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거품 오두막 미래인 청소년 걸작선 7 
멕 로소프 지음, 박윤정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때때로 사람들이 나에게 ‘불편한 책을 잘도 읽는다’고 말하곤 한다. 그들이 말하는 불편한 책이 어떤 의미인지 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이웃들, 특히 더 힘들고 더 고통스러운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 썩을 대로 썩은 정치, 법조계, 권력 등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 담긴 책, 그리고 이미 떠나간 이들을 기억하는 책 등이다. 하나같이 무덤덤하게 읽기 참 어려운 책임은 인정한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 난 문학을 열심히 읽는 이들이 더 대단하게 보인다. 난 우선 아픈 것이 싫다. 참 싫다. 끝내 눈물을 떨구도록 만드는 이야기들은 날 참 약하게 만든다. 결국은 마지막 페이지까지 넘길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주저하게 되고 머뭇거린다.

 

차라리 현실이 그대로 보여주는 아픔에 더 무덤덤한 것일까. 현실은 말 그대로 현실인데. 그럼에도 이상하게 난 문학 작품이 전해주는 아련하고, 때론 싸한 아픔을 겁낸다. 마치 그것이 현실인 것 마냥 진하게 전해진다. 아프다.

 

성장소설의 대부분이 그렇듯, 《바다거품 오두막》역시 아프다. 그리고 진하다. ‘핀’을 향한 주인공의 사랑이 아팠고, 눈부시게 하얀, 깨끗한, 끝없는 바다와 해변이 아팠다. ‘리즈’의 집착이 서글펐고, 또 이별이 아팠다.

 

이 작품은 평범한(물론 평범한 성장소설은 없다. 모두가 다 특별하다.) 성장소설과는 또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다. 숨 막히도록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문명에서 살짝 벗어난 삶을 살고 있는 핀과, 사회가 만들어 놓은 시스템에서 질식당하고 있던 주인공의 만남은 동성애적 우정, 사랑을 말하지만, 사실 주인공의 또 다른 자아들과의 만남이기도 하다.

 

‘나’가 이루지 못한 ‘나’와, 이루고 싶지 않은 ‘나’를 동시에 만나며, 헤어지고, 사랑하는 과정. 인간은 그렇게 성장한다.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지만, 결국 그것이 사랑이었고, 그것이 핀이었으며, 그것이 내 자신이었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에, 지극히 위태롭게 서 있는 낡은 오두막에서 우리는 성장한다. 죽을 것만 같은 위험과 공포가 덮쳐도, 결국 아침엔 따뜻한 햇살이 쏟아진다.

 

작품은 백 살의 노인이 열여섯 살 처음 느꼈던 사랑을 추억하는 내용이다. 그 사랑은 순수했고, 무모했고, 무책임했다. 때문에 아름다웠다. 주인공은 핀을 통해 우정과 사랑과 배신과 공포와 나약함과 자립과 고독과 죽음을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삶의 덧없음과 유한함을 깨달았다. ‘무조건적 적응과 강력한 융합을 통한 전 시민의 개선에 혈안인 이 20세기 현대국가에서’주인공은 전혀 ‘현대’스럽지 않은 사랑을 만난다. 그리고 그 사랑을 통해, 먼 훗날 ‘아주 작은 것도 한 사람의 삶을 더 행복하게 또는 더 불행하게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하나의 사건 혹은 한 가지 생각이면 충분’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주인공이 기억하는 핀의 모습. ‘피곤할 때는 나른하고 우아하게 몸을 쭉 펴고, 그렇지 않을 때는 민첩하고 단호하게 움직이며, 말수가 적되 말을 할 때는 힘을 줘서 하고, 세상에 보답하는 식으로 미소를 짓’는 모습. 그런 핀을 사랑한 주인공은 이제 자신이 핀과 같은 모습임을 알고 있다.

