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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청접대과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2
아리카와 히로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처음 제목을 보았을 때 현청에 접대과라니 대담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눈에 음란마귀가 살아서 그런지 이 접대를 룸살롱 접대 등과 연결해서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책을 펴고 읽자마자 판다 유치론이 나오면서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이십 몇 년 전 한 독특한 현청 직원이 고치 현 신생 동물원의 상업적 성공을 위해 기획한 것이다. 이 계획은 고치 현의 관광을 부흥하기 위한 시도이지만 관료 조직의 안일하고 복지부동의 자세 때문에 실패로 돌아간다. 이 입안자는 한직을 전전하다가 실망하고 현청을 떠난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그해 고치 현청 관광부에 접대과가 발족했다.
관광부 소속 접대과라고 하니 금방 감이 오지 않는다. 일본과 다른 용어의 문화 때문인지 아니면 접대를 너무 그런 쪽으로 생각해서 그런지 모르지만 이 이름과 관광 부흥을 연결할 수 없었다. 현의 관광 발전을 위해 독창성과 적극성을 갖고 새로운 기획을 착착 내놓으라는 지사의 훈시가 있었지만 처절할 만큼 공무원인 그들에게 이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이때 한 직원이 관광 홍보대사를 도입한 다른 지자체의 경우를 말한다. 이것도 몰랐던 과장과 다른 직원들은 이 기획을 찬성하고 진행한다. 독창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진정’, ‘처절할 만큼’, ‘뼛속까지’, ‘공무원’이었다.
이 기획을 낸 직원은 과에서 가장 젊은 스물다섯 살 가케미즈 후미타카다. 현 출신의 연예계, 스포츠계, 문화계 유명인들에게 무료 할인 쿠폰이 든 홍보대사명함을 전달해서 그들에게 배포시키려는 계획이다. 이것에 비하면 지역 출신과 상관없이 홍보대사를 인명하는 한국의 지자체가 새삼 대단하게 다가온다. 이 계획을 위해 전화나 메일로 유명인에게 연락을 했는데 가케미즈에게 한 통의 답 메일이 온다. 소설가 요시카도 교스케다. 이 둘의 연결에서부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한다. 대외적인 업적과 성과만을 내세운 관청이 아닌 실제 도움이 되는 성과를 내는 접대과로의 변화가.
흔히 공무원이나 공사 직원이 되면 가장 똑똑했던 사람들이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멍청해진다는 말을 한다. 이것은 그 사람의 자질 문제가 아니라 조직 문제다. 조직이 요구하는 쪽으로 사람의 생각과 행동이 맞춰지기 때문이다. 속된 말로 ‘복지안동’하는 공무원이 된다. 이들의 기획은 민원이 적거나 자신들에게 불이익이 없거나 편리한 쪽으로 흘러간다. 시장이나 구청장이 새롭게 온다고 하지만 그들은 몇 년 지나면 사라지고, 어떤 문제가 생겨도 자신들의 책임은 어딘가로 전가된 채 없어지기 때문이다. 민간 업자들에게 이런 사람들은 봉이나 다름없다. 현실 감각이 떨어지다 보니 눈속임으로 속여먹기 좋은 대상이 된다. 퇴직 후 이들이 사기꾼들의 가장 좋은 먹잇감이 되는 것도 이런 연장선에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젊은 만큼 때가 덜 묻은 가케미즈는 요시카도의 냉철하고 정확한 지적을 잘 받아들인다. 소설에 의해 과장된 부분이 있지만 열성적으로 요시카도의 의견을 접대과에 전달한다. 전형적인 공무원들인 접대과 직원들의 사고는 틀 속에 갇혀 있다. 이것을 깨기 위해 민간 감각을 가진 새로운 스텝과 외부 인사의 영입이 필요하다. 이렇게 계약직 다키와 이십 몇 년 전 판다 유치론을 주장한 기요토가 등장한다. 물론 이 둘의 등장이 바로 고치 현의 관광 부흥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기요토의 아이디어는 그들이 당연하고 별것 아니라고 생각한 것을 유기적이고 창의적으로 연결한다. 이 책을 읽은 후 지방 도시를 둘러보니 새롭게 다가오는 것이 많았다.
아무리 아이디어가 좋다고 해도 이것을 실행하는 것은 역시 관청이다. 당연히 저항이 있다. 가장 먼저 접대과에서부터 그렇다. 이런 저항과 반대를 하나씩 깨고 고치 현이 가진 관광 자원을 하나씩 보여주고 문제점과 해결점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려낸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여행했던 몇 곳의 이미지가 스쳐지나간 것은 이 아이디어가 독특하거나 특별해서가 아니라 유기적이고 실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사는 사람의 입장이 아니라 여행자의 위치에서 자신들이 가진 관광 자원을 돌아볼 기회를 제공하는 내용과 이를 하나씩 깨닫게 되는 가케미즈의 모습은 약간 더디지만 충분히 매력적이다.
여기에 다키와 가케미즈의 풋풋한 사랑이야기와 요시카도와 사와의 묘한 긴장감(?)이 주는 재미도 상당하다. 연애소설이니 이들의 사랑이 가장 바탕에 깔려서 진행된다. 개인적으로 이 사랑보다 현청 접대과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갈등과 가케미즈의 깨달음과 성장이 더 마음에 들었지만. 요시카도가 내세운 관청에 민간 감각을 도입하자는 취지는 이미 한국에서 많이 실행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대외적 이미지를 위한 표어일 뿐이다. 현실에서 그들은 아직도 공무원이다. 읽으면서 가케미즈를 응원하게 되는 것도 그가 자신의 의식을 바꾸고 행동으로 옮기면서 성장해나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흔넷의 젊은 과장 시모모토 구니히로의 모습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조직의 수장 역할과 그의 나이가 젊다고 말하는 조직의 노쇠함 등. 한국과 너무나도 닮은 일본의 모습을 보면서 지금 우리의 현실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