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신부 진이
앨랜 브렌너트 지음, 이지혜 옮김 / 문학수첩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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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뒤적였던 것은 바로 작가의 이력이다. 읽기 전에 작가가 한국계 미국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읽으면서 혹시 하는 마음이 계속 생겼다. 그것은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작가의 이해와 표현이 한국 작가의 그것과 별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어떤 부분에서는 오히려 더 한국적이었다. 19세기 말 경상도 보조개골에서 태어난 한 여자 아이의 일생을 함축적이면서 파란만장하게 표현하였기 때문이다. 또 읽으면서 몇 번이나 눈시울을 붉혔고, 그 시대의 한계에 분노했다.

 

이 소설을 읽기 전 멕시코 등 이주 노동자를 다룬 작품을 읽은 적이 있다.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분노와 애절함으로 가득 차 있다. 물론 사람 사는 곳이다 보니 사랑도 넘쳐난다. 하지만 이 작품 이전에는 하와이 이주와 사진신부라는 것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미국 본토와 다른 곳은 기억하고 있었지만. 그리고 사진신부로 중매가 이루어지고, 이 결혼으로 먼 타국으로 홀로 간 여성들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이 사신신부가 한국만의 문화적 현상이 아니라는 것은 일본 사진신부들을 통해서 알게 되었지만 그 시대의 풍경과 문화를 아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사진신부 진이의 본명은 섭섭이다. 흔한 한국 이름처럼 아들이 아니라 섭섭하다는 의미에서 지은 것이다. 이 이름을 평민이 지었다면 그럴 수도 있지 하고 생각했겠지만 양반 가문에서 이렇게 지었다. 이 부분에 대한 고증은 좀더 필요하지만 조선 시대 이후 자주 보아왔던 이름이라 크게 거부감은 없다. 그리고 당연하게 아버지는 여자에게 글을 가르치지 않는다. 출가외인이란 인식 때문에 일곱 살이 되면 밖에 놀게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느날 신문 조각을 줍고 이것을 오빠에게 읽어달라고 요청한다. 이것을 듣고 바깥 세상에 대한 동경과 갈망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낯가림이 심하던 한 소녀에게 변화의 바람이 분다.

 

그녀가 글을 배우게 되는 곳은 집이 아니라 병든 이모 댁에 갔다가 만난 기생 석란이다. 석란 선생을 통해 한글을 배우고 읽게 된다. 글을 한 번 배우게 되면서 배움에 대한 갈증은 더 커진다. 하지만 아버지에게 말할 수는 없다. 그러다가 친구 선이가 하와이 사진신부를 말한다. 공부를 더 하고 싶은 섭섭이는 아버지에게 공부하고 싶다고 말했다가 맞게 된다. 이 날 이후 선이를 통해 사진신부를 구하는 매파가 다가온다. 매파가 부채질하는 환상과 공부에 대한 열정 때문에 예쁘게 화장한 후 사진을 찍는다. 여성 억압적인 현실을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에서 아주 큰 결심을 한 것이다.

 

스스로 못생겼다고 생각한 그녀를 선택한 남자가 있다. 노 씨다. 사진을 보면 나쁘지 않다. 그녀의 사진처럼 그의 사진도 윤색되어 있다. 진실을 알게 되는 것은 하와이에 도착해서 그를 보았을 때다. 그와 함께 하룻밤을 보내고 농장에서 본격적인 부부생활을 하면서 그녀의 삶은 새로운 억압 속으로 굴러떨어진다. 남편의 주사와 폭력과 도박이 이어지고, 아내가 돈 벌어오는 것을 자기 위신 깍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때린다. 임신한 아이가 유산된다. 이민 온 한국 남자들의 가정은 한국의 그것과 별 다른 차이가 없다. 그녀는 공포를 벗어던지고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해 농장을 떠난다. 그녀의 진실된 삶이 펼쳐지는 것은 바로 이때부터다.

