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갗괴물 이야기 단비어린이 문학
전은숙 지음, 안병현 그림 / 단비어린이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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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작가가 '사랑'이라는 게 뭘까 생각하기 시작했고, 그렇게해서 찾아낸 사랑들을 담아낸 이야기입니다. 작가가 찾은 사랑은 한없이 아름다고 소중한 것보다는 조금은 엉뚱하고 때로는 아프기도 한 사랑의 여러 얼굴이에요.

 

사랑은 하나의 얼굴이 아니었어요. 이렇게 여러 모습과 다른 맛을 내면서 세아 곳곳에 묻어 있었어요. 이 많은 모습 중에 어떤 사랑을 품고 살아가야 할까요? 우린 이미 답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생각하고 또 생각해 봤으면 좋겠어요. 사랑이란 그런 거니까요. (작가의 말 中)

 

작가의 말을 곰곰히 생각해보니 사랑이 모두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닌 듯 합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많은 상처를 주기도 하니까요. 이 동화책을 읽다보면 비현실적인 요소를 가미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현실적이라 무섭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표제작인 [살갗괴물 이야기]는 차가운 심장을 가진 움직이는 건 뭐든 잡아먹는 살갗괴물이 아파트에서 악쓰는 여자를 잡아먹은 후의 이야기를 담았어요. 악다구니를 쓰는 여자는 괴물 자신보다 더 괴물 같았어요. 살갗괴물은 오동통하니 맛있는 여자를 잡아 먹은후 그 여자의 살갗을 입고 여자로 변해 그 여자가 살던 집으로 들어갔어요. 거기에는 두 남자가 있었습니다. 남자는 여자 행세하며 살다 배고프면 하나씩 잡아먹기로 했어요. 그런데 둘 다 비찍 멀라 살점이 하나도 없었답니다. 그래서 둘을 살 좀 찌워 잡아먹기로 했지요. 그동안 어른 남자는 아파트 대출금을 갚으라는 아내의 악다구니에 대리운전을 하며 투잡을 했고, 작은 남자는 100점만 맞아오라는 엄마 때문에 주눅이 들어있었어요. 괴물은 아파트 대출금과 백점에 먹이를 빼앗길 수 없어서 대신 대리운전을 했고, 아이에게는 노는게 더 중요하다고 했죠. 어느 일요일 아침, 아무도 없자 살갗을 벗고 맨몸으로 바람을 쐬던 괴물을 두 사람이 보게 되었어요. 괴물은 괴로웠지만, 남편과 경민이는 천천히 다가와 떨리는 손으로 지퍼를 머리끝까지 끌어올려 주었어요. 그리고 끌어안았죠. 비현실적인 요소로 적혀있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입니다. 돈과 점수가 최고라 생각하는 우리에게 경각심을 심어주네요.

 

[우주에서 제일 맛있는 치킨]은 장사가 잘 되지 않는 치킨집 아들 우주의 이야기에요. 장사가 잘 되지 않아 전단지를 뿌리게 된 아빠는 배달전화를 받게 되고, 우주에게 배달을 시키게 되요. 배달을 시킨 건 바로 아닌 외계인이었고, 아빠 치킨을 먹은 외계인은 '따봉'이라고 외쳐요.

"이상한 양념은 무슨. 그게 그러니까 당연히 우주에서 최고로 맛있겠지. 이 아버지가 우리 아들에게 먹이던 것처럼 온 정성을 다해 튀겼거든." (본문 49p)

 

