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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네 아빠 어딨니? - 듀나 작가 데뷔 30주년 기념 리뉴얼판
듀나 지음 / 북스피어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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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에 듀나가 있었다.

한국 에스에프의 전성시대가 도래하기 전에 듀나가 있었다. 에스에프뿐이랴. 듀나는, 김대중 선생이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하고 전두환 씨가 광주 민주화 운동 유혈 진압을 주도한 혐의로 구속되던 그해부터 판타지, 미스터리, 호러 등 각종 장르의 작품을 연재하였다. 한국 장르소설의 개척자라고 불러도 무방하겠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태초에 듀나가 있었다”니 지나치게 추어올린다고 느끼는 형제자매님도 계실 듯하다. 물론 이는 과장된 표현이며 여기에는 개인사적 맥락이 숨어 있다. 아니, 숨어 있는 건 아니고 처음 얘기하는 거니까 그냥 있다고 해야겠다. 그 얘기를 한 자락 해볼까 한다.

때는 2005년, <내 이름은 김삼순>에 등장한 책 <모모>가 순식간에 20만 부 이상 팔리며 호황인 듯 보였지만 도서정가제를 둘러싼 갈등이 여전한 가운데 대형 출판사의 매출은 증가하였으나 “중소형 출판사와 동네서점들은 고사 직전(경향)”이라는 출판뉴스가 횡행하던 시절이었다.

그 무렵 나는 출판사를 창업했다. 이렇다 할 준비 없이 첫 책 하나만 들고 벌인 일이었다. 막연히 힘들 거라는 예상을 했지만 현실은 예상보다 더 지난했다. ‘언제 망할지 알 수 없는 신생 출판사’에 아무도 작품을 주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판권을 문의해도 답신조차 받지 못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듀나 작가가 쓴 게시판 글을 보게 되었다. 이러저러한 아이디어가 있어서 소설로 써볼까 한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덮어놓고 듀나 작가에게 메일을 보냈다. 장황한 읍소가 담겨 있었는데 한 줄로 요약하면 이렇다. “그 소설, 북스피어에서 출간하면 어떻겠습니까?” 잘 만들어 볼 테니 저한테 주세요.

기대는 하지 않았다. 얼마든지 출판사를 선택해서 책을 출간할 수 있을 정도의 네임드 작가가 뭐가 아쉬워서 북스피어 같은 듣보잡이랑 계약을 한단 말인가. 답장도 안 올 줄 알았다. 한데 바로 왔다, 답장이. 계약하자고. 이게 웬 떡인가 싶더라. 되풀이하지만 당시에는 뭐라도 하나 얻어걸렸으면 하는 심정으로 여기저기 오퍼를 넣을 때였으니까.

와, 신난다. 그(녀)는 ‘얼굴 없는 작가’로 여자인지 남자인지 1명인지 3명인지 지구인인지 외계인인지, 아니 이건 아닌가 하여튼 몽땅 베일에 싸인 채 발표하는 글만 볼 수 있었으니 그, 그럼 계약할 때 듀나 작가랑 만날 수 있는 걸까 하는 기대감도 있었으나. 음. 만나기는커녕 통화 한번 못했다. 그저 메일만 몇 번 주고받았을 따름이다.

그래도 어쨌거나 북스피어에서 듀나의 책이 출간되었다. 감격해하며 영화평론가 정성일 선생에게 3매짜리 추천사를 부탁했는데 무려 33매짜리 추천사를 보내주는 바람에 ‘ㄸㄹㅇ인가’ 싶어 당혹스러워하다가 ‘아아, 추천사가 소설만큼 재밌잖아’ 하며 비로소 정신을 차리고 정성일 선생이 사는 곳을 향해 감사의 마음을 담아 33번 절했던 기억이 난다.

