을 마지막으로 최후의 전수자인 양 후안위가 사망하면서 아무도 쓰지 않는 사어(死語)가 되었다.

11.흑연은 금속이 아니다. 금속이 아닌데도 그래핀(Graphine)이라는 물질이 겹겹이 둘러쌓인 특이한 구조로 인해 전기가 통하는 특이한 성질을 갖고 있다.

12. 알래스카의 푸르피크드 산(Fourpeaked Mountain)은 2006년에 두차례에 걸쳐 폭발한 화산이다. 그런데 이 분출로 학계는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는데, 바로 이 화산이 약 1만 년만에 폭발한 것이기 때문이다. 폭발 이전에 푸르피크드 산은 완벽한 사화산(활동을 안하는 화산)으로 분류되었다. 그러나, 이 폭발로 인해 사화산도 폭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고려하게 되었다.

13.화성을 탐사할 예정이였던 '마스 클라이미트 오비터(Mars Climate Orbiter)'는 1999년 화성에 도착하는 순간 폭발했다. 그 이유는 탐사선 제작사인 록히드 사와 NASA가 쓴 거리 단위가 달라서였다. 록히드 사는 야드와 파운드라는 단위를 탐사선에 첨가한 반면, 나사는 그냥 미터를 사용했기 때문에 조종할 때 거리 계산에 착오가 생겼던 것이다. 그런데 미국은 미터법을 쓰지 않는 유일한 나라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때는 이 단위를 썼다. 결국 나사는 1억 2000만 달러를 손해봤다.

14.직사각형으로 맞춰진 세계 지도에선 그린란드의 크기는 매우 과장되어 있다. 세계 지도에서의 그린란드는 남아메리카 대륙과 크기가 거의 맞먹지만, 실제로 남아메리카의 절반도 안되며 이는 구형의 지구를 네모낳게 맞춰 제작하는 방법인 '메르카토르 도법(Mercator projection)'때문에 어쩔 수 없이 생긴 결과이다. 지구본을 보면 그린란드의 크기가 남미 대륙에 비해 얼마나 작은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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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3-01-27 0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후애님 덕분에 새로운 사실들을 알았네요^^

꿈꾸는섬 2013-01-27 2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정말 몰랐던 사실들이에요. 신기해요.^^

후애(厚愛) 2013-01-28 2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몰랐던 사실이에요.
다른 걸 검색하다가 보게 되었는데 올려 봤어요.^^
올리면서 봤는데 정말 신기하고 좋은 공부가 되었답니다.ㅋㅋ
 

고액알바

학교를 졸업한후 나는 일도 하지 않고 빈둥빈둥 놀고 있었어
매일 밤 놀러 나갔다가 늦게까지 마음껏 자고 낮에 일어나는 게 일상이었어


이런 생활을 하다보면 당연히 얼마안가 돈이 바닥이 나기마련이지


그럴때면 언제나 K에게 상담을 했어


K
는 자세하게 말할 수 없는 직업을 가진 친군데 그다지 좋아하는 놈은 아니지만 그녀석이 소개해주는 일은 모두 파격적인 보수를 받을 수 있었거든


그 중엔 사실 불법적인 일이나 위험한 일도 있었지만 쉬운 돈벌이에 눈이 멀어서 이따금 녀석에게 소개받은 일을 하곤 했었어

이번에 K가 소개해준 일은 일당 8만엔이었어

1주일 단위로 일하는데 자유로울 뿐만 아니라 세끼 식사까지 제공해준다고 했어
주말에도 일하기 때문에 실 수령액이 주50만엔이 넘는 알바였어

K는 말했어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쉬운 일이야"


이번엔 내용을 듣고 제법 놀랐어
1
개월 정도 쭉 일하는것도 괜찮겠단 생각이 들었어

 

단순하게 트럭을 유도(안내)하는 일

그것 뿐이었어

단지 장소가 산속이었고 가장 가까운 민가까지 차로 30분이상은 걸리는 곳이래


거기에 있는 컨테이너 박스에서 숙박하면서 수 시간 간격으로 토사를 옮겨오는 트럭을 유도하면 된다는거야


원하면 함께 일할 사람을 더 구해도 되지만 그만큼 일급을 나눠갖는 거래
그러니까 둘이서 일하면 일급이 4만엔이 되는 거지


난 그냥 혼자하겠다고 했어
별로 겁도 없는 편인데다 나름 산속에서 혼자 고독을 즐기는 것도 괜찮겠단 생각이 들었거든


"
이 일은 주로 빚더미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하는 일인데 관두고 싶으면 대신할 사람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언제든지 말해"


대체 누가 이렇게 좋은 일을 도중에 그만 둘까?

