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에서 꼭 봐야 할 100점의 명화 - 내셔널 갤러리에서 테이트 모던까지
제프리 스미스 지음, 안혜영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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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읽었던 책인데 정리하는 기분으로 다시 읽었다.

저자의 말대로 순위를 정하는 것은 그 주제에 대해 흥미를 불러 일으키고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것 같다.

도판이 작은 게 다소 아쉽긴 하지만 그런대로 인쇄 상태가 좋고, 미술관 별로 정리가 되어 있어 다양한 그림을 접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런데...

어쩜 이렇게 번역상의 자잘한 오류들이 많은지 좀 놀랍다.

분명 역자 서문에서는 본인이 미술사를 전공했다고 나왔는데도 기본적인 그림 제목 번역도 틀린 곳이 많아 전공자가 번역했다는 게 믿기지가 않는다.

전공자가 역자인 경우는 오히려 본문에 대한 역주까지 따로 달아서 설명하기 마련인데 너무 간단한 고유명사들이 틀려서 황당하다.

이런 오류들을 확인하느라 독서 시간이 엄청 오래 걸렸다.


<인상깊은 구절>

125p

이렇듯 완벽을 추구하는 철저하고도 섬세한 베르메르의 작업 방식은 서양 미술에 있어서 가장 찬사를 받는 작품을 탄생시킨 비결이기도 했다. 베르메르의 작품은 완벽하게 조화되었으되 어딘가 불가사의하고 신비로운 느낌을 주는 구도가 그림을 감상하는 사람의 영혼과 정신을 뒤흔들어 놓는 신비한 힘이 있다. 이 작품에서 그는 움직임이 정지된 바로 그 순간의 신비로운 고요함과 장엄함을 잘 살려냈다. 자칫 무미건조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일상적인 순간의 모습은 베르메르의 섬세한 묘사에 힘입어 일상의 순간을 초월해 예술로 영원히 남게 되었다.

129p

샤르댕은 베르메르의 작품을 연상시키는 매우 정돈되고 단순화된 배경을 선호했다. 그러나 샤르댕은 이 전통을 그만의 독특한 프랑스 스타일로 소화해 냈다는 평을 받는다. 그가 담아낸 단순한 일상의 풍경은 시간이 멈춰진 장중한 작품으로 탄생된다. 샤르댕이 사용한 단순화된 구도는 로코코 양식의 부셰와 같은 화가들이 화단을 지배하고 있던 당시에는 매우 기묘하게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그는 그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버리지 않았고, 결국 그의 작품은 살롱에서 매우 유명해져 스웨덴의 여왕이나 루이 15세를 포함한 왕족이나 부유층들이 그의 작품을 구매하기에 이른다. 

147p

작품의 제작 연도에서 알 수 있듯, 퓌비 드 샤반은 인상주의 화가들과 같은 시대에 활동을 했다. 당대를 풍미했던 야외에서 순간의 색채를 묘사하는데 주력하던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과 그의 작품을 비교해볼 때 퓌비는 같은 시대의 작품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동떨어진 작품 세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시대에는 인상주의 화풍을 제외하고도 많은 화파들이 활동하고 있었고, 그렇다고 해서 그의 작품이 인정받지 못했던 것도 아니다. 그는 19세기 후반 예술가로서 파리에서 상당히 부유한 삶을 영유했지만, 자세히 알려진 바가 없다. 분명한 것은 퓌비의 작품이 예술계 전반에 막강한 영향력을 지녔고 그는 많은 인상주의 화가들의 존경을 받았다는 점이다.

173p

휘슬러는 배터시 다리를 사실 그대로 재현하는 데 구애 받지 않았다. 그는 당시의 예술 지상주의적인 미학 운동에 영향을 받았는데 당시의 사조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정확히 재현하는 것이나 묘사, 그리고 도덕적 관념에 구애받는 대신 예술의 심미적인 측면, 즉 구도와 색채가 조화를 이루는 순수한 미적 측면이 그 어느 것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휘슬러는 당시에 만연했던 예술 지상주의적 관점을 추상적인 요소와 함께 이 작품에서 잘 드러내고 있다.


