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강 세븐
A. J. 라이언 지음, 전행선 옮김 / 나무옆의자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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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종류의 아포칼립스 스릴러다.

일곱 명의 사람들이 바다 위 한 배에서 깨어난다.

그들은 자신이 누군지 기억하지 못하고, 한 명은 자살했다.

팔에는 저마다의 이름이 새겨져 있지만 모두 자신이 누군지 모른다.

이 이름들도 유명 작가의 이름이지 이들의 본명은 아니다.

머리에는 동일한 위치에 상처가 있고 각자의 전문 분야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자살한 듯한 사람의 시체를 대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이런 부분이 드러난다.

그런데 이 배는 조정 장치가 보이지 않는다. 원격조정이다.

배는 이들에게 낯익은 장소로 이동시킨다. 바로 템즈강이다.

 

전문가들로 구성된 이 팀은 왜 이 강에 들어온 것일까?

여섯 명 중 한 명이 기억의 단편을 떠올리고, 갑자기 변한다.

총기류를 다루는데 익숙한 이들은 그를 사살한다.

자신이 누군지 모르는 이들은 템즈강에 있는 부표에서 위성전화기를 찾는다.

그리고 그 전화 통화를 통해 그들이 가야 할 곳과 해야 할 일에 작은 단서를 얻는다.

정해진 시간까지 목적지를 향해 가야 한다.

이 설정을 보고 머릿속에서는 몇 가지 가정이 떠올랐다.

가장 쉬운 것은 이들이 게임 속 플레이어라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누군가의 꿈이거나 창작이란 것이다.

너무 뻔한 가정이라 소설이 진행되면서 조금씩 이런 생각들은 사라졌다.

 

기억을 떠올린 사람이 보여준 신체의 변화와 잔혹성.

배가 앞으로 나가면서 그들이 마주한 사람이 변해 다른 존재가 된 괴물들이 등장한다.

배에 타고 있는 사람들은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알지 못한다.

지리와 역사에 뛰어난 사람이 없었다면 런던이란 것도 몰랐을 것이다.

부표에서 그들은 폭탄과 추가적인 무기 등도 가진다.

이 폭탄은 강에 놓은 장애물 제거에 필요한 것들이다.

하지만 폭탄을 설치하기 위해서는 반쯤 침몰한 배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괴물로 변한 사람들을 만나고 싸운다.

 

헉슬리가 힘들게 들고 온 가방 속 노트북은 이 변화에 대한 단서가 있다.

하지만 배터리 잔량이 겨우 4%에 불과하다.

당연히 충전할 케이블도 전력도 이들에게는 없다.

영상을 통해 런던에 있었던 사건들과 변화를 조금 알게 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이 붉은 안개 가득한 런던을 알기에는 정보가 턱없이 부족하다.

현미경이 있다면 어느 정도 알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내뱉는다.

괴성이 난무하고, 어디서 어떤 생명체가 언제 나올지 알 수 없다.

위성 전화가 오고, 그들에게 배에 있던 정체를 알 수 없는 주사를 맞아라고 말한다.

이들은 이런 상황에서도 앞으로 나아간다. 아니 나아갈 수밖에 없다.

 

자신이 누군지 모르는 전문가들의 위험한 임무.

그 과정에 드러나는 알 수 없는 이유로 변형되고 인강성을 잃은 사람들.

돌아갈 수조차 없는 현실에서 점점 다가오는 위험.

기억하고 쉽지만 기억이 병에 의해 감염되는 잔혹한 현실.

힘을 합쳐 이 위기를 돌파해야 하지만 언제 감염될지 몰라 서로를 감시해야 한다.

작은 배에 머물면서 그들은 알 수 없는 목적지를 향해 나아간다.

위험한 순간은 갑자기 찾아오고, 잔인한 현실은 가장 중요한 기억조차 하지 못하게 한다.

사랑하는 아내, 사랑하는 아이의 얼굴도 이름도 떠올리지 못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드러나는 진실은 아주 암울하고 잔혹하다.

뛰어난 가독성과 매력적인 캐릭터와 빠른 전개를 보여준다.