내가 그런식으로 말하자 K는 과연 그럴까?하는 듯한 뉘양스를 풍겼어

첫째날


더러운 밴의 조수석에 앉아 이른 아침부터 산길을 달리고 있었어
마지막 민가를 보고나서 30분정도 지난것같았어


가게같은건 1시간 정도전 부터는 보이지 않았던것 같아

운전하는 아저씨는 나를 다중 채무자정도로 생각하는 듯 했어

 

"아직 젊은데 큰 일이구만" 라든지


"
여기서 조금 힘내서 열심히하면 어떻게든 될테니 너무 걱정마라" 라는 둥의 말을 하는거야


나도 이래저래 변명하는 것도 귀찮고 해서 그냥 적당하게 대답하고 있었어

그러던 중 드디어 나의 일터에 도착했어

거기서 아저씨에게 한 5분정도 일하는 방식에대해 들었어

발전기 사용법이라던지 컨테이너 박스에서 생활하는 법같은걸 대충 설명한 아저씨는

"자 그럼 일주일 뒤에 오마"


하고는 밴을 타고 떠났어

아저씨가 사라지고 나니 갑자기 산속의 소리가 두드러지는 듯했어

 

새가 지저귀는 소리


벌레가 우는 소리


나무가 바람에 이는 소리


그리고 컨테이너 박스의 발전기 엔진소리

 

우선 컨테이너 안에 짐을 들여놨어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 TV같은건 없었어


다행이도 무료한 시간을 달래줄 게임 5개와 소설책을 10권정도 가져왔었어

짐을 정리하고 있자니 트럭이 왔어

아저씨가 가르쳐 준대로 트럭을 유도했어
트럭 운전기사는 내게는 시선도 주지 않고 묵묵히 작업을 했어
말한마디 주고 받지 않은채 첫 일이 끝나고 트럭은 떠났어


참 편한 일이다

그땐 그렇게 생각했어

이윽고 밤이 됐어

밤에도 수시간마다 트럭이 왔어


꾸벅꾸벅 졸고 있다가 무선이 울리거나 클락션 소리에 벌떡 일어났어
길게 숙면을 취할 순 없었지만 그렇게 힘든 정도는 아니었어


굳이 힘든점이 있다면 벌레가 많았다는 정도?
그것도 못견딜 정도도 아니었고..

컨테이너 한쪽 벽엔 창문이 있었는데 거기에 벌레가 엄청나게 꼬였어


그도 그럴게 이 근처에 불빛이라곤 여기 밖에 없었거든
아마 이 근방의 벌레들이 죄다 여기로 몰려드는것 같았어


손바닥보다도 큰 나방이 창에 탁!!하고 제법 소리를 내면서 부딪혔을때는 살짝 움찔하기도 했었어

아침이 밝아오자 벌레들은 어느세 어디론가 사라졌어
우선 양치를 하고 나서 맥주를 들이켰어


물은 간이 샤워를 하거나 세안할때 써야하니까 아껴쓰고 목이 마르면 차라리 맥주를 마시라며

아저씨가 대량의 맥주를 두고 가셨어


뭐 일이 일이다보니 사실 만취하지만 않는 다면 어느정도 취해있어도 지장이 없었으니까..

아침부터 맥주에 식빵을 먹었어
일을 하고 있는 건데도 오히려 빈둥거리던 평소보다 더 방종하게 된것 같았어


이틀째날에도 나는 무난히 일을 해냈어
밤에 불도 켜지 않은채 밖에서 밤하늘을 즐기면서 맥주를 마실 수 있는 여유마저 있었어

나흘째 오후에 무선으로 연락이 들어왔어
K
였는데 곧 여기로 온다는 거였어


잠시 후에, 큰 차 한대가 흙먼지를 일으키면서 산길을 올라왔어
조수석에서 K가 내리더니 나를 컨테이너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어


"
지금부터 작업을 할거니까 됐다고 할때까지 이 안에 있어야해"


나는 잠자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어
그 작업이란게 뭔지는 물어선 안되는 일이란것쯤은 알 수 있었어

안에서 책을 읽으며 기다리고 있는데 여러명이 차에서 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야기 소리와

함께 발걸음 소리가 멀어져 갔어

무슨 얘길 하는지 잘 들리진 않았지만


"
제데로 좀 들어!!"