<오류>

15p

1547 샤를 5세의 군대에 의해 프리드리히 공작이 체포됨으로써, 궁정화가의 지위를 잃음

-> 뮐베르크 전투에서 카를 5세가 작센의 선제후 요한 프리드리히 1세를 사로잡았다.

프리드리히 공작은 전혀 다른 사람이다.

19p

1874 제임스 휘슬러 <파랑과 빨강의 야상곡>(추락하는 로켓)

-> 1874년에 발표한 <추락하는 로켓>이라는 부제가 붙은 휘슬러의 작품 원제는 "Nocturne in Black and Gold" 로, <검정과 금빛의 야상곡>으로 번역해야 할 것 같다.

21p

살롱 도톰(파리 가을전)에서 전시실 한 칸이 르누아르의 작품으로만 전시

-> Salon d'Automne 살롱 도톤으로 써야 할 것 같다.

31p

고갱이 네덜란드 출신의 어린 여인, 메테 소피 가드와 결혼함

-> 고갱의 부인은 덴마크 출신이다.

1897 펠릭스 발로 <봄>

-> Felix Vallotton 이므로 펠릭스 발로통으로 번역해야 할 것 같다.

49p

1666 클로드 로랭 <아침>, 상트페트르부르크

-> 1666년에 발표된 로랭의 작품은 "Morning in the harbour"로 항구에서의 아침으로 번역해야 할 것 같다.

71p

디르크 보우츠 <거장 돌로로사>

-> 디르크 보우츠의 "Mater Dolorosa" 로 슬픈 성모 정도로 번역해야 할 것 같다. 왠 거장?

97p

부르고뉴의 공작인 필립 더 굳의 서자, 부르고뉴의 필립 공의 궁정화였던 것으로 추정됨

-> Philip the Good 은 선량공 필립으로 번역해야 하고, 그의 서자 부르고뉴의 필립은 공작이 아니라 주교이다.

99p

인스부르크에서 보헤미아와 헝가리의 왕인 프랑수아 1세의 초상화를 완성함

-> 프랑수아 1세라고 하면 프랑스 왕을 떠올리기 쉬우므로, 페르디난트 1세라고 표기해야 할 듯하다.

103p

1350 루카스 크라나흐 디 엘더 <파리스의 심판> 카리스뤼에

-> 카리스뤼에가 어딘가 한참 찾았다. Karlsruhe 즉 카를스루에다.

104p

남편이 죽은 뒤 덴마크의 크리스티나는 브뤼셀로 가서 헝가리인인 메리 숙모와 살았다.

-> 헝가리인 마리아가 아니라 헝가리의 러요시 2세에게 시집 간 Maria von Osterreich 이다. 합스부르크의 황제 페르디난트 1세의 여동생으로, 헝가리의 마리아라고 번역해야 한다. 헝가리인이 아니다.

113p

카라바조는 그 중 한 점은 거부되었지만 <산 마태오의 외침>과 <산 마태오의 순교>는 잘 그려진 것으로 받아들여졌음

-> The Calling of Saint Matthew 로, 성 마태오의 소명이라 번역해야 한다. 외침이라니, 정말 전공자가 번역한 게 맞을까?

116p

카를 1세는 많은 작품을 사들인 수집가로 유명했는데

-> 영국의 찰스 1세를 가리킨다. 영어식으로 번역해야 정확히 누군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다른 페이지에서는 같은 인물을 찰스 1세로 표기해서 헷갈린다.

137p

<베르나르 가를 행진하는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을 완성함

-> 베르나르 가를 행진하다니, 도대체 여기가 어디란 말인가?

원제는 "Napoleon Crossing the Great Saint Bernard pass" 이다. Great St. Bernard pass 는 길거리가 아니라 알프스 산맥에 있는 험준한 통로이다. 보통 <생 베르나르 협곡을 넘는 나폴레옹> 으로 번역한다. 