 

섭섭이란 이름 대신 진이라고 불러준 것은 기생 석란이다. 이때의 기억이 그녀가 창녀촌에서 일하는 거부감을 덜어주었는지 모른다. 어머니에게 배운 바느질로 돈을 번다. 그녀의 가슴 한 곳엔 민며느리로 들어온 송이가 있다. 돈을 벌어 그녀를 데리고 오고 싶어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녀의 바람을 그대로 이어주지 않는다. 파란만장한 그녀의 삶이 하나씩 펼쳐진다. 하와이 행 배를 같이 탄 여자 친구들과의 인연과 새롭게 하와이에서 사귄 친구들의 이야기가 다양하게 풀려나온다. 그 속에서 만나게 되는 사연들은 그 시대의 한계를 그대로 보여준다. 역사를 생각하지 않으면 전혀 알 수 없는 아픔들이다. 그렇지만 사랑과 우정도 같이 이어진다.

 

짧은 시간이 아닌 한 여성의 일생을 다루다보니 분량과 상관없이 가슴 한 곳에 무게감이 생긴다. 그녀가 경험했던 사건들이 시대의 한계를 드러낼 때는 같이 분노하고 가슴 아파한다. 인종차별이 아직 만연했던 시대다. 한인 이주 1세대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자연스럽게 한인들의 삶이 어떤 고난과 역경을 딛고 현재에 이르렀는지 알게 된다. 단순히 성공담이 아니라 삶이 오롯이 녹아있다. 이 소설의 가치는 바로 이 부분에 있다. 한국인보다 더 한국적으로 글을 쓴 것보다 더 중요한 부분이다. 홀로 잘되겠다고 하지 않고 서로 연대하면서 같이 성장하는 모습을 볼 때 지금 한국의 모습이 대비된다. 한국 작가가 아닌 미국 작가가 이런 소설을 썼다는 사실에 부끄러움과 부러움을 느낀다. 우리의 역사가 점점 잊혀지는 것 같다. 오랜만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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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일즈 보르코시건 : 남자의 나라 아토스 마일즈 보르코시건 시리즈 6
로이스 맥마스터 부졸드 지음, 최세진 옮김 / 씨앗을뿌리는사람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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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행복한책읽기에서 출간한 마일즈 보르코시건 시리즈를 사놓고 천천히 읽어야지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러다 그 시리즈가 중단되고 다른 출판사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사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시리즈가 다른 출판사에서 나오고 있다는 것도 몰랐다. 다시 출간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1권부터 읽어야지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이 시리즈를 읽을 기회가 본편이 아닌 외전 성격의 이 작품이 먼저 왔다. 혹시 가끔 읽는 sf중 조금 무거운 소설이 있는데 그런 종류가 아닌가 하는 의문도 있었다. 하지만 읽기 시작하면서 이런 생각은 단숨에 사라졌고 이야기 속에 빨려 들어갔다.

 

남자의 나라 아토스란 제목만 보면 뭔지 알 수 없다. 그런데 나라란 말 대신 행성이란 단어를 넣으면 의미가 달라진다. 남자들만 살고, 아이들은 인공자궁을 통해 태어나는 행성이다. 여자들은 단 한 명도 없고, 태어날 때부터 여자를 죄악이라 생각하고 여자의 영상조차 금지된 행성이다. 그런데 이 아토스에 문제가 생긴다. 난소배양조직들이 오래되어 제대로 아이들을 태어나게 만들지 못하는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른 행성에서 여자들의 난소조직 등을 구입한다. 그런데 도착한 조직이 인간의 것이 아니다. 아토스가 멸망할 수도 있는 엄청난 사건이다.

 

새로운 난소조직을 구하기 위해 재생산본부의 에단 박사가 선택된다. 단 한 번도 외부 행성에 나간 적도 없고 여자를 본 적도 없는 그가 아토스를 대표해 클라인 우주정거장으로 파견된다. 이 이야기의 초반부는 사실 이런 아토스와 문화 충격으로 힘들어하는 에단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하지만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은하계를 뒤흔들 수도 있는 사건의 회오리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순진하고 약간 맹한 듯한 그가 덴다리 용병대의 엘리 퀸 대령과 엮이면서 이때까지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한 모험 속으로 뛰어 들어간다. 물론 그의 의사는 전혀 상관없는 모험이다.

