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바이버 미션 미스티 아일랜드 Misty Island
오가사와라 게이 지음, 김소운 옮김 / 들녘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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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자가 처한 극한의 심리 상태를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책 소개에 의하면 이 장면은 분명히 여자가 죽고, 목이 잘리는 장면이다. 끔찍한 상상력을 자극하는데 곧 장면이 바뀐다. 이 소설의 주인공 아소 리츠가 등장한다. 초보 경찰인 그녀가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다. 피곤에 지쳐 잠시 쉰다고 했는데 늦은 아침이다. 상사로부터 전화가 온다. 그녀가 존경하는 선배 오기노 수사관이 무단결근했으니 한 번 찾아가보라는 부탁이다. 선배의 집으로 찾아간다. 거기에서 그녀가 본 것은 머리가 짤린 선배의 시체다. 이 상황이 그녀를 공포와 공황 속으로 몰고 간다. 그리고 이 사건이 그녀로 하여금 조직 밖에서 이 사건을 수사하게 만든다. 

초반에 강력한 한 방을 날리면서 현실을 벗어난 일본을 보여준다. 시대는 분명 현대인데 설정된 상황들이 현실과 다르다. 자연재해와 경제난으로 일본은 하이퍼인플레이션에 빠졌고, 치안도 그렇게 안정적이지 않다. 경찰은 부패했고, 과학기술은 미래를 앞으로 당겨놓았다. SF소설에 미스터리를 결합했다. 기본 줄기는 미스터리를 따라가고 그 중간에 미래 과학을 집어넣어 새로운 시도를 한다. 그 대표적인 것이 닥터 키시모토다. 그는 실제 뛰어난 뇌 과학자였지만 총격으로 죽고 인공지능 프로그램으로 되살아났다. 비록 노트북 속에 갇혔지만 그가 가진 지적 능력은 변함이 없다. 그녀가 그와의 대화를 통해 사건의 핵심으로 다가가는데 작가의 전공이 가장 잘 드러나는 부분이기도 하다.

머리사냥꾼으로 불리는 범인을 쫓는 아소의 활약을 다룬다. 조직 밖에서 홀로 활약을 하지만 그에게 주어진 조건들은 특별하다. 경찰의 데이터베이스에 무제한 접근이 가능하고 수사한 내용을 보고하면서 공유하지 않는다. 보고된 정보가 부패한 경찰에 의해 악용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같은 조직에 있는 동료에게는 휴직한 것으로 되어 있지만 머리사냥꾼 사건이 발견된 곳으로 언제든지 갈 수 있고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여기에 인공지능 닥터 키시모토와의 작업은 다른 시각에서 사건을 보게 만들고 그 이전까지 몰랐던 단서를 하나씩 찾아내게 된다. 그런데 그 단서를 뒤쫓아가면 먼저 도착한 사람이 있다. 바로 그녀가 동경했던 선배 오기노 수사관이다.

사건 현장과 범인이 남긴 손디 카드로 프로파일링을 한다. 하지만 정확한 정보가 부족하다. 단지 몇 가지 가능성을 암시할 뿐이다. 머리사냥꾼에게 희생당한 가족들을 찾아가서 발견한 단서를 확인하지만 그 누구도 모른다. 연결고리가 사라졌다고 생각하는 순간 새로운 시체가 발견되고 수사는 이어진다. 그리고 닥터 키시모토의 과거사가 중간중간 나오면서 새로운 과학수사의 역사를 보여준다. 동시에 이 사건이 단순히 현재에 일어난 것이 아니라 과거와 연결되어 있음을 알려준다. 부패와 경제난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실에서 과거의 자료를 제대로 찾기는 쉽지 않다. 경찰 수사가 발로 뛰는 것이 대부분임을 생각하면 혼자 할 수 있는 것은 더욱 한계가 보인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다.

수사가 진행됨에 따라 드러나는 사실들 중 하나가 머리사냥꾼에 죽인 사람들이 모두 여자란 것이다. 보통 머리를 절단하는 이유가 신분을 속이기 위해서인데 이 소설은 그런 설정과 전혀 관계가 없다. 오히려 닥터 키시모토의 연구와 연관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게 된다. 어쩌면 뇌의 기억 추적을 통해 범인을 밝혀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지도 모른다. 앞에 깔아놓은 몇 가지 장치는 범인에 대한 추론을 다른 곳으로 돌리게 만들고 마지막 반전은 고전 스릴러의 오마주처럼 다루었다. 그리고 왜 그녀가 수많은 능력 있는 형사들을 제치고 이 수사를 맡게 되었는지 알려줄 때 제목이 의미하는 바가 드러난다. 