영상으로 이 소설이 어떻게 표현되고 각색될지 벌써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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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료시카의 밤
아쓰카와 다쓰미 지음, 이재원 옮김 / 리드비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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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나는 작가의 단편집이다.

작가의 전작에 대한 평이 좋아 선택했다.

네 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네 편 모두 상당히 재밌다.

세 편은 추리 소설에 대한 애정이 돋보이는 작품들이고, 마지막 한 편은 프로레슬링에 대한 애정이다.

이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나의 추리 소설 내공이 아직도 엄청나게 빈약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단편집 속에 다양한 형식의 실험이 담겨 있다.

하나의 공통점이 있는데 코로나19를 배경으로 사건을 꼬고 엮고 비트는데 상당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단순하고 명확한 결말을 선호하는 독자에게는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다. 나는 호!


<위험한 도박 - 사립 탐정 와카쓰키 하루미>는 하드보일드 풍의 단편이다.

한 남자가 탐정이라고 말하면서 카페에 들어온다.

이곳에서 그는 한 남자의 행동에 대해 주인에게 묻는다.

그리고 바뀐 가방과 그 속에 담긴 책을 찾아 헌책방을 돌아다닌다.

이 장면을 보면서 오래 전 헌책방을 돌던 나의 추억이 살짝 떠올랐다.

피살자의 바뀐 가방을 찾는 과정에 흘러나오는 추리 소설에 대한 수많은 설명들.

잠시 추리 소설 감상에 추리 소설이란 사실을 잊는다.

천천히 이야기를 풀어가는 도중에 갑작스러운 변화가 생긴다.

이때 펼쳐지는 다양한 반전과 상황은 정신 바짝 차리고 읽어야 한다.


<‘2021년도 입시’라는 제목의 추리소설>은 설정이 재밌다.

한 대학이 입시에 추리 소설을 지문으로 삼겠다고 발표한다.

수험생의 블로그를 비롯한 다양한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실제 대학의 문제가 하나 나오고, 이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입시학원의 강사, 이 시험 때문에 추리소설에 입문한 수험생 등이 대표적이다.

단순히 추리 소설로만 읽어도 재밌지만 입시에 대한 비판이 들어 있어 더 흥미롭다.

이런 문제를 내게 된 과정의 문제, 정답을 둘러싼 다양한 반론들.

앞에 살짝 깔아둔 설정 하나가 마지막에 예상하지 못한 반전을 만드는 재미도 포함한다.

이 단편을 읽으면서 내가 추리 소설을 읽은 방식에 살짝 의문이 들기도 했다.


표제작 <마트료시카의 밤>은 제목 그대로의 구성이다.

하나의 이야기가 끝나는 순간 다른 이야기가 또 튀어나온다.

먼저 추리소설가와 편집자의 대화에서 시작하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긴장감.

살의가 중첩되고 상황이 꼬이면서 이상해진다.

이들의 대화를 지켜보는 다른 사람이 등장해 또 하나의 껍질이 벗겨진다.

이번 이야기는 이 이야기가 어떤 의미인지 알려주면서 서서히 긴장감을 높인다

이전 장면이 담고 있는 의미가 무엇인지, 새로운 사건의 범인은 누군지.

중첩된 이야기 속 이야기가 언제쯤 핵심에 도달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그리고 각각의 이야기 속에 담긴 추리 소설에 대한 애정은 또 다른 재미다.


<6명의 격앙된 마스크맨>은 전일본 학생 프로레슬링 연합 총회를 다룬다.

코로나19로 신입생을 받지 못하고, 모임도 하지 못한 이들이 마스크를 쓰고 다시 모였다.

한국의 코로나 학번을 떠올리는 작은 에피소드와 함께 덕후들의 만남이 시작한다.

이 모임에 참여하기로 한 회장 한 명이 죽은 채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를 죽일 수 있는 실력자는 이 모임에 있다고 말하면서 상황이 바뀐다.

전날 그와 함께 술을 마신 사람, 어릴 때부터 그를 동경했던 사람 등.