 

아직 이 시리즈를 제대로 읽지 않아서 엘리 퀸이 소속된 용병대의 장군이 시리즈의 그 마일즈인지는 잘 모르겠다. 맞다면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이미지와 너무 다른 모습이다. 그것과 별개의 전개를 펼치는 이 작품은 에단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남자들만의 행성에서 왔다는 소식에 남자들은 비웃고, 누군가는 호모들의 행성이라고 비아냥거린다. 이때 분명하게 이 행성의 탄생과 통치 이념이 머릿속에 들어왔다. 그리고 처음부터 가지고 있던 몇 년 전 일본 애니 한 편과 이 소설이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그 애니는 남자만의 행성과 여자만의 행성의 우주선이 만나는 것인데 끝까지 보지는 못했다. 시간 순서만 보면 이 작품이 먼저인데.

 

난자조직을 구하려는 에단과 아토스가 자신들이 원하는 난자조직을 가지고 있을 것이란 의심을 가진 세타간다의 밀리소르 대령의 만남에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 오해와 착각에서 비롯한 이 만남은 에단에 대한 고문으로 시작한다. 에단은 아무것도 모른다. 그를 죽이려고 하는 데 그 순간 퀸이 나타나 구해준다. 이 구출은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킨다. 에단을 중심으로 첩보전이 펼쳐지고 텔레파시 능력을 가진 테렌스 씨가 등장하면서 문제는 더 커진다. 이때 왜 이런 문제가 발생했고, 얼마나 심각한 일인지 드러난다. 읽는 속도가 빨라지고 몰입도가 점점 높아진다.

 

sf라고 하지만 그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우리와 별 차이가 없다. 아토스가 게이들의 행성으로 건국되고, 다른 행성의 게이들을 받아들이고 여성을 죄악시하는데 이것은 이 소설이 나올 당시 사회 분위기와 연관성이 있을 것이다. 에단이 여자에 대한 두려움을 보여줄 때 웃게 되는 것은 우리의 어린 시절 외국인을 대할 때와 별 차이가 없다. 선입견과 공포가 마음과 행동을 제약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에단이 여자를 두려워하지 않게 성장하는 과정을 다룬 성장소설로도 읽을 수 있다. 다른 것을 대입하면 또 다른 성장이겠지만. 외전으로 나를 사로잡았는데 원래 시리즈는 더한 재미를 줄 것 같다. 현재 총 열여덟 권이 출간되었고 한국엔 여섯 권이 번역되었는데 모두 다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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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카페의 노래
카슨 매컬러스 지음, 장영희 옮김 / 열림원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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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량하고 외진 조그만 마을 풍경을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이 마을 한 가운데 제일 크고 오래된 건물이 있다. 이 건물이 예전에는 카페였다. 이 소설은 바로 이 카페의 주인인 미스 어밀리어 에번스의 사랑을 다룬다. 실제 이곳을 번창하고 즐거운 곳으로 만든 사람은 꼽추 사촌 라이먼이다. 그는 어느날 저녁 갑자기 나타나서 자신이 어밀리어의 사촌이라고 주장한다. 평소의 어밀리어라면 쫓아내었을 텐데 그를 집 안으로 들여놓는다. 사람들은 의문을 품고 다양한 상상력을 풀어놓는다. 그리고 그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로 이어진다. 그 결과로 만들어진 것이 바로 카페다.

 

어밀리어는 180센티에 이르는 큰 키와 남자와 겨루어도 손색이 없는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한때 결혼을 했지만 십 일 만에 결혼은 막을 내렸다. 그 후 삶은 돈을 밝히고, 소송을 좋아하면서 자신의 삶을 살아갈 뿐이었다. 한 가지 놀라운 점이 있다면 무료로 마을 사람들의 병을 고쳐준다는 것이다. 그녀의 의료 행위는 선의와 섬세함이 같이 곁들어 있다. 한 꼬마의 종기를 짜기 위한 과정을 보여줄 때 그것은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것은 사촌 라이먼이 나타나기 전부터 하던 행동이다. 그리고 어른들에게는 그녀가 만든 맛있는 술이 있다. 이 술은 영혼을 따뜻하게 만드는 마법의 힘을 가지고 있다.