그토록 가지고 싶었던 악어가죽 가방을 아기라 부르며 업고 다니는 엄마는 아빠와 아이에겐 관심이 없고 잦은 외출을 합니다. [이태리 악어가죽 핸드백을 아세요?]는 명품 가방을 사랑하는 엄마의 이야기입니다. [말이 되어]는 전쟁터에 나간 아버지를 기다리는 아들의 간절한 마음을 담고 있지요. [선생님께]는 정말 너무 마음이 아픈 이야기입니다. 말 잘 듣는 착한 윤석이가 어느 날 강아지가 되었습니다. 엄마는 선생님께 윤석이가 개가 되었다는 말이 새어 나가지 않도록 반 아이들 입단속 철저히 시켜달라는 편지내용이에요. 엄마의 계획대로 움직였던 아들이 간혹 안아달라, 자고 싶다는 말을 했지만 엄마는 그럼 학원은 어떻게 하냐고 합니다. 이 이야기 또한 비현실적인 요소가 가미되었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우리 엄마들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더 가슴이 아팠던 이야기에요. 2017년 황금펜아동문학상 수상작인 [굿모닝, 몽골]은 비가 오지 않는 사막이 배경입니다. 아빠는 물을 찾으러 떠났고, 아픈 엄마에게 물을 주어야 하지만 물이 없습니다. 엄마에게 볼멘 소리를 하고 아빠를 원망하지만 물을 찾기 위해 땅을 파는 저우양의 간절한 마음이 그려진 이야기에요.

 

우리는 사랑이라고 말하지만 그 사랑으로 타인에게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내가 말하고 있는 사랑이 정말 사랑인 걸까요? 이 동화책은 이렇게 우리에게 스스로 자문하게 합니다. 단편단편들이 색다른 소재로 재미를 주기도 하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모습을 담아내면서 우리에게 사랑의 모습을 생각하게 해요. 어린이를 위한 동화책인데, 부모인 제가 더 많은 것을 느끼게 됩니다. 내가 우리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사랑은 어떤 모습인지 곰곰히 생각해봐야겠어요. 묵직한 한 방을 주는 의미있는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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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슴도치, 가시를 말다 단비어린이 문학
윤미경 지음, 최정인 그림 / 단비어린이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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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도 어린 시절이 있었고, 사춘기를 겪어왔음에도 불구하고 내 자녀의 사춘기를 마주하는 건 항상 어려운 일인 듯 합니다. 어떻게 다가가야할지 고민을 하고 말을 건네지만, 사춘기 아이에게는 부모의 그 어떤 말도 잔소리로 들리는 탓에 오히려 어긋나게 마련이죠. 다행이도 사춘기에 대해 다룬 이야기를 읽다보면 사춘기 아이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물론 아이들에게는 공감이 되고 위로가 되어 자주 접하게 되지요. 단비어린이 《고슴도치, 가시를 말하다》는 각양각색의 사춘기 터널을 지나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단편 모음집입니다.

 

표제작인 [고슴도치, 가시를 말하다]를 2013 황금펜 문학상 동화부문 당선작으로 엄마와 단둘이 사는 지은이의 이야기입니다. 머리카락이 유난치 뻗쳐 고슴도치 같다며 또치, 워낙 부산스러운 탓에 사고 치기가 일쑤인 사고뭉치여서 어릴 때부터 '또치뭉치'라 불린 지은이는 5학년이 된 지금 그 고슴도치가 가슴속에 자리잡은 듯 했어요. 엄마가 따발총같이 잔소리를 쏘아 대면 고슴도치는 화가 나서 지은이의 심장을 닥치는 대로 찔러 댔죠. 아프게 꼼질거리는 고슴도치를 건드려 대는 엄마가 미웠어요. 엄마는 지은이에게 사춘기라고 했지만, 요즘 도깨비처럼 뭔가에 홀려 있는 듯한 엄마를 보면 지은이는 엄마가 사춘기가 된 것 같았어요. 엄마 때문에 잔뜩 화가 난 지은이는 학교에서 선생님께 지적을 받기도 하고 학원을 빼먹기도 했어요. 엄마와 아빠가 이혼 후 한 달에 한 번 찾아오는 날, 아빠는 엄마보다 훨씬 젊고 예쁜 여자를 소개하고 싶다고 데리고 오셨어요. 그러자 지은이는 사춘기 동무 엄마를 달래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2015년 푸른문학상 새로운 작가상 수상작인 [달려라, 불량 감자]는 쌍둥이 나연이 이야기입니다. 1분 차이로 언니가 된 가연이는 우월한 유전인자를 죄다 싸서 세상으로 튀어나오는 바람에 가연이는 사람들에게 항상 비교되어 왔어요. 모든 것이 우월한 우등인자 가연이와 같은 반이 되어 비교가 되는 것은 굴욕이었어요. 같아질 수 없으니 '삐뚤어질 테다'를 연발하게 되었죠. 가연이보다 나은 건 딱 하나, 건강하다는 거죠. 약한 가연이는 모든 관심의 중심에 있었어요. 나연이는 요즘 들어 가연이에게 더 많은 짜증을 냈어요. 어느 날, 아빠와 엄마는 이모할머니게서 위독하신 탓에 가시게 되고 가연이와 나연이만 남게 되었어요. 그런데 가연이가 많이 아프네요. 자신은 쓸모없다고 생각했던 나연이는 달리기를 잘하고, 가연이를 업고 뛸 수 있을 만큼 등짝도 넓고 힘이 센 자신이 너무 대견했답니다.