"
윽 무거워"


하는 말이 들리는게 작업이란게 아마 내가 짐작한 일이 맞을거란 생각이 들었어

1시간정도 후에 K가 돌아왔어

"알려고 해서도 안되고 어디가서 발설해서도 안된다는거 알지? 여기 있기 싫으면 바로 다른 사람을 구해서 데리러 올테니 말해"

난 잠시 망설였지만 역시 계속 있기는 힘들겠단 생각이 들었어
K
에게 그렇게 말하자

"알았어"


라고 하더니 내게 다소의 돈을 쥐어줬어
녀석 나름의 사의인것같아서 입다물고 받았어

"그럼 내려가는 대로 아저씨한테 연락할테니까 데리러 올때까지 좀만 더 참고 기다리고있어"


이렇게 말하고는 K는 차를 타고 다시 흙먼지를 일으키면서 돌아갔어

아마 K일행은 작업을 했을 거야
그게 좀 신경이 쓰였지만, 가능한 한 생각하지 않기로 했어


어짜피 나는 곧 여길 떠날거니까 방금 전의 일은 잊자..

저녁이 되고 부슬부슬 비가 내리기 시작했어

아저씨는 꽤 시간이 지났음에도 오지 않았어
..다음 사람을 준비하느라 시간이 걸리나 보다 생각하면서 안에서 책을 읽고 있었어

산속의 밤은 빨리 찾아왔어

도시에서는 생각할 수 도 없는 속도로 밤의 어둠이 방문해왔어

난 캄캄하게 되기 전에 비를 맞으면서 손전등을 들고 발전기의 연료를 넣으러 갔어
혹시라도 연료부족으로 캄캄하게 되는 건 싫었거든


연료를 가득 채우고 컨테이너로 돌아와서 여기서의 마지막이 될 간소한 저녁밥을 먹었어
다 먹은 무렵에는 이미 밖은 캄캄해져 있었어

언제 올지도 모를 아저씨를 기다리면서 짐이나 정리하고 있을때였어

..

문에 뭔가 부딪히는 소리가 났어
나는 긴장했어


큰 벌레가 부딪힌걸까?


다른 불길한 생각이 머리를 스쳤지만 가능한한 생각하지 않기로 했어
문에 열쇠가 달려있긴 했는데 평소엔 필요없었으니까 잠근적은 없었어
나는 조심조심 문으로 다가가서 열쇠를 잠궜어


철컥


자신이 열쇠를 잠그는 소리인데도 왠지 등골이 서늘해졌어
감정을 추스리려고 정리해 둔 짐에서 엠피쓰리를 꺼내서 음악을 틀었어
음악이 들리기 시작하자 약간 공포감이 누그러 들었어


..


이번엔 문 오른쪽 옆 부분에서 소리가 들렸어
등골이 오싹해지기 시작했어

또 들렸어

오른쪽 벽이야


벌레일거야


벌레야


벌레


벌레일거야...


벌레야 벌레..

나는 마음속으로 주문을 외듯이 중얼거리면서 소리가 들린쪽을 응시하고 있었어


조금 전보다 좀더 오른쪽에서 들렸어
소리는 벽을 따라서 오른쪽으로 이동하는 것 같았어


조금 더 가면 창이 있었어


시선이 온통 창가로 쏠렸어


창문의 바로 왼쪽에서 소리가 났어
더이상 음악은 귀에 들리지 않았어


캄캄한 창을 응시했어
심장박동 소리가 커지기 시작했어

캄캄한 창문에 새하얀것이 보였어


새하얀.....


새하얀 손가락 끝이 창문을 두드렸어

똑똑똑


나는 무심고 작은 비명을 내지르며 뒷걸음질 쳐서 창에서 가능한 한 멀어지려고 했어
등이 반대편 벽에 닿았어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라 다리에 전혀 힘이 들어가지않고 축 늘어졌어


그 순간..


!!