141p

터너, <다이도 빌딩 카르다고>

-> <카르타고를 건설하는 디도> 라고 번역하면 좋을 것 같다.

143p

터너가 가장 존경한 화가는 풍부한 색채로 빛의 효과를 그려내던 클로드 모네였으며, 존경해 마지 않던 그를 뛰어 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가는~

-> 터너는 1775년 출생해 1851년 사망했다. 모네는 1840년생이다. 터너가 존경한 이는 자신이 죽을 무렵 아직 화가로 데뷔하지도 않은 모네가 아니라 클로드 로랭이다. 정말 전공자가 번역한 게 맞을까?

145p

1824 <찰스 5세 내정자의 파리 입성과 루이 13세의 서약>이 살롱전에서 호평을 받음

-> <찰스 5세 내정자의 파리 입성> 과 <루이 13세의 서약>은 다른 그림이다.

그리고 "Entrance of Dauphin, future Charles 5, to Paris"  가 원제로 "미래의 샤를 5세인 왕세자의 파리 입성"이라 번역해야 할 것 같다. 찰스 5세 내정자는 또 뭔가?

149p

에드워드 부르메 존스 <코페투아 왕과 거지 소녀>

-> Edward Burne-Jones , 즉 에드워드 번 존스이다. 부르메 존스라니. 

151p

27살의 젊은 고흐는 자신에게 권총을 발사했고, 이틀 후에 세상을 떠남

-> 37세에 사망했다.

165p

12월 초 밀레이는 1850년에 모자가게 점원으로 근무하며 그와 만나 이 그림이 완성되고도 한참 후인 1860년에 그와 결혼한 엘리자베스 시달을 오필리아의 모델로 작업을 시작했다.

-> 엘리자베스 시달은 단테 가브리엘 로제티의 부인이고, 존 에버릿 밀레이는 러스킨의 부인인 에피와 결혼했다.

166p

이 <최후의 심판의 날>은 세 작품으로 이뤄진 최후의 심판 시리즈 중 하나로 천국의 모습은 왼편에, 최후의 심판이 중간, 그리고 이 작품이 오른편에 위치한다.

-> 이 작품은 트립티크로 되어 있는데 중간 그림의 제목이 "The Last Judgement" 이고 오른편이 "The Great Day of His Wrath"이다. 그러므로 신의 분노의 날, 혹은 진노의 날이라고 하면 더 확실하게 전달이 될 것 같다.

170p

리차드 대드 <펠러의 대성공>

-> 이 작품의 제목은 "The Fairy Feller's Master-Stroke" 이다. 펠러가 사람 이름인가 했더니만, 다른 자료를 찾아보니 <요정 나뭇꾼의 절묘한 솜씨>로 번역되어 있다. 즉, feller 나뭇꾼이라는 뜻이었다. 정말 이렇게 밖에 번역이 안 되는 것일까?

175p

조르주 쇠라 <아니에르에서의 물놀이>

-> "Bathers at Asnieres"  즉, 아스니에르에서의 물놀이다.

191p

마티스는 스테인드글라스 디자인과, 베네치아의 로자리오 예배당의 장식을 시작했고 죽는 순간까지 이 일에 전념함

-> 베네치아가 아니라 프랑스의 방스에 있는 로자리오 예배당이다.

225p

1635 피터 폴 루벤스 <사냥하는 샤를 1세의 초상화> 파리

-> 아무리 찾아봐도 1635년에 완성한 <Charles 1 at the Hunt> 즉, 사냥하는 찰스 1세의 초상화, 특히 파리의 루브르에 있는 작품은 루벤스가 아니라 반 다이크의 그림이다.

227p

와토는 왕립 아카데미의 정회원이 된 후 그 기념으로 <카테라 섬의 순례>를 그림

-> "Pilgrimage to Cythera" 카테라 섬이 아니라 키테라 섬의 순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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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lobe00 2019-12-12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mater를 master로 보셨나봄요^^;; 이런 오류가 많으면 신뢰도가 확 떨어지는데 아쉽네요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