미스터리 소설로 가독성이 좋고 재미있다. 하지만 첫 부분을 읽으면서 눈길이 더 간 부분은 도쿄에 대한 설정이다. 자연재해와 경제난이 왠지 모르게 현재의 일본과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왜 작가는 이런 도쿄를 설정하고 이야기를 풀어내었을까 궁금했다. 단순히 현실에 대한 불만과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그랬을까? 아니면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인식 때문일까?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소설 속 현실이 결코 일본만의 문제가 아님을 깨닫는다. 부패한 정치와 경찰과 검찰의 결합이 만들어내고 있는 현실을 보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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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마처럼 비웃는 것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5
미쓰다 신조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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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깔아놓은 미묘한 문장에 완전히 속았다. 아니 내가 잘못 읽은 탓이 더 크다. 범인의 정체가 밝혀진 후 작가의 말과 다르지 않느냐하고 생각했는데 다시 찾아서 읽어보니 서툰 나의 실수가 눈에 들어온다. 덕분에 나의 범인 찾기는 완전히 딴 곳 보기가 될 수밖에 없었다. 뭐 이렇게 독자를 잘 속이는 작가가 좋은 작가이기는 하다. 하지만 이 작품이 반전 혹은 가설의 연속으로 이어지면서 마지막에 도달하는 것은 조금 아쉽다. 또 다른 사실과 반전이라는 부분에 주목한다면 다르겠지만 그래도 개인 취향을 조금은 탄다.

전작처럼 괴담과 관련하여 이야기가 진행된다. 괴담의 시작은 고키 가의 넷째 아들 노부요시의 수기부터다. 하도 삼산의 성인 참배를 위해 산을 오르기로 한 노부요시의 하룻밤 경험담이 중심에 있다. 그는 아버지와 형들에 대한 반감 혹은 열등감 휩싸여 있다. 이 감정을 조금은 떨쳐버리기 위해 성인 참배에 참석하기로 했다. 그런데 그는 어릴 때부터 산과 친하지 않았고, 산을 오르락내리락 한 경험도 적다. 다만 할머니를 통해 들은 괴담은 풍부했다. 이 풍부한 괴담의 기억이 그의 산행을 알 수 없는 공포와 미신의 늪으로 빠트리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모든 사건의 핵심에 다가갔다는 것도 역시.

도조 겐야가 하도로 온 것은 노부요시의 수기 때문이다. 이 수기에 실린 산마가 괴담 수집가인 그를 자극했다. 부름산에서 일어난 다쓰이치 일가의 밀실사건도 큰 관심을 끌었다. 이 사건 이전에 잠시 산마 전설 때문에 이곳을 방문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이전에는 단지 선배와 함께 괴담을 수집하러 온 것이고 지금은 괴담의 중심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벌어지는 연쇄살인사건은 구마도 여섯 지장 동요의 재현이자 공포에 깊이를 더하는 작업이다. 왜 이런 살인사건이 발생하게 되었는지 되짚어보면 작가가 여기저기 깔아놓은 복선의 힘을 조금씩 깨닫게 된다.

모든 사건은 부름산과 관계있다. 다쓰이치 일가의 묘한 실종과 금맥과 관련된 과거 이야기는 부름산 산마 전설과 여섯 지장 동요와 엮이면서 복잡한 이야기 구조를 형성한다. 너무 흔하게 다루어지는 밀실이지만 여전히 유효함을 보여주는 이 밀실사건은 밀실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만들고, 또 다른 트릭과 연결된다. 어디서 그 정확한 흐름을 내가 놓친 것인지는 모르지만 기발하면서 어리둥절한 트릭이다. 잘못된 출발에서 시작한 나의 착각이 제대로 범인에게 다가가는 것을 어렵게 만들었고 그 유명한 홈즈의 추리방법을 잊게 만들었다. 그러니 범인 찾기는커녕 연쇄살인의 동기조차 제대로 파악 못한 것이다.