컨테이너의 전기가 나갔어
밖에서 들려오던 발전기 소리도 사라졌어
암흑 속에서 꼼짝도 할 수 없었어

내 등이 닿아있는 벽에서 소리가 났어
튕겨지다시피 납죽 엎드려서 놀라 도망갔어


뭔가에 부딪치거나 뭔가 밟히기도 했지만 어두워서 알 수 없었어
문득 주머니속에 이물질이 느껴졌어


손전등이 들어있었어
서둘러서 손전등을 켜 들고 여기저기 비춰봤어


작은 빛에 실내가 희미하게 비춰지기 시작했어


왼쪽 벽에서 소리가 울렸지만 무시하고 문을 향해 달려들었어

철컥철컥철컥

 


당황해서인지 문이 잘 열리지 않았어
열쇠를 잠갔다는 것을 떠올리곤 철커덕 열쇠를 풀고 문을 열어 밖으로 뛰쳐나왔어


새카만 암흑속에서 손전등의 빛을 정신없이 움직였어
컨테이너 박스 오른쪽으로 일순간 뭔가 보인것 같아서 비추어봤어


작은 키에 팔이 비정상적으로 긴 여자가 컨테이너의 그늘 속에서 반쯤 몸을 내놓고 이쪽을 보고 있었어
젖은 머리카락은 축 쳐져있고 눈을 번뜩이면서 흰 옷이 어둠속에서 희미하게 빛나 보였어


..아니었어..


키가 작은게 아니고 무릎을 꿇고 있었어..


...이것도 아니었어...

....무릎 아래가 없는 거였어.....


여자의 다리는 허벅지까지밖에 없었어...


늘어뜨린 팔이 땅에 닿아 있었어


나는 미친듯이 소리를 지르며 도망갔어
필사적으로 비에 미끄러져서 구르듯이 산길을 달려나왔어

죽을 힘을 다해 달리고 또 달렸어
뒤를 돌아볼 용기는 없었어


얼마나 달렸을까..

이제 심장과 폐가 고장나 버릴것만 같았어

캄캄한 빗속에 털썩 주저 앉아 버렸어

더이상 한걸음도 움직일 수 없었어

바스락


바로 뒤에서 소리가 났어

나는 주저앉은 채로 손전등을 비춰봤어

여자가 나를 보고 있었어

허벅지까지 밖에 없는 다리로 서 있었어

무표정한 얼굴로 새카만 눈동자를 좌우로 굴리면서..

마치 원망스러운듯이


나를 보고 있었어


지독한 공포와 피로감으로 더이상 달아날 힘이 없었어
겨우 양손으로 엉금엉금 기다시피하면서 필사적으로 도망쳤어


주욱..주욱


뒤에서 뭔가 끌리는 소리가 났어
뒤를 돌아볼 여유조차 없었고 그저 필사적으로 도망쳤어


주욱..주욱...


소리가 점점 가까워 졌어

어느세 내 다리 바로 뒤에서 소리가...


그때 갑작스런 빛에 눈이 부셨어

자갈이 미끄러지는 큰 소리가 났어

곧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고함치는 목소리가 들렸어


"
어이~!!괜찮아!?"


아저씨였어..

나는 아저씨가 보이자 안도감으로 눈물이 흘러넘쳤어

"미안...사정이 있어서 좀 늦었어"
아저씨는 피로와 안도감에 엉엉 울면서 반쯤 넋이 나가있는 내게 말했어
아무래도 좋았어


그저 지금이라도 와준것만으로 충분했어


아저씨는 무슨일이 있었는지 전혀 묻지도 않고 그데로 나를 데리고 시내로 가서 비지니스 호텔에 보내줬어


헤어지면서 아저씨가 말했어

"짐은 다음에 보내줄게..하마터면 큰일날뻔 했지 뭐야"

아저씨에게도 그게 보인걸까?

그날밤은 몸이 덜덜 떨려서 잠을 청할 수 없었어

집으로 돌아오고 곧바로 K를 만나러 갔어


K
는 큰일 날뻔했다며 하며 걱정하는듯 말했지만 별 감정이 실려있지 않은 듯한 목소리였어

돈을 받아 사무실을 나오면서 K가 누군가와 이야기하는것이 들려왔어

난 그날 이후로 두번다시 K를 만나지 않았어
내가 K를 피하게 되었거든


결국 K와 나는 다른 세계의 인간이란걸 깨달은거야

그때 K가 분명 이렇게 말하는게 들렸었어..