 

2014 무등일보 신춘문예 동화부문 당선작 [예민한 아빠]는 어릴 때 엄마가 돌아가시고 아빠와 단둘이 살고 있는 서령이의 이야기에요. 예민한 아빠의 결벽증은 친구들도 인정할 정도에요. 그런 탓에 서령이는 혼자 견디는 것에 익숙했지요. 아프거나 고민이 생겨도 그저 버티거나 꾹 참았어요. 그런 서령이가 아침에 일어나 시트 위의 선명한 핏자국을 보자 생각지도 않은 '엄마'라는 말이 튀어나왔어요. 혼자 여자가 되는 준비를 해야 하는 초등학생의 인생이 외로웠고, 사진 속 엄마가 사무치게 그리운 날이었죠. 그러다 서령이는 아빠에게 진심이 담긴 말을 듣게 됩니다.

 

[오카새의 노래]에는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곁을 지키지 못했던 아빠가 요양원 봉사를 다니면서 생판 모르는 사람들한테 효자인 척 하는 아빠가 불만스러운 이진이의 이야기가 담겨있어요. 아빠가 가수가 된다고 음반을 만드는 탓에 암을 일찍 발견하지 못해 돌아가셨다고 생각하는 엄마에게 자신의 꿈이 가수라는 것을 말하지 못한 은효가 꿈을 향해 나아가는 이야기 [달팽이도 멀미해] 그 밖에도 [나도 카멜레온]은 엄마를 변신의 명수로 생각하는 효은이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사춘기 아이들과 소통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지만, 서로의 오해와 갈등 그리고 관계를 회복하는데 가장 좋은 방법이야말로 '소통'이 아닐까 싶어요. 부모의 말은 다 잔소리라 말하는 아이들과, 아이들의 이야기는 그저 쓸데없는 말이라 치부하는 부모 사이의 관계 회복의 시작은 소통이며, 그 소통의 방법은 이 책의 여섯 편의 이야기에서 알려주고 있는 듯 합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모두 우리 아이들의 이야기에요. 그들을 들여다보면 우리 아이들의 생각이나 관심사 등을 엿볼 수 있기에 우리 아이들을 이해하는데 한층 도움이 되는 듯 해요. 아이들은 자신과 같은 고민을 하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공감하고 위로받겠지요. 그러다보면 한뼘 더 성장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랍니다. 감동도 있고 재미도 있는 책이었어요. 부모와 아이가 함께 꼭 읽어보길 권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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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건설국과 거대 시계 단비어린이 문학
김종렬 지음, 김숙경 그림 / 단비어린이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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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위기는 내일의 문제가 아니야. 이미 일어나고 있는 재난이지. 이제 선택과 결정은 지구에 사는 사람들에게 달려있다. 하나뿐인 지구가 망가지면 가장 위험한 건 바로 사람들이니까." (본문 109p)

환경오염에 관한 이야기는 아무리 얘기해도 부족한 듯 합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각종매체에서 환경오염에 대해 다루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네요. 또한 환경 문제는 어른들만의 문제가 아니기에 우리 아이들에게도 환경에 대한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지속적인 교육이 필요할 거 같아요. 그래서 단비어린이 《공간건설국과 거대 시계》에서는 판타지 형식을 빌어 우리 아이들이 지구의 위기를 간접적이나 체험하고 환경의 중요성을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답니다.

