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를 삼킨 사물들 - 보이지 않는 것에 닿는 사물의 철학
함돈균 지음 / 세종(세종서적)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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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흔한 일상의 사물에 대한 고정적 시선에서 벗어나 새로운 생각을 보여주었던 함돈균 저서의 《사물의 철학》을 읽어본 바 있다. 이 책을 읽었을 때 뻔한 사물에 대한 확고한 상식이 뒤집히는 순간, 세상은 다르게 보이는 느낌이었고, 쳇바퀴 돌아가듯 평범하고 지루하기만 했던 일상 속에 다른 시간의 통로가 조금씩 조금씩 열리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지금 저자는 또 한번《코끼리를 삼킨 사물들》을 통해 계단, 칫솔, 단추, 사다리 등 67가지 익숙한 일상 사물들을 새롭고 낯설게 사유하고자 한다.

 

같은 사물을 '모자'로 보는 어른과 '코끼리를 숨긴 보아뱀'으로 보는 아이의 시선 차이는 왜 생기는 것일까. 어린 왕자와 예수와 철학자 벤야민의 공통된 사물 인식은 무엇일까. (뒷표지中)

 

저도 함돈균은 문학평론가로 2006년 『문예중앙』으로 등단한 이래 문학 고유의 정치성과 예술적 전위를 철학적 시야로 결합시키는 이론·문학사연구와 현장비평에 매진해 왔다. 그는 비평적 글쓰기를 시민의 일상으로 확장하고 교육적 방법론으로 공유하고자 『사물의 철학』을 썼다. 또한 인문정신에 담긴 공공성을 사회적으로 실현시키기 위해 '실천적 생각발명그룹 시민행성'을 운영하고 있으며, 이를 시대정신과 미래전망, 지구적 네트워크를 지닌 새로운 융합형 대안독립진학으로 진화시키기 위해 애쓰고 있다.

 

나는 사물을 다룬 이 두 번째 책에서 계단, 칫솔, 스쿨버스, 단추, 사다리, 좌변기, 텀블러, 콘센트 등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인공 사물들에 대해 또 한 번 이야기하려고 한다. 그러나 대화의 목표는 역시 새로운 시각의 기회를 갖는 것이다. 마치 낯은 사물에서 빛나는 비유를 창조하는 시인처럼 가장 익숙한 것으로부터 낯선 질문을 발명할 수 있다면, 이는 얼마나 흥미진진한 지적 여행이 될 것인가. 내가 그런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것처럼 독자들도 이 책을 읽어가는 과정에서, 우리 주변의 사물들은 외양 그대로의 것이 아니라 실은 '코끼리를 삼킨(숨기고 있는) 어떤 것들'임을 볼 수 있는 눈을 갖게 된다면 참 좋겠다. (본문 12p)

 

이 책은 가위에서 확성기까지 ㄱ,ㄴ,ㄷ 순서로 67개의 사물을 이야기한다. 각 사물마다 저자는 해시태그(#)를 달았는데 이를테면, 가위는 #누가 사용하는가, 계단은 #과정과 권태, 고궁은 #역사는 현재와의 대화다, 고글 #불가능한 싸움, 교과서 #교본이 되는 인문 정신, 구루프 #뻔뻔함의 현상학, 귀도리 #과잉 귀여움, 나무 펜스 #보호하는가, 배제하는가, 노란 리분 #사건 이후, 다이어리 #반짝이는 건 출발의 순간, 단추 #머뭇거림의 존재 양식 등 67가지 익숙한 일상 사물들을 가장 힙하고 낯설게 사유하는 인문적 훈련을 유도한다.

 

등산 스틱 #감각을 바꾸는 미디어

지팡이-스틱을 짚고 걷는 이는 요즘 흔히 '어르신'이라 불리는 경로우대 대상으로서의 노인이 아니라 외부 활동을 즐기는 한 명의 '현대인'으로 보일 뿐이다. 이렇듯 사물-미디어는 사용자의 감각을 변화시킬 뿐 아니라 한 존재에 대한 인상과 관념을 간단히 바꾸는 힘을 가지기도 한다. (본문 75p)

 

주변 사물은 우리가 흔히 일상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사물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본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물론 사물이 어떤 추억과 얽혀져 있다면 그 사물은 추억을 떠올리는 매개체가 될 수는 있겠지만, 그 사물에 대한 고찰을 한다는 것 자체를 생각이나 해볼 수 있었을까? 도대체 평범한 사물을 보고 어떻게 철학을 논할 수 있는가 말이다. 《사물의 철학》이어 《코끼리를 삼킨 사물들》을 읽으며 평범한 사물을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구나, 라는 놀라움에 더해진 역사와 문화의 맥락을 통한 저자의 철학적 성찰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 세상은 인간과 자연 그리고 사물로 채워져 있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그저 인간의 도구로만 존재하는 사물이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독자의 바람처럼 우리는 이 책으로 인해 모자가 아닌 코끼리를 삼킨 어떤 것을 볼 수 있는 눈을 조금이나마 뜰 수 있을 듯 싶다.

 

이 책은 문명의 도구를 통해 정치와 예술과 인문과 테크놀로지의 만남을 일상 시간 안에서 유머러스하게 주선하고, 그 새로운 만남을 시민(詩民)의 언어로 번역하고 싶은 내 일관된 소망의 산물이다. 군중의상투적 감수성을 넘어 미래의 시간을 예감하는 질문이 담긴 '모자-컨테이너-책'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본문 12,1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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