 

라이먼의 등장은 생필품을 팔던 가게를 카페로 변하게 만들었다. 밤이면 이 마을 사람들이 카페로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 분위기를 북돋아주는 존재는 바로 라이먼이다. 가끔 사람들을 충동질해 싸움을 붙이지만 그는 호기심 가득하고 재미난 이야기를 지어내어 들려준다. 그리고 무엇보다 카페의 싼 음식 가격은 마을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기 충분하다. 하지만 이런 마을에 나쁜 소식이 전해져 온다. 그것은 한때 나쁜 놈이었다가 어밀리어에게 반한 후 착한 남자로의 삶을 살다가 그녀와 결혼까지 했었던 마빈 메이시가 돌아온다는 것이다. 그는 그녀에게 버림받은 후 강도질을 하다 감옥에 갇혀 있었다. 가석방으로 풀려나온 것이다. 이때부터 행복하기 활기 찬 분위기가 조금씩 바뀐다.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이해하기 힘든 부분은 바로 어밀리어가 라이먼을 사랑하는 것이다. 왜? 아무 이유도 설명도 없이 어밀리어의 사랑이 펼쳐진다. 이 사랑의 혜택을 누리는 것이 단순히 라이먼만은 아니다. 마을 사람들도 같이 누린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이 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왜 그를 자기 집안으로 받아들였을까 하는 것이다. 사람의 감정이 이성의 범주를 넘어서는 경우를 자주 보았지만 이 의문은 지금도 계속된다. 그리고 또 하나의 사랑이 나온다. 그것은 마빈에 대한 라이먼의 동경과 사랑이다. 이 엇갈린 사랑은 마지막 파국으로 치닫게 만든다. 그 결과가 소설 첫 장면의 풍경이다.

 

솔직히 말해 잘 읽었지만 이 소설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 앞에서 말한 그들의 사랑을 나의 이성과 감성이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감정을 이성으로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어밀리어와 마빈의 결혼과 파국도 역시 이해불가능한 일이다. 왜 어밀리어는 그의 청혼을 받아들이고 결혼한 것일까 하는 의문이 아직도 있다. 내가 아직 이런 감정을 받아들이려는 폭과 깊이가 없는 것인지 아니면 너무 머리로 분석하려고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 이후 벌어진 파국은 비교적 가슴 깊은 곳에 와 닿았다. 소설 중간중간에 그녀가 라이먼에게 어떤 행동을 했는지 보여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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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의 세계사
사토 요우이치로 지음, 김치영 옮김 / 좋은책만들기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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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을 주식으로 하는 한국에 태어났지만 쌀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다. 쌀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70년대 식량 증산을 위해 통일벼라는 품종을 심었다는 것과 흔히 안남미로 불리는 쌀의 경우 입으로 불면 날아간다는 소문 정도다. 이런 정도의 지식만 가지고 쌀을 바라보았는데 이 책을 읽으니 종류가 대단히 많다. 동남아 쌀의 품종이 모두 하나라고 생각했는데 다양하고, 지역에 따라 우리가 먹는 것과 유사한 것도 있다. 이것은 다시 미국으로 가면 또 다른 편견을 가지고 쌀을 보았음을 알게 된다. 쌀 혹은 벼에 대한 편견과 일반인의 지식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지 아주 잘 보여준다.

 

제목을 <쌀의 세계사>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쌀의 역사’다. 곡물에서 시작해 야생벼와 재배벼의 탄생으로 이어진 후 각 기후별 벼와 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것은 다시 쌀 문화와 각 지역별 벼와 쌀로 이어진 후 세계로 확산된 벼와 쌀로 마무리한다. 이 전체 과정을 읽으면서 사실 쌀의 역사를 제대로 배우지 못한 느낌이다. 그것은 저자가 쌀의 역사를 제대로 풀어낼만한 확실한 자료가 없기 때문이다. 학계의 학설과 자신의 연구 결과를 섞어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노골적으로 일본을 중심으로 삼는다. 물론 여기에는 이 연구의 선두 역할을 일본이 하고 있다는 의미도 같이 담겨 있다.