전작 <잘린 머리처럼 불길한 것>에서 도조 겐야가 잠시 등장한 것과 달리 이번에는 처음부터 등장한다. 이런 구성은 이전에 긴다이치 시리즈에서도 잠시 만난 적이 있다. 민속학과 미스터리의 연결이라는 부분에서 요코미조 세이시의 흔적이 보이는데 어디까지 그의 영향력이 이어져있는지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처음부터 등장한 겐야는 많은 탐정소설의 주인공 같은 실수를 저지른다. 바로 범인은 찾아내지만 연쇄살인사건은 완전히 막아내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을 통해 다양한 이야기와 트릭과 인간관계를 만든 것은 분명히 다음 작품에서 멋지게 활용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특히 도조 가문 이야기는 더욱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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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항설백물어 - 항간에 떠도는 백 가지 기묘한 이야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2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금정 옮김 / 비채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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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기다렸던 작품이다. 전작 <항백설물어>를 재미있게 읽었고, 이 작가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전작에 대한 기억이 조금은 흐려진 상태에서 읽기 시작했는데 흡입력은 변함이 없다. 읽으면서 반가운 사람들이 한 명씩 나올 때마다 전작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읽었다. 그리고 새롭게 등장한 인물과 함께 전작과 다른 전개는 신선함을 주었다. 어느 부분에서는 약간의 매너리즘이 느껴지기도 했는데 그것은 낯설거나 비슷한 지명과 전설 등이 혼란을 줬기 때문이다. 

모두 여섯 편이 실려 있다. 전작도 모모스케가 사건의 중심에 자리를 잡았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물론 사건을 해결하는 인물은 모사꾼 마타이치 일행이다. 하지만 각 이야기 속에서 전체를 총괄하고 그 사연을 풀어서 해설하는 인물은 모모스케다. 직접 그 사건의 중심에 사로잡혀 경험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전작에서 그가 경험한 일과 마타이치 등과의 관계 때문에 주변 사람들의 중간 연락책 역할을 담당하기도 한다. 여기에 괴담 수집하기를 좋아하지만 피 보기를 두려워하는 성격은 괴담의 외피를 덮어쓰고 있는 이 작품에 딱 맞는 인물이다. 

전작도 그렇지만 이번 작품에서도 괴담은 모든 이야기의 중심에 있다. 이마에 돌멩이가 박혀 죽은 사건을 다룬 노뎃포, 목을 베어도 다시 살아나는 불사신 요괴 기에몬을 다룬 고와이, 갑자기 결혼 전에 사라진 여인과 잇달아 발생하는 화재 이야기인 히노엔마, 바닷물로 선박을 침몰시키는 유령선 전설의 후나유레이, 반복되는 끔찍한 살인의 저주를 다룬 사신, 한 무사의 눈에 계속해서 보이는 죽은 영주의 유령을 다룬 로진노히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 각각의 이야기는 개별적이면서 동시에 하나로 이어진다. 이번 작품이 전작과 다른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다. 

마타이치 일행의 놀라운 능력은 이번에도 여지없이 펼쳐진다. 그런데 중간중간 강적이 등장한다. 이 등장은 그들의 숨겨진 과거를 하나씩 밖으로 드러내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 과거가 괴담과 연결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지독하게 현실적이고 이기적이다. 복수, 탐욕, 살인, 욕망, 사랑, 충성 등은 이야기의 바탕으로 작용하면서 인간의 욕망과 공포를 자극한다. 이번 작품에서 중심을 차지하는 이야기는 다섯 번째 이야기 사신이다. 이 이야기가 앞의 이야기와 연결되면서 마지막 이야기와 이어지고 공포와 더불어 가장 끔찍한 사건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모든 악이 하나로 뭉친 듯한데 그 시대의 상황이 진실에서 눈을 가리는 역할을 한다. 아마 현대도 미래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이번 소설을 읽으면서 다른 일본 소설을 읽을 때 느낀 것을 다시 느꼈다. 그것은 괴담이나 문화의 전래를 중국 대륙에서 직접 가져온 것으로만 그려낸 것이다. 가끔 조선에서 유래한 귀신 등을 만날 때도 있지만 문화에 대해서는 왠지 모르게 대륙설이 대부분이다. 물론 중국 대륙에서 직접 온 것도 많을 것이다. 중국 동쪽을 왜구로 침략하고 노략질했던 기록이 많은 것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 인정한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의도적인 선별 작업이 느껴진다. 이것이 단순한 문화 애국주의의 발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괴담이나 문화에 대한 부분을 읽을 때면 늘 느끼는 아쉬운 혹은 안타까운 감정이다.

