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이야기
미아키 스가루 지음, 이기웅 옮김 / 쌤앤파커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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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본 리뷰는 출판사 경품 이벤트 응오묭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이 책은 텅 빈 남자의 이야기. 세상에 의해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남자가 자신을 다시 한 번 비우는 이야기.

     

 치히로는 부모로부터 온전한 사랑을 받지 못한 청년이다. 사랑을 받지 못한 그는 필연적으로 사랑을 주는 법도 모른다. 그렇게 관계가 단절된 그의 유년기는 텅 비어 있다. 비어 있으므로 없는 게 아니라, 비어 있다는 사실 때문에 지리멸렬한 고독을 계속 느껴야 했다. 다행스럽게도 이 세계는 기억을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다. 그래서 그는 텅 빈 과거를 잊기로 한다.

  하지만 잘못된 약이 배달된다. 그로 인해 텅 빈 그의 과거가 순식간에 꽃처럼 피어난다. 자꾸만 샘솟는 기억에 치히로는 새삼 얼마나 사랑을 갈구했는지 깨닫는다. 그래서 더 고통스럽다. 의억은 가짜니까. 아무것도 없는 자신이, 존재하지 않던 기억에 휘둘리는 것만큼 질 나쁜 일이 어디 있을까? 새로운 기억이 생겼다 한들 세상은 여전히 호의적이지 않다. 다시 한 번 망각을 다짐하는 그에게

  도카가 찾아왔다.

 

 

  허구여야 하는 그녀가 현실에서 그에게 다가온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격렬한 의심에 사로잡힌 치히로는 에모리 선배가 경고했던 대로, 그녀를 추억이 없다는 걸 파고드는 사기꾼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에게 도카와 같은 아름다운 소꿉친구가 있을 리 없다고 단정한다. 실제로 그녀의 과거를 추적해봤지만 자신과 아무런 연관성이 없었으니까. 도카가 만들어준 애정 어린 음식을 그녀가 보는 앞에서 버리며 자신의 결의를 보여준다. 너무나 견고한 그의 거부에 도카도 단념하고 만다. 제때에 만나지 못한 관계는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없다고, 환영은 환영으로만 두었어야 했다고, 자책하며 멀어지는 도카와 치히로의 세계로

 

  태풍이 몰아친다.

 

  태풍은 그들 사이에 벽처럼 들어선 의심을 휩쓸어간다. 그곳에 남은 건, 사람은 외로움을 버틸 수 있게 태어나지 않았다는 걸 인정하고 쭈그리고 앉은 치히로와 그를 바라보는 도카 뿐.

  너무나도 분명했던 거짓의 경계는 그가 일단 믿기로 마음먹자 거짓말처럼 흐려진다. 도카의 뿌리에서 자라난 기억은 이제 치히로가 필요로 하는 열매가 되었다. 사춘기를 지나며 바뀌어가는 몸이 만들어낸 미묘함, ‘음악을 듣자는 핑계로 오직 둘만 있던 날, 입을  맞추었던 그 모든 기억을 둘은 적극적으로 향유한다. 지금까지의 세상에 가장 달콤한 방식으로 복수하겠다는 듯이.

 

  하지만, 세상은 그들에게 호의적이지 않다.   

 

  도카는 과거의 기억부터 지워지는 신종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었다. 외로움을 견디는 나름의 방법을 터득한 과거가 사라질수록 도카는 외로움에 몸을 떨었다. ‘그녀는 죽기 전에 고독을 100퍼센트 이해해줄 100퍼센트의 남자에게 100퍼센트의 사랑을 받고 싶었다. 자신이 죽은 후 비통해하며 그 죽음이 평생 지워지지 않을 상처로 마음에 각인됐으면 싶었다.(본문 262p), 그녀는 이렇게 잊히고 싶지 않았다.