 

유년 시절의 기억은 모자이크처럼 파편화 되어있다. 나에겐 그렇다. 하지만 굳이 그것을 억지로 끼워 맞출 생각은 없다. 살다가 문득 ‘딱’소리를 내며, 그 중 어느 것이 맞춰지는 순간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난 계속 성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떻게 성장하고 살아가는 것이 최선일까. 백세가 된 주인공은 어느 날 눈을 떠보면, 삶이 예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잔인한 속도로 달아나고 있으리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시간은 ‘우리 모두를 잠식한다’

 

“이런 생각을 하다 다시 현재로 돌아와 보면, 우리는 우리 자신이 만든 바다 속에 빠져들기 시작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의 목가(牧歌)는 이미 사라져버렸고, 우리는 미래를 향해 앞뒤 가리지 않고 돌진하는 데 에너지를 허비하고 있다. 그 때문에 이 불안정한 곳에서의 삶은 이미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다. 지치고 망가져, 회한에 가득 차 어둠 속에서 나오려 하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

 

이제 나에게 다가왔던 첫사랑의 기억은 희미하다. 그 설렘도 무참하다. 하지만 저자처럼 나 역시 내가 ‘지구상에서 우리 사이에 있었던 일들과 우리 사이에 없었던 일들을 모두 기억하는 유일한 사람’이란 것을 알게 되는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 그때는?

 

모든 사라진 존재들에게, 모든 사라져가는 존재들에게, 아직 오지 않은 모든 존재들에게, 나 역시 감사의 마음을 전할 수밖에.

 

오래 기억될 책이다.



 
 
 
서구는 섬이다 - 김상훈 포토에세이 
김상훈 지음 / 매일피앤아이 / 2011년 11월
평점 :
품절


선거의 계절이다. 온 나라가 들썩거린다. 너도 나도 국민의 머슴으로 열심히 일하겠다고 떠들어댄다. 이른 바 애국자들의 계절인 것이다.

 

하지만 국민들은 이미 알고 있다. 누가 정말 일꾼인지, 누가 협잡꾼인지, 누가 도둑놈인지. 국민들이 바보라고 생각한다면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바로 바보다.

 

개인적으로 대구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곳에 가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우연인지, 아님 부러 그 지역을 가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개인적인 유감은 그 도시에 없다. 친척은 물론 내가 좋아하는 선배, 동기, 후배 중에서도 대구 출신이 적지 않다. 하지만 대구는 싫다.

 

대구 출신의 한 문인이 《반성》이란 책에서 자신의 유년시절을 돌아본 글을 담았다. 읽어보았다. 1980년 5월 18일, 광주에 뜨거운 피가 뿌려지고 있을 때, 대구는 그 어느 때보다 평온했다는, 자신이 바로 그 시간에 있었던 공원의 그 느긋한 외면에 대해, 그는 이야기했다. 시간이 흐른 뒤, 바로 그 때 광주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를 알았을 때, 그때 문인은 자신의 고향 대구에 전율을 느꼈다.

 

이 책의 저자는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 이 책을 펴냈다. 선거철만 되면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수많은 정치지망생, 정치인들의 홍보 책 중 하나다. 하지만 조금 다른 형식을 취했다. 어차피 펴내봤자, 읽는 이들도 별로 없고, 내용도 부실할 것이 뻔한 자전 에세이 보다는 자신이 출마할 지역의 사람들, 동네 모습을 담은 포토 에세이 형식을 취했다.

 

나쁘지 않았다. 지겹다 못해 나무에 대한 극도의 죄스러움이 들 수밖에 없는 선거철 정치인들의 자서전 등에 비해 이 책은 그나마 덜 위선적이고, 덜 촌스럽고, 덜 가증스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구광역시 서구에서 출마하겠다고 나온 저자는 서구라는 동네의 낙후된 면, 못 사는 사람들, 때려 부수어야 할 오래된 시설물들을 카메라에 담아 항의하듯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들을 전부 바꿔야 한다고 소리를 높인다.

 

과연 누구를 겨냥한 항의인가? 서구 주민들에 대한 협박인가? 아니면 또 다시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겨냥하며, 비난과 저주의 한탄을 늘어놓을 셈인가? 대구광역시 서구가 저자의 말처럼 낙후되고, 외로운 섬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면, 그것이 온전히 지난 두 정권의 잘못인가? 철저히 지역 투표에 반세기를 올인해 온 대구에서 감히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한나라당, 아니 새누리당의 깃발만 꽂으면 당선 가능 100%인 대구에서, 그렇다면 현 정권에 대한 비판은 왜 없을까? 현 정권이 당신들이 그리도 저주하는 전라도 정권인가? 저자가 대구시 경제통상국장까지 지냈다면 아마 공직 생활을 오래한 것으로 짐작되는데, 또 그것을 내세워 경제전문가 운운 하는 것 같은데, 미국 오리건주립대 정책대학원 석사까지 취득한 이로서 현 대구광역시 서구의 경제적 낙후가 온전히 누구의 책임인지, 본인은 스스로 알고 있지 않을까.

