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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화전 - 지상 최대의 미술 사기극 ㅣ 밀리언셀러 클럽 133
모치즈키 료코 지음, 엄정윤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8월
평점 :
절판
제목만으로 내용을 짐작하기 쉽지 않다. 회화란 제목이 들어간 것을 보면 그림 관련 미스터리다. 뒤편을 보면 위작, 도난, 밀매, 그리고 인생역전! 이란 단어가 보인다. 여기에 고흐의 명화 <가셰 박사의 초상>을 둘러싼 사기 게임이란 광고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대충 어떤 식으로 이야기가 흘러갈지 짐작이 된다. 하지만 이 짐작은 책을 읽으면서 점점 사라진다. 일반적인 미술품 미스터리와 전개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진실은 가려져 있고 사기와 욕망과 오해 등이 복잡하게 엮여 정신없이 흘러간다.
도입부를 볼 때만 해도 어느 경매장 풍경과 다름없다. 고흐의 <가셰 박사의 초상>을 원하는 한 외국인이 있다. 그는 자신이 낙찰 받을 수 있다고 자신한다. 하지만 이 당시는 일본 버블 경제가 절정기를 달리던 1990년이다. 자신들이 원하는 것이라면 어떤 금액을 지불해서라도 얻고 말던 시기다. 당연히 머니 게임에서 그는 패한다. 이 그림은 일본돈 180억 엔에 일본인에게 낙찰된다. 이 낙찰 정보가 흘러나올 때만 해도 이 그림을 훔치는 치밀한 작전이 펼쳐지겠지 하는 예상과 함께 요즘 중국인들이 세계 미술 시장의 큰손이 되었다는 소식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뭐 이 둘은 소설 속에서 아무 관계가 없지만.
시골 부자집 장남으로 경영 감각이 없는 소스케는 당연하게도 사업에 실패한다. 그의 과거를 보면 전형적인 겉멋 가득한 사업가다. 이런 사람의 결과는 거의 대부분 정해져있다. 집에서 오는 지원이 끊어지면 사채에 손을 벌이고, 다시 집에 애원하는 수순을 밟는다. 어머니가 몰래 생활비 등을 마련해준다. 하지만 이것도 한계에 달했다. 이때 한 남자가 다가온다. 주식 사기로 돈을 벌고 있던 야쿠자 야부키다. 주식 사기에 소스케를 끼어주겠다고 말한다. 필요한 돈은 천만 엔이다. 최소 3배, 많으면 10배 이상 벌 수 있다고 말한다. 딱 봐도 사기다. 그러나 돈이 궁한 그에게 이것은 다시없을 기회다. 어머니에게 어렵게 부탁해 천만 엔을 입금한다. 그 후 당연히 야부키와 연락이 되지 않는다.
아카네. 긴자 호스테스 출신이다. 거품 경제 시기 아주 잘 나갔다. 업소 탑을 다툴 정도였다. 하지만 그녀도 거품의 끝자락에 빚 때문에 야반도주한다. 10년 간 지방을 돌아다니며 작은 가게를 겨우 차려서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한 통의 전화가 온다. 그녀가 떼먹은 빚에 이자까지 갚으라는 전화다. 이자가 이자를 쳐서 원금 천만 엔을 넘어 3천만 엔 이상된다. 이때 자신에게 선물을 주고 있던 한 남자가 주식 사기에 대한 정보를 준다. 최소 천만 엔이 필요하다. 그가 5백만 엔을 도와준다. 나머지는 그녀가 가게 담보 대출을 채운다. 역시 이것도 사기다. 채권자에 대한 공포와 욕심이 엮이면서 환상을 만들어낸 것이다.
사기 당한 두 사람이 만난다. 서로를 의심한다. 이때 아카네 가게로 찾아오곤 했던 한 남자가 등장한다. 시로타다. 그는 엄청난 도난극을 제시한다. 그의 계획은 무모하고 대범하고 직선적이다. 이 계획을 보면서 왜 이들을 계획에 끌어들였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단순히 사기 당한 것에 대한 회복이라고 말하기엔 둘은 너무 평범하다. 의문은 의심으로 바뀌고, 그 순간 새로운 사실들이 하나씩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이 엄청난 계획이 품고 있던 원래 설계가 드러나는 순간까지 복잡하게 엮이면서 이야기는 흘러간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르면 친절한 설명으로 전체 윤곽을 하나씩 이해하게 된다. 아마 이 부분이 없었다면 이 소설은 허공에 붕 뜬 상태에서 끝났을 것이다.
소스케. 아카네. 시로타. 세 명 중 둘은 장기판의 단순한 말이다. 그들을 움직이는 인물은 따로 있다. 이 거대한 계획을 기획하고 진행한 인물은 다른 사람이다. 이 소설의 재미는 바로 이 인물이 등장하고 왜 이런 계획을 세웠는가 알려줄 때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 와중에 거품경제 시기 고액의 미술품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보여준다. 아카네의 빚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도 알려준다. 보통 사람들의 감각과 상식으로는 전혀 이해되지 않는다. 이해불가능의 세계에 대한 반전을 노리고 펼쳐지는 이야기가 바로 대회화전이다. 이것은 제목이자 책 중간중간에 나오는 전시회 광고이자 미술품 시장에 대한 풍자다. 진정한 재미를 누리기 위해서는 조금 인내를 가지고 끝까지 읽어야 하는 단점이 있지만 읽고 난 후에는 미술세계에 대한 환상이 깨지는 동시에 거품경제가 어떤 것인지 조금을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