그게 벌써 17년 전 일이구나. 그 사이에 한국 에스에프는 질적으로도 양적으로도 장족의 발전을 거듭하여 김보영김창규배명훈정소연김초엽천선란 등의 걸출한 작가를 배출하고 각종 차트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부커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바야흐로 전성기를 맞이한 것이다. 게다가 올해는 듀나 작가의 데뷔 30주년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지난 두 달 동안 표지를 새롭게 만들고 본문을 다시 작업해서 리뉴얼한 책을 이번에 출간하였다.

듀나를 다시 들여다볼 시간이다.

지금으로부터 17년 전, 변변찮아 보이는 출판사의 대표로 출간할 책이 없어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때 두말없이 원고를 주었던 듀나 작가님, 데뷔 30주년을 축하드립니다! 덕분에 북스피어도 살아남아서 곧 20주년을 맞이할 수 있겠어요. 고맙습니다.

삼송 김 사장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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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에 달 가리운 방금 전까지 인간이었다 레이디가가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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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를 잘근잘근 씹어 먹을 듯한 포즈로 별의별 초자연적 의상과 아크로바틱한 동작, 센세이셔널한 아이디어를 끝도 없이 등장시키며, 아아 도대체 저걸 어떻게 수습하려고 저러나 하는 의혹과 아노미의 도가니탕으로 관객들을 싸그리탈탈 몰아넣은 뒤,

 

빈 수레가 요란하더라는 둥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둥 모난 돌과 같은 예술가들을 보면 물고 뜯고 씹어대는 이들을 향하여 그 퍼포먼스에 전혀 뒤지지 않는 가창력과 연주실력, 화려무쌍한 무대장악력을 보여줌으로써 환상특급적 피날레로 마무리하고야 마는 레이디 가가.

 

이런 압도적인 에너지는 과연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 동력은 레이디 가가의 평소 습관이라고 합니다. 그게 무엇인지 볼짝시면,

 

1) 아침을 든든히 먹는다.

2) 매일 운동을 한다.

3) 입버릇은 나는 할 수 있어.”

4) 다른 이들의 시선은 신경 쓰지 않는다.

5) 쉬고 싶을 때는 전력으로 쉰다.

6) 감사하는 마음은 즉시 표현한다.

 

그리고 이게 가장 중요한데.

일과가 끝나고 잠자리에 들기 전 매일 30분씩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시간을 갖는다고 하네요. 하루도 빼놓지 않고, 이 시간에는 거울을 향해 긍정적인 말을 건네거나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는다고.

 

매일 하루에 30분 자신을 소중히 하는 시간을 갖는다, 라니. 표현이 멋지지 않나요. 이토록 바람직한 습관이라면 한 번쯤 가져봐도 좋겠습니다. 마침 이런 다이어리적 마인드에 도움이 될 만한 책이 바로 <구름에 달 가리운 방금 전까지 인간이었다>인데.

 

이번 작품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사회파 미스터리부터 호러, 에스에프, 판타지까지 모든 장르에 발자취를 남겨온 미야베 문학의 새로운 도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새로운 도전이기 때문에 레이디 가가시리즈예요.

 

세계에서 가장 짧은 정형시라는 하이쿠의 압축된 세계를 미야베 미유키 작가가 특유의 통찰력과 따듯한 혜안을 담아 뽑아낸 12개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작가도 당부했지만 이 작품들은 몰아 읽지 말고, 한겨울 서리를 견디며 긴 꼬치에 매달려 있는 곶감 빼먹듯 잠들기 전에 한 편씩 읽으면 좋아요. 12개 이야기 모두 딱 30분씩 읽으면 마침맞은 분량이니까.