  더욱이 그녀의 공상은 점차 회상에 가깝게 짙어졌다. 그런 그녀에게 노부인이 찾아온다. 일곱 살 때 만났어야 할 남자를 이제야 만났다는 노부인은 도카에게 의억을 의뢰한다. 하지만 노부인이 죽고 의미가 없어진 의억으로 도카는 실험을 하기로 한다. 정확한 사랑의 실험을(신형철 산문집에서 빌려옴).

 

  치히로는 지금의 상황이 도카의 욕망에서 출발한 것을 알게 된 후에도 그녀 옆에 있는다. 홀로 웅크리기만 했던 치히로는 이제 도카와 함께 기억을 걷는다. 가장 최근의 기억만 남은 그녀의 과거를 진실된 허구로 채워준다. 그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자신만을 생각했던 과거조차 잊은 그녀는 치히로만이 남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녀는 삶의 끝자락에서 치히로에게 진심을 전한다.

  치히로, 내 시시한 거짓말에 어울려줘서 정말 고마워.”

  도카, 우리의 작은 무한대에 대해 내가 얼마나 고맙게 생각하고 있는지 말로 다할 수가 없어.’ 치히로는 생각한다.

 전부, 진짜였으면 좋았을 텐데, 그치?”

  도카의 말에, 치히로는 고개를 젓는다.

  “그렇지 않아. 이 이야기는 거짓이었기에 진짜보다 훨씬 다정한 거야.”

  “그렇구나. 거짓말이니까 다정한 거구나.”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를 보며 치히로는 생각한다.

 '사실 그렇지 않아. 네가 나에게 와서, 너여서 나에게 다정한 거야. 난 이걸 세상을 다 준다고 해도 바꾸지 않을 거야. 넌 나한테 한정된 나날 속에서 영원을 줬고, 난 거기에 대해 고맙게 생각해.우리의 이야기에 거짓이 끼어들 틈 같은 건 없어.'  

 

  기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더 많은 걸 견뎌야 한다. 도카는 그것을 염려해 그에게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잊을 수 있는 약을 건네준다. 그는 약을 먹는다. 그리고 잊는다. 자신의 진짜 소년 시절을. 서로를 생각하며 약을 바꿔치기 한 결과, 그는 비워지며 그녀로 채워졌다.

 

  도카의 끝에는 치히로가, 치히로의 처음에는 도카가 남았다.

 

  그들은 일곱 살 때 만나지 못했지만, 그렇기에 더욱 소중했다. 그러지 못했기에 그래야 했음을 누구보다 실감할 수 있었다. 관계를 버거워한 남자는 그렇게 한 사람을 온전히 받쳐줄 정도로 성장했다. 홀로 안게 될 기억을 오롯이 품고 걸을 만큼 강해졌다. 그들은 마지막까지 뒤늦은 유년기를 애틋하게 향유한다.

 

  두 남녀가 서로의 아픈 기억을 걷어낸 자리에 존재하는 건 오직 하나뿐인, 우리.

 

p.s. 위의 도카와 치히로의 문답에서, 치히로의 생각은 존 그린의 작품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에서 빌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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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 소녀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76
앨리스 먼로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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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주 듣곤 했던 뮤지컬 넘버 중에 <살다 보면>이라는 노래가 있어. <서편제>라는 작품에서 나온 노래인데 그저 살다 보면 살아진다라는 가사가 있지. 나는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정신이 조금 멍해져. 그리고 늘 살다 보면 사라진다라고 마음대로 오해해서 듣지. 아마 내가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니라 억지로 살아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서인가 봐. 느리게 지치는 삶인데 문득 뒤돌아보니까 켜켜이 쌓인 피로가 한 번에 눈에 들어와 아득해지는 기분이랄까.

 

  책 좀 그만 읽어.

  네가 나한테 했던 말이야. 독서는 모두가 장려하는 행위인데, 생각해보니까 책을 읽으면 늘 머리가 아팠어. 보편적인 인물들의 일상에 생긴 균열을 관찰하면서 삶은 원래 고되다는 사실에 위로를 받아야 하는지, 아니면 나에게도 그런 당연한 불행이 남아 있다는 사실에 두려워해야 하는지 몰랐으니까. 비단 내 것만이 아닌 두려움에도 나는 잘 구겨졌어.

