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경상도에 이가성을 가진 한 젊은이가 있었는데 글이나 재주도 남 못지않았으나 서자라는 이유 때문에 뜻을 펴지 못하니 그 울적함을 이기지 못해 차라리 산수 좋은 금강산에 들어가 풍월을 벗 삼아 살리라 생각하고 길을 떠났다. 그가 대지팡이를 짚고 금강산 어구에 이르러 눈을 들어 쳐다보니 일만이천봉우리리라 하는 봉우리가 모두 다 이상하게도 희게 보였다. 그러나 산으로 들어가니 단풍나무가 타는 듯이 붉고 벚나무, 가래나무도 누렇게 물들었는데 그 사이사이에 있는 전나무, 노가지나무는 한층 더 푸르러 보였다.
갈수록 절벽은 가파르며 또 봉우리와 기암괴석들이 다가섰다가는 물러서고 물러섰다가는 다가서며 쳐다보면 높은 봉우리들이 구름 속에 아득히 보이고 발아래를 굽어보면 희고 깨끗한 돌을 씻으며 흘러내리는 아름다운 계곡인데 또 한쪽을 바라보면 봉우리 말기마다의 기암괴석들이 금방 떨어질듯 내려다보이고 바람에 날듯 간들거리니 참으로 기이하였다. 다시 오르고 또 오르는데 높이 오를수록 바위위에 뿌리를 드러내놓고 노송과 잣나무가 우거져 넝쿨들이 얽히고 서린 가운데 머루, 다래 또한 무르익어 향기롭기 그지없었다. 그는 다래를 입으로 가져가며 " 한 치의 흙도 없는 이 돌산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수목들은 과연 무슨 조화인가."하고 중얼거리는데 아름다운 새소리가 들려와서 바라보니 나무위에 무어라 이름 할 수 없이 고운 새가 깃을 다듬으며 노래하고 발아래에서는 다람쥐가 무엇을 물었는지 볼이 불룩하고 고슴도치 또한 등에 송이를 잔뜩 꽂고 있었다. 사람을 보고도 피하지 않는 것이 괴이하여 발을 한번 쾅 굴러보아도 그것들은 달아나지 않았다.
다시 발길을 옮겨 한곳에 이르니 갑자기 눈앞이 번쩍 열리고 귀를 울리는 물소리가 들리는데 민듯하게 넓어진 골을 에워싼 바위봉우리들과 포개 포개 내려진 바위 벼랑들이 마주보고 늘어선 가운데 말고 푸른 비취색 물이 희고 깨끗한 돌을 뛰고 넘고 솟구쳐 물보라를 날리며 흐르고 있었다. 물도 바위도 봉우리도 모두 살아 움직이는 것만 같아 참으로 무어라 이름 할 수 없는 장쾌무쌍 한 광경이었다. 만폭동 절경에 끌리어 좀더 오르니 개울물은 쪽빛 같은 푸른 못과 눈발 같은 폭포를 이루며 흘렀다. 그가 황홀경에 취해 얼마쯤 오르니 오른쪽에 수건을 건것 같은 수십길 되는 절벽 바위(수건 바위)가 우뚝 서고 거기를 지나자마자 <보덕각시>가 머리를 감았다는 <세두분>이라는 세수 대야 같은 옴폭 패인 돌이 있고 거기에서 물살이 거센 개울을 건너고 깎아지른 절벽을 조금 더 가니 흰 용이 서린 것 같은 반듯한 못하나가 있는데 그 속이 우묵하고 그늘이 져 사람이 서면 거울같이 얼굴이 비친다. 물은 말고 깨끗한데 그 못가바위에는 다음과 같은 시구가 새겨져 있다.

산과 물의 아름다운 경치를 즐김은
사람들의 다 같은 심정이로되
이 몸 홀로 산에 울고 물에 우노니
끝없는 내 울음
이 산과 물 좋은 줄 몰라
슬퍼함이 아니여라, 슬프도다.