 

17음으로 이루어진 하이쿠를 번역하는 작업이 좀처럼 쉽지 않았는데, 12개의 한글 제목 가운데 가장 끌리는 것부터 순서와 상관없이 읽으셔도 무방합니다. 다만책의 맨 뒤에 있는 미야베 미유키 작가의 말을 제일 먼저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마포 김 사장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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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끝의 살인 첩혈쌍녀
아라키 아카네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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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정리>


1) 대학 졸업 후 운전을 배우기 위해 학원에 등록

2) 하지만 울트라극소심이라 강사 눈도 못 쳐다봄

3) 안 되겠다, 이걸 소설의 취재라 생각하자

4) 소설의 소재를 찾기 위해 강사에게 폭풍 질문

5) 덕분에 베스트드라이버가 됨

6) 한데 그동안 취재한 게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7) 회사에 출퇴근하는 동안 짬짬이 소설을 쓰기 시작

8) 세계 멸망에 관한 내용으로 6개월 만에 탈고

9) 에도가와 란포 상에 응모하여 수상하고 작가로 데뷔

 


68회 에도가와 란포 상

전혀 다른 작풍을 가진 5명의 심사위원(교고쿠 나츠히코, 아야츠지 유키토, 아라이 모토코, 시바타 요시키, 쓰기무라 료에)'만장일치'로 대상을 결정할 당시 수상자의 나이는 23세였는데 이것은 일본 문학계에서도 꽤 화제가 되었습니다


1955년부터 지금껏 70년 가까이 이어온 란포 상의 모든 수상자들 가운데 가장 어렸기 때문입니다.

 

상을 받은 직후, 아라키 아카네 작가는 다소 뜻밖의 고백을 합니다. 세상 끝의 살인이라는 소설의 모티브를 처음 떠올린 건 운전면허 교습소에서였다고 말이죠. 낯가림이 심해 운전 교습소에 가서 강사를 만나는 일이 항상 긴장되었는데 소설의 취재라고 생각하니 말문이 쉽게 트였다면서.

 

낯가림이 심해 운전 교습소에 가서 강사를 만나는 일이 항상 힘들었는데 소설의 취재라고 생각하니 말문이 트이더라는 얘기를 들으니 북스피어 출판사를 막 창업할 당시가 떠오르더군요. 이런저런 독자와의 만남이나 이벤트를 기획하며 고민이 깊었거든요. 저도 아카네 작가와 마찬가지로 낯가림이 심해서 말이죠.

 

며칠을 끙끙거린 끝에 이건 (사람과의 만남이 아니라) 책을 만드는 작업의 일환이다라고 생각했더니 마음이 어찌나 가벼워지던지. 이후의 전개는 제 몸 속에 숨어 있던 또 다른 사회적 자아가 맡아서 진행해 주었습니다. 무척 신기한 경험이었어요.

 

다만 제 경험이 시시한 에피소드로 장렬히 산화한 데 반해 아라키 아카네의 경험은 걸작의 구상으로 이어졌다는 것이 큰 차이네요. 그렇다면 이제 쌩초보 작가가 어떻게 이런 근사한 이야기를 구상할 수 있었는가에 대해 알아보도록 할까요.

 


첫 번째 : 왜 지구 멸망인가

 

이왕 취재라고 여긴 김에 정말 소설로 써볼까 마음먹자마자 자연스레 운전학원 강사+수강생이라는 조합이 머리에 떠올랐겠지요. ‘운전학원 강사와 수강생 여성 2인조가 살인사건에 휘말린다는 설정까지는 어렵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하면 경찰이 개입할 수밖에 없죠. 어떻게든 교사와 수강생이 주체적으로 수사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야겠다 싶었던 아라키 아카네는 인류를 멸망시키기로 합니다. 소행성과 지구의 충돌을 앞두고 경찰력이 작동하지 않는 세상이라면, 두 사람의 독자적인 수사도 개연성을 획득할 수 있지 않을까.

 

한편으로 별이나 천문학에 관심이 많아서 한 번쯤 다뤄보고 싶었던 이야기였는데 단순히 머릿속으로만 구상하진 않았습니다. 지구 멸망에 관한 픽션과 논픽션, 각종 자료를 구해 몇 달간 닥치는 대로 읽으며 공부를 거듭했지요.

