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칼렛 오아라
이승민 지음 / 새움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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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족을 느껴 무엇을 가지거나 누리고자 탐하는 마음을 욕망이라 한다. 어쩌면 삶을 이끄는 건 바로 이 욕망의 에너지가 아닐까. 살고자 하는 것도, 먹고자 하는 것도, 이보다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가려는 것도 모두 욕망에서 기인된 인간의 본능과 다름 없다. 이 때 우리가 욕망을 어떻게 다루고 표현하느냐에 따라 매순간 치열하게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으로 평가받기도, 욕망에 눈이 멀어 아집으로 똘똘 뭉친 그릇된 사람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그렇다면 내가 지닌 욕망의 이미지란 무엇일까? 나는 그것을 어떻게 실현하고 있는가? 사소한 이상과 헛된 신기루 속에서 적절히 균형을 잃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가? 누구도 피하지 못한 채 욕망에 붙들려 살아가는 다양한 인간 군상을 그린 <스칼렛 오아라>는 내 안의 욕망을 직시하게 하는 그런 소설이었다. 낮과 밤이 다른 이중생활의 그녀, 라는 카피에서 주는 첫인상의 가벼움은 의외로 깊은 성찰로 나아가게 만드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이승민의 장편소설 <스칼렛 오아라>에는 지방신문지의 신춘문예 당선으로 갓 등단하게 된 가난한 무명작가, 오아라가 등장한다. 그녀의 꿈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는 것이자, 자신이 좋아하는 명품을 마음껏 소비하며 타인의 부러움을 받는 셀러브리티가 되는 것이다. 우울하거나 답답할 때마다 청담동의 명품 편집숍을 찾아 화려한 명품들을 바라보며 한낮 신기루일지 모르는 속물적 감흥과 그에 비례하는 상대적 박탈감 사이에서 자신의 욕망을 직시하곤 한다. 그녀를 사로잡는 가장 큰 욕망은 역시 글을 쓰는 것이었다. 그저 글을 쓰고 싶었을 뿐이지만 항상 비루한 삶이 발목을 붙들고 노력한 만큼의 대가도 얻지 못한다. 그래서 오아라는 과외하는 학생의 아버지이자 유명 성형외과 원장인 김중권을 유혹하는 한편, 스폰을 앞세워 돈을 벌기 위해 '스칼렛'이라는 이름의 오피스걸이 되기로 결심한다. 




낮엔 글을 쓰거나 구상을 하고 밤에는 스칼렛이 되어 고객을 상대하는 일상이 이대로 계속되었다가는 자아 분열을 일으킬지도 모르겠다는 두려움이 일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오아라는 멘탈이 꺾이면 육신이 꺾이고, 일상이 꺾이고, 삶이 꺾인다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매순간 정신을 다잡아가면서 A와 B를 상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번 몸과 마음 둘 중 하나는 꺾이기 십상이었다. 때론 육신이 지랄 맞게 반응했고 뇌 속 어딘가에 시퍼런 균열이 가는 소리가 들릴 때도 있었다. 그래도 참고 견뎠다. 스칼렛이 열심히 돈을 벌어야 오아라가 밥을 먹고 글을 쓸 수 있으니까. / 89P



  오아라가 자신의 배경을 노리고 접근했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유명 성형외과 원장이라는 명함을 뒤로하고 이혼을 하여 오아라와 소박한 삶을 꿈꾸는 김중권, 그녀가 원하는 돈을 주고 몸을 탐하는 A와 B, 오아라처럼 부잣집 사모님들로부터 스폰을 받아 생활하는 동갑내기의 남자 노아가 등장한다. 그녀로써는 아픈 엄마의 어마어마한 병원비를 감당하고 빠듯한 생활을 하기 위해, 그녀가 원하는 글을 쓰기 위해서는 이들이 필요하다. 스칼렛의 시간을 견디게 만드는 것은 바로, 무엇보다 강하게 소설을 쓰고 싶은 욕망이었다. 하지만 작가라는 고매한 이미지와는 어쩐지 어울리지 않는 이중생활, 그 불온하고 위태위태한 관계들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금방이라도 어느 한쪽이 꺾여들어갈 것만 같다. 그 때마다 그녀는 생각한다. 가난한 소설가가 명품을 사랑하는 것이 그토록 이상한 일인가. 왜 작가는 백화점상품권 보다 디올, 샤넬, 까르띠에보다 문화상품권을 더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인가. 양심의 가책 또한 중요하지 않다. 비루한 삶은 욕망을 부추기고, 그것의 정당성을 찾기엔 이미 너무 고달프기에.  