 

벼를 크게 두 종류로 나눈다. 야생벼와 재배벼다. 재배벼를 다시 인디카와 자포니카로 나눈다. 저자는 벼를 인디카형과 자포니카형으로 나누고 각각 야생형과 재배형이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저자의 생각에 동의한다. 그리고 인다카와 자포니카의 어원을 앞에서 설명한다. 그것은 일본의 카토 교수의 1928년 논문에서 시작했다. 특별한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고 일본에 많은 형을 일본형, 다른 한쪽을 인도형이라고 부르자고 제한한 것에서 시작했다. 이 논문이 영문판에서 일본형을 자포니카, 인도형을 인디카로 부르기로 한 것이다. 그 후 이 두 가지로 벼가 나눠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어처구니없는 작명의 결과다.

 

각 지역의 쌀 문화를 설명하면서 다른 음식과의 조화도 같이 다룬다. 쌀 짓는 문화가 어떤 식으로 발전했고, 쌀과 세트인 물고기나 쌀국수나 곡주 등도 같이 다룬다. 이때 여행을 다니면서 혹은 텔레비전 다큐에서 본 동남아의 시장 풍경이 순간적으로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이 과정에서 쌀에 대한 인식이 조금 더 깊어졌다. 별다른 구분 없이 생각했던 찹쌀과 현미 등을 구별하기 시작했지만 쌀의 세계 전파가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추정을 풀어내었을 때는 불분명한 자료 때문에 의문이 생겼다. 그의 전공인 식물의 DNA 조사 결과를 이용한 분석도 하나의 설 이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전파 경로에 대한 조사보다 쌀의 유전적 조사에 더 중심을 둔 결과가 아닐까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벼의 종류는 뜬벼라고 불리는 것이다. 비가 많이 오거나 홍수가 나도 살아남는 품종인데 물에 잠기게 되면 키를 자라게 해서 벼가 죽는 것을 막는다고 한다. 한때 뉴스를 보면 태풍 때문에 넘어진 벼와 물에 잠겨 썩은 벼가 자주 나왔는데 이것이 자연스레 연상 작용으로 이어진 모양이다. 벼의 새로운 품종 개발은 단지 현재만의 시도가 아니다. 최근 유전공학이 발전하면서 더 왕성해진 것 같지만 수백 년 전에도 품종 개량은 있었다. 세계3대 작물 중 밀과 함께 2,3위의 생산량을 다투는 작물답다. 사료로 주로 사용되는 옥수수를 뺀다면 항상 1~2위다.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에서도 쌀의 생산과 소비가 늘어난다는 뉴스가 생각난다. 기대한 내용도, 흥미롭고 재미있는 전개는 아니지만 간략하게 쌀에 대해 알기에는 나쁘지 않다. 하지만 곳곳에 보이는 일본식 표현과 오타는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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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청접대과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2
아리카와 히로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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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제목을 보았을 때 현청에 접대과라니 대담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눈에 음란마귀가 살아서 그런지 이 접대를 룸살롱 접대 등과 연결해서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책을 펴고 읽자마자 판다 유치론이 나오면서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이십 몇 년 전 한 독특한 현청 직원이 고치 현 신생 동물원의 상업적 성공을 위해 기획한 것이다. 이 계획은 고치 현의 관광을 부흥하기 위한 시도이지만 관료 조직의 안일하고 복지부동의 자세 때문에 실패로 돌아간다. 이 입안자는 한직을 전전하다가 실망하고 현청을 떠난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그해 고치 현청 관광부에 접대과가 발족했다.

 

관광부 소속 접대과라고 하니 금방 감이 오지 않는다. 일본과 다른 용어의 문화 때문인지 아니면 접대를 너무 그런 쪽으로 생각해서 그런지 모르지만 이 이름과 관광 부흥을 연결할 수 없었다. 현의 관광 발전을 위해 독창성과 적극성을 갖고 새로운 기획을 착착 내놓으라는 지사의 훈시가 있었지만 처절할 만큼 공무원인 그들에게 이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이때 한 직원이 관광 홍보대사를 도입한 다른 지자체의 경우를 말한다. 이것도 몰랐던 과장과 다른 직원들은 이 기획을 찬성하고 진행한다. 독창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진정’, ‘처절할 만큼’, ‘뼛속까지’, ‘공무원’이었다.