 

그중에서도 세상 끝의 살인이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벤 H. 윈터스 작가의 소설입니다. 라스트 폴리스맨에 그려진 세계는 소행성 충돌로 지구의 멸망까지 남은 시간이 반 년 남짓. 그런 상황에서 신참 형사가 살인사건에 착수하는 이야기예요


_소설 마루인터뷰 중

 

아카네가 영향을 받았다는 벤 H. 윈터스의 소설은 3부작으로 출간되었으며 각각 에드거 상(추리소설 부문)과 필립 K. 딕 상(SF 부문), 사이드와이즈 상(대체역사 부문)을 비롯하여 다수의 상을 받았습니다. 한국어판으로도 출간된 바 있으니 (지금은 절판이지만) 구해서 읽어보셔도 좋겠어요. 재미있으니까.

 


두 번째 : 왜 에도가와 란포 상인가

 

운전을 배우며 회사에 출퇴근하는 동안 짬짬이 소설을 쓰기 위해 이용한 건 스마트폰이었습니다. 그날그날 쓴 내용은 퇴근 후 집에서 컴퓨터로 옮겼다네요. 그런 식으로 플롯을 짜는 데 3개월, 집필에 3개월, 탈고하기까지는 대략 반 년가량이 걸렸다고 합니다.

 

새로운 수수께끼가 속속 등장해 지루할 틈이 없는 가운데 극한의 상황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마음을 움직이는 이 극강의 미스터리를 쓰는 데 6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다니 대단하지요. 이 정도면 공모전에 응모해도 괜찮지 않을까. 고민 끝에 에도가와 란포 상에 도전한 까닭은,

 

아라이 모토코 작가의 소설 한 번 더 당신에게가 저에게 큰 영향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곧 세상이 끝날 텐데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던 사람을 만나기 위해 여행하는 여성 캐릭터에 완전히 반하고 말았어요. 지구 멸망이라는 설정을 떠올린 계기가 된 작품이기도 했지요. 그 아라이 선생님이 심사위원이었기 때문에 주저 없이 란포 상에 작품을 보냈습니다.


그러니까 한 번 더 당신에게를 읽고 작품을 구상, 라스트 폴리스맨을 읽고 플롯을 다듬었다, 는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텐데,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라스트 폴리스맨보다 더 박진감 넘치고 재미있어요. 라스트 폴리스맨을 능가하지 않았다면 세상 끝의 살인한국어판은 출간하지 않았겠지요.

 

이런 대형 신인을 발굴한 에도가와 란포 상의 심사위원들이 얼마나 뿌듯해했을지 조금쯤 짐작이 됩니다. 그중에서도 아야츠지 유키토와 아라이 모토코 작가는 수상작을 발표하며 청출어람 같은 각별한 기분을 느끼지 않았을까요. 그러한 각별함이 초신성의 등장”, “역대 에도가와 란포 상 최고작이라는 상찬으로 표현된 것일 텐데.

 

저도 심사위원들에게 감사드리고 싶네요. 독자로서, 그리고 한국어판의 편집자로서.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세상 끝의 살인 한국어판 편집자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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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의 파수꾼 이판사판
신카와 호타테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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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91년 미국 댈러스에서 태어난 신카와 호타테는 자타가 공인하는 ‘공부벌레’였습니다. 활자를 읽는 걸 좋아해서 늘 책을 끼고 다녔다네요. 고교에 진학할 무렵에는 나쓰메 소세키를 읽고 어떻게 하면 소설가가 될 수 있을지 알아봤던 모양이에요. 그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소설가는 먹고살기 힘든 직업이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소설가가 된다’는 길은 정해져 있었어요. 하지만 먹고살기가 어렵잖아요. 소설가가 되려면 우선 경제적 기반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지요. 국가 자격증을 가진 전문직 종사자가 되면 가능하지 않을까, 작가로 생활할 수 있겠구나 싶었죠."


