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금강에 백전암이라는 조그만 암자가 있다.
이곳에는 지엄(智嚴)이라는 스님이 수도를 하고 있었는데,  

불도도 높을 뿐 아니라 장기를 잘 두기로도 소문이 자자했다.
하루는 조선 왕실의 종친으로서 서천현령(西川縣令)을 지낸 바 있는  

서천령(西川令)이 금강산 구경을 왔다가 백전암을 지나게 되었다.
그는 조선 팔도에서 장기 두는 것으로 자기를 당할 자 없을 것이라고 자부하고 있던 인물이었고  

물론 다른 사람들도 그의 장기 실력이 가히 국수(國手)일 것이라고 인정하였다.
서천령이 백전암을 들렀는데, 늙은 스님 한 분이 있는 방안은 깨끗하게 치워져서 아무런 가재도구도 없는데,  

벽에 다만 장기를 넣어 두는 주머니만 걸려 있는 것이 보였다.
호기심이 발동한 서천령은 스님에게 물었다.
아무런 가재도구가 방안에 오직 장기 주머니만 벽에 걸려 있는 것을 보니 스님은 장기를 잘 두시는가 보구려.  

나도 장기 꽤나 두는 사람이니 한 번 장기를 두어 봅시다.”
30
년 전에 장기를 둔 이후 한 번도 두지 못했다며 여러 번 거절하는 스님을  

몰아서 드디어 두 사람은 장기판을 사이에 두고 앉게 되었다.
장기 주머니를 열어서 꺼내 보니 서천령의 장기는 모든 말들이 다 있는데,  

스님의 장기말 중에는 포()가 한 쪽이 없었다.
서천령은 스님의 장기에 포가 없으니 다른 돌멩이나 나무 조각으로 대신하여 짝을 맞추자고 하였으나

스님은 장기도 일종의 도()인데 아이들 장난처럼 돌멩이나 나무 조각을 올려놓을 수 없다며 그냥 하자고 하였다.
조선팔도에서 국수로 명성을 떨치고 있던 서천령은 속으로 몇 수만에 이길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두기 시작했다.
그런데 열수도 채 되지 않아서 자신이 지는 사태가 발생했다 화가 난  

서천령은 여러 번을 계속 두었으니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결국 장기주머니를 걷고 금강산을 내려오면서 장기도 도속(道俗 : 도인과 속인, 불가와 속가)이 다르다며 한탄을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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