"
이것은 그 누가 지은 시인가"하며 벼랑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서 있는 그이 눈에도 뜨거운 이슬이 맺혀있었다. 그는 문득 혼자 중얼거렸다. "아무도 보는 없다. 나도 울자" 그리고 그는 그 누누가가 우리나라 강산의 아름다운 자연경치를 보면서 나라를 사랑하는 절절한 마음으로 어지러운 나라형편과 도탄에 우는 백성들의 비참한 처지를 근심하여 울었을 것을 생각하며 중얼거렸다.
"
그랬으리라. 조국강산의 아름다운을 시인인 그가 어찌 무심히 보았으랴" 그는 김시습과 함께 얼싸안고 우는 심정으로 그 글 앞에서 떠나지 못하다가 그가 다시 산수의 아름다움에 끌려 정신없이 가고 또 가는데 문득 머리위에서 까치 한마리가 깍깍깍 하였다. ", 이 근처에 사람이 사는가 보구나. 까치가 있는걸 보니" 하고 가는데 얼마 안가서 늙은이 하나가 마주 걸어 내려오고 있었다. 그는 늙은이에게 물었다.
"
이 산 어디에 도술을 하는 중이 있소?"
"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소만 내 며칠 전에 영랑봉쪽으로 산삼을 캐러 갔다 오다가 해저물녘에 간데없는 오색구름이 수미암에 낮게 서리고 싱그러운 바람이 불더니 그 오색구름이 하늘 높이 타래쳐오르지 않겠소. 그래 이상하다 하면서 그 암자에 가보니 스님은 없고 신발 두 짝만 문밖에 놓여 있더군요." 말을 듣고 난 이서방은 먼 하늘을 보며 "도를 통해 신선이 되시어 선궁에 드신 것이 틀림없소이다." 하며 그곳이 어딘지 가보겠으니 길을 알려달라고 하였다. 늙은이는 그 험하고 외진 곳에 혼자 가서 무얼 하겠느냐고 하며 차라리 강을 따라 곧장 올라가서 대장사에나 가보라고 했다.
그러면서 늙은이는 중간에 마하연이란 암자도 있지만 그 곳에 들르고 나면 대장사까지 오늘 중으로 갈수 없으니 곧장 개울만 따라 오르다가 사람을 만나면 물어보며 찾아가라고 친절히 가르쳐 주었다. 그 고마운 늙은이와 작별인사를 하고 오르면서 보게 되는 만폭동의 폭포와 담소는 이서방의 걸음을 자꾸 더디게 했다. 그래서 될수록 스쳐지나며 얼마쯤 오르니 뜻밖에도 큰 절이 하나 나타난다. 그것이 마하연이다. 암자라고 하기에 작은 암자인줄 알았더니 너무도 크기에 둘러보니 ㄱ자로 생긴 집안에는 사방이 여덟자인 한 칸 방이 무려 53개나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주변의 경치는 아래하고 사뭇 달랐다. 좌우 앞뒤로 한꺼번에 모여든 뭇 봉우리들은 마하연을 싸고 도는 것 같은데 그 봉우리들이 각이한 정상은 처음 보는 눈에도 황홀하기 그지없었다.
그는 더 오르다가 금강산 자연석에 새겨진 큰 부처를 보고 크게 놀랐다. 앉은키의 높이가 열길이나 될 것 같았다. 저걸 새긴 그 석공은 과연 누구일까. 금강산에 오르니 별 재주꾼이 다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하면서 한참 더 오르니 사선계에 놓였다 하여 <사선교>라고 하는 자연돌로 된 다리 하나가 나타나기에 묘하긴 하다고 생각하면서 어디로 갈 것인가 망설이고 있는데 비로봉쪽에서 사나이 하나가 언제 입었는지 갈기갈기 헤진 남루한 것이기는 하나 포도명색을 띤 옷을 걸치고 머리는 자라서 어깨를 덮었는데 손에는 지팡이 같기도 하고 칼 같기도 한 것을 들고 흥얼흥얼하며 마주 걸어오고 있었다.