 

현모네 집에 검은 양복에 검은 선글라스를 쓴 낯선 방문객이 찾아왔어요. '지구관리위원회 공간건설국 기술자'라고 자신을 밝힌 방문객은 계산기를 두드리더니 끝도 없이 길게 늘어선 숫자를 보여주며 현모네 가족이 그동안 사용하지 않은 공간을 관리하느라 지출된 비용을 내라고 합니다. 현모네 가족이 해바리기 마을 안에서도 가 보지 않은 곳, 걷지 않은 길, 밟지 않고 방치한 공간이 차고 넘치기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문제는 현모네 가족이 그동안 자주 이용하는 공간에서 가족 오염이 반복적으로 계속 쌓이고 있기 때문에 지구에 막대한 피해를 입히고 있기에 현모네 가족이 사용하지 않고 방치한 공간을 처분하겠다고 합니다. 이는 자주 이용하는 각각의 공간을 더욱 늘려줌으로써 공간을 효율적으로 재배채해서 문제를 해결하자는 취지래요. 공사 비용은 무료이지만, 공사를 거절할 경우 계산기 속의 긴 숫자의 비용을 내야하기 때문에 현모네는 어쩔 수 없이 공사를 허락합니다. 망치질 하나 없이 끝난 공사는 겉으로 보기엔 달라진 게 없어 보였어요.

 

낯선 방문객이 찾아간 곳은 현모네 집 뿐이 아니었어요. 그들이 왔다가 이후 사람들은 자신의 공간이 늘어나는 느낌이 들었어요. 현모엄마는 주방이 늘어난 듯 했고, 현모아빠는 쇼파가 넓어져서 좋아했어요. 누군가는 거실에서 안방까지 2시간이 걸렸으며, 3층 계단을 걸어서 올라간 학생은 학원 수업이 다 끝나서 그냥 돌아오기도 했대요. 며칠 후, 공간건설국이 해바라기 시에서 은밀하게 진행되던 공사가 마무리되자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몹시 기묘하고 터무니없는 사건이 벌어졌어요. 강변에 있는 해바라기 스타디움의 절반이 감쪽같이 사라지고, 해바라기시의 동쪽과 서쪽을 연결하는 다리가 사라진 거에요. 뿐만 아니라 차들이나 사람들이 마치 영화 속 느린 장면처럼 움직이고 있었어요. 현모의 엄마와 아빠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현모만은 멀쩡했지요. 현모는 집으로 다가오는 듯한 발소리가 다시 멀어지자 복도로 나왔다가 기술자와 마주치게 되고 자신에게 다가오자 뒷걸음을 쳤어요. 다행이 중절모를 쓴 노신사로 인해 상황은 모면되었어요. 노신사는 '공간감찰국 비밀 요원'으로 기술자들이 현모의 공간을 공사하지 않은 탓에 현모가 자유롭게 움직일 수있게 되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사람들이 스스로 멈추지 못한다면 지금처럼 느린 공간에 가두는 게 낫다. 하지만 공간 나무도 완벽하지 않아. 공간이 가스로 오염되면 갇힌 사람들도 위험을 피할 수 없어. 그래서 위원회는 경고하는 걸 선택했지. 공간 시계는 지구의 시간이 앞으로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알리기 위한 거야." (본문 149p)

 