그래서 법대에 들어갔습니다. 법 공부를 하고 싶었다거나 이렇다 할 뜻이 있었던 건 아니었어요. 국가 자격증을 가진 전문직 종사자, 즉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다는 ‘전략적인 판단’ 때문이었지요. 그리고 24살에, 정말로 덜컥 사법고시를 패스합니다. 



2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로펌에 취직한 후에는 일명 ‘야마무라 교실’에 등록하고 열심히 강의를 들었습니다. 소설 창작을 가르쳐주는 곳은 널렸는데 왜 하필 야마무라 교실이었을까. 미야베 미유키 작가가 이곳에서 강의를 듣고 데뷔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미야베 선생님을 신으로 추앙하는 종교의 구도자거든요. 예전에 누가 ‘미야베 작가가 목표야?’라고 물었는데 목표라니 말도 안 돼요. 어떻게든 치열하게 연구하고 공부해서 그 길을 따라가 보자고 생각할 뿐이지요."


『공정의 파수꾼』을 검토하고 계약한 이후에도 몰랐던 사실입니다. 그래서 제가 이 작품에 끌렸는지도 모르겠어요. 어쨌거나 미야베는 미야베이고 자신은 자신. 자, 그럼 나는 어떤 이야기를 쓸까. 아마도 그런 고민을 했을 게 분명한 신카와의 다음 목표는 문학상 수상이었습니다.



한국에서도 신춘문예에 당선되거나 유명한 문학상을 받아 등단하는 것이 신인작가로서 입신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편이잖아요. 변호사 일을 하면서 여러 작품을 썼지만 1차 심사조차 통과하지 못하는 나날이 계속되던 어느 날, 신카와는 문학상 수상작을 연구하기 시작합니다. 


연구대상으로 삼은 문학상은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주간문춘 미스터리 베스트 10>에 대항해서 만들어진 이 상은 기성 작가보다는 경력이 일천한 작가들의 작품을 우선 눈여겨본다는 특징이 있기 때문에 초짜였던 신카와로서는 마침맞겠다고 여겼을 겁니다. 


신카와 작가는 자신이 연구한 결과를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공략법’이라는 제목으로 유튜브에 공개했는데, 이게 또 재밌습니다. 궁금해할 분들이 계실 듯해서 『공정의 파수꾼』 편집자 후기에 자세히 적어 두었으니 필요하신 형제자매님은 읽고 써먹으셔도 좋겠어요.



4

언젠가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가 얘기한 걸로 기억합니다. 아쿠타가와 상이라는 것은 어차피 일개 출판사가 주관하는 (상업적 목적의) 상일 뿐이라고. 레이먼드 챈들러도 노벨 문학상에 대해 비슷한 말을 했지요. 이 상에 그만한 가치가 있느냐면 단연코 아니라고. 


대부분의 작가들이 작품이 먼저고 문학상은 그다음, 즉 문학상을 노리고 글을 쓴다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일이라는 식으로 얘기해 왔습니다. 문학상 공략법이라니, 자칫 손가락질을 받을 수 있는 짓인데. 이 어려운 걸 신카와 작가가 해내네요.


저 역시 몇몇 문학상의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적이 있는데, 신카와 작가가 쓴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공략법’은 그야말로 어떤 문학상에든 적용하여 써먹어도 됩니다. 감히 장담할 수 있어요. 이 다섯 가지를 지킬 수 있다면 반드시 당선됩니다. 



5

실제 자신이 연구한 방법으로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대상(상금 1억 2천만원)을 수상한 신카와 호타테가 그 반증이겠죠. 그(녀)는 단숨에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고, 이어서 발표한  『공정의 파수꾼』은 후지TV 역사상 처음으로 동일 원작자의 소설을 2분기 연속 드라마화하여 화제가 됩니다.