안들어갈땐 잘라버리면 그만인게 아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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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결같이 곱고 윤기 흐르는 풍성한 머리카락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여성들의 소망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자신의 머리카락만으로 치장하는 것이 부족할 때에는 어쩔 수 없이 남의 머리카락으로 보충할 수밖에 없으나 그래도 외모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비용을 들이며 치장하였다. 고대의 고분벽화나 회화자료에서 지체가 높은 여인일수록 뭔가 치장을 많이 하여 머리의 크기가 큰데 크기만 봐도 그 여성의 지위를 가늠할 수 있다.

 

가체 하나에 1000냥!

머리를 치장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가장 간단한 방법으로는 자신의 머리를 땋거나 묶어 올리는 방법이 있으나 아무리 머리를 길게 길러도 풍성하게 보이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부분적으로 다른 사람의 머리를 붙이거나 얹어서 사용하는 방법이 있는데 이것을 조선시대에는 다리라고 하였다. 다리는 ‘다래’ 또는 ‘다레’라고 하며 한자로는 ‘체(髢)’ 또는 ‘월자(月子)’라고도 하는데 일종의 부분가발이라고 할 수 있다. 다리는 꾸미고자 하는 머리 모양에 따라 머리에 붙이거나 위에 얹어 사용하였는데 조짐머리, 얹은머리, 어여머리, 큰머리 등에는 긴 다리로 모양을 만들어 머리에 얹었고 첩지머리, 쪽머리 등에는 자기 모발과 다리를 함께 빗어내려 한데 땋아서 사용하였다.

 

 

1 1800년대의 가체 <석주선기념박물관 소장>

2 미인도 <해남 녹우당 소장>

 

 

요즘은 사람의 머리카락으로 만든 것 대신 인조머리카락으로 만든 비교적 값이 싼 가발이 많아 누구라도 큰 부담 없이 가발을 사서 꾸밀 수 있다. 그러나 머리카락을 함부로 자르지 않았던 조선시대에는 사람의 머리카락으로 만든 다리의 가격이 만만치 않았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므로 조선 초기부터 가체 금지에 대한 논의가 끊이지 않다가 영조 23년(1747)에 정식으로 발의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를 대체할 머리 모양이 없다 하여 미루어 오다가 영조는 1756년에 가체를 금하고 족두리로 대신하도록 하며 7년 후에 다시 가체를 금하도록 한다. 그러나 시행이 잘 시행되지 않았는지 가체의 값은 계속 올랐다. 정조 7년(1783)에 여선덕이 올린 상소에 의하면 옛날에는 100냥을 넘는 것을 지나치게 사치스럽다고 했었는데 지금은 4, 5백 냥도 부족하여 심지어 1000냥에 가깝다고 하니 당시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머리를 크게 하기 위해 애썼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정조 12년(1788)에는 가체를 금지할 것을 규정한 가체신금사목(加髢申禁事目)을 제정한다. 정조의 문집인 홍재전서에 의하면 족두리에다 갑자기 바둑돌처럼 생긴 큰 옥 조각이나 금덩이를 붙이기도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어 가체뿐만 아니라 족두리에도 많은 비용이 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체를 사용하는 큰 머리치장은 영, 정조대에 극심했는데 그 시대의 실학자인 이덕무(1741~1793)가 지은 청장관전서에는 당시 여인들의 머리치장에 관하여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부귀한 집에서 머리치장에 드는 돈이 무려 7~8만냥에 이르며 웅황판, 법랑잠, 진주수로 꾸며 그 무게를 거의 지탱할 수 없다고 한다. 그리고 한 부잣집 며느리가 나이 13세에 다리를 얼마나 높고 무겁게 하였던지, 시아버지가 방에 들어가자 갑자기 일어서다가 다리에 눌려서 목뼈가 부러졌다고 하며 사치가 능히 사람을 죽였으니, 아, 슬프도다! 라며 개탄하고 있다. 큰 머리치장의 폐단이 얼마나 심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내용이다.