이제 현모는 느린 공간을 왜 만들고 있는지, 기술자들은 왜 공간을 빼돌리고 있는지, 노신사는 왜 기술자를 쫓고 있으며 기술자를 잡기 위해서는 현모가 왜 증인이 되어야하는지를 특별한 모험을 통해 알아가게 됩니다. 현모가 노신사를 따라, 때론 기술자를 따라 이곳저곳을 이동하면서 우리는 인간의 욕심과 편리함으로 만들어 낸 기후 위기와 생태계 파괴, 기상 이변 등으로 인한 지구의 위기를 실감하게 됩니다. 지구의 위기는 이미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그 위기를 늦춰갈 수 있을 거에요. 조금은 무시무시하게 그려진 이야기지만, 정말 지구의 위기를 절감하게 되네요. 지금부터라도, 나부터라도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이 작은 시작이 내가 사는 지구를 구하는 길이 될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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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체 고양이 라니! 단비어린이 문학
강정연 지음, 모로 그림 / 단비어린이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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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이들 사이에서 액체괴물이 인기더라구요. 저희 아이들도 액체괴물을 사곤 했답니다. 책 제목과 표지를 보니 액체괴물에 관한 이야기같았어요. 그런데 더 많은 것을 담고 있는 의미있는 동화책이네요. 이 책의 주인공 제이처럼 우리 아이들도 고양이나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고 저를 조르곤 했습니다. 저는 제이엄마처럼 알레르기는 없지만 가족으로 받아들이기에 그 책임이 너무 무거워 늘 거절하곤 했지요. 그런데 사실 저도 제이엄마처럼 귀찮아서라는 이유도 상당히 크답니다. 이 동화책을 읽으면서 부끄러운 부분이 많았네요.

 

제이는 크리스마스 소원 쪽지에 '고양이'라고 쓸지 말지 한 시간을 고민했지만, 앵무새라고 썼을때는 장난감 앵무새를 받고, 강아지라고 썼을 때는 강아지가 나오는 그림책을 받고, 나비라고 썼을 때는 곤충 백과를 받았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액체 괴물'이라고 쓰고 말았네요. 작은 마당이 있는 집으로 이사했지만 엄마는 뭘 키우려고 이사 온게 아니라고 딱 잘랐어요. 엄마는 집에서 동물을 키우는 걸 무지무지 싫어합니다. 알레르기가 있어서 그렇다고 하지만 제이가 생각하기엔 엄마의 진짜 속마음은 '뭐든지 귀찮아!'랍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제이네 집 마당에 푸른 회색의 출렁이는 물결무늬 털로 뒤덮인 고양이가 찾아왔어요. 먹을 걸 찾는 듯 보이지만 아무것도 없으니 그냥 돌아갔네요.

 

"엄마, 우리 집 마당에 처음으로 길고양이가 왔어요. 되게 배고파 보였는데 먹을 게 없어서 그냥 갔어요. 마당에 고양이 밥이랑 물을 좀 놓아 두는 건 괜찮죠?"
"안 돼. 괜히 귀찮은 일만 생겨."
"뭐가 귀찮아요, 뭐든 다 내가 할게요. 고양이 사료도 내가 사고요. 네?"
"안 돼. 처음에만 네가 하다가 결국 내 몫이 될 거야." (본문 15p)

 

 

제이의 성화에 엄마는 마지못해 허락했고, 그 뒤로 제이는 고양이 사료와 깨끗한 물을 꼭꼭 챙겼어요. 고양이를 만나진 못했지만 아침마다 밥그릇과 물그릇이 싹싹 비워져 있었죠. 그러다가 새벽에 잠에서 깬 제이는 함박눈이 내리는 걸 보고 고양이 밥이 걱정되었죠. 스티로품 상자로 그릇에 눈이 쌓이지 않도록 해주고, 물이 얼지 않도록 핫팩도 놓아주었어요. 그러다 고양이를 만나게 됐고, 마치 고양이는 소원 쪽지를 다시 쓰라는 듯 트리를 가리켰지요. 제이는 혹시 소원이 이루어질까 싶어 '액체 괴물'에 x표시를 하고 '고양이'라고 적었어요.

 

크리스마스 아침, 엄마와 제이에게는 늦잠 자는 날이에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거실로 나간 제이는 고양이는 커녕 조그만 털 뭉치 하나도 보아지 않아 실망한 채 화장실에서 세수를 했지요. 그런데 갑자기 물이 뚝 끊기면서 부룩부룩 하는 이상한 소리가 나더니 그 고양이가 액체 괴물로 이루어진 '액체 고양이'가 되어 나타나지 않았겠어요.