 

저자가 서구의 낙후함을 강조하기 위해 찍은 사진들 중에 오히려 나는 정감을 느낀 것들이 많았다. 서민들의 모습, 그들의 웃음, 좁은 골목길과 시장통의 정겨움까지. 하지만 저자가 보기에 그것들은 모두 사라지고 없어져야 할 구태에 다름 아닌 것 같다.

 

만약 내 짐작이 맞다면, 저자는 정치를 하지 않는 것이 낫다. 무조건 때려 부수고, 그 소멸을 통한 부가가치 창출과 경제성장을 원한다면, 이미 실패의 사례는 너무나 많다. 현 정권의 고귀한 가르침 중 하나 아닌가.

 

대구를 고담시로 부르며 폄하하는 이들이 있다. 심한 행동이다. 대구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선량한 시민들을 모독하는 행위다. 그러면 안 된다. 어찌 보면 대구는 이 시대, 또 한국 현대사의 가장 큰 피해자 중 하나이다.

 

하지만 모든 현상엔 원인과 배경과 근거가 존재한다. 왜 다른 지역 사람들이 대구를 싫어하고, 모욕을 주려 하는지, 한 번 쯤은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초지일관 지역감정과 이해에 기반한 투표를 해왔던 대구가 왜 경제적으로 낙후되었는지, 스스로 생각해 봐야 한다.

 

감히 대구를 모르는, 감히 저자에 대해 잘 모르는 내가 이런 말을 지껄인다면, 많은 이들이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다. 난 잘 모른다. 내가 모르는 것이 있으면 가르쳐 달라. 정중히 사과하고, 배우겠다.

 

하지만 난 대구의 침묵과 대구의 추종과 대구의 오만과 대구의 슬픔을 느낀다. 대구 지역에서 풀뿌리 민주주의와 대구의 진정한 발전을 위해 애쓰시는 모든 일꾼, 활동가 분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결국 대구는 대구 사람들이 바꿀 수 있을 뿐이다.

 

이번 총선, 대선 결과가 다시 한 번 대구 지역을 말해 줄 것이다.

 



 
 
 
일하는 우리 엄마 아빠 이야기 
백남호 글.그림 / 철수와영희 / 201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상을 바꾸는 따뜻한 이야기’가 담겨 있는 월간 《작은책》의 표지 그림을 그려주시는 백남호 님이 ‘우리 둘레에 사는 평범한 사람들 이야기’를 글과 함께 모았습니다. 이미 《작은책》을 통해 보아왔던 따뜻한 그림들과 함께 더욱 자세한 이야기를 담은 그림들이 가득합니다.

 

이 책을 추천해주신 손석춘 선생님의 글이 처음부터 가슴에 와 닿습니다.

 

“이 책에 나오는 엄마 아빠는 왕도 왕비도 아닙니다. 부자도 아닙니다. 미용사인 엄마, 문구점을 하거나 떡볶이를 파는 아빠를 비롯해 우리가 생활하면서 만나는 어른들입니다.…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왕이나 왕비는 없어도 되지요. 실제로 대다수 나라에 없어요. 부자 또한 없어도 됩니다. 그러나 학용품과 옷 만드는 공장의 노동자는, 쌀과 배추 농사짓는 농민은, 지금 이 순간도 어디선가 땀 흘리며 일하는 우리 모두의 엄마와 아빠는 정말이지 없으면 안 될 분들이지요.”

 

그렇습니다. TV나 영화를 보면 등장하는 돈 많은 기업의 회장님, 사모님 그리고 그 자녀들의 화려한 이야기, 언제나 으리으리한 집에서 사는 이들만이 등장하는 이야기만 나옵니다. 서민들의 삶을 다루는 드라마는 외면받기 일쑤고, 언제나 신데렐라, 왕자님을 꿈꾸는, 말 그대로 ‘꿈같은’이야기만 환영받습니다.