"
흥얼흥얼.. 벽상에 걸린 칼이 흥얼흥얼...병자국치를 씻어볼까 하노라. 흥얼흥얼.." 그는 가던 걸음을 멈추고 서서 그 사나이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며 서있었다. 그 차림이 미친 사람 같았기 때문이다. 그 사람은 이서방의 곁을 그냥 지날 듯이 하다가 문득 발길을 멈추고 "어디까지 가는 길손이요? 금강산경치에 홀리신 게 아니요? 하하하"하고 크게 웃었다. 그의 말하는 것이나 태도로 보아 미친 사람 같지 않아 이서방이 대답했다.
"
이 산에 깊이 은거해 계신 분을 찾아다닙니다. 혹 그런 분이 아니시온지요?" 하니 그 사나이는 더욱 크게 웃으며 "나는 그런 사람은 아니요. 그러나 이 나라, 이 강산을 사랑하는 사람이요" 하고 나서 "우리 이왕이면 저기 좀 앉아 이야기 합시다" 하며 상대의 대답은 기다리지도 않고 성큼성큼 걸어 다리 건너편 바위 돌에 가 걸터앉았다. 그러지 않아도 해는 뉘엿뉘엿 저물어가고 지금 절이라도 찾아가야 할 판에 만난 사람 이리 만치 이서방도 반가웠다. 이서방이 그 옆에 가서 앉자 그는 "그럼 친구는 금강산 신선을 찾아왔소?" 하고 물으니 " 아니 그런 것은 아니나" 하고 말끝을 흐리니 그 사람이 대뜸 "그럼 그린 듯한 산수 간에 풍월을 읊으려고 오셨군요.""사실 그런 것도 아니옵니다." 하고 나서 이서방은 자신이 금강산에 들어오게 된 사유를 이야기 하였다.
"
제 본래 미천한 몸에서 난 서자로서 아버지와 아들의 정의보다 더 중한 것은 없건만 감히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임금과 신하의 의리보다 더 큰 것이 없건만 임금의 옆에도 가깝게 갈 길이 없소이다. 그리고 누구나 다 나와 벗으로 되는 것을 부끄러워하니 벗사귀는 길조차 없어졌소이다. 세상에 용납되지 않는 이 몸을 산수 간에 홀로 묻혀 살려 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방금 전에 도 닦는 이를 찾던 이야기를 하자 그 사람은 또 크게 웃으며 "나도 들었소. 도를 닦아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더군." 하고 잠시 말을 끊었다가 "그런데 모를 일이요. 하늘선녀신선들도 우리나라 금강산경치가 너무 좋아 내려온다고 하여 또 내려와서 돌아가지 않고 영원히 살거나 심지어는 돌로 굳어지기까지 한다지 않소. 그런데 도를 닦아 하늘로 올라가다니 하하하... 도를 닦아서 이 나라 도탄에 우는 인생을 구원하고 나라를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구원하는 길도 있을 텐데... 안 그렇소? 이 친구. 하하하..." 하고 나서 리서방의 얼굴을 지켜보다가 그는 문득 그의 어깨를 툭치며
"
친구, 나와 벗이 되지 않겠소?"
그리고 벗을 사귀는 법에 대해 이야기 했다. "장사치의 벗은 이익으로 사귀고 체면을 차리는 양반의 벗은 아첨으로 사귀지. 이익으로 사귀는 벗은 지속되기 어렵고 아첨으로 사귀면 오래 못 간단 말이요. 깊이 사귀자면 진실하게 오직 마음으로 벗을 사귀며 인격으로 벗을 사귀여야 하네. 그래야만 도덕과 의리의 벗으로 되며 이렇게 사귀는 벗은 만리의 먼 거리도 먼 것이 아니란 말이요. 잘은 모르겠소마는 그대는 나와 벗이 될 수 있을 것 같소 " 하고 말하고 나서 "어떻소? 나하고 함께 도를 닦지 않겠소? 하늘에 오르는 도 말고.." 이서방이 벗이 되기를 승낙하자 둘이 서로 손을 굳게 잡고 맹세하였다. 이러고 있는 동안에 해는 지고 서쪽하늘이 노을로 붉게 물들었다. ", 이제 내 집으로 갑시다."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 사람은 아까 들고 와서 옆에 놓았던 목도 같은 것을 집어 들었다. 이서방은 물었다. "그것은 무엇인가요?" ", 이거? 이것은 칼이지 내가 도를 닦는데 소용되는 것이지" 하고 하하 웃고 나서 앞장서서 걸었다. 얼마동안 비취같이 맑은 계곡을 따라 올라가니 한옆으로 갖은 수목들이 둘러서 있고 벼랑쪽으로 자연굴이 있고 그 앞은 높지 않은 벼랑에 떨어지는 작은 폭포가 작은 소를 이루고 있었다. 그 사나이는 굴 앞으로 가서 손짓하여 이서방을 불렀다. "예가 내 집이요"하였다.