 

 

1 신윤복의 [계변가화]의 일부 <간송미술관 소장>

2 신윤복의 [추천도] 일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당시의 생활상을 화폭에 남긴 혜원 신윤복(1758~미상)의 풍속도에서도 많은 여인들이 큰 머리를 하고 있다. 그 중 계변가화(溪邊街話)에는 한 여인이 다리를 넣으며 머리를 땋고 있는 모습이 표현되어 있다. 거의 다 땋고 한쪽 끝부분만 남았는데 다리는 3개가 남아있으니 이미 상당수의 다리를 썼을 것이다. 역시 혜원의 그림으로 알려진 추천도(鞦韆圖)에는 머리를 굵게 땋아 자기 키만큼 길게 늘어뜨린 채 그네를 타고 있는 여인이 있다. 저 정도의 머리를 치장하는 데에는 다리가 몇 개나 사용되었을까? 너무 무거워서 풀어놓고 그네를 타는 것일까? 여러 가지 궁금증이 생긴다.

반면에 김홍도가 그린 풍속도에는 서민으로 보이는 여인이 머리를 땋고 있는데 다리는 없고 참빗과 얼레빗으로 보이는 것만 있다. 머리를 돌려서 얹으며 치장하고 있으나 크기가 작은 것으로 보아 본인의 머리로만 꾸미고 있는 것 같다. 머리의 크기가 부와 계급의 척도였다고 할 수 있겠다.

[단원풍속화첩]의 일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극성을 부리던 가체의 사용도 세월이 흐르면서 점차 줄어들게 된다. 그러나 쪽진 머리에 반드시 필요한 비녀, 그리고 머리를 화려하게 장식해 줄 뒤꽂이, 떨잠 등 셀 수 없이 많은 종류의 머리꾸미개들이 조선시대 말기까지 애용되다 개화기에 접어들어 여성의 헤어스타일이 짧게 변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글  박윤미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 한국복식사를 전공했으며 저서로는 [덕혜옹주 - 그의 애환과 복식], [대가야복식], [한국전통복식조형미], [조선조왕실복식]이 있다.
자료제공
문화재청 헤리티지 채널 (http://www.heritagechannel.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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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희망꿈 2013-01-25 2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고~ 옛날 여인네들은 정말 힘들었겠어요.
지금도 멋쟁이들은 여러모로 힘들지만 말이죠.^^

후애(厚愛) 2013-01-26 13:29   좋아요 0 | URL
맞아요^^
자유도 없었고요..

2013-01-25 20: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1-26 13: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꿈꾸는섬 2013-01-26 0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옛날에 태어나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생각해요.ㅎㅎ

후애(厚愛) 2013-01-26 13:30   좋아요 0 | URL
저도요.ㅎㅎ
 

너울 <석주선기념박물관 소장>

 

너울, 쓰개치마부터 개화기 양산까지, 편하지는 않았던 전통

여성들은 외출할 때 얼굴을 가리곤 한다. 개인의 피부 관리를 위해서이기도 하고 사회의 요구에 의해 가려야만 하기도 한다. 우리나라도 사회가 변화하면서 여러 목적으로 얼굴을 가리게 되는 변화를 겪게 된다. 가리개는 주로 머리에 쓰는 것이기 때문에 쓰개류로 분류되는데, 조선시대의 풍속화에는 다양한 가리개의 사용 모습이 잘 나타나있다. 당시는 사회적인 윤리의식에 의해 착용이 강요되던 시기였다.

여성의 가리개 가운데 너울(羅兀)이라는 것이 있다. 남양 홍씨의 가승(家乘)에 의하면 너울은 “비단으로 만들어 사면으로 드리워서 얼굴을 가리고 어깨까지 덮는 것”이라고 전하고 있는데, 실제로 조선시대의 분묘에서 기록과 일치하는 너울들이 출토되었다. 둥근 원립(圓笠) 위에 라직물과 같은 투공성있는 직물을 씌워 아래로 드리워서 외부에서는 착용자의 모습을 가늠하기가 어려우나 착용자는 망사와 같은 직물 덕분에 앞을 투시할 수 있다.