  고된 일이었을 텐데 너는 내 얘기를 늘 들어주었지. 책 좀 그만 읽어, 라고 네가 말해줬기 때문에 나는 계속 읽을 수 있었던 것 같아. 

 

  그래서 습관처럼 또 책을 읽었어. 벌써 네가 타박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래도 너에게 한 번도 실망스러운 책을 소개한 적은 없다? 아무튼 <거지 소녀>라는 책인데, 한 사람의 인생에 관한 소설이야. 이렇게 한 사람의 전부를 던져오는 소설을 마주할 때마다 곤혹스러워. 이 소설은 무엇이야, 라고 자신 있게 말하기 어렵거든. 굳이 말하자면 이건 로즈의 삶이야. 너도 나도 겪는 그런 미지근한 삶이 아니지만, 크게 다르다고 할 수 없는 이야기지. 정말로 하나의 삶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그 삶이 어떤 삶이었는지 말해보려 해.

 

  이 소설은 로즈의 새벽, 한낮, 황혼의 세월이 세밀하게 쓰여 있어. 로즈가 고향을 떠나고 다시 돌아오는 이야기이기도 해. 로즈가 유년기를 보낸 웨스트핸래티는 과거의 시간대를 품은 가상의 공간이야. 다른 나라의 과거가 배경인데 로즈가 겪는 삶은 친숙하게 다가와. 유년기에 셀 수 없을 만큼 겪었을 부모와의 갈등-극으로 치달을 걸 알면서도 멈추지 못한 어머니와의 다툼, 무심한 아버지의 급작스러운 체벌, 자존심에 화해를 하고 싶지 않아 이불로 몸을 둘둘 말지만 허무하게 저물어버리는 분노-, 앨리스 먼로는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어. 감정의 보고서처럼 정확하고 세밀한 묘사들이야. 좋은 묘사가 적절한 곳에 배치되면, 독자는 그 시절을 다시 살게 되지.

  먼로는 또한 학교가 실제로 어떤 장소인지 숨김없이 보여줘. 흔히 아이들이라 여겨지는 이들이 벌이는 악행은 과장이라고 믿고 싶을 만큼 참혹해. 장애가 있는 동급생을 일상처럼 성폭행하고, 그녀가 죽자 없었던 일처럼 마무리되는 건 섬뜩하지. 로즈에게도 개인적으로 충격적일 여러 사건이 벌어져. 동경했던 동성 선배인 코라의 무심함이나 악의적인 소문을 피하기 위한 날선 말을 뱉는 아이들. 치욕이야말로 가장 얻기 쉽다는 걸 아이들은 알고 있거든. 그래서 학교생활은 생존에 가깝지

  그런데 나는 로즈의 유년기를 요약하는 문장은 넌 도대체 네가 뭐라고 생각하니?’이라고 생각해. 소설집의 마지막 작품 제목이기도 한 이 말은 31p에 이미 언급되어 있어. 새어머니인 플로가 로즈와 다툴 때마다 내뱉는 그 말은 로즈의 고등학교 선생인 미스 해티의 입에서 반복돼. 긴 시를 굳이 쓰면서 외울 필요가 없는 로즈의 총명함에 대고 해티는 넌 도대체 네가 뭐라고 생각하니?’라는 질문을 던지고 말아. 로즈는 아무도 없을 때 그런 말을 한 해티가 가학적인 선생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이 말은 굉장히 무서운 말이야. 자신이 누구보다 초라하게 느껴지거든. 굳이 타인이 아니더라도 평생을 그 물음을 삼키며 살아갈 텐데. 나는 분명 로즈가 저 말에 무의식적으로 계속 영향을 받았을 거라고 생각해.

 

  이 소설의 표제작을 <거지 소녀>로 한건 실로 적절해. 로즈 인생의 가장 큰 변곡점들에 관한 글이거든.

 

  로즈가 고향을 벗어나서 겪는 혼란스러운 첫사랑 이야기.