 

이 기획을 낸 직원은 과에서 가장 젊은 스물다섯 살 가케미즈 후미타카다. 현 출신의 연예계, 스포츠계, 문화계 유명인들에게 무료 할인 쿠폰이 든 홍보대사명함을 전달해서 그들에게 배포시키려는 계획이다. 이것에 비하면 지역 출신과 상관없이 홍보대사를 인명하는 한국의 지자체가 새삼 대단하게 다가온다. 이 계획을 위해 전화나 메일로 유명인에게 연락을 했는데 가케미즈에게 한 통의 답 메일이 온다. 소설가 요시카도 교스케다. 이 둘의 연결에서부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한다. 대외적인 업적과 성과만을 내세운 관청이 아닌 실제 도움이 되는 성과를 내는 접대과로의 변화가.

 

흔히 공무원이나 공사 직원이 되면 가장 똑똑했던 사람들이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멍청해진다는 말을 한다. 이것은 그 사람의 자질 문제가 아니라 조직 문제다. 조직이 요구하는 쪽으로 사람의 생각과 행동이 맞춰지기 때문이다. 속된 말로 ‘복지안동’하는 공무원이 된다. 이들의 기획은 민원이 적거나 자신들에게 불이익이 없거나 편리한 쪽으로 흘러간다. 시장이나 구청장이 새롭게 온다고 하지만 그들은 몇 년 지나면 사라지고, 어떤 문제가 생겨도 자신들의 책임은 어딘가로 전가된 채 없어지기 때문이다. 민간 업자들에게 이런 사람들은 봉이나 다름없다. 현실 감각이 떨어지다 보니 눈속임으로 속여먹기 좋은 대상이 된다. 퇴직 후 이들이 사기꾼들의 가장 좋은 먹잇감이 되는 것도 이런 연장선에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젊은 만큼 때가 덜 묻은 가케미즈는 요시카도의 냉철하고 정확한 지적을 잘 받아들인다. 소설에 의해 과장된 부분이 있지만 열성적으로 요시카도의 의견을 접대과에 전달한다. 전형적인 공무원들인 접대과 직원들의 사고는 틀 속에 갇혀 있다. 이것을 깨기 위해 민간 감각을 가진 새로운 스텝과 외부 인사의 영입이 필요하다. 이렇게 계약직 다키와 이십 몇 년 전 판다 유치론을 주장한 기요토가 등장한다. 물론 이 둘의 등장이 바로 고치 현의 관광 부흥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기요토의 아이디어는 그들이 당연하고 별것 아니라고 생각한 것을 유기적이고 창의적으로 연결한다. 이 책을 읽은 후 지방 도시를 둘러보니 새롭게 다가오는 것이 많았다.

 

아무리 아이디어가 좋다고 해도 이것을 실행하는 것은 역시 관청이다. 당연히 저항이 있다. 가장 먼저 접대과에서부터 그렇다. 이런 저항과 반대를 하나씩 깨고 고치 현이 가진 관광 자원을 하나씩 보여주고 문제점과 해결점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려낸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여행했던 몇 곳의 이미지가 스쳐지나간 것은 이 아이디어가 독특하거나 특별해서가 아니라 유기적이고 실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사는 사람의 입장이 아니라 여행자의 위치에서 자신들이 가진 관광 자원을 돌아볼 기회를 제공하는 내용과 이를 하나씩 깨닫게 되는 가케미즈의 모습은 약간 더디지만 충분히 매력적이다.

 

여기에 다키와 가케미즈의 풋풋한 사랑이야기와 요시카도와 사와의 묘한 긴장감(?)이 주는 재미도 상당하다. 연애소설이니 이들의 사랑이 가장 바탕에 깔려서 진행된다. 개인적으로 이 사랑보다 현청 접대과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갈등과 가케미즈의 깨달음과 성장이 더 마음에 들었지만. 요시카도가 내세운 관청에 민간 감각을 도입하자는 취지는 이미 한국에서 많이 실행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대외적 이미지를 위한 표어일 뿐이다. 현실에서 그들은 아직도 공무원이다. 읽으면서 가케미즈를 응원하게 되는 것도 그가 자신의 의식을 바꾸고 행동으로 옮기면서 성장해나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흔넷의 젊은 과장 시모모토 구니히로의 모습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조직의 수장 역할과 그의 나이가 젊다고 말하는 조직의 노쇠함 등. 한국과 너무나도 닮은 일본의 모습을 보면서 지금 우리의 현실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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