너울은 이미 조선시대 이전에도 사용되었는데 서역에서 사용하던 것이 중국을 통해 전해진 것으로 몽수, 유모, 멱리 등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인 이익은 자신의 할머니가 쓰시던 멱리가 옛날 상자 안에 남아있으며 당시는 궁인의 종들만이 멱리를 쓰고 있다고 하였다. 이익보다 후대의 학자인 이규경은 [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 “궁녀들이 너울을 썼는데 직책에 따라 색상이 달라 검은색은 귀하고 푸른색은 천한 젓”으로 전하고 있어 후에 너울이라고 불렸으며 색상에 의해 계층이 구분되기도 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장의는 장옷이라고도 하는데 조선시대 말기까지 사용되던 대표적인 가리개이다. 조선 초기에는 남자들의 겉옷으로 착용되었던 것인데 여자들이 따라 입기 시작하였고 점차 쓰개용으로도 사용되었다. 형태는 두루마기와 비슷한 형태를 갖추고 있는데 소매 끝에는 끝동을 넓게 대었다. 외출할 때에는 머리에 쓰고 얼굴만 드러내도록 하고, 앞은 마주 여며지도록 하였으며, 때로는 머리 위에 이고 다니기도 하였다.

쓰개치마와 장의를 착용한 여인들 ([안릉신영도]의 일부)

 

장의와 비슷한 것으로 쓰개치마가 있다. 장의는 소매가 달려있는 반면 쓰개치마는 이름 그대로 치마와 같은 형태인데 치마 허리쪽을 얼굴에 두르고 턱 밑에서 양쪽 끝을 맞잡아 착용한다. [안릉신영도]는 1786년 황해도 안릉에 신임 현감이 부임하는 광경을 그린 그림으로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고 있다. 이 가운데 전모를 쓰고 쓰개치마를 어깨에 두른 인물들이 있다. 전모는 머리에 써서 가리개의 역할을 하고 있는데 쓰개치마는 한쪽 어깨가 드러나도록 두르고 있거나 손에 들고 있어 얼굴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타인의 이목을 끌고 있다.

갈대나 대오리를 엮어 우산과 비슷한 모양으로 만드는데 가장자리를 육각형으로 엮은 것을 삿갓이라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남녀 모두 착용하였던 것으로 김홍도의 ‘가두매점’에 삿갓을 쓰고 손에 부채를 들고 있는 여인이 있다. 이 여인이 쓴 삿갓은 근처에 서있는 남성이 쓴 삿갓과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그런데 후대가 되면 주로 이북 지역에서는 삿갓을 크게 만들어 여성들의 가리개로 착용하였는데 현전하는 유물을 보면 직경이 90㎝ 정도로 몸을 가리고도 남는다. 이와 비슷한 형태의 방갓이 있다. 삿갓의 가장자리가 육각형인데 반해 방갓은 사각형으로 만들어 붙여진 이름으로 역시 여성의 가리개로도 사용되었다. 삿갓이나 방갓은 크기가 커서 두 손으로 잡고 다녀야만 했는데, 길을 가다 사람과 마주칠 때에는 갓을 앞으로 약간 숙여 자신의 얼굴이 보이지 않도록 하였다. 그다지 사용하기에 편해 보이는 가리개는 아니다.

 

 

가두매점의 일부                                                                               삿갓을 쓴 여인

 

유교의식이 철저했던 조선시대가 끝나가고 개화기에 서구문물이 들어오면서 가리개에도 큰 변화가 일어나는데 바로 양산의 도입이다. 외국 선교사에 의해 운영되던 여학교에서 장옷과 쓰개치마를 못 쓰게 하자 당시의 윤리의식으로는 용납하기 어려우므로 자퇴하는 학생들이 늘어나게 되었다. 이에 당황한 학교당국이 마련한 자구책이 바로 검은색 우산이었다. 우산이기는 하나 대낮에 썼으므로 양산의 기능을 하였고 여학생의 얼굴가리개 용도로 사용되었다. 양산은 새로운 문화에 관심을 갖는 신여성들에게는 필수품과 같은 역할을 하게 되어 가리개의 용도뿐만 아니라 신여성임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물건이 되었다.

미인의 기준은 사회와 시대에 따라 변화한다. 우리나라는 고대로부터 하얗고 깨끗한 피부를 선호해왔는데 얼굴 가리개는 시대의 요구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착용되던 적도 있었으나 요즘은 깨끗한 피부를 유지하기 위한 필수품이다. 아마도 가리개의 착용이 강요되는 시대는 다시는 없을 것이다.

 

글 박윤미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 한국복식사를 전공했으며 저서로는 [덕혜옹주 - 그의 애환과 복식], [대가야복식], [한국전통복식조형미], [조선조왕실복식]이 있다.
자료제공
문화재청 헤리티지 채널 (http://www.heritagechannel.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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