 

  로즈의 남편이 될 패트릭은 정말이지 로즈와 어울리지 않아. 서로 원하는 모습만을 상대에게 부여하고 그렇지 않은 부분은 바꾸려 애쓰지. 서로 맞춰가는 게 사랑이라곤 하지만 둘이 교집합을 이룰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아. 사랑하기 때문에 상대를 필요로 하는 건지, 필요하기 때문에 사랑한다고 말하는 건지 둘은 헷갈리거든. 분명한 건 그 둘이 믿는 건 서로가 아니라 상대를 필요로 하는 자신이야.

  그럼에도 그들이 이어진 건 로즈가 회상하듯 다가올지도 모를 행복의 가능성 때문이야. ‘결국 잘 될 거야, 지금의 불행은 사라질 거라고라는 생각은 그동안 쌓아왔던 시간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해. 결국 고일대로 고인 시간은 곪아버리고 말지.

  로즈는 계속 행복의 가능성, 사랑을 찾아다녀 <혐오스런 마츠코의 인생>의 마츠코처럼 말이야. 패트릭과 정반대의 사람인 클리퍼드와 불같은 사랑을 하던 로즈는 그로부터 그저 장난질일 뿐이에요라는 말을 들은 뒤에도 굶주린 사람처럼 사랑을 원해. , 사이먼 같은 남자를 만나지만 클리퍼드 때와 그렇듯 똑같은 결말을 반복해. 온몸을 던지는 로즈를 그들은 두려운 듯 피하지. 로즈는 뜻대로 되지 않는 삶에 지칠 대로 지쳐 성급하게 당신은 내 인생의 남자예요!’라는 말을 던지고 말아. 로즈의 행동은 살아가기 위한 발버둥으로 보여. 하지만 그녀는 늘 홀로 남지. 나는 그녀가 이대로 사라져버리는 건 아닐까 걱정했어. 하지만 로즈는 지친 몸을 이끌고 어딘가로 향해. 다시 살아보려고 말이야.

 

  좋은 작품은 긍정적으로 공명하는 다른 작품이 있어. 로즈의 서사는 마츠코의 타다이마(다녀왔어) 서사와 비슷해. 마지막 소설인 <넌 도대체 네가 뭐라고 생각하니?>에서 그녀는 고향으로 돌아와. 아주 머무르는 건 아니지만 이 소설의 마지막 장으로는 더없는 장소야. 거기서 그녀는 동생 부부와 만나 추억을 나누고, 잊고 있던 친구 랠프를 만나. 그와의 관계에 대한 문장이 인상적이야.

 그들은 서로의 목덜미와 어깨, 머리와 발을 알았지만 전신을 드러낸 존재로는 서로를 마주할 수 없었다.’

 이렇게 관계에 대한 적확한 묘사가 또 있을까? 죽은 랠프에 관한 기사를 보는 로즈는 슬픔에 젖지 않아. 그녀는 랠프를 여태 사랑했던 남자들보다도 더 가까이에서 느꼈다는 것, 자신의 자리 바로 옆 칸에 존재한다고 느낄 뿐이야. 편안하게.

  그 문장을 끝으로 책을 덮었을 때 나는 비로소 로즈가 집으로 돌아왔다고 생각했어. 로즈와 정착이라는 단어는 늘 어긋났어. 남자들은 그녀에게 정착하지 못하고, 그녀는 아픔이 서린 땅에 정착할 수 없었지. 하지만 계속 살아갔고, 많은 것들-찰나의 행복, 수많은 상처-이 흐릿해진 후에야 그녀는 비로소 집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된 거야.

 

  이 소설을 바탕으로 삶에 대해 거칠게 요약하자면, 삶이란 넌 도대체 네가 뭐라고 생각하니?’라는 날선 질문에 끊임없이 시달리면서 그래도 행복의 가능성이 있다는 믿음에 또 시달리고, 결국 지금의 나를 좋든 싫든 받아들이는 걸 거야. 삶에서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건 거의 없어. 지금 이 순간을 또렷이 지각하고 살아가는 자신만이 분명할 뿐이지.