 

물론 정작 우리네 삶이 너무 팍팍하고 고통스럽기에, TV나 영화에서나마 그런 고통을 잊기 위해 그럴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현실을 언제까지나 외면할 순 없습니다. 아울러 자세히 살펴보면, 또한 조금만 생각을 달리 하면 우리네 삶이 그 어떤 것 못지않게 따뜻한 위로가 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 왕자나 공주로 태어날 가능성, 대기업 회장의 손자, 손녀로 태어날 가능성은 과연 얼마나 될까요. 자신도 모르게 부모님이 부자가 아니라고, 혹은 왕 못지 않은 대기업의 회장님이 아니라고, 원망한 적은 없었나요? 만약 그랬다면, 물론 철이 들면 달라지겠지만, 정말 슬픈 일일 것입니다.

 

책은 바로 우리 엄마 아빠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미용사 엄마는 다른 사람의 머리를 예쁘게 매만져 주시고, 공주보다 귀한 딸의 머리카락을 예쁘게 세 갈래로 땋아주십니다. 친환경 린스를 만드는 방법도 알고 계시죠. 또 우리 아빠는 학용품을 파십니다. 좁은 문방구에 물건이 하도 많아 구석구석 틈 하나 없이 빼곡하지만, 아빠는 구석구석에 있는 모든 물건을 훤히 꿰고 계십니다.

 

또 우리 아빠는 출출한 퇴근 시간, 사람들에게 휴식 같은 ‘떡볶이’를 파시고, 엄마는 낮에 집에서 돌돌 말은 김밥을 가져 오시죠. 우리 아빠는 집을 지으시는 건설 노동자, 맛있는 과일을 파는 과일장수, 남의 옷을 자기 옷보다 소중히 여기는 세탁소 주인,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데워주는 연탄 배달부, 새벽같이 집집마다 맛있는 우유를 배달해주시는 우유 배달부, 무거운 짐들을 척척 옮겨 새로운 집에 놓아주시는 이삿짐 센터 일꾼, 맛난 짜장면을 배달해주는 중국집 배달부, 동네를 깨끗하게 치워주시는 환경미화원, 우리에게 맛있는 밥을 주시는 농부, 몸이 불편한 사람, 무거운 짐을 든 사람, 바쁘게 가야 하는 사람, 나이 드신 어르신들을 어디든지 모셔다 주시는 택시 기사입니다.

 

또 전업주부로 하루 종일 힘든 가사노동을 하시는 우리 엄마, 그리고 싱싱한 생선을 새벽 일찍 수산 시장에 나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추우나 더우나 하루도 안 거르시고 사와서 파시는 생선 장수 울 엄마도 있어요. 엄마가 일하는 데는 늘 물이 흥건해서, 늘 장화를 신으시죠. 엄마는 밖에서 식사를 하세요. 엄마가 밥을 먹을 때 제가 어깨를 주물러 주곤 한답니다. 아, 공장에 나가 작은 기계 부품을 끼워 맞추는 일을 하시는 울 엄마도 있습니다.

 

텔레비전에 나온 울 엄마 이야기도 있답니다. 회사 사정이 안 좋다며 막무가내로 엄마를 쫓아낸 회사에게, 다시 일하게 해 달라고 엄마는 친구들이랑 싸우고 있어요. ‘텔레비전에서는 엄마가 아주 나쁘고 무서운 사람처럼 자꾸 싸우는 모습만 보여’주지만, ‘우리 엄마는 집에서 방구 뿡뿡 뀌는 착한 엄마’에요!

 

책에 나오는 엄마, 아빠는 모두 백남호 님이 직접 만나고 이야기를 나눈 분들입니다. 그분들의 삶에 대해 그 누가 함부로 떠들 수 있을까요. 대기업의 손녀로 태어난 몇 안 되는 이들은 자영업을 하시는 수많은 엄마, 아빠를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고, 마치 북한처럼 3대에 걸쳐 기업을 세습하는 회장님은 자랑스럽게, 아들·딸들을 데리고 다니며, 짐짓 거만하게 한국 경제를 논하는 현실에서, 우리와 함께 울고 웃으며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엄마, 아빠를 감히 그 누가 가난하다고, 불행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이 책은 아이들을 위한 이야기입니다. 저 먼 외국의 오래된 동화가 아니고, 시시껄렁한 이들을 위인이랍시고 거창하게 만든 책들이 아닌, 정말 이 시대 우리 아이들이 읽어야 할, 꼭 필요한 그런 책입니다.