 

 

'액체 고양이라니!' (본문 32p)

 

제이의 잘못된 소원 쪽지로 인해 고양이 대신 액체 고양이가 나타난거에요. 그리고 이 한마디에 액체 고양이의 이름은 '라니'가 되었죠. 그렇게 오늘 하루는 제이가 고양이가 생기면 하고 싶었던 일을 라니와 함께 하게 되었어요. 엄마에게 들킬까 걱정했지만, 엄마는 그저 액체 괴물로만 생각했네요. 그렇게 제이와 라니는 둘만의 즐거운 시간을 보냈어요. 라니는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을 보여주었고, 그 집은 매일 뒷동산으로 산책 나오시던 큰 코 할아버지가 만들었지만, 갑자기 할아버지가 나타나시질 않는다고 하네요. 신나는 모험 후에 집에 돌아와 낮잠을 즐기다보니 어느새 어둑어둑해지고 있었고 액체 고양이는 진짜 고양이가 되어가기 시작했어요. 그러자 엄마의 재채기도 시작되었죠. 고양이 된 라니는 창문으로 사라졌고 이제 제이는 마당에 나무를 심기로 합니다. 단 엄마만 귀찮게하지 않으면 말이죠.

 

 

엄마들은 아이들에게 다정해라, 친절해라, 배려해라, 성실해라 등등 가르치지만, 정작 엄마 자신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참 많아요. 이 동화책의 제이엄마처럼 말이죠. 사실 엄마들도 모르는 것이 많고 아직 배워야 할 부분도 많은데 스스로 인정하기가 쉽지 않네요. 이 동화책이 그런 부분을 잘 꼬집어 준거 같네요. 부끄러운 부분이지만 또 배울 수 있어서 엄마로서의 제가 좀 업그레이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고맙기도 합니다. 제이와 라니의 판타지 모험이 정말 재미있게 그려져 있어 아이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동화책이기도 합니다. 엄마와 아이가 함께 읽으면 정말 좋은 책이라 강추합니다!

(이미지 출처: '액체 고양이 라니' 본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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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두부, 일본을 구하다 단비어린이 역사동화
유영주 지음, 윤문영 그림 / 단비어린이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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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좋아하는 [단비어린이 역사동화] 시리즈에 새로운 책이 출간되었네요. '아르코 문학창작기금 수상작'인 《조선의 두부, 일본을 구하다》는 낯선 나라에서 들풀처럼 살다 간 우리 선조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입니다. 작가는 오래전 어느 날 텔레비전에서 두부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었고, 두부가 일본으로 전해지게 된 건 조선시대였다는 걸 알게 되었대요. 두부를 전해 준 이는 다름아닌 임진왜란 때 끌려갔던 조선인 포로들이었다고 해요. 그런데 일본에서 만난 두부는 우리가 알던 말랑말랑한 두부랑 달랐고, 크기는 주먹만 하고, 단단한 치즈 덩어리 같았답니다. 왜 저렇게 돟그랗고 단단하게 만들었을까? 라는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이 이야기가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사실 저는 이 책을 통해 '당인정 두부'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왜 그동안 우리가 이런 역사의 한 부분에 대해 알지 못했는가에 대해 안타까웠답니다. 이 책을 통해서 멀리멀리 이 이야기가 전파되었으면 좋겠어요.