이제 3년차 작가로서 이룬 성취가 놀라울 정도인데, 현재 변호사 일을 때려치고 미국으로 건너가 글쓰기에 집중하고 있다고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만이 쓸 수 있는 내용을 누구나 알 수 있는 쉬운 문장으로 쓰는 것, 이라는 신카와 호타테. 그(녀)가 미야베 미유키와 어깨를 나란히 할 대가의 반열에 오르는 순간을 목도할 수 있기를. 멀리서나마 바라봅니다.  


소설만큼이나 굉장했던 작가의 이력에 감탄한,

마포 김 사장 드림. 


덧) 

『공정의 파수꾼』에는 <모든 에너지를 소설에 쏟기 위해 신카와 호타테가 세운 5가지 규칙> 등의 내용이 포함된 긴 버전이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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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주의보 이판사판
리사 주얼 지음, 김원희 옮김 / 북스피어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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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3학년였나. 장래희망이 뭐냐고 물어보는 선생님의 질문에 소설가라고 대답했다. 그냥, 멋있어 보여서 그랬다. 국문학과에 적을 두면 소설가가 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막상 입학해 보니 훈민정음, 향가 같은 것만 가르치더라.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도 싫지 않았지만 소설을 어떻게 쓰는지는 배우지 못했다.


네 학기를 마칠 때쯤 소설 습작강의가 개설되었다. 이거다 싶어 신청하고 구상에 들어갔다. 장르는 미스터리. 나는 밤마다 책상에 앉아 갉작갉작 원고지를 채워나갔다. 하지만 그게 죄다 뻘짓임을 깨닫는 데는 탈고하고 채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 주위의 몇몇 친구들은 단지 도입부를 읽는 것만으로도 범인을 알아맞혀 버렸으니까.

 

결국 포기하기로 했다. 세상 사람들은 이를 두고 근성이 없다고 하겠지만 애초에 독서량도 턱없이 부족했어. ‘언젠가는하는 마음가짐으로 후일을 도모하자. 그때부터 마음에 드는 소설을 읽고 나면 작가 약력에 적힌 나이를 유심히 보며 어떻게 데뷔했는지 찾아보는 버릇이 생겼다.

 

1968년 생인 리사 주얼의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도 그랬다. 칙릿이든 스릴러든 발표하는 소설마다 연속 히트. 전 세계 26개국에 번역되어 천만 부가 넘는 판매고를 기록했으며 최근 작품들은 대개 영화나 드라마화가 진행중인 영국의 대표작가. 이 사람은 그야말로 ‘Natural born writer’구나 생각했다.

 

한데 뜻밖의 유년 시절이 있었음을 알고 조금 놀랐다. 자신이 태어난 런던 북부의 작은 집에는 책이 단 한 권도 없었다고, 리사는 어느 인터뷰에서 말했다. 부모님은 대학을 나오지 않았고 먹고사는 데 바빠서 책 읽을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더욱 나빴던 건, 직물 중개인이었던 아버지가 보통의 아버지들보다 훨씬 더 권위적이었다는 점이다.

 

아빠는 의견을 가진 아이를 좋아하지 않았어요. 집 밖에 나가 노는 것도 싫어해서 우리 자매는 늘 집에 처박혀 있었지요. 동생과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상상의 존재를 만들어 서로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때의 경험이 훗날 소설을 쓰는 데 도움이 좀 되었을 거라고 리사는 말했다.


대학에서는 미술을 공부하고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으로 학위를 받았다. 이후 패션 소매업체인 Warehouse에서 일하던 중 남편을 만나 이듬해 결혼했다. 하지만 불행히도 남편이 그들의 연애 시절에 보여준 애정 공세, 곧 리사의 삶을 모든 면에서 통제하려는 시도로 바뀌었다고 한다. 친구를 만나거나 심지어 옷을 입는 것까지 허락을 받아야 했다.