그리고 하나 더. 이 작품의 끝 장면을 보면 다음 이야기가 더 없을 것 같은데 나오키 상을 수상한 <후 항설백물어>이 남아 있다. 이 시리즈를 좋아하는 입장에서 반가운 정보다. 과연 어떤 식으로 다음 이야기를 만들어내었을지, 또 마타이치 일행은 어떤 활약을 할지 상상의 날개를 펼치게 된다. 그리고 변함없이 자국의 괴담을 이렇게 멋지게 미스터리 소설을 만들어낸 것에 부러움을 느낀다. 우리도 전설의 고향 같은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서 멋진 미스터리 소설로 만들어낼 날이 오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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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인의 항아리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1
오카지마 후타리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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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작품이다. 가상현실을 다루고 있는데 이 때문에 영화 <매트릭스>와 <인셉션>을 연상시킨다는 평이 나온다. 시간적으로 보면 상당히 앞선 작품이다. 이 당시나 이전에 가상현실이나 아바타 등을 다룬 sf소설이 나왔던 것을 생각하면 뭐 특별한 것이 있을까 싶다. 그런데 제목처럼 가상세계와 현실을 구분할 수 없는 전개 때문에 색다른 느낌과 재미를 전해준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이 과연 마지막인지 아니면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시발점인지는 각자에게 열려 있다. 만약 이 세계를 더 즐기고 싶다면 또 다른 세계가 만들어질 수도 있다.

저작권 사용 계약서가 가장 먼저 나온다. 이 계약서가 의미하는 바를 음미하기 전에 도망치는 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산속 낡은 건물로 숨어든 그는 자신이 꼬리를 삼키는 뱀 같다고 느낀다. 이 바로 앞에 이 계약서가 진짜임을 강조하는 글들이 나온다. 왜지? 그리고 단지 게임 계약을 했을 뿐인데 왜 이렇게 도망을 다니지 하는 의문이 생긴다. 그리고 바로 과거 속 이야기로 들어가서 그의 경험을 들려준다. 이 모든 일들이 어떻게 시작했는지 말이다.

주인공 우에스기는 게임북 공모전에 브레인 신드롬이란 작품을 제출한다. 분량 초과로 떨어진다. 하지만 이 작품에 관심을 가진 업체가 나온다. 바로 입실론 프로젝트라는 게임회사다. 이 소설 제일 앞에 나온 계약서의 당사자다. 예상하지 못한 계약과 함께 그는 전혀 새로운 형태의 기계를 만나게 된다. 프로토타입으로 불리는 장갑이다. 그런데 이 장갑 정말 대단하다. 현재의 기술로도 구현이 불가능할 것 같은 놀라운 현실감을 준다. 이 놀라운 경험을 한 후 1년 반 정도 회사에서 연락이 없다. 혹시 게임 개발은 없어진 것일까? 계약금을 모두 받았지만 그보다 자신의 원작이 게임으로 만들어진 것을 보고 싶다. 아르바이트로 살아가던 그에게 회사에서 연락이 온다. 개발이 완료되었다고 말이다.

새롭게 만들어진 게임은 클라인-Ⅱ로 불린다. 회사는 원작자인 그에게 테스트 플레이어가 되어주길 바란다. 프로토타입이 손만으로 가상 경험을 하게 한다면 클라인-Ⅱ는 전신을 덮으면서 가상현실로 인도한다. 이 놀라운 기술은 게임 속으로 사람을 데리고 가서 실제와 같은 경험을 하게 한다. 인터넷으로 우리가 경험하는 것 이상의 엄청난 기술이다. <인셉션>의 세계와 비교한다면 조금 비슷할까? 그런데 이 개발이 완전하지 않다. 오류가 생긴다. 물론 이런 오류를 잡아내기 위해 그를 데리고 왔지만 이상하다. 이것은 다른 테스트 아르바이터 리사와 연결되면서 더욱 의심을 불러온다. 게임의 새로운 방향도 만들어지지만 말이다.