한 편의 희극처럼 상황극이 펼쳐지고, 알 수 없는 상황으로 흘러간다.

코믹함과 반전이 이어지면서 예상하지 못한 장면들이 재미와 큰 웃음을 준다.

익숙한 일본 만화나 드라마의 설정처럼 보이지만 익숙해서 거부감은 전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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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루세는 천하를 잡으러 간다
미야지마 미나 지음, 민경욱 옮김 / ㈜소미미디어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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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회 여자에 의한 여자를 위한 R-18문학상 대상 수상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다.

실제 이 책의 첫 단편 <고마웠어! 오쓰 세이부백화점!>이 이 상을 수상했다.

대상, 독자상, 우정상 3관상이다.

이후 다섯 편의 이야기를 덧붙여 한 권의 책으로 나왔다.

여섯 편의 단편들이 각각의 매력을 품어내는데 상당히 지역색이 강하다.

일본의 낯선 문화들을 소재로 이야기를 재밌게 잘 풀어낸다.

그리고 짧은 시간이 아닌 상당히 시간의 흐름이 빠르게 진행된다.

작가가 후속작을 낸다고 하는데 당연히 관심이 간다.


<고마웠어! 오쓰 세이부백화점!>은 폐점을 앞둔 백화점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문을 닫는 백화점을 되살린다고 하는 거창한 계획은 없다.

다만 나루세는 지역 방송국이 촬영하는 곳에 30일 동안 서 있는 것뿐이다.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세이부 라이온스의 야구복을 입고 있다.

나루세의 시선이 아닌 친구 시마자키 미유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시마자키의 말을 통해 나루세가 얼마나 독특한 인물인지 알 수 있다.

그리고 나누세는 공부도 잘 하고, 다른 뛰어난 능력도 보여준다.

이런 나루세의 뛰어남을 부담스러워하는 아이들이 있지만 시마자키는 아니다.

어떻게 보면 조금 밋밋한 이야기이지만 나루세와 시마자키의 관계 등이 잘 드러난다.

한 도시의 백화점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지역민의 아쉬움도 잘 표현되어 있다.


<제제에서 왔습니다>는 나루세가 시마자키와 팀을 이루어 만담 대회에 나가는 이야기다.

일본 최대의 만담 대회 M-1 그랑프리에 나루세가 나가려고 한다.

짝이 될 인물로 시마자키에 선택했는데 시마자키가 반대하지 않는다.

둘이 만담을 짜는 것, 이 과정에 생기는 자잘한 에피소드가 재밌다.

무대에 서면 떨려 아무것도 못할 것 같은 시마자키가 무대 체질이란 것은 비밀이 아니다.

자신들의 경험과 다른 만담을 참고한 이들의 도전은 에상한대로다.

<계단에서는 달리지 않아>는 나루세가 살짝 나오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의 화자는 다른 단편에서 나루세에 대한 트위터를 날린 사람이다.

오랜만에 만난 동창, 동창회 개최, 동창회 홈페이지 개설.

오래 전 화해하지 못하고 헤어진 옛 친구 찾기 등이 엮여 있다.

화려하게 포장하거나 감상적인 장면 대신 현실적인 장면으로 풀어간다.


<선이 이어지다>는 왕따를 두려워하는 오누키의 시선을 담았다.

그녀는 민머리로 학교에 온 나루세를 보고 놀란다.

자신의 곱슬머리를 펴고 나타나 반 분위기를 유심하게 관찰한다.

나루세는 민머리를 한 이유로 한 달에 1샌티미터 자라는지 3년 동안 확인하기 위해서다.

재밌는 부분은 나루세가 아닌 이 소녀가 도쿄 대학에 대해 가지는 자신감이다.

폭 넓은 친구를 포기하고 열심히 공부해 도쿄 대학에 가려고 한다.

여름 방학 기간 동안 도쿄대에 가서 나루세와 만난 부분은 또 다른 인연이자 재미다.


<레츠 고 미시간>은 고등학교 올라와 가입한 동아리의 가루타 선수권 대회로 시작한다.