 

이 책은 임진왜란 때 아버지를 잃고 할머니와 함께 포로가 되어 일본으로 가게 된 소년 두식이의 이야기입니다. 5년 전 장에 간 날 왜군들의 소총에 맞고 손쓸 새도 없이 어머니가 세상을 뜨고, 아버지는 몇 달째 산 아래 곰내 읍성에서 왜병들과 싸우고 있지요. 마을을 지키기 위해 온 백성이 낫과 창을 들고 일어선 것이에요. 석두는 할머니와 함께 사나흘에 한 번씩 두부를 만들어 내려보냈어요. 성을 지키던 사람들에게 할머니가 만든 두부는 고기만큼 든든하고 힘이 났으니까요. 아침일찍 석두는 할머니와 함께 두부가 든 대바구니를 머리에 이고 길을 나섰습니다. 넉넉할 때 어려운 사람들을 돌봐 준 박 대감네 집 손자 원이도 함께였습니다. 그런데 읍성으로 가는 내리막길 끄트머리에서 예사롭지 않은 함성이 들려왔고 읍성이 무너지고 말았지요. 모두들 석빙고로 몸을 피했고 할머니가 만든 두부로 요기를 하며 버텼지만 아버지와 마을 장정들은 왜병의 칼에 찔려 하나둘 쓰러져 갔지요. 결국 할머니와 석두, 대감과 아들 박인겸 그리고 손주들, 마을 사람들은 왜병의 포로가 되어 배를 타고 일본에 건너가게 되었습니다. 여드레 만에 고치성에 도착하자 왜병들은 무사들의 집을 지날 때마다 조선 사람들을 하나둘씩 딸려 보냈고, 나머지 사람들은 성으로 끌고 갔어요. 두부를 만들 줄 아는 할머니와 석두는 성에서 두부를 만들게 되었고, 박인겸의 아이들은 투구장수 와카가미의 양아들과 딸로 삼게 되었지요.

 

사람들은 할머니와 석두가 만든 두부를 좋아했고, 와카가미는 박인겸에게 땅과 녹봉을 주며 자신의 아들 모리를 부탁했죠. 얼마 뒤 전쟁은 끝났지만 이들은 조선으로 돌아가지 못했어요. 와카가미가 전장에서 죽은 탓에 새로운 성주가 오게 되었고, 박인겸과 할머니, 석두는 성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녹봉도 받지 못하고, 그동안 받은 녹봉까지 내 놓아야 하는 상황에서 박인겸은 두부를 만들어 갚기도 하고, 거울처럼 깨끗해서 경천이라 부르는 허름한 움막에서 새생활을 시작합니다. 박인겸은 흩어져 있는 조신인들을 모아 조선인 마을을 세우기로 합니다. 그렇게 고치 여기저기에서 비렁뱅이로 살던 조선인들을 데려와 물구덩이 땅을 메우고 풀을 뽑았어요. 두어 달 뒤 나무로 지은 움막이 한 채 두 채 생겨났고 어느 새 경천의 오른쪽 터가 번듯한 조선인 마을이 되어 갔지요. 박인겸은 이곳을 '당인정'이라 이름 지었고, 산비탈을 개간했고 큰일이 닥칠 때마다 힘을 모아 헤쳐 나갔어요. 무사가 되겠다고 떠난 원이도 돌아왔지요. 당인정의 두부는 인기가 좋았어요. 이들은 조선인들 뿐만 아니라 먹을 것이 없는 일본인들에게 나눠주면서 그들을 돕기도 했어요. 많은 왜인들이 할머니와 석두의 도토리묵을 쑤는 법을 배우면서 굶어 죽는 이들이 점차 줄어들었답니다. 전장에서 오랫동안 쉬지 않고 먹을 수 있는 두부를 만들고, 아픈 아이들이 쉽게 먹을 수 있는 두부를 만들었던 석두로 인해 일본의 두부가 시작된 것입니다.

 

포로가 되어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자기 할 일을 해나가며 당인정 두부의 제조자로 우뚝 서게 된 석두의 이야기는 조선의 따뜻함과 민족의 얼을 느끼게 합니다. 이 두부가 여전히 일본인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포로였음에도 불구하고 궁핍했던 왜인들까지 감싸안았던 조선인들의 마음이 담겨져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이 동화책이 많은 이들에게 읽혀졌으면 하는 소망을 가져봅니다. 역사를 알게 되는 것도 중요할 뿐만 아니라 힘겨운 상황속에서도 왜인들까지 감동시킨 강인한 우리 선조들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을테니까요. 석두의 용기가 깊은 감동으로 전해지는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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