 

하지만 이 책은 어른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이처럼, 혹은 일부러 삶을 외면하며 살고 있는 어른들이 읽어야 할 책이기도 합니다. 사소해 보이지만, 그들이 없으면 결코 편하게 살아갈 수 없는 우리들이 읽어야 할 책입니다.

 

‘철수와영희’는 언제나 개념 어린 책들을 펴내왔습니다. 이번에도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습니다. 바로 이런 책을 만드는 출판사가 더 많아야 합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늘 조연으로 등장하는 사람들이지만, 사실은 이 세상의 주인공인 분들.

 

엄마, 아빠가 있어 세상은 더욱 아름답습니다.

 

 



 
 
 
와인창고 살인사건 
알프레드 코마렉 지음, 진일상 옮김 / 북스토리 / 201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뭐 제가 미스터리, 추리 문학을 상당히 좋아하는 것을, 알만한 분들은 다 아시고, 알보다 조금 작은 분들은 모르시지만, 암튼 그렇습니다.(어쩌라고?) 때문에 이 책의 제목에서 느껴지는 음흉한 음모의 냄새에 즉각적으로 반응했음은 물론입니다.

 

아울러 표지글을 통해 새로운 사실을 깨닫기도 했습니다. 아하! 와인 발효 가스로 사람이 죽을 수도 있구나! 사실 와인 제작 과정을 전혀 몰랐던 저로서는 부끄럽지만 처음 알게 된 사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 와인 발효 가스를 이용해 얼마나 치밀하고 정교한 살인을 계획하고 실행에 옮겼을까? 더더욱 기대가 컸습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긴장과 호기심으로 시작된 독서는 의무감과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이어졌고, 마지막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담배를 찾기에 이르렀습니다. 아, 이게 웬 비극인가. 황금 같은 주말에 고르고 골라 읽은 책이 하필 왜 이런 비극적 마무리를 나에게 준단 말인가.

 

작가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요. 피살자에 신상을 캐는 과정에서 등장하는 용의자들과의 대화, 주인공 시몬 폴트 경위의 고독과 함께 하는 수고양이, 100% 연애 관계로 이어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카린 발터 양. 오래된 포도 압착장의 미로와 같은, 지하 동굴처럼 꼬이고 꼬이는 관계들. 이런 그럴싸한 스토리 전개에도 불구하고 왜 작가는 이렇게 허망하게 이야기를 끝맺었을까요.

 

작가가 추구했던 최대한의 사실성이 결국 이렇게 감당하지 못할 허무로 작품을 끝나게 하지는 않았을까요. 허무맹랑함보다는 최대한 사실적인 것이 더 낫다는 작가의 믿음이 너무 과하진 않았을까요.

 

사실 그런 것 같습니다. 가장 최근 극장에서 본 영화 《미션 임파서블: 고스트 프로토콜》에서 느꼈던 말도 안 되는 허무맹랑함이 가져다 준 재미와 허무는 사실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습니다. 영화의 고수들은 이 영화가 전작에 비해 너무 심하게 ‘뻥’이 많아서, 오히려 재미가 반감됐다고 평가합니다. 저도 역시 좀 심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만.

 

그렇게 보면 최근 봇물을 이루고 있는 일본 추리소설, 미스터리 소설들 중 너무하다싶을 정도로 허무맹랑한 것들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뭐 우리소설 중에서도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지 않는, 독자를 우롱하는 작품들이 눈에 보입니다.

 

독자들을 깜짝 놀라게 할 정도의 반전에 성공하는 작가들도 있지만, 처음부터 너무 무리하게 이야기를 전개하다, 결국 스스로 그 이야기에 감당하지 못해 허겁지겁 초현실적 마무리로 끝나는 작품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때문에 어쩌면, 아주 어쩌면 이 책의 작가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더 놀라운 반전, 트릭을 기대하셨나? 여보게들, 세상에 그런 것은 없다네. 삶은 충분히 예측 가능한 것이야”라고 말이죠.

 

여기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됩니다. 과연 ‘있을 법한, 재미없는 이야기’와 ‘과장이 지극히 많지만, 또한 재미도 쏠쏠한 이야기’중 어디에 손을 들어줄 것인가, 말이죠. 음, 어렵습니다. 하지만 또한 지극히 쉽기도 합니다. 전 후자에 손을 들고 싶습니다.