넝쿨로 엮은 한 잎 거적을 들추고 안으로 들어가 그 사람이 부시를 쳐서 광솔에 불을 붙이려다 말고 "아니 오늘은 귀한 손님이 온 날이니 그름 나는 광솔말고 잣불을 켜자" 하더니 한옆에 까놓은 잣을 한웅큼 집어내어 가느다란 꼬챙이에 꿰여 재가 담긴 돌화로 속에 여러개를 꽂아 놓고 나서 부시를 쳐서 불을 켜니 어둡던 굴속이 환해 책을 읽을 만도 하였다. 그는 한쪽 구석에서 바구니를 끌어당겨놓는데 보니 그것은 송이였다. 그러고 나서 또 대로 만든 통에서 술을 따라 이서방에게 권하며 말했다. "이만하면 신선이 될만하지 않소? 산열매나 솔잎으로 술을 빚어 마시고 송이로 안주하고 또 여기 이런 것도 있소." 하고 밤과 잣을 내놓으며 "신선과 좀 다른 것은 나는 익은 음식을 먹는 것 뿐이요. 자 어서 드시오. 이 송이는 아까 구어 놓았던 것이요"라고 하였다. 서로 주고받고 몇 잔의 술을 기울인 다음 그 사나이는 말했다. "자 그럼 아까 하던 이야기나 더 합시다. 아까 뭐 자네가 서자라 행세할 길이 막히고 또 벗사귈 길조차 막혔다 하더군. 그것은 공명이나 영달을 바라고 하는 소리요" 하고 한동안 술잔만 기울이다 다시 입을 열어 "이제 나와 벗이 된 이상 한마음 한뜻이 되어 도를 닦읍시다. 따지고 보면 나도 자네와 같은 사람이라오. 하하"하였다. 이서방이 물었다. "그럼 친구는 무슨 도를.." 하니 한번 가볍게 웃고 나서 ", 내 도?" 하고 바위틈에서 책을 꺼내어 그의 앞에 놓았다. 보니 그것은 병서였다. 듣기만 하고 본일 없는 병서를 뒤적뒤적 하는데 ", 그건 이제 급할 것 없소. 내일부터 읽기 싫어도 읽어야할테니 어서 술이나 더 들라고 " 한다. 책을 놓고 서로 술잔을 주고받는 사이에 그만 그 사람이 먼저 취흥이 돋아 소매 속에서 피리를 꺼내들며 " 우리 몸은 갈라져 있어도 두 몸이 아닐세. 형체는 나누어져있어도 그 뜻이 같으니 우리는 형제 일세" 하더니 피리를 부는데 그 소리 너무도 구성지고 아름다워 이서방이 흥이나서 춤을 추며 노래를 불렀다.

벗 따러 벗 따러 갔더니
익은 벗 선 벗 다 있었네
이 벗 저 벗 다 벗이나
맛좋고 놀기 좋기는 내 벗뿐이로세..

하며 춤을 추는데 밖에서 무슨 인기척이 있어 이서방이 춤을 추다말고 눈이 크게 뜨고 귀를 세우니 그 사람이 크게 웃으며 열려진 굴 문앞으로 가며 따라오라고 하였다. 거기에는 참으로 괴이한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은반 같은 달이 떠서 못에 잠기고 사방은 대낮같이 밝은데 두루미떼 내려와 춤을 추고 있었다.