  삶은 끝까지 알 수 없는 무엇인가 봐. 이제 끝이야, 하고 생각하면 다시 다음이 이어져. 도무지 짐작할 수가 없지. 그 사실이 버거워서 책을 읽어. 내 것이 될 수 없는 이야기일지라도, 읽다 보면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알아가니까.

  좋은 이야기는 책을 덮은 후에 다시 시작하지. 나는 분명 이 책을 다시 펼칠 거야. 살다 보면 사라지는 것들이 있고, 사라지는 것들에 의해 다시 살아갈 수도 있다는 걸 기억하기 위해서.

  네가 이 책에 조금이라도 흥미가 생겼으면 좋겠다. 다음에 또 좋은 책을 발견하면 달려갈 테니, 못 이기는 척 들어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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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 - 2018 제12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한강 외 지음 / 은행나무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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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소설을 읽는 다는 건 사람을 깊이 들여다보는 일과 같습니다. 오늘도 그저 지나쳤을 뿐인 수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질량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러한 사실에 숨이 막힐 때가 있습니다. 맙소사, 대중이 아닌 개인은 또 얼마나 거대한지.

 소설이란 일상에 틈입한 낯섦을 예민하게 포착하는 행위입니다. 좋은 소설은 그 낯선 것을 납득하게 하는 핍진성을 기반으로 둡니다. 사람이 눈사람으로 변하는 <작별>이 다가가기 어렵지 않은 이유도 그와 같을 겁니다.

 <작별>은 제목 그대로 '작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제목이 이미 이야기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어서 어쩌면 뻔한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감히 걱정했습니다. 결코 행복한 결말이 아닐 거라 암시하는 도입부는 오히려 어떻게 전개될까, 호기심을 불러일으킵니다. 정말이지 영리한 시작입니다. 겨울의 낭만으로 은유되는 눈사람이 그녀에게 작용하자 모든 게 위태로워집니다. 인간일 때 필수적이었던 온기가 눈사람이 되자 독기와 다를 바 없습니다. 녹는 것은 둘째치고 단단한 것에 부딪힐 경우 부서지고 말 겁니다. 그녀를 둘러싼 현실은 낭만이 끼어들 여지가 없는 엄혹한 현실이니까요. 하지만, 이상합니다. 그녀는 오히려 차분한 마음이 든다고 합니다. 어째서? 그때부터 그녀에게 한 걸음 더 가까워집니다.

 작별은 필연적으로 돌아봄을 동반합니다. 그녀와 입을 맞춘 현수 씨는 아이스크림 같다고 말할 만큼 발랄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들의 관계는 위태롭습니다. 그에게 저녁 식사를 주는 행위에서도 그녀는 그의 자존심을 건들지 않을 액수를 계산해야 합니다. 미래를 묻지 않아야 지속될 수 있는 살얼음 같은 관계.

 소설을 읽어나갈수록 그녀가 겪은 시간들에는 분명히 사계절이 존재했을 텐데도, 도무지 상상할 수 없습니다. 연락이 끊긴 남동생, 오래 통화하고 싶지 않은 편찮은 부모님, 폭력을 가했던, 자살할 수밖에 없었던 오빠. 그들이 그녀와 함께한 시간에는 빛이 머물지 않습니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움츠러들며 단단해질 뿐. 그런 시간을 걸어가며 그녀가 더 이상 자신의 몸에 속해 있지 않다고, 그 주변의 어떤 사물이라고 상상하는 건 자연스러운 흐름입니다. 그녀가 현수 씨와 사랑을 하든, 회사에서 해고되든 세상은 흔들림 없이 굴러갑니다. 그녀가 세상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은 미미합니다.

 그녀에게 일어난 가장 큰 비극은 눈사람이 된 게 아니라 어쩌면 아들 윤의 말일지도 모릅니다. ‘엄마가 집에 오래 있으니까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데, 사실 엄마는 그렇게 강한 사람이 아니잖아. 아무래도 나는 혼자 있어야 강해지는 성격인 것 같아.채 여물지 못한 자식으로부터 그러한 말을 들은 어머니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요? 그 말을 들은 그녀는 어떤 표정을 지었고, 숨길 수밖에 없었을까요.