가상현실을 다루는 작품들이 많이 보여주는 설정을 이 소설도 따라간다. 무엇이 먼저인지는 논외로 하고 이 설정이 얼마나 독자에게 공감대를 형성하는가가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충분히 얻었다고 본다. 물론 중간에 허술한 트릭 하나를 발견하고,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 일부를 예상하게 되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흩어버림으로써 열린 결말을 만들어 독자의 상상력을 키웠다. 내가 기억하는 현실이 진짜 현실인지, 아니면 만들어진 현실인지 묻게 만들면서 심하게 비약하면 지금 이 책을 읽고 있는 나도 현실인지 의문을 품게 한다. 뭐 이런 작품을 볼 때면 늘 생각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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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는 아니지만 - 구병모 소설
구병모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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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구병모의 첫 소설집이다. 온라인서점에 접속해 책 정보를 먼저 본 사람이라면 알 수 있지만 서점에서 그냥 책 표지를 봤다면 장편으로 착각할 수 있다. 표지 어디에도 소설집이란 문구가 없기 때문이다. 가끔 이런 책들을 만난다. 요즘은 대부분 인터넷서점에서 주문을 하기에 단편집임을 알지만 오프라인에서 사거나 이벤트 등으로 받을 경우 첫 단편에서 호흡을 놓치고 재미가 반감되는 경우가 많다. 언제부터인가 책 표지에 이런 문구가 사라지고 있다. 단편에 대한 선호도가 떨어지기에 그렇다고 생각하지만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렇지만 뒤에 수록작품의 발표지면을 표기한 것은 반갑고 고맙다. 가끔 어느 단편이 먼저 발표되었는지 궁금한 소설집을 만날 때가 있기 때문이다.

모두 일곱 편이다. 이중 두 편은 신작이다. 작가의 소설을 처음 읽는데 서평으로 먼저 만난 적이 있다. 특히 <위저드 베이커리>의 호평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다음 작품 <아가미>도 호평을 받았고, 이 두 작품 때문에 이 작가에 대한 호감도가 상당히 높아졌다. 물론 더불어 선입견도 생겼다. 처음 이 책을 받았을 때 위에서 말한 장편 착각을 했다. 목차를 보면서 확인하니 단편임을 알게 되었는데 자칫 잘못했으면 장편의 호흡을 읽을 뻔 했다. 몇 번의 시행착오가 만들어낸 확인 작업이지만 그래도 가끔 놓치는 경우가 있다. 

선입견과 첫 작품이 이 소설집이 어떨 것이란 첫 인상을 심어줬다. 물론 다른 단편을 읽으면서 이런 선입견들은 깨어졌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채우기 시작한 것은 한참 한국 단편소설을 읽을 때 느꼈던 누군가의 흔적들이다. 당연히 부정확하고 저질인 기억력은 명쾌하게 답을 내놓지 않는다. 최근에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아쉬움 중 하나다. 분명 어딘가에서 비슷한 분위기의 소설을 읽은 적이 있는데 하는 감이 오기 때문이다. 이것을 단순히 기시감으로 치부하면 간단하지만 그 동안 읽은 내공이 있어 이것을 거부한다. 그렇다고 이 소설의 재미를 방해한 것은 아니다.

<마치 ……같은 이야기>는 비유가 사라진 도시 이야기다. 개인적으로 문장이 간결하고 사실적인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 딱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런데 아니다. 비유가 사라졌다고 문장이 더 사실적이고 간결해지는 것은 아니다. 상상력이 고갈되고 삶이 건조해질 뿐이다. 인간이 사라지고 기계로 대체된 도시라고 해야 하나. 점점 더 많은 효율이 우리 사회에 자리를 차지하면서 인간성이 어떻게 메말라 갔는지 생각하면 마치 미래 사회 같은 이야기다. 언론 통제로 인한 현재도 물론 가능하다.