퇴근 후에는 곧장 집으로 돌아오지 않으면 난리가 났다. 때문에 야근을 할 수도 동료들과 저녁을 먹을 수도 없었다. 그로 인해 PR매니저로 승진할 수 있는 기회도 사라졌다. 자신의 아버지처럼 감정적 교감이 불가능하고 가족을 강압적으로 통제하려는 남자와 사랑에 빠졌던 건 단지 우연이었을까.

 

첫 번째 결혼을 끝내고 글쓰기 수업을 신청한 이유는, 무력감을 극복하기 위해 뭐든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우연히 눈에 띄었고 그냥 재미있을 것 같아서였다고 한다. 실제로 수업은 재미있었다. 자신이 쓴 글로 선생님에게 칭찬을 받으면서 자신감도 회복했다. 마침 회사에서 해고된 덕분에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었다.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도 생겼다.


나는 그때 닉 혼비의 소설을 읽고 작가가 되려면 중년 남성이어야 한다고 믿었어요. 독자들은 젊은 여성의 목소리에 관심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친구가 그냥 써. 나는 네 이야기를 듣고 싶으니까. 만약 나에게 세 장을 써서 보여주면 네가 제일 좋아하는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쏠게라고 말했습니다.”

 

이 세 챕터는 결국 리사의 데뷔작 <랄프의 파티>로 발전하여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역시 사람은 친구를 잘 사귀어야 하는 법이다. 당시 유행하던 장르인 칙릿으로 이름을 알렸지만 리사가 쓰고 싶었던 장르는 미스터리, 스릴러였다. 이때부터 어두웠던 과거가 빛을 발한다. 리사의 소설에 가족과 집(집착, 고립, 가스라이팅)에 관한 내용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글쓰기는 제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어요. 전에는 인생의 지도라고 할 만한 게 없었거든요. 내 인생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전혀 몰랐지요. 하지만 글을 쓰기 시작한 순간부터 제 인생은 의미와 목적을 가지게 되었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추진력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세 챕터만 써보라는) 친구의 제안으로부터 시작되었던 거죠.”


런던에 거주하며 두 번째 남편과 함께 딸 키우는 리사 주얼은, 매일 소설을 쓰는 한편으로 여러 매체를 통해 자신처럼 소설을 쓰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다음과 같은 조언을 남겼다.

 

<리사 주얼의 Top 5 Writing Tips>

 

1) 글쓰기가 낭만적일 거라는 생각을 버리세요.

재미있을 거라고 상상하지 마세요. 특히, 쉬울 거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인생에서 가장 도전적인 일 중 하나가 될 겁니다. 읽기 쉬운 글이라도 쓰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2) Read (not normally way)

평소 읽는 방식대로 읽지 말고 작가가 한 일을 살펴보세요. 장면 전환을 어떤 식으로 했는지. 대화를 자연스럽게 만드는 기술은 무엇인지, 처음 등장하는 캐릭터는 어떻게 묘사돼 있는지.

 

3) Start

4) Keep going

5) Finish.

우선 시작하고, 계속 쓰고, 꼭 끝내세요!

마지막 세 가지는 단순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시작한 글을 끝내지 못했는지 알면 놀랄 겁니다. 현실적인 기대를 가지되 인내와 끈기가 필요합니다. 한 사람만 있으면 돼요. (나에게 세 챕터만 써보라던 친구처럼) 단 한 사람만 마음에 들어 하면 됩니다. 그걸 알았다면 당신은 이미 반쯤 온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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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사 주얼의 신작 <가족주의보>는 위의 글쓰기 팁을 공부할 수 있는 마침맞은 소설입니다. 빠른 장면 전환, 입체적인 캐릭터, 허를 찌르는 반전으로 한 번 책을 잡으면 롤러코스트처럼 끝을 보기 전까지 내리지 못하도록 만들거든요. 대단한 흡입력. 저도 그래서 계약했고요. 이 모든 것들이 어떻게 짬뽕져 어우러져 있는지 한번 거들떠봐 주시길.

 

삼송 김 사장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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