 물에 잠긴 것처럼 무거운 시간이 그녀에게 흘렀지만, 그러한 사연은 언제나 생략됩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요? / 똑같아요. 특별한 일 없어요. 23p

 엄마, 어떻게 지내세요? / 우리야 늘 그렇지, 괜찮다. 너는 어떠냐? 43p

 다른 방식으로 재현되는 비슷한 문답이 자꾸만 겹칩니다. ‘이라는 단어에, 일상이라는 것에 얼마나 많은 겨울이 고여 있을까요.

 

 좋은 소설은 장르를 막론하고 다양한 장면과 문장을 불러옵니다. 겨울이 배경인 다른 이야기들과 영화가 두서없이 머리를 스칩니다. 그녀의 말, 얼마나 사랑해야 우리가 인간인 건지(46p), 그 말에 우리가 제일 잘하는 게 사랑이잖아(자비에 돌란, <마미>)라고 답해주고 싶습니다. 이미 살얼음판을 걷는 일상에서 언제나 끝을 상정하는 그녀이지만, 그럼에도. 무책임한 말이 될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세상에서 점점 고립되어가는 그녀의 삶의 어떤 장면이 또 마음에 남습니다. 그녀는 현수 씨의 그릇에 국수를 넘겨주며 같은 상황에서 사랑을 느꼈다는 한 여자의 사연을 떠올립니다. 얼굴을 모르는 그들은 그 장면을 통해 묘하게 겹칩니다. 어쩌면 우리들은 이런 식으로 연결되어 있는 거겠죠. 

 

 한 여자의 일생을 읽었을 뿐인데 그녀를 둘러싼 세상도 둘러보게 됩니다. 가장 개인적인 이야기가 가장 사회적인 이야기일지도 모른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사회는 수많은 개인이 모인 곳, 우리들이 모인 곳이니까요.

 

 마침 소설을 접한 계절이 겨울이네요. 춥습니다. 고독하기도 하고요. 같은 계절에서 작별한 그녀가 한동안 왼쪽 가슴에 고여 있을 것만 같습니다.

 

p.s. 작품집에 수록된 다른 소설들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을 만큼 좋은 글들이 실렸습니다. 끝까지 함께하시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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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루티드
나오미 노빅 지음, 오정아 옮김 / 노블마인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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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갈등할 수밖에 없다.

 

 소설은 이야기의 또 다른 이름이고, 그러므로 소설은 필연적으로 '사람에 관한 이야기'이다. 우리는 소설을 읽음으로써 살아오면서 겪은 다양한 상황과 다시 한 번 감정들을 마주하게 된다. 그 소설의 세계관이 현실과 달라도 상관 없다. 결국 그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으므로. 다양하게 변주된 그들의 이야기에서 자신의 경험을 떠올릴 때 비로소 만족스러운 독서가 완성된다.

 

 <업루티드>의 도입부는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동화의 분위기를 품고 있다. 10년마다 소녀를 자신의 탑으로 데려가는 드래곤. 왜 그러는지 아무도 묻지 않는, 이제는 당연한 행사가 되어버린 그날, 아름다운 소녀 카시아가 아닌 숲을 활보하는 말괄량이 소녀 아그니에슈카가 드래곤의 선택을 받음으로써 이야기는 시작된다. 니에슈카는 자신이 뽑힌 이유를 알지 못하고 두려워하며 그 이유를 알고자 한다. 그렇게 니에슈카는, 우리는 세계에 도사린 거대한 위협인 '우드'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아가게 된다.

 인간들의 터전을 잠식하며 끊임없이 위협하는 우드를 니에슈카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그녀는 어떤 결말을 우리에게 보여줄 것인가. 그 물음 하나만으로도 이 소설을 읽을 이유는 충분하다. 물론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다채로운 인물들을 만나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사람에 관한 이야기인 소설에서 인물들만큼 중요한 건 없을 테니.