 

제 변치 않는 믿음, 소설은 재미있어야 한다는 제1원칙이 있기 때문입니다. 작가가 책을 통해, ‘인간은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가까운 사이일수록 예의를 지켜야 한다’‘언젠가 지은 죄는 돌아오기 마련이다’등을 이야기하려 했다면, 그와 같은 교훈을 전달하면서도 얼마든지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가능하다는 것을 동시에 알아야 했습니다. 사실 그런 이야기들은 너무도 많습니다.

 

어쩌면 무지한 제가 숨은 작가의 더 깊은 메시지를 못 읽은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담 저의 무지를 탓할 수밖에요. 하지만 그래도 크게 아쉬울 것 같지는 않습니다.

 

미스터리 소설을 쓴다는 것, 추리소설을 쓴다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절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때문에 코난 도일, 아가사 크리스티, 모리스 르블랑, 앨러리 퀸, 챈들러, 대실 해밋 등등이 추앙을 받는 것입니다.

 

언젠가 정말 괜찮은 작품으로 작가를 다시 만나고 싶습니다.

 



 
 
 
고백의 제왕 
이장욱 지음 / 창비(창작과비평사) / 2010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렴풋이 아련한 감동을 준다는 것.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구나 소설이라는 장르를 통해서는, 나에겐 결코 흔한 일이 아니다. 워낙 눈물이 많고, 마음이 약해 빠진 녀석이라, 질질 잘 울고 쉽게 울컥하긴 하지만, 내 기억 상 문학작품으로 이처럼 애매모호한 감동을 느낀 적은 별로 없었던 듯하다. 난 역시 신파에 약하다.

 

이장욱이란 작가를 또 이제야 알았다. 무지하면 의외로 즐거운 점도 있으니, 이렇게 느닷없이 괜찮은 작가의 괜찮은 작품을 접할 수 있다.《칼로의 유쾌한 악마들》을 들어본 기억은 있지만, 정작 작가는 알지 못했다.

 

충동 구매한 책이다. 사전지식 없이 소설 읽기를 즐기는 편이다. 무지를 덮는 변명임에 틀림없지만, 또 매력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정글을 탐험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장욱의 소설은 나른하다. 또 무참하다. 판타지와 미스터리를 섞어놓은 듯한 스토리 전개는 환상과 현실을 구분키 어렵게 만든다. 그리고 그 사이 사이 중얼거리듯 이어지는 독백과 대화는 삶의 절대고독과 해프닝 사이를 위험하게 오간다.

 

〈동경소년〉의 ‘유끼’. 그녀의 죽음 같지 않은 죽음을 애써 지켜주는 ‘그’. 그리고 그런 그를 마치 영화나 소설의 주인공처럼 살펴보는 주인공과 일행들. 그 사이 고독은 점차 환상으로 이어진다. 어쩌면 너무나 평범하여 그 흔적조차 찾기 어려운 작가 와따나베 포우처럼 유끼와 그는 흔적도 없이 이 세상에 존재하다, 그렇게 사라진다. 남은 것은? 오직 살짝 느낄 수 있는 흔들거림 뿐이다.

 

〈변희봉〉역시 끊임없이 존재에 대해 의심을 품는다. 오직 ‘만기’와 만기의 부친만이 알고 있는 배우 변희봉. 그의 존재는 어디에서도 부정당하지만, 분명 존재하고 있다. 죽음을 앞둔 아버지, 그리고 삶의 척박함으로 이혼마저 당한 만기에게 변희봉은 자신과 같은 존재일 수밖에 없다. 어디에든 존재하지만, 오직 특별한. 때문에 동대문운동장에서 날아오는 야구공은 수많은 이 땅의 만기를 위한 역전 만루 홈런일 수밖에. 슬쩍 울컥하게 만든 작품이다.

 

〈고백의 제왕〉은 시종일관 불편함과 외면으로 일관하다, 급작스런 고백으로 끝맺는다. 결국 인천의 장례식장까지의 거리만이 우리가 헤아릴 수 있는 거리일 뿐, 누구도 쉽사리 바다로 나아가지 못한다. 고백의 제왕 ‘곽’을 두려움과 호기심과 동경과 환멸의 기억으로 포장시킨 주인공과 동기들은 결국 곽이 그 누구보다 자신들과 흡사한 인간임을 깨닫게 된다. 삶은 그렇게 환멸적인 나와의 만남인 것.