  "인간의 욕망이란 것은 결국 똑같은 거 아니겠어요. 그것에 접근하고 그것을 실현하는 방법론의 차이 혹은 인식의 차이일 뿐이지. 다시 말하지만 이미지에 현혹되지만 않으면 된다고 봐요. 적잖은 명품 브랜드들은 오랜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유럽 왕실이나 귀족, 최고 상류층들을 위한 소수의 제품을 만들던 것이 시초잖아요. 희소성이 많이 사라졌다는 게 서글픈 일이긴 하지만 역사와 전통은 분명한 족적으로 남아 있는 거니까. 그들이 보여준 성장과 역사의 궤적 자체가 매우 소설적이라는 생각을 해요. 명품은 누가 소비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소비하느냐가 중요하니까." / 247P



  유명 셀러브리티들이 자주 본다는 잡지사와의 인터뷰에서 오아라가 한 말이다. 진실은 명품으로 대변된 화려한 삶을 자신도 가지고 싶다는 열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않은 척, 작가로서의 품위를 잃지 않는 척 행동하는 그녀는 이미 너무나 이중적이다. 가만보면 이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에게서 이중적인 면모를 찾을 수 있다. 자신은 부유한 삶을 원치 않는 것처럼 행동하는 김중권은 여전히 아내의 배경 속에서 살아가고, 대기업 간부이나 오피스걸을 찾아다니며 성적 욕망을 해소하는 A와 B는 물론, 유명 문학지의 편집장이자 대학 교수로써 존경받는 지식인의 상징인 듯했던 윤석향 역시 오아라가 오피스걸인 것을 알게 된 후 늑대의 발톱을 드러내는 등 대부분의 인물이 하나같이 모순을 떠안고 있다. 그 어느 누구도 오아라를 손가락질 할 수 없다. 알고보면 모두가 욕망에 떠밀려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이렇듯 작가 이승민은 꽤 입체감있고 설득력있는 캐릭터를 구축하여 소설의 완성도를 높였다. 캐릭터가 잘 짜여져있고 그들에게서 얻을 수 있는 다양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구성되어 있다보니 가독성이 높고 얼개가 잘 짜여진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칫 막장이 될 수도, 통속 소설의 이미지가 더 강하게 느껴질 수 있는 소재였음에도 불구하고 성찰에의 의미를 지닌 문장들이 시의적절하게 쓰여져 재미와 작품성을 모두 갖춘 소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문학만 하며 살기에는 척박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소설이어서 개인적으로 꽤 이입을 했고, 그래서 더욱 재미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나 또한 작가가 되기를 꿈꿨다. 글만 써도 살아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현실을 깨닫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결국 나 역시 돈을 벌기 위해 출판사에 취직을 하면서 다른 방향으로 노선을 바꿔야했기에, 오아라가 꿈꿨던 욕망이 다소 극단적으로 실현되었을지는 모르겠으나 그럼에도 글을 쓰기 위해 선택한 것들을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오아라는 결국 자신이 원하는 물질적 욕망과 작가로써의 욕망을 모두 채웠을까? 그 결말이 궁금하다. 가볍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이야기. 우리 문단에 앞으로도 이렇게 재미있게 잘 읽히는 소설을 쓸 수 있는 작가가 계속 배출되었으면 하고 또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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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16-11-16 0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리뷰보니 꼭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

투콤마 2017-01-19 00:49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즐거운 독서 시간 되시길 바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