당연히 화자는 나루세가 아니고 다른 지역의 유도 선수 출신 덩치 큰 니시우라다.

특이한 나루세에 끌리고, 이것을 본 친구가 소개를 하면서 하루 동안 같이 비와호를 여행한다.

이성에게 관심이 없던 두 남녀의 낯선 모습, 나루세의 당당한 태도가 재밌게 엮여 있다.

<도키메키 고슈온도>는 고3이 된 나루세의 이야기다.

이전에 나왔던 인물들이 조금씩 등장해 관계를 이어간다.

만담콤비 제제카라는 이제 마을의 사회자가 되어 자신들의 능력을 펼치고 있다.

이 단편에서는 무엇에도 흔들릴 것 같지 않은 나루세의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200세까지 살겠다는 그녀의 의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조금 더 명확해진다.

개인적으로 재미는 다른 단편에 비해 부족하지만 이전 단편 출연진들이 모두 나와 좋았다.

그리고 그 단단한 나루세의 색다른 모습이 나와 다음에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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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피난처에 잘 있습니다
이천우 지음 / 북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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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나는 작가다.

세 남매의 타임루프 탈출기란 말에 혹했다.

책을 받고 잠시 타임루프를 다룬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첫 번째 타임루프가 일어날 때 설정에 대한 것이 떠올랐다.

그리고 같은 시간에 되돌아온 세 남매의 각각 다른 같은 시간 보내기를 봤다.

기존의 타임루프 소설과 다른 점은 세 명이고, 이들이 남매란 점이다.

혼자의 힘으로 이 시간의 고리를 깰 수 없고, 힘을 합쳐야 한다.

원인이 무엇인지도 몰라 각자 좌충우돌하면서 나아갈 수밖에 없다.


장남 진태, 차남 진수, 막내 해민. 이렇게 세 남매다.

진태는 아내에게 이혼하자고 한 상태이고, 회사의 정리해고 대상자다.

진수는 댄스 학원에서 만난 여성에게 차인 후 자살 시도 실패를 한다.

해민은 동아리 선배 언니를 짝사랑하면서 자신의 성정체성을 깨닫는다.

각자의 고민이 가득한 상태인데 아버지가 병으로 입원해 있다.

각자의 고민 때문에 각자의 삶을 사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상조회사를 통해 장례식을 치른 후 아버지의 집에서 유품을 정리한다.

비싼 양주를 꺼내 즐겁게 마시고, 오래된 턴테이블을 꺼내 음악을 듣는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8월 5일에 깨어난다.


다시 한 번 더 사는 삶. 각자의 방식으로 다시 살아간다.

진태는 이전 삶을 그대로 따라가고, 진수는 지난 번 실수를 거울 삼아 그녀와 잔다.

해민은 자신의 성정체성을 선배 언니에게 어떻게 드러낼까? 고민하다 선배의 남친을 본다.

아버지는 같은 방식으로 돌아가시고, 세 남매는 장례식의 급을 높인다.

이번에도 같은 술을 마시고, 집 정리를 하다 아버지의 명상록을 발견한다.

젊은 시절 아버지의 기록들. 청춘과 사랑과 후회와 좌절 들이 들어 있다.

어떻게 보면 낯 뜨거운 이야기이지만 아버지의 청춘을 살짝 엿볼 수 있었다.

작가는 여기서 아버지의 글을 현대의 문장이 아닌 그 시대의 문장으로 풀어낸다.

개인적으로 이렇게 풀어낸 문장들이 좋다. 옛날 맛을 볼 수 있다고 해야 하나.


세 남매는 다시 8월 5일에 깨어나고 진태는 지금까지 놓치고 있던 일상을 깨닫는다.

다시 반복된 일상을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변형하고 그대로 이어간다.

이 타임루프를 깰 방법을 생각하면서 말이다.

SF만화가인 해민은 분기점을 떠올리면서 새로운 해결방식을 말한다.

그런데 이 방식이 맞는 것일까? 일단 해보자.

그리고 아버지의 명상록은 어느 새 이야기의 중심에 선다.