<타자의 탄생>은 어느 날 알 수 없는 금속에 갇혀 땅에 묻힌 남자 이야기다. 밖으로 드러난 것은 상반신 일부와 한 판이다. 처음에는 누가? 왜? 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이에 대한 답을 내놓지 않는다. 이야기는 그를 끄집어내는 것이 불가능해지는 순간 그를 둘러싼 환경의 변화에 눈길이 간다. 호기심의 대상에서 연민의 대상으로, 점점 더러워짐에 따라 혐오의 대상으로 변한다. 이 변화가 우리의 심리 변화 과정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마지막 장면의 다음 반응이 어떨지 궁금하다.

표제작 <고의는 아니지만>은 지독한 현실 앞에 놓인 한 유치원 교사 이야기다. 그녀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다고 하지만 그 선의 뒤에 숨겨진 본심과 힘겨움과 지겨움은 어느 순간 폭발한다. 그녀의 폭발에 공감대가 형성되지만 그렇게 만든 사회 구조에 더 눈길이 간다.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는 가족의 일상이 자신의 직업 테두리 밖에 있을 때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 잘 보여준다. 그녀의 폭발을 참았어야지라고 말 못하겠다. 이기적인 학부모의 행동은 며칠 전 회사 동료가 말해준 한 어머니의 반응이 생각난다. 담임이 공차다가 늦게 들어온 아이에게 발로 흉내 내면서 가볍게 툭 댄 것을 ‘그 선생 미친 거 아냐!’ 하면서 교육청에 신고하니 마니 했다는 엄마다. 물론 발로 찼다면 다른 문제겠지만 그것을 본 동료의 딸 이야기는 흉내 정도였다. 지독한 과잉보호와 이기주의가 교육계 비리에 대한 방패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조장기>는 제목만 보아서는 티벳의 조장 풍습이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소설 속에서는 살아있는 사람들이 새들에게 공격을 받아 죽는다. 히치콕의 <새>라는 영화가 연상되지만 실제는 그런 공포 소설이 아니다. 못생겨서 제대로 된 아르바이트도 직업도 구하지 못하는 한 20대를 통해 절망으로 가득한 현실의 풍경을 보여준다. 새들이 공격하는 사람이 바로 이 절망 가득한 사람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그런데 현실의 힘겨움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한 이들에게는 마지막 장면처럼 부러운 현실인지도 모른다.

<어떤 자장가>는 대필로 생계를 유지하는 한 엄마의 아이 잠재우기 사투 이야기다. 끔찍한 상상과 현실이 교차하는데 그녀의 고통이 조금은 이해된다. 조금만 이해되는 것은 얼마 전 이 사투를 직접 경험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출근 전 남편이 잠자는 아이를 보면서 “세상 모든 아이들의 얼굴은 잘 때가 제일 예쁜 법”(172쪽)이라 맘속으로 말하는데 그 처절했던 아내의 사투가 겹쳐지면서 후배 아내가 남편이 아는 것은 극히 일부라는 말이 갑자기 떠오른다.

<재봉틀 여인>은 옛 기억을 되살려주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교사의 폭력이다. 이 교사 똑똑하다. 그 장면을 촬영할 수 없게 휴대폰을 모두 압수했다. 현실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학생들의 증언으로 문제가 되겠지만 말이다. 이 폭력 때문인지 학생은 만물수선집에서 재봉틀 여인을 만나 감정을 꿰매어버린다. 감정이 메말라버린 청년에게 벌어진 현실은 또 다른 88만원 세대의 은유다. 연애도 사랑도 결혼도 할 여유도 기대로 사라진 그들의 초상화다.

<곤충도감>은 성범죄자에게 전자발찌를 채우면서 생기는 부작용을 말한다. 그 어떤 성욕도 용납되지 않는 비현실적인 상황에서 감정은 거세당한다. 인간성이 사라진 곳에 감정이 제대로 남아 있을 리 없다. 이성은 작용을 하지만 삶의 의지는 꺾여 있다. 그런데 문제는 전자발찌를 찬 남자가 성욕이 과다하게 발생하면 몸에 심어져 있는 생명체에 의해 죽게 된다는 것이다. 범죄예방에 좋을지 모르겠지만 인권을 생각하면 다르다. 물론 누구의 인권이 더 중요하냐? 하는 문제가 남아 있다. 현실에서 전자발찌와 성욕억제 약물 투여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에 대한 작가의 답인 것 같은데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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