 그 중심에는 단연 니에슈카와 카시아가 자리잡고 있다.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들의 등장이다. 주체적인 캐릭터란 무엇인가. 자신의 욕망에 솔직하다는 뜻이다. 당돌하고 한껏 흐트러지게 자라온 니에슈카와 이상적인 여인으로 길러져야만 했던 두 여인은 '루스의 소환마법'을 통해 서로를 밑바닥까지 공유하게 된다. 서로가 서로를 끔찍이 아끼는 동시에 질투했다는 사실을 들킨다. 그럼에도 그 질투를 넘는 애정으로 카시아를 구해낸 니에슈카. 그렇게 둘은 서로의 강력한 수호자가 된다. 카시아가 자신에게서 우드의 그림자를 의심할 때마다 니에슈카는 조건 없는 믿음을 준다. 강인한 육식을 갖게 된 카시아는 스스로의 의심에 잠식당하면서도 니에슈카를 지키기 위해 몸을 사리지 않는다.

 서로의 영혼을 들여다 본 둘의 끈끈한 관계는 니에슈카와 드래곤 '살칸'의 로맨스마저 압도한다. 그럴 수 있었던 건, 스스로의 솔직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살칸과 달리 초월적인 이해와 소통이 그녀들에게 존재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의미 있는 타인과 소통할 때 서로에 대해 알아감과 동시에 비로소 자신을 인식할 수 있게 된다. 각각의 고유한 개성을 유지하는 동시에 니에슈카는 카시아이고 카시아는 니에슈카인 아름다운 모순이 발생한다.

 또 한 명의 중요한 캐릭터는 마렉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훌륭한 비극의 조건으로 '주위에서 흔히 마주할 수 있는 일반인이 아니라 고결한 인물이 어떠한 결함에 의해 스스로의 불행을 초래'를 꼽았다(하마르티아). 즉, 최선의 선택을 했음에도 최악의 결과에 도달했을 때 독자는 큰 울림을 받는다. 

 솔직히 마렉은 사건을 더 불행하게 만드는 인물이자 주인공들을 끊임없이 괴롭히는 답답한 인물이다. 한마디로, 골칫덩이다. 하지만 마렉의 입장에 서본다면 그의 행동이 이해가 갈 것이다. 그는 언제나 최선의 선택을 해왔음을 말이다. 

 그는 거짓을 쫓았지만 그건 모두 어머니를 위해서였다. 객관적인 3자의 시선을 가진 우리들과 달리 어렸을 적 우드에 빼앗긴 소년에 정체되어 있는 그로서는 자신의 어리석음이 보일 리 없다. 그는 그저 어머니의 안위와 사랑을 갈구했을 뿐이고, 그 사실이 그의 죽음을 슬프게 만든다. 끝내 진실한 어머니의 얼굴을 보지 못한, 끝에 가서야 왕의 얼굴을 할 수 있었던 소년 마렉.

 

 결국 <업루티드>는 '이해'와 '소통'에 관한 이야기다. 그것이 부재했을 때 얼마나 끔찍한 결과(우드)를 낳을 수 있는지 소설을 경고한다. 드래곤이 소녀를 데려가는 이유를 솔직하게 말했다면 주민들은 그에게 두려움이 아닌 친밀함을 표시했을 것이다. 어쩌면 그로 인해 더 적은 피해로 우드를 막았을지도 모른다.

 우드를 정화할 수 있었던 건 우드를 압도하는 더 거대한 힘이 아니었다. 바로 교감.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진정한 교감을 행하기란 무척 어렵다. 자신에게서 벗어나 타인의 관점에 서는 것이므로. 그것은 '왜'를 묻는 근본적인 행위이자 관심의 표현이다. '나는 당신을 모르고, 그래서 알고 싶다'는 마음이 들 때 비로소 해결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다시, 우리는 갈등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이 멸망하는 그날까지 솔직해지기 위해, 교감하기 위해 끊임없이 소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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