아버지가 내뱉은 의문의 여성 에이미. 명상록으로 그 흔적을 따라간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잊고 있던 부모님들의 젊은 시절을 떠올려본다.

제대로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던 그분들의 청춘 이야기.


미래로 나아가긴 위한 세 남매의 도전은 결국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것에서 시작한다.

반복되는 시간 속에서 자신들이 삶을 돌아보고 실패한 부분을 제대로 파악한다.

아버지가 죽기 전에 외치 이름의 여성을 찾아내기 위한 노력도 잊지 않는다.

혹시 그 이름을 아는 사람이 있을까? 친척들에게 전화를 한다.

심부름센터까지 고용해 에이미를 찾는다.

그리고 최고의 장면이 아버지의 병실에서 펼쳐진다.

약간의 신파가 담겨 있지만 세 남매는 최상의 노력을 보여준다.

이 부분을 보면서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면 눈물과 웃음을 자아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읽으면서 예상한 몇 가지는 현실적으로 다루어지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혹시 이 세 남매를 한 번 더 타임루프에 가둔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번개처럼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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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무덤
김종범 사진, 조용훈 글 / 몽트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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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여행을 좋아한다.

최근에도 휴가를 가게 되면 제주도로 간다.

하지만 늘 가던 곳만 가다 보니 보는 곳에 한계가 있다.

익숙한 곳에서 조금씩 변화를 주지만 긴 시간이 아니라 많은 것을 보지 못한다.

두 번째 여행에서 제주 사는 후배 도움으로 일주를 했지만 더 많은 곳에 대한 욕심이 없다.

그러다 최근에는 아이와 함께 오를 수 있는 오름에 올라간다.

조금씩 여행 영역을 넓히지만 한계는 있다.

그렇지만 보는 높이를 바꾸면서 다른 풍경을 보게 된다.

이 사진집을 보면서 가장 충격을 받은 것이 바로 높이와 시선의 변경이다.


많은 제주 여행을 하면서 제주의 무덤에 그렇게 시선을 주지 않았다.

제주의 특이한 돌담과 함께 시선 한 번 던지고 가볍게 지나갔다.

차로 올라가는 오름에서 마주한 무덤도 덤덤하게 보고 정상으로 올라갔다.

길다가 마주한 무덤은 잠시 특이하다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그 이상은 아니다.

그런데 드론으로 찍은 사계절 제주의 무덤은 완전히 다른 느낌이다.

단순히 무덤만 보여주는데 그치지 않고 그 주변도 같이 보여준다.

무덤 하나만이 아니라 몇 개가 같이 놓여 있는 사진도 있다.

하지만 이런 것보다 농산물과 잘 정리된 공간과 함께 할 때 그 감동은 더 강해진다.

하얀 눈 속에 눈에 덮은 나무들과 함께 찍힌 사진은 정말 아름답고 멋지다.

하늘에서 본 무덤과 그 주변이 이렇게 아름답고 화려해도 되는 것일까?


이 사진집에 실린 거의 대부분의 무덤들은 하늘에서 내려다본 사진이다.

몇 개의 사진만이 사람의 눈높이에서 찍은 것이다.

트랙터가 황토 밭을 정리하면서 만든 기하학적 모양들은 또 어떤가.

어떤 사진은 중남미의 미스터리 서클을 떠올리는 모양이었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나?

갈대와 어우러진 무덤보다 역시 외롭게 눈 속에 놓인 무덤에 더 눈길이 간다.

물론 무덤 옆에 심어 놓은 채소를 수확하는 모습을 보면 그 공간이 새롭게 다가온다.

밭 한 가운데 묘자리를 삼았다는 부분은 내륙에서는 흔하게 볼 수 없는 풍경이다.

어쩌면 다른 이유들이 있는지 모르지만 삶의 공간과 딱 붙어 있다.

하지만 이런 무덤도 이장과 개발로 인해 파헤친 무덤이 적지 않다.

사진이 너무 멋지지만 조용훈 작가의 글은 너무 수사가 많고 현학적이다.

나의 낮은 수준에서는 직관적인 사진들이 더 가슴 깊이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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