"
여보, 친구" 하고 부르다 말고 이서방이 말했다. ", 우리 통성명을 안했소. 무엇이라 부르오? 나는 이서방이오만.." 하니 "나의 성말이요? 내성은 허가요. 그러니 이제 우리이름은 이허요. 하하"하였다. "허서방 하나만 물어봅시다. 신선들은 생황을 불고 거문고를 타서 학을 춤추게 한다던데" 하니 허서방이 가볍게 웃고 나서 피리를 이서방에게 주고 말했다. ", 이서방이 불러보오. 내 대답보다 더 잘 알게 되리다." 하고 나서 "학이란 짐승이 음을 아나 봅니다. 나도 처음에는 놀랐소. 학뿐이 아니요. 좀더 불면 뭇짐승들이 다 모여드오. 이제 그만합시다." 하고 나뭇잎자리에 누우니 곧 잠이 들어버렸다. 이튿날 잠에서 깨어난 이허가 산열매와 송이 구운 것으로 요기를 하고 난 다음 허서방이 목도를 들고 밖으로 나가며 이서방을 손짓해 불렀다.
밖으로 나간 허서방이 잣나무 숲으로 달려가더니 칼을 들어 잣나무를 내리치고 가로치고 곧추 찌르는데 그 칼쓰는 법이 번개 같고 이리 닫고 저리 닫는 그의 몸이 날래기 또한 비호같았다. 때로는 한길씩이나 몸을 솟구치니 사람 솜씨가 아닌 듯 싶었다. 한동안 이렇게 뛰고 난 허서방이 바위위에 와 걸터앉으며 이서방을 향해 "어때, 한번 해보지 않겠소?"하며 씩 웃고 나서 "아직은 급할 것 없소. 그럼 나나 한 번 더 뛸테니 오늘은 구경이나 하시오" "아니오. 허서방 내게 칼쓰는 법을 어서 가르쳐 주오. 우선 한두수만이라도.." 하고 이서방이 말하니 허서방이 한번 크게 웃고 나서 ". 이친구 우물가에서 숭늉 찾겠다." 하니 이서방이 정색을 하며 "허서방, 세월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소. 뜻을 정한 이상 시각이 급하오. " 하고 말하자 허서방은 잠시 눈이 동그래가지고 이서방을 지켜보다 별안간 이서방에게 달려들어 그를 꽉 껴안았다. 이서방 또한 허서방을 힘껏 끌어안았다. 그들의 눈에서는 뜨거운 것이 줄지어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윽고 허서방이 입을 열어 "내가 사람을 볼 줄 알거든 허허허" 하고 웃으니 이서방이 "내 어제 밤 많은 것을 생각했소. 그리고 지난날이 몹시 부끄러웠소. 우리가 가진 지식을 더 익히고 무예를 닦고 병법을 익혀 이 나라의 쓸모 있는 인재가 됩시다." 하였다. 이리하여 다음날부터 이허는 잠시도 쉬지 않고 글과 무예를 함께 익혀서 이서방 칼쓰는 법이 눈에 띄게 달라져 갔다.
이리하여 그들이 무예를 닦고 병법을 익혀온 지 수년이 지나 산에서 내려가는 날 아침을 먹고난후 이서방이 허서방을 보고 "허서방, 우리가 처음 만나 벗을 맺던 곳에 이름이나 지어 새겨놓고 가세나. 좋은 벗, 뜻있는 벗을 만난 이 이서방이 새 사람이 되었으니 뜻있는 곳이요. 그리 합시다"하고 나서 행상에서 먹과 붓을 꺼내들고 대장사절아래 로 내려가니 허서방 또한 가지고 있던 돌정과 돌망치를 들고 그의 뒤를 따랐다. 그들은 처음에 만났던 자리로 가서 그리 높지 않은 선돌에다 <이허대>라고 크게 새겨놓고 산에서 내려왔다.
산에서 내려오면서 허서방이 말했다. "우리나라 금강산은 참 좋은 곳이요. 경치로만 절승일 뿐 아니라 훌륭한 인재를 키워내는 곳이니 말이요. 오늘도 이렇게 유명한 모사 무학은 가까이도 못 올 훌륭한 이허모사가 생겨나고 호담하고 용맹하기 짝이 없는 허, 이 장군이 자라났구려. 하하하" 하고 크게 웃었다.
저녁노을을 안고 산을 내리는 두 젊은이의 웃음소리 골안에 메아리쳐 울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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