 

〈아르마딜로의 공간〉은 누가 누구에게 어떤 영향으로 삶을 간섭하는지, 도무지 알 것 같으면서도 알 수 없는 이 시대를 보여준다. 모든 것이 인과 관계에 얽혀 있다는 종교적, 때론 철학적 의미를 부여할 것 까진 없어 보인다. 다만 끊임없이 깨어있지만, 깨어있지 못하는, 그러면서도 잠들 수 없는 우리를 비쳐줄 뿐이다.

 

죽은 아내의 유령과 함께 떠난 유럽여행. 남자는 끊임없이 서성거리고 중얼거린다. 의미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행위. 잠들지 못하는 밤을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는 순종. 목적이 목적일 수 없는 삶 속에서 필요한 것은 어쩌면, 상대에게 내 ‘말’을 온전히 전달하는 것이 아닐까. 〈기차 방귀 카타콤〉은 조절되지 않는 괄약근의 서글픔이 전해지는 ‘오래 묵은’불면을 보여준다.

 

‘목란’은 낡고 오래된, 하지만 외진 곳에 위치한 모텔. 그 곳엔 죽음이 게으름을 피우고 있다. 죽음은 축적되고, 다시 그 위에 한 겹을 쌓으려는 이들이 찾아온다. 하지만 어느 새 죽음과 삶은 섞이고, 그 황량한 풍경은 프라모델을 조립하는 아저씨들의 등 뒤로 먼지처럼 내려앉는다. ‘고철동’의 낡고 구식의 느낌을 없애기 위해 ‘목란동’으로 바뀌었듯. 역무원의 알 듯 모를 듯한 미소가 외로움 때문이듯, 죽음을 이끌고, 죽음을 위해 당도한 이들에게 정작 죽음은 쌀쌀맞게 바라만 본다. ‘데쓰’는 도망가고, ‘씨발놈아! 살아야지!’를 외치는 고희성은 낮은 목소리에 오히려 더 익숙하다. 공부하러 모텔을 찾아와 죽음을 쌓은 여고생들의 ‘명랑하지만, 책을 읽는 듯한 어조’를,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목란은 너무 쉽게 〈곡란〉으로 바뀔 수 있으니.

 

불면의 밤이 이어지면, 결국 위장된 잠과 철저한 외면 만이 남는다. 서로의 불면과 서로의 죽음을 파악하지 못한 채 사람들은 제각각의 불면을 긍정하고, 헛된 공간 속에 의미를 쌓아두려 애쓴다. 〈밤을 잊은 그대에게〉는 이 책에서 가장 작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 작품이다. 기억을 지우기 위해 아내를 찾아오는 남편의 유령과 기억 속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기억을 부정하는 딘과 애슐린은 행복하다. 우리가 생각하는 고독은 인공위성일까, 온전한 별일까. ‘잠든 척 눈을 감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은 고독이다.

 

〈안달루씨아의 개〉의 ‘옹’은 바지에 오줌을 지린다. 살아있다. 하지만 그 살아있음은 오직 죽음으로만 확인된다. 아내의 묘를 찾아가는 그의 여정엔 ‘인수 애비’처럼 황량한, 의미를 알 수 없는 삶들이 조여든다. 그의 길을 막은, 무섭도록 큰 개 역시 그의 삶이 지려버린 오줌을 통해 그를 망각한다. 그가 친구 ‘박’에게 맞았든, 혹은 때렸든 그 기억은 중요치 않다. 그를 추적하고 감시하는 ‘개미’들이 여전히 뻗어가는 그의 삶을 바라보고 있다면, ‘침엽수’와 같은 그의 살아있음이 낯설지는 않을 것이다.

 

단편 하나하나가 전해주는 애매모호함과 살짝의 울컥, 그리고 아련함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공간의 대책없음을 일깨워준다. 누구도 편하지 않은 그 편안함에 대한 긍정. 그것이 결국 불면의 밤을 정당화시켜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무척 아껴가며, 그러나 참 빨리 읽어 내려간 소설이다. 당연히 《칼로의 유쾌한 악마들》을 장바구니에 담는다. 적어도 내 생각엔, 참 잘 쓰는, 작가라고 생각된다. 모든 이들이 작가의 바람대로 편안하게 잠들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